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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교시 1980년대 이후 영화의 흐름

    수업개요
    아시아 영화의 새로운 물결은 유럽에서 나타난 뉴시네마와 마찬가지로,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영화언어를 통해 그들이 처한 역사적 현실과 변화하는 정체성을 탐구했다. 다른 아시아국가보다 빨랐던 1960년대 일본의 뉴웨이브, 1980년대에 나타난 중국 5세대 감독의 영화들, 후샤오시엔과 양덕창을 비롯한 대만 뉴웨이브, 지금은 거의 사라진 홍콩의 뉴웨이브가 아시아 영화의 새로운 물결의 주역들이다. 1960년대 후반에 나타난 아메리칸 뉴시네마는 고전적 할리우드가 몰락한 뒤 영화와 영화관객이 변화하고 있음을 알려준 역사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할리우드 영화산업은 이런 변화를 기반으로 새로운 전략을 통해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 1970년대 중반부터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뉴할리우드 영화산업은 블록버스터 전략, 수평적 통합, 배급 영역으로의 집중 등 고전적 할리우드와는 다른 전략으로 새롭게 재편된 할리우드 영화산업을 지칭한다. 뉴할리우드의 산업구조는 세계영화시장 지배전략이라는 점 뿐 아니라 한국과 같은 영화산업의 모델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전세계 애니메이션 시장의 중심이 되어온 미국의 애니메이션은 1980년대 후반 디즈니의 화려한 부활로 새로운 중흥기를 맞는다. 미야자키 하야오와 지브리 스튜디오가 중심이 된 일본의 장편 애니메이션 역시 재패니메이션이란 용어를 만들어 내며 미국과 함께 세계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일본 뉴웨이브
    1950년대까지 미국에 버금갈 정도로 강력한 메이저 중심의 영화산업 구조를 갖고 있던 일본은, 1960년대 들어 TV에 관객을 잃으면서 쇠락하기 시작했다. 오시마 나기사, 요시다 요시시게, 시노다 마사히로, 이마무라 쇼헤이 등 일본 뉴웨이브의 주역들은 이와같이 주류 영화산업이 몰락하던 시점에서 등장했다. 오시마 나기사의 <청춘잔혹 이야기>(1960년)에서 시작된 일본 뉴웨이브는 1950년대의 급진적인 학생운동과 신좌파 운동을 동력으로 삼았으며, 평온하고 번영된 일본의 국가 이미지의 이면에 존재하는 억압과 갈등을 날카롭게 드러내면서 일본 사회를 잔인하게 비판했다. 또한 뉴웨이브 감독들은 아버지 세대의 영화를 거부하면서 영화 형식에 대한 실험을 통해, 전복적 영화형식을 비판의 무기로 사용하고자 했다.
    중국 5세대 감독들
    첸 카이거의 <황토지>(1984)로 시작된 중국 5세대의 영화들은 1980년대 중반에 세계영화계에 모습을 드러냈다. 대표적인 감독들로는 첸카이거, 장이모우, 티엔 주앙주앙, 황지엔신 등이 있다. 이들은 문화대혁명을 경험하고 베이징 영화학교에서 함께 공부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5세대 감독들은 중국의 전통 미학과 외국의 미학을 모두 받아들여 독창적이고 다양한 표현양식을 만들어냈으며, 유교윤리와 가부장적 사회, 국가의 제약을 떨쳐 버리고자 했다. 세계영화계의 열광에도 불구하고 중국 공산당의 엄격한 검열을 받아야했던 5세대 감독들은 사회비판적 시각을 은유와 상징으로 표현했다. 이런 제약으로 오히려 그들은 자신들만의 독특한 영화세계를 개발할 수 있었다.
    대만 뉴웨이브
    대만 뉴웨이브는 후샤오시엔, 양덕창, 코이첸 등이 1980년대 초반 <세월의 이야기(光陰的故事)>(1982)와 <샌드위치맨>(1983)을 공동작업하면서 등장했다. 국민당 정부가 영화를 이데올로기 기구로 보고 영화산업을 강력하게 통제하면서, 대만영화는 진부한 멜로드라마나 국가 선전용 영화들 일색이었다. 1980년대에 자유화 물결이 확산되면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대만인의 정체성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대만 뉴웨이브는 이런 변화들 속에서 출현하여, 개인의 일상을 응시하면서 대만 사회의 변화를 탐구하고 그들의 잊혀진 기억을 일깨우는 작업을 해왔다. 후샤오시엔의 <동동의 여름방학>(1984), <동년왕사>(1985)를 비롯한 소년기 4부작은 소년의 성장기를 통해 급속한 산업화가 개인의 삶에 미친 영향을 다루었고, <비정성시>(1989)를 비롯한 역사 3부작은 대만인의 정체성의 기원을 찾아 과거로 돌아감으로써 개인이나 가족의 일상을 통해 역사가 남겨놓은 흔적을 그리고자 했다. 대만 뉴웨이브의 또다른 대표감독인 양덕창은 현재의 대만에 주목한다. <청매죽마>(1985), <공포분자>(1986)는 대도시 타이베이를 배경으로 미래를 상실한 타이베이의 젊은 세대를 표현했다.
    홍콩 뉴웨이브
    홍콩 뉴웨이브는 서극, 허안화 등 일군의 젊은 감독들이 1980년대 초, 중반에 대거 영화계에 입문하면서 시작되었다. 중국이 아니라 홍콩에서 1940, 50년대에 태어난 이들 젊은 감독들은, 중국이나 중국 전통보다는 홍콩에 살고 있는 개인의 완전히 사적인 이야기, 자신들의 현재, 그리고 홍콩의 불분명한 미래를 표현하고자 했다. ‘동시대에 천착’했던 홍콩 뉴웨이브는 홍콩인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영화들을 만들면서, 상업영화만이 나오던 홍콩 영화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허안화감독의 <비밀>, <망향>, 엄호감독의 <사수유년>(1984), 서극감독의 <첫번째 유형의 위험> 등이 홍콩 뉴웨이브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1997년 홍콩이 본토로 반환된 이후 홍콩의 영화산업은 과거보다는 침체된 분위기였다. 그러나 홍콩영화산업은 중국 본토를 새로운 시장으로 삼아, 돌파구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미국 애니메이션의 역사
    1914년 윈저 맥케이의 <공룡 커티> 이후 미국 애니메이션은 줄곧 세계 애니메이션의 선두 자리를 지켜왔다. 1930년대는 미국 애니메이션의 황금기라고 불리는데, 그 배경에는 강력한 신문재벌과 메이저 영화사들의 지원, 뛰어난 인재들과 월트 디즈니의 출현, 그들의 피조물인 미키 마우스나 벅스 버니 같은 주인공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과 텔레비전의 출현 이후 미국 애니메이션에 일대 변화를 가져오는 주체는 UPA(United Production of America) 스튜디오였다. UPA에서는 리미티드 애니메이션(Limited Animation)이란 새로운 제작방식을 개발하여 빠르고 경제적인 애니메이션 제작을 가능하게 하였고 디즈니의 장편 애니메이션에 대항하여 차별적인 CF 애니메이션과 켐페인용 애니메이션을 제작하여 미국 애니메이션에 신선한 활력을 불어넣는다. 그러나 1970년대 초반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 미국 애니메이션은 침체기를 맞는다. 1989년 <인어공주>는 디즈니 부활의 시발점이 된다. 뒤이어 <미녀와 야수>(1991), <라이언 킹>(1994) 등이 계속 성공을 거두면서 미국 애니메이션은 제2의 황금기를 맞이한다. 1990년 새로운 스타일로 전 세계를 열광시킨 <심슨 가족>(1989~)과 MTV의 <이언 플럭스>(1995~), <러그래츠>(1991~) 등의 작품과 <누가 로저래빗을 모함했나>(1988)를 비롯한 컴퓨터 애니메이션의 성공도 미국 애니메이션 부활에 중요한 바탕을 제공한다. 1980년대 초 MTV의 등장은 미국 애니메이션의 변화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전통적인 주인공들과는 매우 다른 모습과 성격, 행동을 지닌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하고, 성적인 농담과 비속어가 넘쳐나는 성인취향의 애니메이션들이 출현하게 된 것이다. <비비스 앤 벗헤드>(1993~)와 <이언 플럭스>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한편 1990년대 어린이를 위한 만화영화 <러그랫츠>는 어린이들이 창조적으로 생각하고 이야기를 만들 수 있도록 사고능력을 키워주는데 효과적인 예로 평가받으면서 세계적으로 호응을 얻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애니메이션
    일본 애니메이션의 시작은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 애니메이션을 쫓는 데서 출발하였다. 1956년 도에이 영화사에서는 애니메이션 제작을 위한 도에이 동화를 설립하고 꾸준히 장편 애니메이션을 제작하였다. 데즈카 오사무도 1961년 무시프로덕션을 설립하고 TV용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기 시작한다. 대표적인 작품이 <철완 아톰>(1963)이다. 짧은 시간에 눈부신 발전을 이룩한 일본 애니메이션은 1960년대에 많은 작품들을 미국에 소개하면서 재패니메이션의 존재를 알리게 된다. 1960년대에는 스포츠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인기를 얻었던 반면 1970년대에 들어서면 거대 로봇물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는데, 그 효시가 <마징가 Z>(1972~)이다. 1990년대 후반 이후 재패니메이션은 장편 애니메이션을 중심으로 세계시장을 공략하고 있는데, 그 중심에는 <이웃집 토토로>(1988), <원령공주>(1997) 등을 만든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거장이 자리하고 있다.
    한국의 애니메이션
    우리나라 최초의 애니메이션은 1967년작 신동헌 감독의 <홍길동>이다. 이 작품은 개봉 후 불과 4일 만에 10만 관객을 모으는 성공을 거두었고 우리나라에 일시적으로 애니메이션 붐을 일으키게 된다. 그러나 그 이후 우리 애니메이션은 줄곧 외국 애니메이션의 기세에 눌려 고전을 면치 못하였다. 그러나 1976년 김청기 감독의 <로보트 태권V>는 국산 창작 애니메이션의 성공 가능성을 엿보게 해준 의미 있는 작품이었다. 1980년대 후반에는 방송사들을 중심으로 국산 TV 애니메이션을 활성화시키려는 노력이 행해졌으며 1990년대 후반부터는 문화콘텐츠 산업에 대한 인식의 변화로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을 키우려는 노력이 정부적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러한 노력이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최근 <마리 이야기>(2001), <오세암>(2003)등 우리 장편 애니메이션들이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으면서 우리 애니메이션의 미래를 한층 밝게 해주고 있다.
    3. 뉴할리우드, 그 이후
    뉴할리우드는, 할리우드가 1960년대의 침체기를 거친 후 새롭게 산업구조를 재편해서 다시 한번 산업적으로 안정되고 경제적으로 활성화된 시기를 맞이한 1970년대 중반이후 현재까지의 할리우드영화와 영화산업을 의미한다.
    뉴할리우드 전사(前史)
    고전적 할리우드 시기에 영화 관객이 온 가족을 대상으로 했다면, TV가 등장하면서 영화관객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졌다. 중년층 이상의 관객들이 안방극장으로 들어가자 극장 관객의 75% 이상을 30세 이하의 젊은이들이 차지했다. 전후 베이비붐세대로 기성세대에 반항했던 젊은이들은 아서펜의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1967), 데니스 호퍼의 <이지 라이더>(1969) 같은 ‘뉴시네마’에 열광했다. 그들은 전통적 영화문법을 낡은 것으로 간주하고 이를 변형하고 해체하거나 도덕적으로 모호한 영화들을 선호했는데, 이와같은 영화의 새로운 경향은 주류 영화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뉴할리우드의 특징
    스티븐 스필버그의 1975년작 <죠스>는 뉴할리우드의 시작을 알린 작품으로, 제작에서 배급, 상영에 이르기까지 <죠스>에서 사용된 전략은 뉴할리우드 영화산업의 특성을 보여주었다. 그 특성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블록버스터 전략 블록버스터 영화는 고수익을 올리기 위해 고예산으로 만들어지는 영화로, 위험부담이 큰 만큼 수익도 크게 거두는 ‘하이리스크 하이리턴(high risk, high return)’의 전략을 구사하는 영화들을 일컫는다. 그래서 블록버스터 영화는 흥행의 안전을 위해 대스타를 기용하고, 특수효과를 사용하며, 공격적인 마케팅을 한다. 또 전국 몇백 개 극장, 심지어 전세계에서 동시개봉을 하는 ‘와이드 릴리즈(wide release)’ 개봉 방식을 통해 단기간에 고수익을 올리는 전략을 구사한다.
    개요
    2. 수평적 통합 고전적 할리우드 영화산업의 수직적 통합이 해체됨에 따라 불황에 빠진 메이져 스튜디오들은, 생존을 위해 기존의 엔터테인먼트 그룹이나 전통적인 제조업 그룹에 통합되기 시작했다. ‘수평적 통합’은 동종업체끼리 통합하거나 기업의 사업다각화 전략에 따라 인수, 합병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다. 워너브라더스를 비롯한 대부분의 메이져 회사들은 인접 미디어분야들과 통합함으로써 미디어 간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시키고 있다.3. 원소스 멀티유즈(one source multi use) 새로운 미디어들이 등장함에 따라 영화는, 극장 상영뿐 아니라 비디오 대여 및 판매, 케이블 TV, 공중파 TV, DVD 제작, 연관 상품 판매 및 캐릭터 사업, 소설 시나리오 만화 등 출판, OST를 통한 음반 사업 등 다양한 윈도우로 재생산이 가능해졌다. 이렇게 영화 한편으로 여러 개의 창구에서 부가적인 이익을 거둬들이는 전략을 ‘원소스 멀티유즈’라고 한다. 영화사들이 인접 미디어 분야와 활발하게 수평적 통합을 하는 이유는, 이와같은 원소스 멀티유즈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다.4. 배급영역으로의 집중 뉴할리우드는 고전적 할리우드 영화산업과 달리 배급 영역에 집중했다. 블록버스터 전략이 확산되고 와이드 릴리즈 개봉 방식이 정착되면서 마케팅의 중요성이 훨씬 높아짐에 따라 배급에서 엄청난 마케팅 비용과 조직력이 필요해졌고, 할리우드 메이져회사들만이 이런 배급력을 가질 수 있었다. 메이져 영화사들은 배급권을 담보로 영화 제작에 돈을 대면서 제작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고, 비디오, TV 등 다양한 윈도우들에서도 영화에 대한 권리를 가질 수 있었으므로 굳이 영화를 제작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연계정보
    -1교시 영화의 탄생과 초기 영화의 형성
    -2교시 고전 영화의 확립
    -3교시 영화의 새로운 물결
    -5교시 한국영화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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