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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지

문화데이터 상세
명칭 어사암과 거북바위
기본정보 조선조 고종 20년(1894) 기장현 독이방(禿伊坊)에 있는 해창(海倉)에서 양곡을 실은 배가 부산포로 가다 풍랑을 만나 이곳 앞바다에 침몰한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엄청난 가뭄에 시달리고 있던 이곳 어촌 주민들은 목숨을 걸고 물에 빠진 볏섬을 건져 가족들과 함께 먹었다. 그런데 기장현청에서 이를 알고서 절도라고 하면서 관여한 주민들을 모두 기장관아에 붙잡아 갔다. 그리고는 마을을 수색하여 곡식을 수거해 가고, 옥에 갇힌 주민들은 심한 매질과 가혹행위로 죽은 사람까지 생겼다. 조정에서는 이 절도사건과 가혹한 고문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이도재(李道宰)’를 어사로 기장현에 파견하였다. 이에 어촌주민들은 기장관기 ‘월매(月梅)‘로 하여금 자신들의 어려운 사정을 얘기하고 관아에서 가혹행위로 도난량이 많은 것처럼 꾸며 수탈하려 하였다는 그간의 처사를 진정하게 하였다. 또한 열아홉 살의 월매는 미인계로 이도재가 주민 편을 들도록 설득하였다. 현장조사를 하러 이 곳 매바위에 온 월매는 매바위에서 가무로 어사를 즐겁게 하여 흥이 난 어사는 오언절구를 짓고 어사암(御使岩) 이라는 글자를 바위에 새겨 이 바위를 어사암이라 하였고, 그 덕택으로 어민들도 무사하게 되었다. 그 후 세월이 흘러 바위에 새긴 그 글자가 비바람에 마멸되자 주민들은 그 당시 이도재 어사의 은공과 기생 월매의 인정을 잊지 못하여 어사암에 이도재(李道宰)라는 성명과 기월매(妓月每)라는 세 글자도 함께 새기게 하였다. 월매는 뒤에 가정부인이 되었으며, 이도재는 후덕한 인품으로 한말 학부대신, 외무대신, 내무대신을 역임하고 시종원경이 되었다. 1848년 태어난 그는 1909년 62세로 별세하였는데, 호는 운정(汀) 또는 심제(心齊)라 하였고 시호는 문정공(文貞公)이다. < 출처 : 기장읍지 ‘구비문학’(기장읍지편찬위원회 저) > 한편 어사암 바로 건너 바다쪽에 있는 바위섬은 바위모양이 측면에서 보면 한 마리의 거북이가 물 속에서 솟아 육지로 헤엄쳐 들어오는 모습이라 하여 거북바위라고 부르며, 일출의 정경이 아름다운 곳으로 정평이 나있다
썸네일 어사암과 거북바위
연계 기관명 부산광역시
등록일 2018-12-05 16:13
주소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기장해안로68
문의처 051)709-4081
이용시간 24시간 이용
주차시설 없음
편의시설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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