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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애련정 수막새(100581) 크게보기 창덕궁 애련정 수막새(100581) 크게보기
창덕궁 애련정 수막새(100581)
문양설명
창덕궁은 조선시대 궁궐 가운데 하나로 태종 5년(1405)에 세워졌다. 경복궁의 동쪽에 위치한다 하여 창경궁과 더불어 동궐이라 불렀다. 임진왜란으로 모든 궁궐이 불에 타자 광해군 때에 다시 짓고 고종이 경복궁을 중건하기까지 가장 오랫동안 임금들이 거처하며 정궁 역할을 하였다. 임금과 신하들이 정사를 돌보던 외전과 왕과 왕비의 생활공간인 내전, 휴식공간인 후원으로 나누어진다. 내전의 뒤쪽으로 펼쳐지는 후원은 울창한 숲과 연못, 크고 작은 정자들이 마련되어 자연경관을 살린 점이 뛰어나다. 또한 우리나라 옛 선현들이 정원을 조성한 방법 등을 잘 보여주고 있어 역사적으로나 건축사적으로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1917년에는 대조전(大造殿)을 비롯한 침전에서 불이 나서 희정당(熙政堂) 등 19동의 건물이 불탔는데, 1920년에 일본은 경복궁을 헐어서 창덕궁의 건물들을 재건하였다. 창덕궁은 197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애련지(愛蓮池)는 불로문(不老門)을 지나 왼쪽에 자리하고 있고 애련지 북쪽에는 정자인 애련정(愛蓮亭)이 서 있다. 애련지는 부용지와 달리 가운데 섬이 없는 방지(方池)이다. 애련정은 숙종 18년(1692)에 건축하였고, 정면 1칸, 측면 1칸의 건물로 일반 건물에 비해 추녀가 길며 추녀 끝에는 잉어 모양의 토수가 있다. 건물을 받치고 있는 기둥가운데 두개가 연못 속에 잠겨있는 초석 위에 위치하였다. 애련이라는 이름은 송나라의 유학자 주돈이(周敦?, 1017~1073)가 쓴 애련설(愛蓮設)이라는 시에서 유래했으며 숙종이 지은 애련정기(愛蓮亭記)가 『궁궐지(宮闕志)』에 전하고 있다.
창덕궁 애련정의 수막새로 마구리부분에 삼족오를 나타내었다. 머리에는 깃털이 길쭉하게 솟아 올라있으며 몸에서는 화염과 같은 서기를 내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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