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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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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장수바위
내용 정의:옛날 살았던 장수가 남겨 놓은 흔적이 전하는 바위에 관한 설화.||줄거리:옛날 어떤 고장에 힘센 장수가 살았는데, 장수의 발자국이나 손자국, 타던 말발굽 자국이 바위에 남아 있다고 한다. 또 장수가 큰 바위를 옮겼거나 무거운 돌을 던지고 놀았다는 단편적 이야기도 있다. 한편 장수바위는 옛날 평민의 집에 힘센 아기가 태어나면 역적이 될까 두려워 죽여서 묻은 곳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오뉘산성](/topic/오뉘산성))에 나오는 오뉘힘내기에서 힘센 남동생이 서울에 다녀오는 동안 누이가 쌓던 성터의 바위가 바로 장수이다.||변이: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증산리의 장수바위는 그릇된 장수가 개심하도록 가르치는 구실을 하며, 농바위전설은 장군의 출현 시기에 대해 인식 차이를 보인다. 무주읍 오산리, 적상면 괴목리와 사산리의 장도바위는 최영 장군이 바위를 칼로 베어 잘랐다고 하신, 금산군 복수면 지량리에서는 영규대사가 창으로 바위를 잘랐다는 창바위전설이 전한다. 또 어느 장수가 양쪽에 있는 바위를 건너뛰었다는 전설도 있고,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 왕산리에는 장사가 치마에 싸서 갖다 놓은 바위가 서너 마지기가 되었다고 한다. 용인시 원삼면 독성리의 장수바위는 장군이 부하들과 도읍지를 정하려는데, 서울이 먼저 정해지자 화가 나서 흔적을 남긴 바위이다. 오뉘힘내기에서 오누이 대신에 남자 장수와 여자 장수가 등장하는 장수바위도 있다.||분석:(장수바위)는 전국적으로 다양하게 전승되는 지명유래담에 속한다. 충남 부여군 임천면 성흥산성의 성벽에는 백제의 장수 발자국이 남아 있다. 이처럼 전국에 장군이나 장수가 행동한 결과가 바위에 흔적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농바위전설은 어떤 시기가 되면 장수가 넣어 두었던 문서와 갑옷을 꺼내 입고 나와 새로운 세상을 건설한다는 내용이다. 부여군 홍산면 일대에는 [이몽학](/topic/이몽학)이 성장기에 큰 돌을 오 리 밖으로 던졌다는 바위가 있고, 금산군에는 장사들이 정상에서 공기놀이하던 큰 바위들을 나무꾼들이 아래로 굴려 하천변에 자리 잡았다고 한다. 그리고 장수들이 오줌을 누어 파인 자국이나 손톱으로 쓴 글자가 남아 있다는 바위도 있다.||의의:(장수바위설화)는 일상의 평범함을 극복하는 초월심리가 작용한 것이고, 이상적인 세상을 실현할 힘과 지략을 지닌 장수가 나타나기를 바라는 민중의 영웅 기대심리를 보여 준다. 이런 기대심리를 변하지 않는 전승물인 바위에 의탁한 것은 영원히 지속하기를 바라는 의식의 표출이다.||출처:무주의 구비설화와 민요1-3(김용덕•강현모, 무주문화원, 2006), 버드내 유역의 구비설화(김균태•강현모, 금산문화원, 2007), 용인 동부(북부)지역의 구비전승(박종수•강현모, 용인문화원, 1996), 한국구비문학대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0∼1988) 1-8, 474; 6-1, 634; 8-1, 204.||참고문헌:비극적 장수설화의 연구(강현모, 한양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4), 한국구비전설의 연구(최래옥, 일조각, 1981).
연계 기관명 한국민속대백과사전DB
부제
등록일 2017-06-20 00:00
갱신일 2017-06-20
분류 한국민속문학사전>설화>전설
정의 옛날 살았던 장수가 남겨 놓은 흔적이 전하는 바위에 관한 설화.
집필자 강현모(姜賢模)
출처 비극적 장수설화의 연구(강현모, 한양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4), 한국구비전설의 연구(최래옥, 일조각,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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