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교시 영화의 탄생과 초기 영화의 형성
- 수업소개
- 1895년 뤼미에르 형제에 의해 최초의 영화가 탄생하기까지는 움직임을 재현하려는 다양한 노력들이 있어왔다. 그리고 영화가 발명된 이후에도 그것이 나름대로의 표현 방식을 갖추어 가는데는 수많은 이들의 창의적인 시도들이 필요했다. 그 중에서 영화에 연출의 개념을 도입한 조르쥬 멜리에스, 본격적으로 편집의 개념을 도입한 에드윈 포터, 고전적 영화 문법을 완성한 D.W.그리피스 같은 이들은 영화사에서 기억해야 할 인물들이다. 할리우드의 고전 영화에서는 가장 중요한 하나의 목표, 즉 영화와 관객의 동일화를 위해 영화의 모든 요소들이 작용하고 있었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단일한 의미를 명확하게 전달할 필요가 있었고 그것을 위해 연속편집이나 삼점조명 등 여러 가지 법칙들이 고안되었다. 그러나 한편의 사람들은 영화가 보다 다양한 의미를 포함하고 관객이 능동적으로 다양한 의미를 찾아낼 것을 주장하였으며, 그러한 움직임은 유럽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러시아의 소비에트 몽타주, 독일의 표현주의, 프랑스의 인상주의와 아방가르드 영화 등이 그 예이다. 이러한 움직임이 활발하게 펼쳐졌던 기간은 그리 길지 않지만 이후 자국의 영화 제작이나 세계 영화의 흐름에 미친 영향은 결코 작지 않다.
- 활동사진의 선구자들
- 정지된 각각의 이미지들이 빠른 속도로 연속해서 지나갈 경우, 사람들의 눈은 그것을 움직임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러한 사실을 먼저 깨달은 몇몇 사람들의 노력으로 영화의 탄생은 준비되고 있었다. 에드워드 머이브릿지가 여러 대의 카메라를 이용하여 말의 움직임을 연속적으로 촬영함으로써 움직이는 말의 모습을 연구할 수 있게 한 것이 한 예이다. 머이브릿지 이전에 나왔던 쏘마트로프나 페나키스토스코프, 조이트로프 등의 장치도 정지된 사진이나 그림을 이용해서 움직이는 이미지를 보고자 한 노력의 산물이었다.
- 영화의 발명
- 1891년 에디슨은 움직임을 기록하고 재현할 수 있는 장치인 키네토그래프와 키네토스코프를 세상에 선보인다. 그리고 뤼미에르 형제는 에디슨의 키네토스코프를 개조해서 시네마토그라프라는 새로운 영화기계를 만들어 내는데, 이것이 최초의 영화기계로 세상에 널리 퍼지게 된다.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 <열차의 도착> 등 뤼미에르가 만든 최초의 영화들은 1895년 파리의 그랑 카페에서 일반 대중에게 공개된다. 이후 뤼미에르 형제는 이들이 만든 카메라로 영화를 만들고 상영하는 사람들을 전 세계로 파견하여 세계 영화시장을 주도하게 된다.
- 영화 형식의 발전
-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는 현실을 그대로 기록하는 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영화에 연출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사람은 조르쥬 멜리에스이다. 우연한 기회에 영화에서 시공간의 조작이 가능하다는 것을 발견한 그는 '편집'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영화에 도입하게 되고 속임수와 합성을 영화제작의 기법으로 사용하기 시작한다. <달세계 여행>(1902)을 비롯한 그의 많은 영화들에서는 오늘날 특수효과라고 불릴 수 있는 여러가지 새로운 기법들이 쓰였다. 페이드(fade) 효과, 화면 전환으로서의 디졸브(dissolve), 이중인화, 고속/저속촬영, 애니메이션(animation), 미니어쳐(miniature) 등 그의 독창적인 시도를 통해 영화는 점차 생각이나 느낌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나아가게 된다. 에드윈 포터는 편집을 통해 동시성의 표현을 시도한 최초의 영화감독이다. 그때까지 영화에서는 편집으로 단선적인 시간의 흐름을 압축하거나 생략하는 정도의 표현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에드윈 포터는 <미국인 소방수의 생활>(1902), <대열차 강도>(1903) 등의 작품에서 서로 다른 두 공간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일을 번갈아 보여줌으로써(교차편집) 영화 안에서 동시에 흐르는 두 개의 시간을 표현했다.
- 고전적 영화언어
- 고전적 영화언어의 아버지로 불리는 D.W.그리피스의 시대로 접어들면 훨씬 정교한 촬영과 편집 기법들이 등장한다. D.W.그리피스 이전에는 한 장소에서 일어나는 연속적인 이야기(장면:scene)는 하나의 쇼트(shot)로 촬영되었다. 그러나 D.W.그리피스에 와서는 하나의 장면이 여러 개의 쇼트로 나누어지고 쇼트의 사이즈도 롱쇼트, 미디엄쇼트, 클로즈업쇼트 등으로 다양해진다. 그리고 각 쇼트들은 이야기의 진행과 인물의 감정을 보여주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식으로 배열된다. 고전 영화의 감독들이 이러한 영화 형식들을 통해서 성취하고자 한 것은 관객의 감정을 통제하여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것이었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영화의 모든 요소들이 명확하고 단일한 의미를 향해 통제될 필요가 있었다. 그리하여 촬영과 편집, 조명 등 영화제작의 모든 과정들이 의미의 모호성을 제거하고 관객의 동일화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작용하였다. 이러한 바탕에서 삼점조명이나 연속편집의 원칙들이 등장하였고 이 원칙들은 점차 보편적인 것으로 정착하게 된다.
- 유성영화의 탄생
- 1927년 <재즈싱어>로 첫 선을 보인 유성영화는 경제적, 기술적으로 뿐 아니라 미학적으로도 무성영화와 많은 차이점을 보인다. 당시에는 유성영화가 시각적 예술로서의 영화의 특징을 잃어버리게 한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영화는 사운드를 이용해 더 섬세하고 미묘한 감정과 표현을 가능하게 하는 쪽으로 발전해나간다. 그리하여 그 어떤 예술보다 독창적이면서도 대중적인 예술로써 자리를 잡아가게 된다.
- 1920년대 독일 표현주의 영화
-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독일이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최악의 어려움을 겪고 있던 시기에 독일의 영화는 잠시 동안의 황금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표현주의 영화에는 당시의 경제적인 어려움과 정치적인 불안정이 가져온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반영하고 있다. 표현주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흡혈귀나 인조인간 같은 비현실적이고 낯선 존재들의 위협, 그리고 현실과 환영의 복잡한 뒤얽힘은 당시 독일인들의 분열적인 정신상태를 잘 반영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 시기에 만들어진 표현주의 영화들은 오래된 전설이나 민요로부터 주제를 따온 것들이 많았고 분위기는 음울하고 섬뜩했으며 무대장치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이러한 요소들을 모두 갖춘 가장 대표적인 영화가 1920년 발표된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이다.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시각적인 특징은 일그러지고 왜곡된 세트와 소품들, 명암의 대조가 뚜렷한 조명, 강조되는 그림자 등이다. 1920년대에 가장 융성했던 표현주의 영화는 이후 할리우드 필름 느와르나 프랑스 누벨바그의 탄생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된다.
- 1920년대 프랑스 인상주의
- 1차 세계대전 후 혼란스럽고 어려웠던 프랑스의 상황은 새로운 세대의 영화인들에게 보다 새로운 작업을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이 시기에는 관습적이고 상업적인 영화의 테두리를 완전히 벗어나지는 않았지만 다소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성향을 가진 영화들이 인상주의 감독들에게서 만들어졌다. 인상주의 영화들은 직접적인 진술로써가 아니라 환기 혹은 암시로써 개인의 주관적인 감정들을 창조하고자 하였는데, 주로 회상이나 환상의 기법이 많이 이용되었다. 프랑스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감독들로는 루이 델뤽, 마르셀 레르비에, 장 엡스탱, 제르멘느 뒬락, 아벨 강스 등이 있다.
- 1920년대 프랑스 아방가르드
- 아방가르드 영화 감독들은 1920년대 인상주의자들과 함께 작업을 하면서 인상주의자들 이상으로 기술적이고 양식적인 실험들을 많이 하였다. 보통 길이가 짧은 무성영화로 만들어진 아방가르드 계열 영화들은 현대시나 추상화, 초현실주의 회화에 가까운 하나의 ‘영상시’라고 할 수 있다. 아방가르드 영화 제작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것은 그 당시 새롭게 출현했던 자연과학이나 심리학의 이론들이었는데, 그러한 이론들은 당시 사람들에게 새로운 세계관을 보여주었고 특히 시간과 공간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제공해 주었다. 영화는 시간과 공간을 동시에 구현할 수 있는 예술이었기 때문에 당시 많은 학자나 예술인들이 영화라는 매체에 관심을 가졌다. 당시 아방가르드 영화를 만든 사람들 중 미술가나 시인 등 다른 예술을 하던 사람이 많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대표적인 아방가르드 영화는 페르낭 레제의 <기계적 발레>(1924), 마르셀 뒤샹의 <빈혈 영화>(1928), 살바도르 달리와 루이 브뉘엘이 함께 만든 <안달루시아의 개>(1928) 등이 있다.
- 1920년대 러시아-소비에트 몽타주
- 1920년대 러시아 영화의 특징은 ‘몽타주(montage)’라는 단어로 압축될 수 있다. ‘올리다’라는 뜻을 가진 프랑스어(monter)에서 나온 몽타주라는 개념은 의미를 고양시키는 편집을 말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의미의 고양은 할리우드식 연속편집에서처럼 부여된 의미를 명확히 전달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다소 모호하게 존재하는 부분을 관객이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과정에서 생겨날 수 있다. 대표적인 몽타주 이론가이자 감독인 에이젠슈타인에게 몽타주란 서로 상반되거나 적어도 연관성이 없는 쇼트들이 충돌함으로써 어떤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을 의미했다. 몽타주 영화들은 1927년에서 1930년 사이에 가장 활발하게 만들어졌는데 점차 지나친 형식주의라는, 다시 말해 대중들이 이해하기에 너무 복잡하고 어렵다는 비판을 받으면서 점차 세력을 잃게 된다. 그러나 몽타주 영화를 만든 에이젠슈타인이나 지가 베르토프, 푸도프킨 같은 영화인들의 영향력은 이후 러시아 영화는 물론 유럽의 다양한 영화 형식들에까지 미치게 된다.
- 연계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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