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푸터 바로가기
> 문화공감 > 공감마당 공감리포트

공감리포트

최신 문화이슈와 문화현장을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문화공감

박노해 시인의 유랑

문화포털 기자단 2015-05-14
박노해 시인의 유랑

박노해 시인의 유랑

- 죽음보다 강한 사랑, 그 사랑을 실천하는 시인 -

 

 

박노해 시인을 처음 알게 된 것은 2014년 2월,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렸던 한 사진전이었습니다. 수많은 답사 경험을 통해 나름대로 여행과 사진에 철학을 키워가던 시기였습니다. 그런 때에 신선한 시각을 주며 머나먼 배움의 길로 이끌었던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박노해 시인입니다. 시인의 사진에서는 저의 사진에서는 찾을 수 없었던 사랑, 평화, 나눔 등의 아름다운 단어들이 듬뿍 담겨있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여행과 사람이 좋았으면, 그리고 얼마나 부드러운 성격의 소유자였으면 이렇게 아름답고 보물과도 같은 사진과 글을 남기고 사람들과 나누려고 하는 것일까 궁금했습니다. 이번 기사에서는 박노해 시인이 걸어온 길과 그의 예술 속에 녹아 있는 사랑을 소개합니다.

 



<다른 길> 사진전의 작품들(세종문화회관, 2014) ⓒ 문화포털 기자단 손휘주

 

 

작년 2월 5일부터 3월 3일까지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렸던 박노해 사진전 <다른 길>은 처음으로 박노해 시인에 관해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진전의 첫 문구는 “우리 인생에는 각자가 진짜로 원하는 무언가가 있다. 분명 나만의 다른 길이 있다.”였습니다. 취업 전쟁 속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던 저에게는 큰 힘이 되는 문장이었습니다. 그리고 사진과 캡션에서 사랑, 평화, 나눔을 느낄 수 있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진전에서 소개되었던 120컷의 사진 중에 아직도 인상 깊게 남아있고 마음속에 간직하면서 되새기는 두 개 사진을 소개합니다. 사진과 캡션을 함께 보면서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왼쪽에 있는 사진은 <영원하라 소녀시대>라는 작품입니다. 저 사진의 캡션은 다음과 같습니다.

 

“파슈툰 여자들은 사춘기에 접어들면 부르카를 쓴다. 일 종류도 공간도 성별 구분이 주어지고 다른 남자에게 얼굴을 보이는 건 금기시된다. 거친 유목 전통에서 여성 존중과 보호를 위해 생겨났으나 현대의 급여노동 사회에서는 성차별로 작용하기도 한다. 곧 있으면 부르카를 쓰게 될 소녀들이 힘차게 뛰어논다. 누가 뭐래도, 영원하라 소녀시대여!”

 

오른쪽에 있는 사진은 <공기놀이>입니다. 캡션은 다음과 같습니다.

 

“파슈툰 소녀들이 공기놀이에 빠져있다. 인류에서 가장 오래된 놀이인 소녀들의 공기놀이는 섬세한 손놀림으로 열매를 따고 새알을 채취한 데서 왔다. 아이들아, 너는 이 지구별에 놀러왔단다. 더 많이 갖기 위한 비교경쟁에 인생을 다 바치기엔 우리 삶은 너무나 짧고 소중한 것이란다. 너는 맘껏 놀고 기뻐하고 사랑하고 감사하라. 그리고 네 삶을 망치는 모든 것들과 싸워가거라. 인생은 수고의 놀이터이니 고통받기를 두려워 말고, 고통을 공깃돌 삼아 저마다의 삶을 누리며 행복하라.”

 



박노해 시인의 사진 ⓒ 문화포털 기자단 손휘주

 

 

박노해 시인을 그렇게 머나먼 여정으로 이끌고, 멋진 사진과 글을 남기도록 한 원동력은 사랑과 평화일 것입니다. 하지만 시인의 그러한 여정과 예술, 철학이 있기까지는 오랜 시간의 힘겨운 과정이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일생을 뒤돌아보면 작품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1957년 전라남도 함평에서 태어난 박노해 시인은 1980년대에는 민주 투사이자 저항 시인이었고, 사형을 구형받고 무기수가 되어 7년여를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민주화 이후에는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않겠다”며 권력과 정치의 길이 아닌, 스스로 잊히는 길을 묵묵히 걷고 있습니다. 지난 15년간 중동, 아프리카, 중남미, 아시아 등에 퍼져있는 가난과 분쟁의 현장을 혼자 걸었고, 지도에도 없는 마을들을 다니며 ‘지구시대 유랑자’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현재까지도 박노해 시인은 ‘나눔농부마을’이라는 자급자립의 공동체를 세우며 새로운 사상과 혁명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박노해 시인의 작품으로 채워진 라 카페의 책방 ⓒ 문화포털 기자단 손휘주

 

 

박노해 시인의 작품세계는 1984년 첫 시집이었던 <노동의 새벽>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박노해가 ‘박해받는 노동자의 해방’이라는 뜻의 필명이라는 점에서, 초기 활동 시기였던 1980년대 시인의 지향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1993년에는 두 번째 시집인 <참된 시작>을 출간했고 1997년에 옥중 에세이인 <사람만이 희망이다>를 출간했습니다. 7년 6개월의 수감생활이 지나고 1998년 석방을 했고 민주화 운동 유공자로 복권되었지만 국가보상금을 거부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2000년에 사회운동단체인 ‘나눔문화’를 설립하고 이후로 한국 밖으로 유랑을 시작했고 다수의 사진전을 개최하면서 나눔문화를 알리고 사랑, 평화, 나눔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박노해 시인의 문학작품 ⓒ 문화포털 기자단 손휘주

 

 

가장 인상 깊게 보았던 박노해 시인의 문학작품 3편은 비교적 최근의 작품들입니다. 우선 처음으로 접했던 <다른 길>은 2014년 박노해 아시아 사진전 <다른 길>(세종문화회관) 개최와 동시에 출간된 사진에세이로 지금까지 봤던 수많은 사진에세이 중에서 가장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다음으로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라는 시집은 12년 만의 신작으로 2010년에 출간되었습니다. 가슴을 뛰게 하는 주옥같은 글귀들로 가득 찬 이 책은 오랜 시간 동안 새겨왔던 5천여 편의 시 중에서 300여 편을 소개한 것입니다. 책의 제목으로 쓰인 시의 일부분을 소개합니다.

 

 

“삶은 기적이다
인간은 신비이다
희망은 불멸이다

그대, 희미한 불빛만 살아 있다면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나눔문화가 운영하는 라 카페 갤러리 ⓒ 문화포털 기자단 손휘주

 

 

 

라 카페 갤러리는 박노해 시인의 사랑과 평화 정신을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부암동에 있는 이 작은 공간은 비영리사회단체인 나눔문화에서 운영하는 문화공간입니다. 생명, 평화, 나눔의 세계를 열어가는 나눔문화는 정부지원과 재벌기업의 후원을 받지 않고 회원들의 순수한 회비로만 운영된다고 합니다. 우리 주변의 이웃들을 도와주고 지구 곳곳의 마을에 평화를 나누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 라 카페 갤러리는 박노해 시인이 유랑 길에 찍었던 사진과 시인이 직접 쓴 시를 함께 전시하고 현지에서 직접 수집한 음악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알 자지라 <태양 아래 그들처럼> 사진전 ⓒ 문화포털 기자단 손휘주

 

 

현재 라 카페 갤러리는 박노해 사진전 <태양 아래 그들처럼>을 전시 중입니다. 7월 15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는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지역의 알 자리라 평원을 공간적인 무대로 삼고 있습니다. 수메르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탄생지이기도 한 이 지역에서의 역사, 사회, 종교 등 다양한 분야가 사랑과 평화를 기원하는 주제로 묶여서 소개되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를 포괄하는 그의 사진 속 경관은 보는 이에게 수많은 의문점을 던져주지만, 사진마다 달린 캡션을 한 번 읽고 나면 사랑, 평화, 나눔으로 그의 열정이 모인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태양 아래 그들처럼(좌), 또 다른 나를 낳으리라(우) ⓒ 문화포털 기자단 손휘주

 

 

마지막으로 알 자지라 사진전에 전시된 두 개 사진을 소개합니다. 왼쪽에 있는 사진은 <태양 아래 그들처럼>이라는 작품으로 본 사진전의 제목이기도 합니다. 2005년 터키의 하카리에서 촬영한 이 사진의 캡션을 소개합니다.

 

 

해발 4천 미터 만년설산 아래 하카리는
4월에야 눈이 녹고 5월에야 꽃이 핀다.
새봄을 맞아 씨 뿌리러 가는 가족들의
설레임 가득한 노래 소리가 산맥을 울린다.
기나긴 겨울 산정에도 끝내 봄은 찾아오는 것.
그러니 용기를 내라, 손을 잡아라, 노래를 불러라.
어떤 시련과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웃음을 잃지 않는 태양 아래 그들처럼!

 

 

오른쪽에 있는 사진은 <또 다른 나를 낳으리라>라는 작품으로 2008년 시리아 알 자지라 평원의 아침과 넓은 밭의 경관을 담고 있습니다. 이번 알 자지라 사진전의 마지막 작품으로 앞으로 일어날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예견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시인의 평화와 나눔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앞으로 어떤 작품과 공동체로 탄생할지를 기대합니다.

 

 

* 관람 정보

<라 카페 갤러리>
- 전시 기간 : 2015년 3월 20일(금요일) ~ 7월 15일(수요일)
- 주소 : 서울시 종로구 백석동1가길 17(부암동 44-5)
- 찾아오시는 길 : 경복궁역 3번 출구 버스정류장에서 7022, 7212, 1020번 버스를 타고 ‘부암동 주민센터’ 앞 하차
※ 링크 : http://blog.naver.com/racafe/220301595851

- 이용시간 : 오전 11:00 - 오후 10:00 (매주 목요일 휴관)
- 전시 관람료 : 무료
- 문의 : 02-379-1975


* 참고 자료

[웹사이트]
라 카페 갤러리 : http://blog.naver.com/prologue/PrologueList.nhn?blogId=racafe

나눔문화 : http://www.nanum.com/site/home

[도서]
다른 길, 박노해, 느린걸음, 2014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박노해, 느린걸음, 2010
사람만이 희망이다, 박노해, 느린걸음, 2011

 


- 작성자 : 문화포털 기자단 손휘주(글) / 장수영(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