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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별 국악계 동정 및 국공립 국악관현악단의 현황

해방 이후 국악계는 다른 예술 분야에 비해 많은 변화를 겪었다. 국악계의 변화는 시간의 지속에 따르는 절대적인 변화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문예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발전이 저조했던 분야의 특수한 상황을 보여주기도 한다. 최근 30여 년간 예술계의 다른 분야, 예를 들어 국악계를 미술계, 양악계, 연극계, 무용계 등과 비교해 보았을 때, 국악계가 약 40배라는 급격한 성장률을 보였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편, 국악계는 이러한 양적 성장 외에도 질적 성장을 이루었다. 우리 예술계 내에서 국악계라고 하는 분야의 활동을 살펴보면, 해방 직후 전통음악 혹은 국악으로 통합되었던 것이 최근에는 연주 및 창작, 학술 및 평론, 교육, 국제교류 등으로 분화되어 기술되고 있다. 이는 질적인 성장이 함께 이루어진 증거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현재 광복 이후 국악계의 다면적인 변화를 일관된 시각으로 체계적으로 기술한 문헌은 발견하기 어렵다. 해방 이후 벌어진 다양한 국악계의 변화가 체계적으로 기술되지 못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설명될 수 있다, 첫 번째, 해방 이후 국악계의 변동이란 현대국악사 영역에 속하는데, 현대사란 본질적으로 당대사이기 때문에 그 변화의 방향을 예측할 수 없다. 따라서 방향을 예측할 수 없는 현대국악사의 흐름을 체계적으로 기술하기란 어려웠다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해방 후 국악계는 다른 분야에 비해 문화적 혼란기, 침체기로부터 늦게 벗어났다. 이 점은 우리의 예술사회 내에서 국악이라는 대상이 여타 문예 분야와 동등하게 독립적인 문화적 대상물로 인식되는 것이 늦었던 이유가 되기도 한다. 실제로 국악이라는 대상이 문화예술계에 독자적인 부문으로 발돋움하는 시기는 대략 1960년대 후반 이후였다. 연대별 국악의 변천사 1960년대를 전후로 해방 이전에 형성되었던 음악 사회의 구도가 가시적 범주 안에서 달라지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거시적인 흐름 속에서 국악계의 변화도 진행되고 있었다. 이러한 변동의 구체적인 사례가 국악의 원천으로 전통음악을 설정하는 것이다. 당시 국악의 전통음악으로의 인식은 국악계와 사회가 동시에 보호하고 인정하려는 가치였다. 1964년대 이후로 국악의 주요 갈래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되기 시작했다는 것은 이러한 흐름의 상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1960년대에는 국악에 대한 다른 방향의 합의도 있었다. 비록 국악계의 극소수의 동의로부터 시작되기는 했지만, 이를 통해 현대 국악의 변동을 근본적으로 도모할 만한 일이 적극적으로 벌어졌다. 그것의 구체적이자 상징적인 사례는 1962년 이후 국립국악원에서 신국악 작품을 일반 사회에 공모하게 되는 점이다. 이는 국악이 장차 전통음악뿐만 아니라 의도적으로 전통음악을 매개하고 또한 새로운 음악을 포함하는 부문으로 성장하게 되는 사회적 기반이 형성됨을 시사하고 있다. 따라서 1960년대 이후 국악계의 내외에서, 나아가 전 예술계 내에서 국악계의 원천이 전통음악으로부터 비롯됨을 확인하였고, 또한 전통이 가지고 있는 필연적인 한계를 창작이라는 대안으로 극복해나가는 것이 대의가 되었다. 이는 바로 최근까지 국악계에도 지속되고 있는 명분이기도 하다. 그런데 1960년대에 최근과 같은 현대국악의 이념적 지표가 선명해졌다고는 하지만, 이를 실현하기 위한 다양한 현실적 기반이 마련되어 있어야 했는데, 그 기반은 극히 부족했다. 예를 들어, 음악 현장에서는 연주회가 벌어지는 횟수가 매우 적었고, 전통적인 레퍼토리 외에 다른 음악을 보여줄 만한 신국악 작품 수에서 절대적인 한계가 있었다. 또한 국악계의 새로운 이념을 실현해 나갈 수 있는 음악가, 연주단체가 충분치 못했다. 국악계 활동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줄 만한 공연자 및 단체가 적극적으로 결성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이후였다. 그러나 공연 횟수의 증가는 여전히 완만했고, 공연할 다양한 레퍼토리 역시 충분치 못한 것은 여전했다. 따라서 1970년대까지 주요 공연은 전통을 중심으로 설정한 공연이거나, 전통과 창작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개인독주회가 대부분이었다. 1980년대 이후부터 서울은 물론이고 전국 각지의 국·공립기관에서 적극적으로 국악관현악단을 설치하였다. 전국적으로 동참한 국악관현악 발달책은 관련 악단의 구성원을 활기 있게 활동하도록 하는 기반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국악계의 여타 음악가들을 고무하는 자극제로 작용하였다. 1970년대까지 공연예술계 내에서 소수자였던 국악에 대해 제공되는 극장의 수는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1980년대 이후 전국의 국·공립기관이 주최가 되어 운영된 국악관현악단의 공연 활동을 계기로 연주회장의 양적인 확보 문제가 조금씩 해결되기 시작했다. 다만, 전국의 각종 용도의 종합 공연장에서 국악 연주는 일상화되었지만, 국악 공연을 위한 최적의 음향 실현과 같은 기술적 시설의 미비는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근본 문제 중 하나로 남아 있다. 1990년대는 이전까지의 경향을 대부분 계승하지만 새로운 경향이 두 가지 생겨났다. 공연 및 연주에 있어서 대규모의 관현악단으로부터 벗어난 음악가들이 자발적으로 소규모 악단을 결성했고 그 수가 현재까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소규모 악단의 성장과 활약은 1980년대 이후 국악관현악단의 발달과 동시에 주목해야 할 만한 것이다. 왜냐하면, 관현악단은 상징적인 음악활동의 장이 될 뿐 절대 다수의 음악가들이 이에 참여할 수 있는 장치는 아니다. 또한 자의건 타의건 간에 관현악을 통해 만족하지 못한 음악가와 청중이 생겨났는데, 소규모 악단은 민첩하게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었다. 1990년대 후반 이후로 가시화된 또 다른 움직임의 하나는 대중적 음악 취향을 창작 국악의 원리로 혼합시키는 음악이 급부상했다는 점이다. 사실상 전통음악을 기반으로 서양음악과의 혼성 음악을 시도한 대중음악은 1990년대 이전에도 있었다. 대표적인 예 가운데 하나가 1930년대의 신민요이다. 그러나 20세기 전반기의 혼성적 갈래로 자리잡았던 대중음악의 전통은 광복, 전쟁, 전후 재건을 거치는 동안 국악사의 흐름의 수면 밑으로 가라앉아 버렸기 때문에, 그 직접적인 전통을 계승한 음악을 찾기 어렵다. 오히려 1990년대 대중국악은 국악의 연주와 향수의 폭이 넓어지면서 다양한 활로를 찾던 가운데 생겨난 것으로 이를 통해 역으로 잃어버린 음악사를 재고할 여지를 갖게 된 쪽에 더 가깝다. 결과적으로 1990년대의 국악계의 세부 지도는 음악계의 세부지도를 축소해놓은 모양으로 그려지게 되었다. 즉, 국악계의 지도는 20세기 이전에 만들어져 전승되던 음악인 전통음악, 그리고 전통음악을 의도적으로 수용하면서 창조성을 불어넣어 창작의 주체가 만들어낸 ‘작곡된 국악’ 이른바 신국악(창작국악), 그리고 신국악적 이념을 수용하되 대중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대중국악, 이렇게 세 부분으로 그려진다. 다만, 이 가운데 대중국악은 현재까지 상당히 순수하게 대중의 애호를 호소하는 방향의 음악 운동 성격을 강하게 갖고 있다. 이러한 점은 대중국악이 적극적으로 상업자본과 연결되어 있지 못하다는 한계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때문에 현재 국악계에서는 창작국악의 범주 속에 학구적ㆍ예도적 지향의 음악과 대중 지향의 음악을 동일시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동일시의 원인은 대중국악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현재 대중국악은 사실상 음악적 취향에 대한 합의를 얻어낸 데에 불과하여 적극적인 상업자본의 개입이 미미하다. 극단적인 예로는 공적 자본에 의지하여 대중국악이 발달하기까지 한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대중국악이 지향하고 있는 바, 대중에 대한 애호를 성취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인 상업자본과의 결합으로 진입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1900년대 전까지 국악계의 동향은 일정한 방향을 알 수 없이 절대량이 생성되고 팽창하고 있는 과정에 있었기 때문에, 음악가 개인의 활약 혹은 연주단체의 설치, 새로운 공연 형식의 시도, 새로운 창작곡의 발표 등만 개별적으로 기술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더욱 국악계의 지향 및 국악계의 여러 복잡한 활동 간의 상호관계를 가늠해보기가 어려웠다. 심지어 최근에는 국악계의 3분 구도가 각각 고르게 이해되지 못하고 신국악이 지나치게 강조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국악공연 현장에서 전통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이 30%를 넘고 있다는 점은 세 범주가 고르게 인식되어야 할 전제가 된다. 국공립 국악관현악단 현황 2005년은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이 창단 40주년을, KBS국악관현악단이 창단 20주년을 맞이한 뜻깊은 해이다. 아울러 성남시립국악단이 새롭게 창단되었다. 그래서인지 관현악단 연주는 세월의 오랜 연륜 속에서 묻어나는 농익은 맛과 새롭게 시작하는 풋풋함과 생동감이 어우러졌다. 대부분의 관현악단 연주회는 주제와 테마가 있는 기획공연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각 단체의 특성을 고려한 차별화된 연주 속에서도 늘 대중들과 호흡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고자 노력하였다. 국립국악원 창작악단은 ‘미래를 위한 힘찬 발걸음’과 ‘소리 하나되어’라는 주제를 가지고, 협주곡 중심의 연주회를 개최하였다. 이 단체의 분위기는 아직 젊고 신선하지만 연주에 임한 단원들의 음악에 대한 순수한 열정은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은 창단 40주년을 맞이하여 기념연주회를 마련하였다. 이 단체는 한국 최초의 국악관현악단으로 1965년에 창단되었다. 그동안 전통음악을 바탕으로 한 창작관현악곡을 위촉 발굴하여 창작음악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또한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과 기획공연을 통해서 국악의 대중화와 현대화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이 공연은 창단 이래 지금까지 이 단체에서 활동했던 역대 단원들과 함께하는 축전의 의미를 가진 음악회였는데, 공연구성도 역대 단원들이 선보인 정악합주ㆍ가곡ㆍ시나위의 수준 높은 연주와 현재 단원들의 창작음악 세계로 이루어졌다. 40년간 경전을 읽는 마음으로 음악을 대하여 왔다는 <악경불혹> 공연은 국악관현악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아우르는 의미 있는 연주회였다. ‘전통음악의 창조적 계승 발전과 국악의 현대화ㆍ대중화’라는 목표를 가지고 창단한 KBS국악관현악단이 벌써 20년이 되었다. 이 단체는 1985년 창단된 이래 대중들과 가까운 거리에서 양질의 우리 음악을 연주하고, 독창적이며 새로운 음악회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노력하였다. 이색적으로 창단 20주년 기념연주회에 동갑내기인 국악실내악단 슬기둥을 초청하였다. 특히 이번 연주에서는 KBS국악관현악단의 상임지휘자이자 슬기둥의 리더인 이준호가 전체적인 음악적 조율을 맡아서 주목을 받았다. 두 단체는 이날 국악의 현대화와 대중화라는 타이틀에 적합한 다양한 악곡을 연주함으로써 관객들의 좋은 반응을 얻었다. KBS국악관현악단은 주제가 있는 기획공연을 마련하였는데, 먼저 주목해볼 만한 공연은 <관현동락 20년>이다. 이 공연은 창단 때부터 지금까지 함께 음악활동을 해온 연주자(이준호, 정대석, 곽진우, 서주미, 송안나, 김정년)들을 위한 무대로 꾸며졌다.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기획된 <어버이 살아실제>는 일반인들에게 친숙한 음악, 효를 중심으로 한 내용으로 마련되었다. 그리고 협주곡의 무대였던 <악기의 재발견>은 다양한 악기의 특성을 엿볼 수 있는 공연이었다. 이날 연주에서는 장새납과 생황, 비파, 단소, 소금, 방향, 해금 등의 악기가 관현악과 조화를 이루어 한층 깊은 맛을 더한 음악을 연출하였다. 경기도에서 국악의 대중화와 활성화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단체로 경기도립국악단을 꼽을 수 있다. 여기에 올해 새롭게 창단되는 성남시립국악단의 활동도 기대된다. 경기도립국악단은 여러 관현악단 중에서 늘 테마가 있는 공연을 기획한다. 이 단체는 <체리빛 겨울이야기>라는 주제로 1월 중순부터 2월 말까지 일곱 번의 음악회를 열었다.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진 성악곡과 기악곡을 주로 연주하였는데, 창작음악과 퓨전스타일의 음악이 주류를 이루었다. 이외에도 <사랑이 있는 가족음악회>와 <청소년 여름 예술여행>, <바람의 소리> 등의 연주회가 있었다. 특히 특별기획공연으로 기획된 <바람의 소리>는 명상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국악의 선율로 이루어진 명상음악은 관객들에게 편안함과 여유로움을 되찾아주는 색다른 음악적 경험을 선사하였다. 성남시립국악단은 성남을 알릴 수 있는 국악공연을 기획하기 위해서 항상 연구하고 있다. 이 지역에 맞는 음악적 소재를 발굴하고 그에 맞는 곡을 만들어서 연주하는 것이 이 단체의 목표이다. 12월에 있었던 창단연주회에서 대풍류를 서주로 관현악과 민요, 관현악과 사물의 만남을 비롯한 다양한 악곡이 연주되었다. 특히 성남을 표현한 창작음악 ‘성남의 소리, 오! 성남이여~’는 지역민들의 국악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모으기에 충분하였다. 『문예연감』에 의하면, 국공립단체 및 국악관현악단 공연은 전체 공연의 67.4%에 해당하는 1810회로 조사되었다. 이는 수치상으로는 예년보다 크게 증가한 것이다(2002년 47.2%, 2003년 48.3%, 2004년 48.4%). 전체 국악공연에서 국공립단체와 국악관현악단이 차지하는 비중은 해마다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 중에는 전통음악과 창작음악이 함께 연주되는 혼합공연 및 무용이나 대중음악까지 포괄하는 종합공연이 가장 많고, 전통음악공연 역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반면 극음악과 창작음악 공연은 상대적으로 적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국내단체의 해외공연은 국내공연에 비해 정확한 수치를 파악하기 어렵다. 국공립단체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한 번 해외에 나가서 몇 회의 공연을 가졌는지 불분명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2005년도의 해외공연은 전년도보다 줄어든 21건으로 조사되었다. 조사의 한계가 있었겠지만, 공연 대상 국가의 분포를 보면 미국, 일본, 유럽 외에 말레이시아, 중남미 등 전 세계에 고루 퍼져 있다. 특히 해외공연의 경우 자료수집상의 어려움이 있는데, 한 번 해외에 나가서 몇 회의 공연을 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인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참고: 2005~2006 『문예연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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