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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청사기인화문바리(3000608) 크게보기 3D 뷰어
분청사기인화문바리(3000608)
국적/시대
한국/조선
재질
도자기/분청
용도
음식기
소장처
가톨릭관동대학교박물관
3D프린팅 가이드
추천재질 1 : 레진(SLA/DLP)
추천재질 2 : 플라스틱(FDM/FFF)
원천유물설명
강원도 강릉시에서 출토된 분청사기 인화문 바리이다. 바리는 발을 뜻한다. 분청사기는 분장회청 사기(粉粧灰靑沙器)의 준말이다. 분청사기는 청자와 같이 회색 또는 회흑색의 태토 위에 백토로 표면을 바르고 그 위에 회청색의 유약을 입혀 구워낸 것이다. 분청사기가 번조된 시기는 대략 14세기 말에서 17세기 초에 해당되며 조선 전기 도자기의 주류를 이루었으나 임진왜란 이후에는 우리 도공들의 납치와 요지의 파괴로 분청사기는 자취를 감추었다. 분청사기 가마터는 한강 이북지역에는 드물었지만 한강이남 지역에는 널리 분포되어 있었다. 분청사기의 종류는 그 제작 수법에 따라 여러 가지로 구분되지만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회색 또는 회흑색의 그릇 표면에 백토만으로 분장한 것, 둘째 백토로 분장하고 그 위에 문양으로 장식한 것이 있다. 귀얄, 인화, 박지, 조화, 철화 등의 기법을 사용해서 문양을 나타냈다. 인화문이란 무늬가 새겨진 도장을 표면에 눌러 찍어 문양을 내는 것을 말한다. 인화 기법은 고려 말의 상감청자에서 부분적으로 등장하여 분청사기에서 활짝 꽃 피었다. 도장을 찍어 패인 부분에 주로 백토를 넣는 것이므로 넓은 의미에서는 상감기법의 범주에 속하지만 일정한 도장을 반복해서 찍은 것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효과는 전혀 다르다. 인화문 분청사기는 조선 세조 연간에 절정을 맞이하며 그 소재로는 국화문이 가장 애용되었다. 이 분청사기 바리는 굽이 다소 높다. 풍만한 몸통은 둥근 원을 긋고 아가리까지 올라가 밖으로 약간 벌어졌다. 안쪽 아랫면에는 국화문(菊花文), 인화문(印花文), 나비문으로 장식하고, 그 위에 원형으로 띠를 두르고 연판문대(蓮瓣文帶)를 돌렸다. 옆면대(側面帶)는 원열문(圓烈文)을 시문하였다. 바깥쪽 면에는 아가리에서부터 초문대(草文帶)와 원열문(圓烈文) 그리고 연판문대(蓮瓣文帶)가 돌려 있다. 유색은 녹청색을 띠고 있으며 그릇 바닥 중앙에는 유약이 두껍게 뭉쳐 있어 문양을 확인 할 수 없다. 표면에 미세한 빙렬(氷裂)이 나타나 있다. 굽다리에는 모래 받침의 흔적이 남아 있다.
활용설명
분청사기 바리의 형태를 그대로 활용하여 주방용품으로 개발하였는데, 발의 몸통에 새겨진 인화문을 중심으로 형태에 집중한 모습이다. 분청사기의 느낌을 잘 살려 소박한 아름다움이 느껴지도록 만들었다. 발은 바리 대접과 같은 말로 요즘에도 주방에서는 자주 사용하고 있는 형태로 일반인에게도 친숙한 편이다. 일상적인 소품으로도 활용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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