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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외로운 가을밤을 함께 할 따뜻한 책

문화포털 기자단 2015-10-22
책 · 외로운 가을밤을 함께 할 따뜻한 책

외로운 가을밤을 함께 할 따뜻한 책

 

 

누군가에겐 천고마비의 계절이지만 누군가에겐 외로움이 사무치는 계절, 가을이 돌아왔습니다. 어느 날 불현듯 불어오는 스산한 바람은 우리 마음에 구멍 하나를 남겨놓고 가는 듯합니다. 깊고 외로운 가을밤 홀로 외로움을 견디는 분들에게 책 3권을 추천드리려 합니다. 에세이, 소설, 시. 장르는 다양하지만 어느 책을 고르든 당신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 줄 손난로 같은 책들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1.<지지 않는다는 말>, 연수

 

   

‘지지 않는다는 말’ 책표지 ⓒ 마음의숲

 

작가 김연수는 40대 중반에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청춘으로 회자되는 작가입니다. 소설이든 에세이든 그 글에선 성공한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위화감이 없어서일까요? 유난히 다정한 그의 말솜씨는 에세이에서 그 진가를 더욱 발휘합니다. 그의 에세이를 읽으면 마치 오랜 친구나 친한 선배님과 대화를 하고 있는 듯 한 느낌입니다. 무엇을 해라, 하지 마라 하는 자기 계발서식 이야기가 아닌 조곤조곤 내뱉는 듯 한 그의 담담한 위로 속에는 진심이 담겨있기에 그 어떤 문장보다 더 마음에 박히곤 합니다. 산문집 <지지 않는다는 말>은 그가 좋아하는 ‘달리기’를 통해서 느낀 인생에 대한 짧은 생각을 공유하는 책입니다.

 

“달리는 동안에는 괴로움이나 고통을 몰랐다는 말은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사실은 늘 고통스런 순간이 찾아왔다고 말하는 게 옳다. 이상한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달리고 나면 기쁨이 찾아온다는 점이다. 이 기쁨은 정말 뜻하지 않은 것이어서 마치 집을 가다가 큰돈을 줍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중략) 달리기는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시작할 때 그렇지 않다면, 끝날 때는 반드시 그렇다.”

 

- '지지 않는다는 말' 중에서 -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자 매일 하는 일인 ‘달리기’는 흔히 인생에 비유되곤 합니다. 그래서인지 그가 달리기에 대해 하는 이야기는 달리기 대신 인생으로 바꾸어 곱씹어도 좋은 의미가 됩니다.

 

“달리기를 통해서 내가 깨닫게 된 일들은 수없이 많다.(중략) 그중 내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건 지지 않는다는 말이 반드시 이긴다는 걸 뜻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깨달음이었다.

 

지지 않는다는 건

결승점까지 가면 내게 환호를 보낼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안다는 뜻이다.

아무도 이기지 않았건만, 나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다.

그 깨달음이 내 인생을 바꿨다.”

 

- '작가의 말' 중에서 -

 

좋은 구절을 발췌하다 보면 책 한 권을 전부다 필사하고 싶은, 작가 김연수의 에세이 <지지 않는다는 말>이었습니다.

 

 

2.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박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책표지 ⓒ 문학동네

 

시인 박준은 1983년생으로 2008년에 등단한 시인입니다. 그의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는 첫 출간 직후 꾸준히 인기를 끌어 20쇄를 넘어서 출간되다가, 최근 한 서적 관련 프로그램에서 추천을 받은 이후 베스트셀러에까지 오르며 더욱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그의 시는 지금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의 언어로 섬세한 감정을 노래합니다. 그럼 책의 제목이 된 시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 시인 박준

 

이상한 뜻이 없는 나의 생계는 간결할 수 있다 오늘 저녁

부터 바람이 차가워진다거나 내일은 비가 올 거라 말해주

는 사람들을 새로 사귀어야 했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이의 자서전을 쓰는 일은 그리 어렵

지 않았지만 익숙한 문장들이 손목을 잡고 내 일기로 데

려가는 것은 어쩌지 못 했다

‘찬비는 자란 물이끼를 더 자라게 하고 얻어 입은 외투의

색을 흰 속옷에 묻히기도 했다’라고 그 사람의 자서전에

쓰고 나서 ‘아픈 내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

었다’는 문장을 내 일기장에 이어 적었다

 

우리는 그러지 못했지만 모든 글의 만남은 언제나 아름다

워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시인의 시라 그런지 나의 삶과 다르지 않은 하루를 노래하는 그의 시는 특히 정겹습니다. 일반적으로 시는 너무나 심오하게 느껴져서 얼핏 보통의 삶과는 요원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시만큼 삶과 맞닿아있는 문학도 없는 것 같습니다. 시인이 오늘 느낀 기쁨과 슬픔에 대해 노래하는 것이 시이니까요.

 

3. <대성당>, 레이먼드 카버

 

 

 

 

‘대성당’ 책표지 ⓒ 문학동네

 

미국의 대표적인 현대 소설가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집 대성당’의 제목과 표지를 보면 종교적인 이야기일 것 같지만, 책장을 넘기면 그런 걱정이 기우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종교에 대한 이야기는 없지만 종교만큼 묵직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이야기들로 가득한 소설집입니다.

 

‘별것 아니지만 도움이 되는’에서는 한 가족이 평범한 삶을 살다가 한순간, 비극적인 일을 당합니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이라 부부는 그야말로 넋이 나간 사람들이 되어버립니다. 극도의 슬픔에 잠긴 그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것은 낯선 타인과 다름없는 한 빵집의 주인아저씨입니다. 심지어 평소에는 무뚝뚝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지요.


빵집 주인이 말했다. 


“내가 만든 따뜻한 롤빵을 좀 드시지요. 뭘 좀 드시고 기운을 차리는 게 좋겠소. 이럴 때 뭘 좀 먹는 일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될 거요.” 그가 말했다. (중략) 그는 기다렸다. 그들이 각자 접시에 놓인 롤빵을 하나씩 집어먹기 시작할 때까지 그는 기다렸다. 그들을 바라보며 그가 말했다. “뭔가를 먹는 게 도움이 된다오. 더 있소. 다 드시오. 먹고 싶은 만큼 드시오. 세상의 모든 롤빵이 다 여기 있으니.”

- ‘별것 아니지만 도움이 되는’ 중에서 -

 

빵집 주인의 위로를 발췌된 구절로 읽으면 그저 평범한 위로처럼 느껴질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가족이 겪은 상황을 처음부터 읽은 후 만나게 되는 빵집 주인의 위로의 방식은 읽는 이의 마음의 허기마저 가시게 합니다.

 

또 다른 이야기이자 책의 제목이기도 한 소설 ‘대성당’은 페이지를 넘길수록 벅찬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한 남자가 자신의 부인이 매우 좋아하는 친구인 로버트를 처음 만나게 돼서 겪는 이야기인데요. 처음에 주인공은 부인이 로버트를 너무나 좋아하는 마음을 넘어 존경하는 마음까지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그만 질투에 눈이 멀어 로버트를 한없이 깎아내리고 폄하하게 됩니다. 그러나 부인이 자리를 비우고 단둘만 거실에 남게 된 와중에 주인공과 로버트는 특별한 순간을 맞게 됩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같은 시간을 보내는 평범한 이야기가 담긴 책은 읽는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집니다. 화려한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닌, 내가 될 수도 있는 소박하고 담백한 이야기들이 가을밤을 따뜻하게 덥혀줍니다.

 

환절기에 걸리는 지독한 감기. 그에 못지않게 끈질기게 따라다니는 가을의 외로움. 매년 겪는 것인데도 왜 가을은 우리를 외롭게 만드는 것일까요? 혼자 있고 싶은 외로움은 마음을 나눌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신호의 또 다른 표현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이 계절. 외로운 당신 앞에 조용히 세 권의 책을 놓고 말없이 돌아서고 싶습니다. 그야말로 ‘별것 아니지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 말입니다.

 

 

* 도서 안내

- 도서명 : 지지 않는다는 말 / 에세이

- 저자 : 김연수

- 출판사 : 마음의숲

 

- 도서명 :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 시

- 저자 : 박준

- 출판사 : 문학동네

 

- 도서명 : 대성당 / 소설

- 저자 : 레이먼드 카버

- 출판사 : 문학동네

 

 

- 작성자 : 문화포털 기자단 김현정(글) / 정미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