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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군산-대구, 근대의 역사로 통하는 길

편집팀 2016-02-15

역사의 흔적을 박물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서촌과 군산, 그리고 대구는 지금까지와는 좀 다른 역사와 문화를 박물관이 아닌 주거 공간 인근에서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근대 체험 지역이다. 외국 친구들에게도 한국의 한 시대를 보여주고 싶을 때, 함께 떠나보자.

서촌-군산-대구, 근대의 역사로 통하는 길
- 외국 친구들과도 함께 걸어볼까? -

 

 

역사의 흔적을 박물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서촌과 군산, 그리고 대구는 지금까지와는 좀 다른 역사와 문화를 박물관이 아닌 주거 공간 인근에서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근대 체험 지역이다. 외국 친구들에게도 한국의 한 시대를 보여주고 싶을 때, 함께 떠나보자.

 


서촌, 근대 예술가들의 열정과 사랑의 혼을 따라 걷는길


‘서촌’은 경복궁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사대부 거주지로 기품 있는 한옥이 즐비한 북촌과 달리 역관이나 의관 등 전문직인 중인들이 모여 살며 개량한옥이 옹기종기 골목길을 만들어 가던 서민 지역이었다. 겸재 정선, 추사 김정희 등 예술가들도 이 곳에 터전을 잡았었고 근대에 이르러서는 화가 이중섭과 이상범, 시인 윤동주와 이상, 노천명 등 더욱 많은 예술가들이 이곳을 거치거나 기거하며 작품을 일궈냈다.


시인이자 독립운동가로 가슴 설레는 감성을 바탕으로<별 헤는 밤>, <쉽게 쓰여진 시>등의 명작과 함께‘한국인 가장 사랑하는 시인’으로 꼽히는 윤동주는 서촌을 사랑한 시인이기도 했다. 그의 하숙집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고 대표작들도 이 지역에서 탄생했다. 최근에는 종로구에서 만든 윤동주문학관이 그를 추억하는 사람들을 더욱 설레게 한다. 서촌 초입에는 작품활동을 할 때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는 이상의 집이 자리 잡았다. 현재는 사답법인 <아름지기>가 운영하는 북합문화공간으로 방문객의 방명록들과 함께 그곳만의 독특한 내부 구조와 함께 이상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또한 개인 가정집이라 내부 방문은 불가능하지만 <사슴>으로 유명한 노천명 시인의 집과,서정주-김동리-오장환-김달진 등이 문학동인지 '시인부락'을 창간했던 보안여관 역시 서촌에서만 만날 수 있는 풍경. 마지막으로 서촌 골목 끝, 수성동 계곡 아래에 자리잡은 종로구립박노수미술관이 있다. 강력한 색감, 대담한 터치로 표현한 간결함과 단순함 속에 수천 가지의 의미를 담고 있는 새로운 화풍을 구현했던 박노수 화백은 실제 자신이 40여년 동안 거주하던 집을 2011년 약 1천여 점의 미술작품 및 소장품과 함께 종로구에 기증하며 아름다운 미술관으로 남겼다. 책으로, 미술 작품으로만 만날 수 있던 예술가들이 그 골목 어딘가에서 여전히 트렌치코트 펄럭이며 중절모 눌러쓰고 지날 것만 같은 서촌길이다.



 

이상의집 내부 ⓒ SSEN



 

윤동주 문학관 ⓒ SSEN




 

박노수 미술관 외관 ⓒ SSEN




 

박노수미술관 내부 ⓒ 문화재청



군산, 역사의 아픔을 잊지 않고, 치유하는 적산가옥


산은 일제 시대의 흔적이 많이 남은 지역이다. 이는 군산의 역사와 지리적 위치의 영향이다. 군산은 1876년 강화도조약이후 일찍이 개항한 항구도시로 쌀 강제 수급을 위한 위성도시로서의 성격이 강했고 일본 상공인들의 경제적 중심지이기도 했다. 그러니 군산은 ‘일본인들의 도시’이기도 했다. 일본의 쌀 부족을 우리 민족의 약탈로 보충했던 역사적 아픔이 군산 곳곳에 서려 있는데 이런 흔적들은 조정래의 ‘아리랑’과 채만식의 ‘탁류’ 등 문학작품을 통해 그려지기도 했다.


수탈로 부를 획득한 일본인들은 자랑이라도 하듯 일본식 주택을 지었다. 이중 중부유층이 살던 단독 주택으로는 포목점을 하던 히로쓰게이샤브로가 지은 목조 주택(등록문화재 제 183호)이 있다. 작고 많은 창문과 다다미 방 등 건축 양식은 물론이요 정원의 나무나 자재까지도 일본에서 들인 것이라고 한다. 동국사 대웅전(등록문화재 제64호)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유일한 일본 건축양식의 절로 절 뒤쪽의 대나무 마저 일본종이며 처마모양과 무늬까지도 우리 전통 양식과는 사뭇 다르다. 나무에 흙을 입혀 만든 삼존불과 종각에 있는 동종은 역사적 가치가 높으므로 지나치지 말고 둘러보자. 동종의 몸통에는 일본 왕을 칭송하는 시구가 있어 우리의 아픈 역사를 이 범종에서 읽을 수 있다. 반면에 군산은 한강이남에서 최초의 거사로 앞장을 섰던 곳이기도 하다. 구암교회를 3.1운동 기념관으로 지칭하여 선열들의 애국정신을 이어받으며 전승하는 장소가 되고 있다.


군산은 일제시대에는 조선인과 일본인의 비율이절반 정도였고 일본인은 대부분 시가지에 주거했던 흔적이 남아 현재구도심 지역의 건물 중 약 20%는 일제시대 지어진 가옥이라고 한다. 군산을 둘러보면서 이순신장군이나 세종대왕 동상을 둘러볼 때처럼 가슴 벅찬 대신 마음 한 켠이 아파오는 것도 이런 이유다. 그러나 군산은 이렇게 아픔을 남김 없이 보여주면서 다시는 그런 아픔과 치욕의 시간을 반복하지 않도록 다짐하게 하는 힘이 있다.





군산신흥동 일본식 가옥 1 ⓒ 문화재청

 


 


 

군산신흥동 일본식 가옥 2 ⓒ SSEN




 

동국사 1 ⓒ 군산시청




 

동국사 2 ⓒ SSEN




 

동국사3 ⓒ SSEN




 

구암교회 ⓒ 군산시청


 

 

대구, 종교 건축 속에 고스란히 남은 근대의 역사


대구는 대도시임에도 시내 인근에서 근대의 건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곳이 많아 근대 한국의 건축을 연구하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되는 곳이다. 조선의 3대 상업도시였으면서 현대에도 광역시의 규모를 유지하는 도시였으니만큼 그만큼 비중있는 건축물도 많았을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전쟁 중 엄청난 폭격도 피해갈 수 있는 안전지역이었다는 점 역시 근대 건축물이 훼손되지 않은 이유 중 하나다. 일본식 건물보다 서양식 건물의 유독 보존이 잘 되어 있는 것은 상업 도시였으니 외지와의 활발한 교류와 더불어 식민지 정책으로 갈등을 일으킨 일본과 달리 서구의 선교사업은 의료시설 등 사회에 공헌하는 바가 커 컸으니, 이런 역사적인 관계로 인해 더욱 잘 보존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 중에서도 남산동 등 남서부 지역은 지리적으로 교육 및 의료, 포교 활동을 하기에 유리한 여건 때문인지 계산성당과 성모당,계성학교의 아담스관(시유형문화재 제45호), 동산병원 부지 내의 스위츠 주택(현 선교박물관),챔니스 주택(현 의료박물관), 블레어 주택(현 교육역사박물관) 등 근대사에 남을 건축물은 모두 남산동, 동산병원과 서문시장 인근에 위치하고 있다. 대부분 적벽돌을 사용하였고 구조와 외관은 서양식이나 지붕은 기와로 얹은 한양절충식이 많은 것도 대구 선교건축물의 특징이다. 이 중 계성학교의 교무실로 사용되고 있는 아담스관은1919년 3월 1일 이 곳 지하실에서 독립선언서를 인쇄하였으니 건축사뿐 아니라 독립운동사로도 의미가 큰 건물이다. 계산성당은 고딕양식의 성당으로는 서울과 평양에 이어 세 번째로 지어진 곳으로 뾰족한 지붕과 내부의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와 함께 봄이면 라일락, 벚꽃 등이 짙은 향을 날리고 가을이면 감나무의 풍경이 아름다운 곳이다. 인근에 위치한 수녀원과 이국적인 신학교를 거쳐 동굴에 성모상을 모셔 더욱 이색적인 성모당까지 이르는 길을 천천히 돌아보는 것은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마치 유럽 여행이라도 온 듯 이국적인 산책 코스가 될 것이다. 숨은 맛집이 많은 서문시장, 청라언덕과 함께 부지런히 걸음을 옮기면 김광석 거리까지 한 날에 돌아볼 수도 있는 거리에 있다.





아담스관 ⓒ 문화재청 

 

 

 



 

계산성당 ⓒ 문화재청

 

 



 

성모당 ⓒ 문화재청





 성유스티노 신학교  ⓒ 문화재청

 



 

구제일교회 ⓒ 문화재청



2월 말이니 얼마 지나지 않으면 독립 운동의 시작인 3월이 가깝다. 그러니 같은 여행을 떠나더라도 이왕이면 역사를, 변화와 독립의 역사를 한번에 지닌 근대의 역사를 돌아보는 것은 더욱 의미가 깊겠다. 그곳에는 아픈 역사뿐 아니라 서양 문화의 이국적인 풍경과 그 시대만의 낭만과 문학적 가치가 아직 살아 숨쉬고 있다.



* 자료 출처

- 군산시청, 대구시청, 문화재청

 

- 작성자: 문화포털 편집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