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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도잡가(南道雜歌)

    개요
    <남도잡가(南道雜歌)>는 일하면서 부르는 토속민요 외에 전문 소리꾼들에 의해 불려지는 <농부가>, <육자배기>, <진도아리랑>, <강강술래>, <흥타령>, <개구리타령>, <남원산성>과 같은 여러 남도민요 중 <보렴>, <화초사거리>, <육자배기>, <자진육자배기>, <흥타령>, <개구리타령>, <새타령>, <성주풀이> 등을 지칭하는 말이다.
    내용
    ‘잡가’는 상층문화권의 정통 가요인 가곡, 시조에 비해서 정제되지 못한 노래, 곧 잡스럽거나 속된 하층문화권의 노래, 속가 또는 잡가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 이것은 경기체가와 더불어 고려시대 가요의 한 몫을 차지하던 장르의 ‘잡가’와는 다른 용어이며, 조선 후기 광대나 사당패 등 전문적인 소리꾼들에 의하여 집중적으로 창출된 ‘잡가(속가)’를 지칭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전문가들에 의해 불려지는 세련된 통속 민요들 중의 일부를 잡가라 한다. 남도민요는 전라도와 충청남도 일부지역을 포함하여 넓게는 경상남도 서남부지방까지의 민요를 가리키는데, 협의의 의미로는 전라도 지역의 민요를 말한다. 원래 ‘잡가’는 조선 말기에 형성되고 번창하다가 1930년을 전후하여 유행가 등 서양풍의 노래에 밀려난 노래의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잡가는 조선조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문학사적 의미가 있으며, 현재와 과거를 이어주는 과도기적 장르로 꼽기도 한다. 음악적으로는 경기민요 또는 서도민요의 잡가를 모방하여 창작하였다고 전해진다. 다만, <남도민요>는 판소리 <서편제>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육자배기선법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남도무가>와 함께 판소리 선법의 토대를 구성하고 있다. <남도민요(잡가)>의 전개과정을 보면, 고종 때 전라남도 옥과에서 풍류하던 율객 신방초가 <화초사거리>를 만들었고, 그 가락에 많은 소리꾼이 나오게 되었다. 조선말에는 장판개, 조진영, 김정문 등이 <남도잡가>의 명창으로 이름을 날렸다. 이들은 원각사, 광무대 등을 중심으로 <보렴>, <화초사거리>, <남도산타령>, <새타령>, <성주풀이> 등의 <남도잡가>를 불렀다. 1920년대에는 김정문, 조상선, 한독득, 강남중, 송기덕, 신옥란, 신정옥, 신연옥, 김금화 등이 <남도잡가>의 대가로 이름이 났고 김추월, 신금홍, 김녹주, 이화중선 같은 판소리 명창들도 잡가를 잘 불렀다. 1930년대부터 광복 전까지는 협률사, 창극단, 연예단 등을 중심으로 많은 창극과 잡가가 연주되었으며 엄준옥, 김점용, 권득진, 조요실, 성원목, 신마산포 등이 더불어 활약하였다. 광복 후 현재까지는 판소리 창자들이 대개 <남도민요(잡가)>를 겸하여 부르고 있어 잡가나 민요의 명창이 따로 독립해 있지는 않은 편이나 대개 오정숙, 신유경, 김효순, 성우향, 성창순, 신영희, 강정자, 김동애, 안숙선, 김영자, 윤소인, 김경숙, 전정민, 강송대 등이 그 뒤를 이어오고 있다. 판소리 창자들이 주로 <남도민요>를 병행한다는 것은 판소리와 남도민요가 아주 밀접한 관계에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며, 이것은 다시 판소리보다 생성 연대가 훨씬 앞선 민요의 중요성과 가치를 시사해 준다고 볼 수 있다.
    가사
    <육자배기> (후렴생략) - 사람이 살면은 몇백년이나 살더란 말이냐 죽엄의 들어서 남녀노소 있느냐 살어 생전에 각기 맘대로 놀- - 꿈아 꿈아 무정한 꿈아 오시는 님을 보내는 꿈아 오시는 님은 보내지를 말고 잠든 나를 깨워주니 언제나 알뜰한 님을 만나서 이별없이 살- - 새야 새야 청조새야 가지 가지 앉지를 말어라 그나무 고목이 되고 보면은 날과 일반이로- - 주야장 밤도 길더라 남도 이리 밤이 긴가 밤이야 길까만은 님이 없는 탓이로구나 언제나 알뜰한 님을 만나서 긴밤 자룹게 새- - 인연이 있고도 이러는가 연분이 안될라고 이지경이 되드냐 전생자생 무삼죄로 우리둘이 삼겨를나서 이지경이 웬일이란 말이냐 이이고야 답답한 이내 심정을 어느 누가 알- - 공산 명월아 말 물어 보다 임그리워 죽는 사람 몇몇이나 되드냐 유정 낭군을 이별하고 수심 끓이어 못살것네 언제나 유정하신 님을 만나 만단회포를 풀- - 춥다 춥다 내품안에 들어오너라 비개가 높거든 내팔을 비고 내사람 간 그날 잠을 못이뤄 - 어젯밤 꿈에는 기러기 보이고 오늘 아침 무등시에 까지 앉어 짖었으니 행여나 님이 올려나 행여나 편지가 올거나 기다리고 바랬더니 일락서산에 해는 떨어지고 월출동정 달이 솟네 언제나 알뜰한 님을 만나 만단회포를 풀- - 사랑이 모두가 무엇인지 잠들기 전에는 못잊겄네 잊으리라 잊으리라 비개 비고 누웠으니 내눈에 얼굴이 삼삼하여서 나는 못잊겄네 - 연당호 밝은 달아래 채련하든 아이들아 십리장강 배를 띄워 물결이 곱다고 자랑을 마러라 그물에 잠든 용이 깨고 보면은 풍파일까 염려로- - 내정은 청산이요 임의 정은 녹수로구나 녹수야 흘러가건만 청산이야 변할소냐 아마도 녹수가 청산을 못잊어 빙빙 감돌아간다. - 작은 진밤 들어갈제 향단에게 붙들리어 이리 비틀 저리 비틀 정신 없이 들어가서 만석은 부여잡고 악성 통곡 울음을 우니 사랑의 인력으는 차마 볼 수가 없네 <흥타령> (후렴생략) - 한많은 요세상 어디로 발길을 옮겨야 심산의 길을 물어 어느 낙을 만날소냐 아서라 괴롭다 이세상 다버리고 저 금강산 찾어가 석가여래나 지킬라네 - 눈비 뿌리는 해변가에 한 없이 앉어서 갈매기는 엄마 잃고 엄마 엄마 부르나니 엄마는 간곳 없고 눈비만 뿌리네 - 꿈속에서 보이는 님은 신의가 없다고 일렀더니 오매불망 그리울 적에 꿈이 아니면 어이보리 저멀리 멀리 그리운 님아 꿈이라고 생각을 말고 자주 자주 보여주면 너와 일생을 보내주려마 - 사랑이 좋다해도 황금에는 못견디어 없는 금전아 어디로 갔느냐 이내 곁에 있어주면 알뜰한 내님과 살어볼라네 - 슬픔이 사랑인가 사랑이 슬픔인가 말도 없이 흘러가는 저 구름이 얄미워라 비웃는 듯 얄밉게도 담담히 흘러가네 - 어쩔거나 어쩔거나 어쩌다 이 일을 당하였느냐 사랑도 날 버리고 모두다 저를 버렸으니 어드메로 갈 것인가 태산을 넘어가면 평지가 있다는데 갈수록 산이네 그려 인생길이 서글퍼라 나는 어디로 어찌 할거나 - 달이 뜨네 달이 뜨네 다정 마당에 달이 뜨네 저울 가고 봄이 오면 제비떼도 돌아오건만 장에 가신 우리 님은 온다 간다는 말이 없어 종천에 뜬 저달님아 이내모습 비쳐다오 우리님 계신곳을 영락없이 비춰다오 - 야속하다 세상인심 사랑에도 구별이 있나 명월아 밝은 달아 말있거든 말해다오 맺어질 사랑인가 못맺을 운명인가 내마음속 병든 줄은 그대는 아시나요 모르시나요 - 잠아 오너라 한 없이 잘란다 귀찬한 이 세상 행복도 나는 싫고 영원한 꿈나라가 그리워라 - 아깝다 내청춘 언제 다시 올거나 철따라 봄은 가고 봄따라서 청춘가니 오늘 백발을 어찌를 할거나
    전승자 정보
    <남도잡가>의 보유자 강송대(1941.10.21)는 진도에서 무업을 가계로 하는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소리공부를 하다가 강한수 등과 더불어 직업 소리꾼으로 출발하였다. 언니이자 스승인 강숙자와 오빠이자 동료였던 강한수, 그리고 어머니이자 소리선생이었던 이근녀의 무속생활 등이 자연스럽게 강송대를 전문적인 민요판으로 끌어들였고 이런 환경을 바탕으로 어려서부터 민요로 생업전선에 나섰다. 이후 줄곧 진도의 강한수, 이병기, 손판기, 구춘홍 등과 어울려 소리꾼 또는 춤선생으로 활동하였다. 목포를 거쳐 광주로 이동한 후에는 안채봉, 한애순, 박춘성, 공대일, 정옥진, 송성월, 박화선, 한애자, 정춘실, 이은하 등과 어울려 제2의 소리꾼 인생을 가게 된다. 민요소리꾼으로 왕성한 후학 교습을 시작하여 약 2백여 명 이상의 동인들을 지도하였고 현재는 ‘진도군립예술단’에서 민요를 지도하며 연행하고 있다. 또한 전통성과 가창력을 인정받아 ‘전국민요경창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바 있다.
    연계정보
    · 관련도서 <남도잡가 조사보고서>, 전라남도 <문화재도록-도지정문화재편>, 전라남도, 1998 · 관련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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