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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신 선생, 사랑으로 농촌을 일깨우다

문화포털 기자단 2015-10-20
최용신 선생, 사랑으로 농촌을 일깨우다

최용신 선생, 사랑으로 농촌을 일깨우다
- 소설 ‘상록수’의 여주인공(채영신)의 실제 인물 이야기 -



잊어버리기 쉽지만,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정신적, 물질적인 풍요 속에서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은 나라를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치신 분들의 노고와 헌신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여기 일제 식민지 시대에 일찍부터 근대교육을 받아들이며 농촌 마을의 부흥을 위해 학생들의 교육에 앞장섰던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최용신’ 선생의 이야기입니다. 

심훈의 소설 ‘상록수’의 여주인공 채영신의 실제 모델이신 최용신 선생은 일제 강점기라는 암울한 시대에 농촌계몽운동으로 일생을 바친 독립운동가입니다. 일제의 갖은 억압과 수탈로 피폐해진 농촌 마을에서 문맹 퇴치와 농촌기술 전파를 위해 힘쓰신 최용신 선생. 학창시절, 소설로만 만나보았던 선생의 이야기를 일대기를 통해 자세히 만나보았습니다.



일찍부터 근대교육을 받아들이다



상록수 공원 내에 자리해 있는 최용신 선생 동상 ⓒ 문화포털 기자단 김진하


최용신 선생이 일제 강점기라는 암울한 시대에도 농촌계몽을 위해 일생을 바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렸을 적부터 근대 교육을 일찍 접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08년 8월, 함경남도 현면 두남리에서 태어난 최용신 선생은 그곳에서 여느 평범한 소녀 아이처럼 성장하게 됩니다. 선생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인 두남리는 풍광이 아름다운 전형적인 농촌이었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일찍부터 기독교 전래와 더불어 교회, 학교 운영 등의 서구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이런 변화와 함께 선생의 조부와 부친도 학교를 설립하고, 교육 사업에 종사하는 등 교육자의 길을 걸으셨기에 선생은 당시의 평범한 여자아이들보다도 근대 교육을 쉽게 접할 수 있었습니다. 






최용신 선생의 학창시절 모습(아랫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 최용신기념관


8세가 되던 해인 1916년, 최용신 선생은 마을에 있는 사립학교에 입학하게 됩니다. 선생은 2년 동안 그곳을 다니다 1918년 원산의 루씨여자보통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고, 졸업 후 루씨여자고등보통학교에 진학하여 1928년 19세에 수석으로 졸업하게 됩니다, 이후 서울에 있는 협성여자신학교에 진학하여 그곳에서 농촌사회지도교육과 황 에스터 교수와 만나게 됩니다. 황 에스터 교수와의 만남은 최용신 선생이 농촌계몽운동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는데, 학문적인 토대와 함께 학생들에게 직접 농촌에 들어가 몸소 체험하고 실천하는 것을 강조한 황 교수의 모습을 보면서 선생은 농촌계몽운동에의 뜻을 더욱 확고히 하게 됩니다. 




농촌계몽의 의지를 싹 틔우다



최용신 선생님과 샘골 마을 사람들 ⓒ 최용신기념관


1929년,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선생은 동료들과 함께 학교에서 배운 이론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황해도 수안군 용현리로 첫 봉사활동에 나서게 됩니다. 그곳에서 만난 농촌의 현실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더 참혹했습니다. 가난과 무지가 농촌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고, 피폐해진 농민들의 모습 속에선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농촌 마을의 실제 현실을 마주하게 된 그녀는 그곳에서 많은 갈등과 자책감을 느끼며, 결국 학업을 중단하기로 결심하고 본격적인 농촌계몽운동가로서의 길을 걷고자 노력하게 됩니다. 

학업을 중단한 이후에는 YWCA 농촌지도원 자격으로 경기도 화성시 샘골에 파견되어 농촌계몽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농촌에서의 교육 운동은 처음부터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농촌 마을 주민들의 따뜻한 환영을 기대했던 선생의 생각과는 달리, 지역 주민들은 선생을 냉소와 비관주의로 상대하기 일쑤였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주민들의 반응에도 굴하지 않고 마을에 있던 강습소를 확대하고 개편하며, 당시 무허가였던 강습소에 인가를 신청하는 작업을 끝까지 이어나가게 됩니다.






샘골 강습소에서 이루어졌던 강의들과 사용된 교재들 ⓒ 문화포털 기자단 김진하


이러한 선생의 노력에 호응이라도 하듯, 날이 갈수록 강습소는 발전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마을 사람들 역시 그녀의 노력과 열정으로 서서히 변해가는 마을의 모습을 보면서 냉소와 비관을 거두고 그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호응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선생의 노력과 헌신, 그리고 마을 주민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이 모여 교회 예배당에 딸려 있었던 초라한 강습소는 ‘샘골 학원’이라는 정식 교육기관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사랑의 정신으로 농촌을 깨우치다



샘골 강습소 신축 공사 기념식 당시의 모습 ⓒ 최용신기념관


그녀는 농촌 마을에서 정식 교육기관 설립이라는 성과를 이루어낸 이후에도 농촌 주민들의 교육을 위한 노력을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학생들에게 문맹퇴치를 위한 한글 강습뿐만 아니라 산술과 보건 및 농촌 생활에 필요한 상식과 기술들을 가르치며 지역 사회 발전에 필요한 운동을 꾸준히 전개해 나갔습니다. 특히 최용신 선생은 제자들에 대한 사랑이 대단했던 진정한 스승이었습니다. 학생들에게 학업에 필요한 물건들을 나눠주기 위해 수업시간 외에 밭에서 김을 매는 등의 노동도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농촌마을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농촌의 발전을 이끌어낸 그녀는 마을의 기반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갈 때쯤, 돌연 일본 유학을 결심하게 됩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장기적이고 실천적인 농촌계몽운동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이전보다 많이 알고, 깨우쳐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지식과 학문을 충족시키기 위해 일본 유학을 결심한 선생은 1934년 3월 고베여자신학교 사회사업학과에 입학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학업에 대한 열의를 불태우며 공부를 이어가던 그녀는 유학 중 얻게 된 각기병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학업을 중단하고 급히 귀국길에 오르게 됩니다. 



 
최용신 선생을 기억하다



최용신 선생의 묘소를 찾은 마을 사람들 ⓒ 최용신기념관


다시 샘골 마을로 돌아온 그녀는 마을에서 휴식을 취하며 농촌교육을 계속 이어나갔습니다. 편치 않은 몸을 이끌며 이전보다 더욱 열심히 학생들을 가르치고 지도해나갔지만 계속되는 피로와 정신적인 고통의 누적으로 인해 병세가 점점 더 악화되어 갔습니다. 결국, 도립병원에 입원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러 마을 주민들의 기도와 정성 어린 보살핌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서 영원히 눈을 감게 됩니다. 그렇게 최용신 선생은 26세라는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제3회 상록수 문화제’에 참여한 시민들의 모습 ⓒ 최용신기념관


 
훗날 선생이 남기고 가신 위대한 가르침들은 심훈의 소설 외에도 두 차례에 걸쳐 영화로 제작되어 많은 이들의 삶에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이처럼 선생을 기억하고 추억하기 위한 우리들의 노력은 여러 방법으로 오늘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실제 ‘샘골 강습소’가 있던 자리에 지어진 ‘최용신기념관’에서는 후세들을 위한 전시, 연구, 교육 활동들이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으며, 선생의 업적을 기리고자 안산시에서는 앞으로 매년 ‘상록수문화제’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식민지 시절 일제의 수탈로 인해 피폐해진 농촌을 다시 살리고, 교육으로 마을을 부흥시키고자 노력했던 최용신 선생. 그녀는 일제의 계속되는 억압을 견뎌내며 농촌 주민들과 학생들을 위해 눈을 감는 그날까지도 스승으로서의 가르침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최용신 선생이 남기고 간 진실하고 성실한 사랑이 우리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 남아 영원히 기억되길 바라봅니다.


* ‘최용신기념관’ 전시 정보
- 관람시간 : 09:00 ~ 18:00
   * 오후 5시 30분까지 입장 /  매주 월요일, 1월 1일 및 설, 추석, 연휴는 휴관
- 관람료 : 무료   
- ‘최용신기념관’ 홈페이지 : http://choiyongsin.iansan.net/Main.jsp

*참고 자료 
[네이버캐스트] 식민지 농촌 수탈에 교육으로 대항한 농촌계몽운동가 ‘최용신’
[최용신기념관 홈페이지] 최용신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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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문화포털 기자단 김진하(글) / 정미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