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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의 부활과 전성기

1950년 중반 이후 한국영화는 중흥의 전기가 마련된다. 국산영화에 대한 면세조치로 인해 고무된 영화계는 다양한 소재발굴과 함께 젊고 유능한 신예 감독들로 인해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 1955년 이규환 감독의 <춘향전>은 1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2개월 간의 장기흥행에 돌입한다. <춘향전>의 흥행에 힘입어 신상옥 감독의 <젊은 그들>, <무영탑>, 김성민 감독의 <망나니 비사>, 전창근 감독의 <마의 태자>, 윤봉춘 감독의 <처녀 별> 등 사극의 제작이 활기를 띠게 된다. 이강천 감독의 <피아골>은 반공과 관련된 검열로 대사가 변경되는 곡절을 겪었고, 이병일 감독의 <시집가는 날>은 아시아 영화제 희극상을 수상해 최초의 해외 영화제 수상으로 기록되었다. 1950년대 말에서 1960년대에 이르러 문예영화의 붐과 함께 유현목, 김수용, 신상옥, 이만희, 김기영 감독이 대표작을 쏟아내며 한국영화의 양적, 질적인 전성기를 이끌어간다. 유현목 감독은 출세작 <교차로>와 <잃어버린 청춘>에 이어 대표작이 된 <오발탄>으로 강렬한 주제의식을 표출했다. 전후의 사회현실을 예리하게 그려낸 그의 작품은 주제의식과 함께 뛰어난 영상감각이 특히 돋보였다. 신상옥 감독은 데뷔작 <악야> 이래로 1961년 <성춘향>까지 흥행작을 내놓은 이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상록수>, <벙어리 삼룡이>와 같은 문예영화, <연산군>, <폭군 연산> 등의 사극, <로맨스 빠빠> 등의 가족극 등 다양한 장르의 수준높은 작품을 선보였다. <주검의 상자>를 내놓은 김기영 감독은 <초설>, <십대의 반항>으로 전후의 상처를 그려낸 수작을 발표했다. 이후 김기영은 <하녀>와 1970년 이후 선보인 <화녀>, <충녀> 등으로 인간의 악마성과 새디즘을 표출한 작품으로 주목받았다. 김수용 감독은 1960년대 10년 동안 모두 59편의 작품을 만들었다. 1958년 <공처가>로 데뷔한 그는 <혈맥>, <갯마을>, <만선> 등으로 다작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완성도와 작품성으로 인정받았다. <돌아오지 않는 해병>, <7인의 여포로>, <싸리골의 신화> 등 전쟁영화와 <만추>, <귀로> 등 심미영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세계를 선보인 이만희 감독도 영화작가로 손꼽힐 만 했다. 이밖에도 이봉래, 박상호, 이성구, 최하원, 강대진 감독 등도 나름의 영화적 색채를 띠며 60년대 영화계를 더욱 풍성하게 했으며, 임권택 감독이 <두만강아 잘 있거라>로 데뷔하며 30여 편의 다작을 내놓았다. 1960년대 한국영화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작품 제작 편수의 증가와 질적인 향상, 극장 영화 관람객의 폭발적인 증가, 제작과 배급 등 유통구조의 변화 등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며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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