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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데이터
전북대학교 박물관 호남기록문화시스템 활용신청
URL http://175.125.91.94/oasis/service/rest/other/getCHON2201
설명 전북대학교 박물관의 호남기록문화시스템 정보를 외부 개발자 및 사용자가 이를 활용 할 수 있도록 전달하는 API 서비스입니다. 해제, 본문, 서지 등 다양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기관명 전북대학교 박물관
서비스 분야/주제 문화유산 > 문예품 > 책/문학 API 유형 REST
등록일 2015-02-24 활용도 453

오픈A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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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청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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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관 오픈API

상세 문화데이터

문화데이터 17,899

문화데이터
No 제목 내용
17899 1839년에 김씨가 작성한 전답매매문서 1839년(헌종 5) 2월 7일에 김씨가 우진익에게 작성해 준 논매매문서이다. 김씨는 둔전평(현 여수시 돌산읍 둔전리) 봉수동 敬字員에 있는 折畓 5마지기를 오랜 세월 경식해 오다가 흉년으로 인해 살아갈 방법이 없자 錢文 62냥을 받고 우진익에게 팔았다. 이 때 이 논의 본문기 3장을 신문기와 함께 매수인에게 넘겨주어서... 바로가기
17898 1841년에 과부 김씨가 작성한 전답매매문서 1841년(헌종 7) 정월 7일에 과부 김씨가 김경하에게 작성해 준 논매매문서이다. 과부김씨는 자신이 경작하고 있는 忠字畓 1두 5승락지와 則字畓 2두 7승락지가 이사를 하게 되어 경작하는데 거리가 멀어 어려움이 있었다. 그리하여 김경하에게 두 곳을 합하여 15냥을 받고 팔았다. 이때에 이 논의 구문기도 신문기와 함께... 바로가기
17897 1848년에 양택환이 순창군수에게 올린 소지 1848년(헌종 14) 4월에 순창군 적성면 귀남리에 사는 양택환이 순창군수에게 올린 소지이다. 자신의 선산에 祖母를 안장하려는데 동리 사람들과 시비가 붙어 산송으로 번지고, 소송에서 자신이 승소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최가 등이 안장을 방해하였다. 이에 소지를 올려 동리 사람들의 행패를 막아 줄 것을... 바로가기
17896 1848년에 양택환이 순창군수에게 올린 소지 1848년(헌종 14) 5월에 순창군에 사는 양택환이 순창군수에게 올린 소지이다. 자신의 선산에 돌아가신 조모를 안장하려다가 이 과정에서 동리 사람들과 소송이 일어나 결국 자신이 낙과하였다. 이에 그는 소지를 올려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 줄 것을 요청하였다. 바로가기
17895 1848년에 양택환이 순창군수에게 올린 소지 1848년(헌종 14) 6월에 순창군에 사는 양택환이 순창군수에게 올린 소지이다. 자신의 선산에 돌아가신 조모를 안장하려다가 이 과정에서 동리 사람들과 소송이 일어나 결국 자신이 낙과하였다. 이에 문제가 있는 부분에 대하여 돈을 주고 산지를 매입하고, 동리 사람들에게도 돈을 주어 안장을 허락받았으며, 이 과정에서... 바로가기
17894 1848년에 양택환이 순창군수에게 올린 소지 1848년(헌종 14) 8월에 순창군 적성면 귀남리에 사는 양택환이 순창군수에게 올린 소지이다. 자신의 선산에 돌아가신 조모를 안장하려다가 이 과정에서 동리 사람들과 소송이 일어나 결국 자신이 낙과하였다. 이에 문제가 있는 부분에 대하여 돈을 주고 산지를 매입하고, 동리 사람들에게도 돈을 주어 안장을 허락받았으며,... 바로가기
17893 1848년에 양택환이 순창군수에게 올린 소지 1848년(헌종 14) 4월에 순창군 적성면 귀남리에 사는 양택환이 순창군수에게 올린 소지이다. 자신의 선산에 돌아가신 조모를 안장하려다가 이 과정에서 동리 사람들과 소송이 일어나 옥에 갇히게 되었다. 이에 소지를 올려 자신의 노모가 이 일을 전해 듣고 식음을 전폐하였으니, 며칠간 집에 다녀올 수 있는 말미를 줄... 바로가기
17892 1800년에 서만억 처 김씨가 작성한 시장매매문서 1800년(정조 24) 11월 12일에 서만억 처 김씨가 작성한 시장매매문서이다. 그녀년 조상 대대로 전해오던 국치평에 있는 似字 柴場을 주춘석에게 2냥을 받고 팔았다. 매매사유는 親父의 大祥이 임박하여 하는 수 없이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라고 하였다. 김씨는 이 시장의 본문기에 다른 전답이 함께 기재되어 있기 때문에... 바로가기
17891 임오년에 주춘석이 고부군수에게 올린 산송 소지 임오년 8월에 주춘석이 고부군수에게 올린 산송 소지이다. 고부군 우덕면 내촌리(현 정읍시 덕천면 우덕리)에 사는 주춘석은 23년 전인 경신년에 徐萬億 妻 金召史에게 柴場을 2냥 주고 샀는데 본면 상학리에 사는 김생원이 이를 횡탈하려 하자 주춘석은 전후 문권을 갖춰 김생원을 捉致할 것을 관에 요청하고 있다. 이에... 바로가기
17890 정유년에 주춘석이 고부군수에게 올린 산송 소지 정유년에 주춘석이 고부군수에게 올린 산송 소지이다. 고부군 우덕면(현 정읍시 덕천면)에 사는 주춘석은 徐萬億의 妻 金召史에게 2냥 주고 柴場을 샀는데, 같은 면 上鶴里에 사는 김생원 양반이 이를 횡탈하려고 해서 관에 정소하여 엄징을 받았다. 그런데 최근에 다시 이것을 탈취할 계획을 세우고 있음으로 관에... 바로가기
17889 1825년에 김창욱이 고부군수에게 올린 산송 소지 을유년 11월에 김창욱이 고부군수에게 올린 산송 소지이다. 고부군 우덕면 상학리(현 정읍시 덕천면 상학리)에 사는 김창욱은 같은 면 劒舞谷에 있는 고조모산에 투장한 아무개를 추심할 것과 즉각 굴거해 갈 것을 관에 요청하였다. 이에 관에서는 25일자로 나타나기를 기다렸다가 즉시 독촉해서 굴거하라고 판결을 내렸다. 바로가기
17888 1838년에 주춘산이 작성한 시장매매문서 1838년(헌종 4) 7월 25일에 주춘산이 작성한 시장매매문서이다. 주춘산은 가정리 국치평에 있는 似字 시장 20同落只를 긴히 쓸 곳이 있어서 穉松을 포함하여 엄득문에게 2냥을 받고 팔았다. 바로가기
17887 1858년에 엄석규가 김생원에게 작성해 준 수표 1858년(철종 9) 9월 25일에 엄석규가 김생원에게 작성해 준 수표이다. 엄석규가 김생원댁 산지와 자신의 산지 경계가 불분명하여 관의 적간 끝에 김생원댁 주택산지가 분명하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이에 쟁소의 발단이 되었던 산지의 定界를 김생원댁에 출납함을 약속하면서 작성하였다. 바로가기
17886 1814년에 송생원 노 복쇠가 작성한 시장매매문서 1814년(순조 14) 12월 14일에 송생원의 노 복금이 상전을 대신하여 작성한 산지매매문서이다. 상전인 송생원이 흉년으로 생계가 힘들어지자 우덕면 역동평에 있는 柴場 30同을 45냥을 받고 박질선에게 팔았다. 송생원이 복금이에게 매매를 위임한 패지 1장과 이 신문기를 박질선에게 넘겨주었다. 이 산지의 본문기는... 바로가기
17885 1841년에 유기호가 작성한 전답매매문서 1841년(헌종 7) 1월 7일에 유기호가 작성한 논매매문서이다. 유기호는 긴히 쓸 곳이 있어서 고읍면 고자평에 있는 蘭字畓 1두5승락지를 7냥을 받고 김익출에게 팔았다. 이 문서의 작성연대인 도광21년의 간지는 ‘신축’년인데 이 문서에는 ‘신해’로 표기되어 있다. 아마도 ‘신축’의 오기인 것으로 생각된다. 바로가기
17884 1764년에 송수태가 작성한 전답매매문서 1764년(영조 40) 4월 2일에 송수태가 작성한 밭매매문서이다. 송수태는 긴히 쓸 곳이 있어서 자신의 아버지가 사서 경작하던 고읍면 한천평에 있는 安字田 7두락지와 言字田幼 3두락지를 합해서 錢文 40냥을 받고 김정조에게 팔았다. 송수태는 이 밭의 구문기 6장도 신문기와 함께 김정조에게 넘겨주었다. 바로가기
17883 1755년에 양위창이 작성한 전답매매문서 1755년(영조 31) 1월 17일에 양위창이 작성한 밭매매문서이다. 양위창은 고읍면 오마도에 있는 仕字田 1두락지를 5냥을 받고 김씨에게 팔았다. 이 밭의 본문기에는 다른 전답이 함께 기재되어 있기 때문에 매수인에게 넘겨주지 않고 신문기 1장만으로 거래하였다. 바로가기
17882 1866년에 이대영이 작성한 전답매매문서 1866년(고종 3) 4월 16일에 이대영이 작성한 논매매문서이다. 그는 가세가 어렵게 되어 고읍면 한천후평에 있는 논 8승락지를 18냥을 받고 팔았다. 이 논의 구문기는 따로 없이 都文記에 함께 기재되어 있기 때문에 매수인에게 넘겨주지 않고 신문기 1장만으로 거래하였다. 바로가기
17881 1896년에 이영하가 작성한 전답매매문서 1896년(건양 1) 12월 12일에 이영하가 작성한 밭매매문서이다. 이영하는 고읍면 한천리 불자동에 있는 밭 7두락지를 29냥을 받고 김홍규에게 팔았다. 이 거래에 김문규가 증인을, 유성근이 필집을 담당하였다. 바로가기
17880 1710년에 이창화가 작성한 전답매매문서 1710년(숙종 36) 11월 2일에 이창화가 작성한 밭매매문서이다. 그는 긴히 쓸 곳이 있어서 고읍면에 있는 6두락지의 밭을 5냥을 받고 김남욱에게 팔았다. 이창화는 따로 증인이나 필집을 두지 않고 자필로 이 문서를 작성하여 구문기 없이 신문기 1장으로 이창화와 거래하였다. 바로가기
17879 1696년에 김명주가 작성한 전답매매문서 1696년(숙종 22) 7월 6일에 김명주가 작성한 밭매매문서이다. 김명주는 흉년으로 인하여 살길이 막막해지자 고읍면 한천리에 있는 辭字 垈田 2두락지幼學 金命?가 禹承績에게 조상 대대로 전래되어 오던 것을 大事로 인하여 다 써버리고 지금 살아갈 방법이 없어서 형세상 부득이 古邑面 寒泉里 西邊에 있는 垈田 2두락지... 바로가기
17878 1727년에 김난금 처 김조이가 작성한 전답매매문서 1727년(영조 3) 11월 3일에 김난쇠의 처 김조이가 작성한 밭매매문서이다. 그녀는 남편의 장례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 자신이 매득하여 경작해오던 고읍면 냉천평에 있는 安字田 1두5승락지를 4냥을 받고 주학천에게 팔았다. 바로가기
17877 1902년에 이사홍이 작성한 전답매매문서 1902년(광무 6) 12월 19일에 이사홍이 작성한 논매매문서이다. 이사홍은 자신이 여러 해 동안 경작해오던 간전면 화정리에 있는 首字田 4두락을 162냥을 받고 팔았다. 이 거래에 박종수가 증인으로, 정상선이 필집으로 함께 참여하였다. 바로가기
17876 1903년에 박중현이 작성한 전답매매문서 1903년(광무 7) 1월 17일에 박중현이 작성한 논매매문서이다. 박중현은 긴히 쓸 곳이 있어서 자신이 여러 해 동안 경작해오던 구례 계사면 독서동촌에 있는 皇字畓 2두락지를 210냥을 받고 팔았다. 이 거래에 이문찬이 증인으로 참여하였다. 바로가기
17875 1864년에 한승리가 작성한 전답매매문서 1864년(고종 1) 9월 17일에 한승리가 작성한 논매매문서이다. 한승리는 부득이한 형편으로 인하여 남원 소의방 대전내평에 있는 文字畓 3두락지를 80냥을 받고 천은사에 팔았다. 바로가기
17874 1888년에 승당방 방주 기학이 작성한 전답매매문서 1888년(고종 25) 8월 4일에 천은사 승당의 방주인 기학이 작성한 房住 淇鶴이 작성한 논매매문서이다. 기학은 흉년으로 인하여 부득이 남원 소의방 대전내평에 있는 房畓인 文字畓 3두락지를 70냥에 팔았다. 바로가기
17873 1806년에 박동수가 작성한 전답매매문서 1806년(순조 6) 8월 6일에 박동수가 작성한 논매매문서이다. 그는 부득이한 형편으로 구례 용천면 두지동 사포정평에 있는 張字畓 8두락지를 錢文 137냥을 받고 이쌍용에게 팔았다. 이 거래에 이종손이 증인으로 참여하였다. 바로가기
17872 1817년에 이재득이 작성한 전답매매문서 1817년(순조 17) 10월 30일에 이재득이 작성한 논매매문서이다. 그는 긴히 쓸 곳이 생겨서 구례 용천면 두지동 사포정평에 있는 張字畓 8두락지를 50냥을 받고 김옥룡에게 팔았다. 그는 이 논의 본문기를 신문기와 함께 김옥룡에게 넘겨주었다. 이 거래에 권만복이 증인으로 참여하고 수결하였다. 바로가기
17871 1901년에 최씨댁 노 승돌이 작성한 전답매매문서 1901년 12월 14일에 최씨댁 노 승돌이 작성한 논매매문서이다. 그는 남원 소의방 내평에 있는 文字畓 2두락지를 錢文 190냥을 받고 팔았다. 그는 이 논을 팔아서 다른 곳에 있는 논을 사기 위해서 팔게 되었다고 사유를 적었다. 이 문서에는 증인과 나란히 이 거래를 주선한 거간의 이름과 수결이 있는 점이 특징이다. 바로가기
17870 1805년에 오창대가 작성한 전답매매문서 1805년(순조 5) 2월 12일에 오창대가 작성한 논매매문서이다. 그는 부모로부터 상속받은 구례 용천면 두지동촌 사포정평에 있는 張字畓 8두락지를 120냥을 받고 박성백에게 팔았다. 이 논의 본문기는 지난 갑신년의 홍수로 인하여 잃어버렸기 때문에 신문기 1장만 매수인에게 넘겨주었다. 바로가기
17869 1871년에 임백동 등이 작성한 자매문기 1871년(고종 8) 5월 30일에 任白同과 그의 처 吳召史가 자신의 딸 文令을 30냥을 받고 이생원댁에 팔면서 작성한 자매문서이다. 이생원댁의 足間伊가 임백동의 집에 놀러와서 동네의 사내 녀석과 어울리다 그와 함께 도망치자 임백동은 2년 전에 자신의 딸 문영을 이생원댁에 훗날 족간이를 찾으면 속량해 줄 것을 약속하고... 바로가기
17868 1869년에 임백동 등이 작성한 자매문기 1869년(고종 6) 12월 23일에 任白同과 그의 처 吳召史가 자신의 13살 된 딸 文英을 이생원댁에 주면서 작성한 자매문서이다. 이생원 댁의 足間伊가 임백동의 집에 놀러와서 동네의 사내 녀석과 어울리다 그와 함께 도망치자 이생원 댁에서는 임백동에게 그 책임을 추궁하였다. 임백동은 자신에게 유인한 죄가 있음을... 바로가기
17867 신미년에 이명수가 작성한 수표 신미년에 李明洙가 작성한 수표이다. 이명수는 도망간 노비 足間을 대신하여 任白同의 딸 文令(初名은 이름은 分心)을 대신하여 납부한다는 것이다. 바로가기
17866 1900년에 유학 김홍기가 작성한 전당문기 1900년(광무 4) 10월 16일에 유학 金洪基가 작성한 전당문서이다. 김홍기는 土稅를 납부하지 못해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아 살고 있는 집터를 전당으로 잡히고 2-3년 안에 갚지 못하면 집을 넘겨준다는 전당문서를 작성하였다. 이때 유학 朴成華가 증필로 참여하여 매매문서를 작성해 주었다. 바로가기
17865 계묘년에 구례군수가 고수영에게 발급한 첩 계묘년 3월에 구례군수가 通政大夫의 직첩을 高守英에게 전달하면서 발급한 첩이다. 職牒은 관리로 임명된 자에게 수여한 증서로서 告身이라고도 한다. 이는 品階에 따라 그 명칭과 발급 형식이 달라서, 4품 이상은 敎旨라 하여 임금이 직접 내리는 형식을 취하고, 5품 이하는 牒紙라 하였다. 이러한 증서는 署經을 거친 뒤... 바로가기
17864 1635년에 이유형이 자신의 재종질인 문원의 신부에게 보낸 예장서 1635년(인조 13) 5월 18일에 義禁府 經歷을 역임한 李惟馨이 자신의 再從姪인 文源의 배필을 맞이하기 위해 예단과 함께 신부의 집에 보낸 예장서이다. 바로가기
17863 1711년에 이성노가 작성한 혼서 1711년(숙종 37)에 전라도 남원부 둔덕방에 살던 李聖老가 아들 ?樸의 혼인을 위해 長興의 고생원댁에 보낸 청혼서이다. 바로가기
17862 1903년에 국왕이 고수영을 정3품 통정대부로 승급하면서 발급한 칙명 1903년(광무 7) 3월 9일 국왕이 80세가 된 고수영을 의례에 따라 정3품 通政大夫로 승급하면서 발급한 칙명이다. 바로가기
17861 1846년에 강장환이 작성한 전답매매문서 1846년(헌종 12) 11월 24일에 강장환이 작성한 논매매문서이다. 강장환은 긴히 써야 할 곳이 생겨서 여러 해 동안 경작해오던 동복현 내남면 신암촌에 있는 天字畓 4마지기를 120냥을 받고 팔았다. 이 논의 구문기에는 다른 전답이 함께 기재되어 있기 때문에 매수인에게 넘겨주지 않았다. 바로가기
17860 1892년에 박상섭이 작성한 전답매매문서 1892년(고종 29) 12월 7일에 박상섭이 작성한 논매매문서이다. 박상섭은 동복현 내남면 신암촌에 있는 天字畓 4마지기를 280냥을 받고 팔았다. 매매사유에 대해서는 적지 않았다. 박상섭은 이 논의 구문기도 신문기와 함께 매수인에게 넘겨주었다. 매수인의 이름은 적혀있지 않다. 바로가기
17859 1847년에 문태액이 작성한 전답매매문서 1847년(헌종 13) 12월 29일에 문태액이 작성한 밭매매문서이다. 문태액은 여러 해 동안 경작해오던 동복현 내남면 신암촌에 있는 地字田 2마지기를 30냥을 받고 장원식에게 팔았다. 문태액은 이 논의 본문기를 신문기와 함께 매수인에게 모두 넘겨주었다. 이 거래에 장윤하가 증인 겸 필집으로 참여하였다. 바로가기
17858 1877년에 장시문이 작성한 전답매매문서 1877년(고종 14) 12월 9일에 장시문이 작성한 밭매매문서이다. 그는 긴히 써야할 곳이 있어서 동복현 내남면 신암촌에 있는 地字 綿田 2마지기를 20냥을 받고 팔았다. 그는 이 밭의 구문기를 신문기와 함께 매수인에게 넘겨주었다. 매수인의 이름은 적혀있지 않다. 바로가기
17857 1817년에 김낙희가 작성한 전답매매문서 1817년(순조 17) 2월 16일에 김락희가 작성한 논매매문서이다. 그는 동복현 내남면 신암촌에 있는 天字畓 5마지기를 장근에게 28냥을 받고 팔았다. 매매사유에 대해서는 이 논을 팔아서 다른 곳의 땅을 사기 위해서라고 적었다. 그는 이 논의 본문기도 신문기와 함께 매수인에게 모두 넘겨주었다. 바로가기
17856 1869년에 장필권이 작성한 전답매매문서 1869년(고종 6) 4월에 장필권이 작성한 논매매문서이다. 장필권은 형이 사망한 후에 빚이 많아졌는데 이를 감당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여러 해 동안 경작해오던 동복현 내남면 신암촌에 있는 天字畓 5마지기를 150냥을 받고 팔았다. 매매시 본문기 2장도 신문기와 함께 매수인에게 넘겨주었다. 바로가기
17855 1807년에 문덕환이 작성한 전답매매문서 1807년(순조 7) 4월 13일에 문덕환이 작성한 논매매문서이다. 문덕환은 작년에 장운집에게 70냥의 빚을 얻어다 썼는데, 금년에 이자까지 합쳐서 105냥이 되었다. 이 빚을 갚을 길이 없게 되자 하는 수 없이 동복현 내남면 신암촌에 있는 天字畓 5마지기를 장운집에게 넘겨주었다. 이 논의 본문기에는 다른 전답이 함께... 바로가기
17854 1873년에 양복수가 작성한 전답매매문서 1873년(고종 10) 2월 28일에 양복수가 작성한 논매매문서이다. 양복수는 여러 해 동안 경작해오던 남원 水旨坊 泡岩 뒷편에 있는 衣字畓 1두락지를 25냥을 받고 노선달에게 팔았다. 이 거래에 김준업이 증인으로 참여하였다. 바로가기
17853 1727년에 장우달이 작성한 노비매매문서 1727년(영조 3)에 장우달이 작성한 노비매매문서이다. 그는 본래 가난하기도 하지만 부모의 묘를 遷葬하기 위해서 제위노비 2口를 장씨에게 암말 1필과 바꾸었다. 노비는 올해 32살인 말례와 그의 소생인 2살짜리 상매이다. 장우달은 맹인이라서 수결 대신에 좌촌을 하였다. 바로가기
17852 1630년에 김식의 처 김씨가 작성한 전답매매문서 1630년(인조 8) 3월 10일에 김식의 아내 김씨가 작성한 밭매매문서이다. 김씨는 김식이 사망한 후에 田稅를 감당하지 못하여 남편이 살아있을 때에 매입하여 경작해오던 마분이들에 있던 靡字田 3마지기를 正木으로 받고 오익빈에게 팔았다. 정목을 7필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바로가기
17851 1893년에 임동출이 작성한 전당문기 1893년(고종 30) 12월 6일에 논주인 林東出이 작성한 전당문서이다. 오랫동안 경작해 온 비청동에 있는 답 4두락지를 긴히 쓸 용도가 있어 위 댁에 10량을 받고 맡긴다는 전당문서로 언제까지 갚겠다는 기한은 기재하지 않고 있다. 바로가기
17850 1794년에 이헌이 작성한 전답매매문서 1794년(정조 18) 1월 17일에 이치헌이 작성한 논매매문서이다. 그는 둔덕방 신촌에 있는 李字畓 2마지기를 긴히 쓸 곳이 있어서 삼종질인 이정전에게 20냥을 받고 팔았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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