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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금천교 난간(60103) 크게보기 창덕궁 금천교 난간(60103) 크게보기
창덕궁 금천교 난간(60103)
문양설명
창덕궁은 조선시대 궁궐 가운데 하나로 태종 5년(1405)에 세워졌다. 경복궁의 동쪽에 위치한다 하여 창경궁과 더불어 동궐이라 불렀다. 임진왜란으로 모든 궁궐이 불에 타자 광해군 때에 다시 짓고 고종이 경복궁을 중건하기까지 가장 오랫동안 임금들이 거처하며 정궁 역할을 하였다. 임금과 신하들이 정사를 돌보던 외전과 왕과 왕비의 생활공간인 내전, 휴식공간인 후원으로 나누어진다. 내전의 뒤쪽으로 펼쳐지는 후원은 울창한 숲과 연못, 크고 작은 정자들이 마련되어 자연경관을 살린 점이 뛰어나다. 또한 우리나라 옛 선현들이 정원을 조성한 방법 등을 잘 보여주고 있어 역사적으로나 건축사적으로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1917년에는 대조전(大造殿)을 비롯한 침전에서 불이 나서 희정당(熙政堂) 등 19동의 건물이 불탔는데, 1920년에 일본은 경복궁을 헐어서 창덕궁의 건물들을 재건하였다. 창덕궁은 197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금천교는 태종 11년인 1411년에 지어진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궁궐의 돌다리이다. 두 개의 홍예가 상판을 받치고 있는 구조로 자연환경에 적절히 순응하는 창덕궁만의 건물배치와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조선 초기에 세워진 다리로 그 구조가 웅장하고 안정감이 있으며 조각상의 조각수법이 뛰어나다.
창덕궁 금천교 난간의 장식물로 해태를 나타내었다. 해태는 입을 벌리고 있으며 앞발은 펴고 뒷발은 구부려 앉은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꼬리는 감아서 몸통에 붙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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