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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도별문양

수저집(112029) 크게보기
수저집(112029)
문양구분
(2D)
문양분류
식물문/모란문, 동물문/나비문
국적/시대
한국/조선후기
원천유물명
수저집
문양설명
이 문양은 나비와 모란문을 표현한 것으, 나비는 암수가 함께 표현되어 부부금슬을 상징하기도 하였다. 안방에 놓는 병풍그림이나 가구 등에 흔하게 장식되었고 도자기, 혼례의상, 대례복 등에도 사용되었다. 나비는 봄에 나타나기 때문에 소원성취와 입춘대길을 상징하기도 한다. 생활도구에 사용된 문양 중 가장 많이 사용된 동물문양으로 자유연애와 아름다움, 부부금슬을 상징하며 여인들의 장신구, 가구장식 등 매우 폭넓은 유물에 나타난 무늬이다. 중국이 원산지인 모란은 낙엽관목으로 키가 2m가량이며, 꽃은 지름이 15㎝이상으로 매우 큰 편이다. 모란이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전래된 시기는 삼국사기 선덕여왕조(善德女王條) 모란화도(牧丹畵圖)와 씨앗이 진평왕(579~632)때에 당에서 왔다는 기록에 따라 신라시대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꽃잎이 중첩된 모양과 잎의 가장자리가 갈라진 형태는 매우 화려하며 꽃 중의 왕이라 불렸다. 또한 풍성한 꽃잎은 부귀를 상징하여 부귀화(富貴花)라는 별칭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당나라 측천무후 때 장안에는 모란이 크게 번성하였다고 하며 그 이후 모란꽃은 번영과 창성, 아름다움과 행복의 상징으로 널리 표현되었다. 모란은 회화, 자수, 공예품 등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표현되었는데 장미꽃과 함께 배치하여 부귀장춘(富貴長春), 수석이나 복숭아와 더불어 장명부귀(長命富貴)의 의미를 나타내었다. 고려시대에는 청자에 간결하게 도안된 모란과 덩굴을 함께 표현하였고 조선시대에는 분청사기를 비롯하여 청화백자 등에 모란을 표현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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