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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화백자매죽문사각연적(7561) 청화백자매죽문사각연적(7561)
청화백자매죽문사각연적(7561)
문양설명
괴석도(怪石圖)는 여러 가지 길상을 나타내는 동물이나 식물을 곁들여 그린 것이 대부분이다. 기암(奇巖)이나 괴석, 수석(壽石) 옆에 불로초(지초, 영지버섯)나 복숭아꽃, 혹은 수선화가 무더기로 핀 경치를 볼 수 있다. 바위나 돌은 영원불멸의 상징이며, 또한 비바람을 가지지 않고 말없이 의연한 자태는 군자의 풍모를 엿볼 수 있는 상징물이기도 하다. 개구리는 알에서 올챙이로 변신했다가 다시 꼬리가 없어지면서 온전한 개구리가 되는 생태적 특성 때문에 예로부터 상서로운 동물로 여겨 왔다. 개구리는 왕권(王權)과 관련해서는 신성(神聖)을 상징한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는 “부여왕 해부루(解夫婁)가 산천에 치성하여 곤연(鯤淵)에서 바위를 들쳐 금빛 개구리 모양의 어린애를 얻었는데, 그 아이가 자라서 후일의 금와왕(金蛙王)이 되었다”고 하여 개구리를 신성시하였다. 왕권의 후계자를 금빛 개구리로 상징화한 것은 금빛의 신성함과 개구리의 다산(多産)이라는 생물학적 특성의 결합을 통해 왕권의 신성함과 왕족의 흥성을 기원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또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신라의 선덕여왕 때 영묘사(靈廟寺)의 옥문지(玉門池)에서 개구리가 3~4일 동안 울었는데, 왕이 이를 보고 급히 군사를 여근곡(女根哭)에 보내어 잠복하고 있던 백제의 군사를 토멸하였다”라 하였는데 이는 당시 사람들이 개구리를 예언적 능력을 지닌 신령스런 동물로 여겼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미술품에 나타난 개구리는 조선시대 민화나 연적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문인들이 애용하던 문방구의 하나인 연적을 개구리 형태로 만들었던 것은 학문적인 성취를 기원하기 위한 의도라 보이는데 이는 움츠렸다가 멀리 뛰는 개구리의 행동양식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민속에서는 ‘개구리가 집에 들어오면 복이 들어온다’고 믿었는데 이는 우리민족이 개구리를 재복신(財福神)으로 여겼던 좋은 예이다.
연적은 벼루에 먹을 갈 때 적당한 양의 물을 떨어뜨려 주기 위한 목적에서 고안된 용기로, 구멍 둘을 내어 공기를 조절함으로써 연적 안에 물을 넣고 또 원하는 만큼의 물이 나오도록 조절할 수 있게 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문을 숭상하던 조선시대에 들어와 연적에 대한 수요는 증가되고, 이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연적들이 만들어 졌다. 특히 18세기에는 문인 사대부 취향의 그릇들이 다수 제작되는데, 그 한 예로 시정이 넘치는 작고 아담한 각종 연적들이 만들어진다. 형태로는 팔각, 사각 같은 각형이 등장하였고 조선 고유의 두꺼비나 개구리 연적, 무릎 연적, 복숭아 연적처럼 다양하고 정감 어린 작품들이 제작되었다. 연적은 일반적으로 실용적인 목적으로 사용됐지만 비교적 큰 것은 장식품으로 애호되어 왔다. 이 청화백자 연적은 직육면체로 밑면을 제외한 다섯 면에 청화 안료를 이용하여 사각(四角)의 테를 두르고 그 안에 문양을 그려 넣었다. 사각형의 편평한 윗면에는 좌측에 대나무를, 우측에 매화 가지를 그렸다. 또 맨 위에는 개구리를 조각하고 입에 주구(注口)를 내어 물을 쉽게 붓고 따를 수 있도록 하였다. 매화가지 하단면 상단에도 개구리를 좀 더 작은 크기로 조각하고 입에 물구멍을 내었다. 옆면에는 모두 중앙에 괴석(怪石)을 청화로 그렸다. 대나무는 속이 비어 있으면서도 강하고 유연한 성질을 지니고 있고, 또 사계절을 통하여 색이 변치 않기 때문에 군자의 품격이나 절개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생활 문양에서 다루어지는 대나무는 절개나 지조의 상징보다는 세속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대나무 죽(竹)과 축수한다는 축(祝)이 같은 음을 낸다고 하여 축수(祝壽:장수하기를 기원함)의 의미로 쓰였다. 대나무와 함께 바위가 그려진 예가 많이 보이는데 바위는 장수를 뜻하기 때문에 역시 축수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한편 대나무는 벽사의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담문록(談聞錄)』에 의하면 서방 산중에는 장대한 산귀신이 살았는데 사람이 그를 만나기만 하면 반드시 병에 걸렸다고 한다. 이전이라는 사람이 이 귀신을 매우 두려워하여 아침저녁으로 대나무를 잘라 불 속에 던져 넣었는데, 대나무가 타면서 터지는 소리에 놀라 귀신이 달아나게 했다고 한다. 이것이 세시에 폭죽을 터뜨리게 된 연원인데 이로부터 대나무가 축귀(逐鬼, 귀신을 ?i아냄)의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매화는 고결한 선비나 정절의 여인을 상징한다. 이른 봄에 홀로 피어 봄의 소식을 전하고 맑은 향기와 우아한 운취가 있어 순결과 절개의 상징으로 널리 애호되었다. 매화의 다른 이름인 보춘화(報春花)는 겨울이 끝나고 봄이 문턱에 올 즈음에 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봄·겨울 홀로 핀 늙은 매화의 고고한 자태를 표현한 그림은 군자의 지조와 절개로 비유되고 있다. 또 겨울이 되어 잎이 지고 나면 죽은 것처럼 보이나 다음 해 다시 꽃이 피는 속성을 지니고 있어 장수의 상징물로도 여겼다. 바위는 오랜 세월을 두고 변치 않기 때문에 장수의 의미를 나타내는 사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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