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푸터 바로가기
> 문화지식 > 전통문양 용도별문양

형태별문양

경복궁 광화문 여장(101192) 크게보기 경복궁 광화문 여장(101192) 크게보기
경복궁 광화문 여장(101192)
문양설명
경복궁(景福宮)은 조선시대 궁궐 중 가장 중심이 되는 곳으로 태조 3년(1394) 한양으로 수도를 옮긴 후 세워졌다. 북으로 북악산에 기대어 자리 잡았고 정문인 광화문 앞으로는 넓은 육조거리(지금의 세종로)가 펼쳐져, 수도 한양의 중심이었다. 경복궁은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고종 4년(1867) 흥선대원군의 주도로 중건되었다. 궁궐 안에는 왕과 관리들의 정무시설, 왕족들의 생활공간, 휴식을 위한 후원이 위치하고 있다. 1895년 궁궐 안에서 명성황후가 시해되는 사건이 벌어지고, 왕이 러시아공관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주인을 잃게 되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은 경복궁의 건물을 헐고, 근정전 앞에 총독부 청사를 지어 경복궁은 옛 모습을 거의 잃게 되었다. 1990년부터 본격적인 복원사업이 추진되어 총독부 건물을 철거하고 광화문을 복원하였으며, 왕과 왕비의 침전, 동궁, 건청궁, 태원전 등이 원래 모습을 되찾고 있다. 광화문(光化門)은 경복궁의 남쪽 정문이다. 석축기단에 홍예(虹朗)를 만들고 그 위에 정면 3칸의 중층 건물을 배치하고 우진각지붕을 갖추었다. 광화문은 섬세한 수법과 웅대한 구조를 보여주고, 전체적으로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장려한 외관을 지닌 궐문(闕門)으로 평가되고 있다. 태조 4년(1395) 9월에 창건되어 정도전(鄭道傳)에 의해 사정문(四正門)으로 명명되었으나 세종 7년(1425) 집현전에서 광화문이라고 바꾸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270여 년 간 중건되지 못하다가 고종 1년(1864) 흥선대원군의 경복궁 재건으로 옛 모습을 되찾았다. 1927년 조선총독부가 경복궁 동문인 건춘문(建春門) 북쪽으로 이전시켰고,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었던 것을 1968년에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복원하였다. 2006년 12월부터 광화문 복원 및 이전 공사가 시작되어 2010년 8월에 완료되었으며 제65주년 광복절에 맞춰 8월 15일에 일반인에 공개되었다.
경복궁 광화문 성벽 위에 낮은 담장인 여장에 표현한 문양이다. 벽돌을 쌓고 회를 칠하여 가운데에는 십자모양으로 타오르는 불꽃을 나타내었다. 불꽃의 외곽부분에는 미로와 같은 기하학적인 문양을 연속하여 표현하였다.
공공누리 제 1유형 마크 - 출처 표시

한국문화정보원이 창작한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예) 본 저작물은 "문화포털" 에서 서비스 되는 전통문양을 활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