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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성 영화의 정착과 발성 영화 시대

우리 영화계에서 발성영화 시대가 시작된 것은 1935년 10월에 단성사에서 상영된 <춘향전>이었다. 이명우, 이필우 형제에 의해 제작된 이 작품은 어려운 제작환경 속에서 만들어진 영화로 당시로서는 비싼 관람료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호응을 얻었다. 주제곡은 작곡가 홍난파가 맡아 김복희의 노래로 취입되었다. 이명우, 이필우 형제는 우리 나라 영화기술의 개척자로 평가되는 인물이다. 이후 발성영화로는 <아리랑 고개>, <아리랑 3편>, 이규환의 <무지개>, 나운규의 유작 <오몽녀>, 안종화의 <인생항로>, 이규환의 <나그네> 등이 제작되었다. 1936년까지 무성영화도 계속 제작되었지만, <춘향전>의 성공을 계기로 점차 제작편수에 있어서 발성영화가 무성영화를 압도하기 시작했고, 1937년에 이르면 그 해 제작된 모든 영화가 발성영화로 채워지기도 했다. 1930년대 후반부터 1945년 광복에 이르기까지는 한국영화의 수난기로 기록된다. 총독부가 영화의 제작과 배급을 장악하면서 조선영화령을 공포하여 제작여건에 대한 억압과 표현의 자유를 말살하게 된다. 또한 조선의 영화인들에게 군국주의 어용영화를 만들도록 강요해 극영화는 배제한 체 수많은 친일 군국주의 영화만 양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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