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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릉 문석인(112216) 크게보기
융릉 문석인(112216)
문양구분
(2D)
문양분류
동물문/봉황문
국적/시대
한국-조선
원천유물명
융릉 문석인
문양설명
이 문양은 구름과 봉황을 표현하 것으로, 구름은 고대로부터 해, 달, 별, 바람, 비를 비롯한 자연현상을 경외하던 사상적 배경으로 인해 신성시되었다. 구름은 농경사회에서 만물을 소생시키는 비를 내리고 거두거나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모습 때문에 길흉을 점칠 수 있는 신령스러운 존재로 인식되기도 하였다. 또한 왕권을 상징하는 용 대신 그보다 한 단계 낮은 구름문을 사용함으로써 최고의 자리에 오르고 싶은 열망을 표출하는 방편으로 사용되어 높은 신분의 권위와 위엄을 상징하였다. 그밖에도 구름은 장수를 상징하는 십장생 중의 하나로 불로장생을 뜻하기도 하였다. 옛 사람들은 구름이란 천신이나 신령들이 타는 것일 뿐 아니라 만물을 자라게 하는 비의 근원이라 여겼다. 또한 세속을 벗어나서 상서로운 이미지를 나타내기 위해서 용이나 학과 같은 상서로운 동물과 함께 나타내는 예가 많았다. 구름의 형태는 크기와 색깔이 모두 달라서 정형화된 형태가 없다. 십장생의 하나로 단독으로 쓰이지는 않았고 다른 길상문양과 결합하여 나타나는 예가 많았다. 구름의 형태는 머리와 꼬리로 구성되며 이 둘의 조합과 비례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내었다. 봉황이란 수컷인 봉(鳳)과 암컷인 황(凰)을 함께 이르는 말로 상상 속의 새이다. 봉황은 5가지 덕을 갖추고 있는데 푸른 머리는 인(仁), 흰 목은 의(義), 붉은 등은 예(禮), 검은 가슴은 지(智), 황금빛을 띠는 다리는 신(信)을 상징한다. 봉황은 고상하고 품위 있는 모습을 지니고 있어 왕비에 비유되거나, 태평성대를 예고하는 상서로운 새로 여겨져서 궁궐에서 다양한 무늬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일반인들은 봉황과 새끼 봉황을 함께 수놓아 자손들이 집안에 가득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나타내었다. 봉황문양은 직물뿐만이 아니고 고분벽화, 도자기, 단청, 공예, 장신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었다. 조선시대에 봉황문양은 용과 함께 왕실의 상징으로 즐겨 사용되었고 권위적이고 화려하게 표현되었다. 조선 전기에는 봉황보(鳳凰補)가 왕비의 상징으로만 여겨졌지만, 조선 후기에는 이단하(李端夏) 부인의 대례복인 원삼에 부착된 흉배에서와 같이 일반 사대부의 옷에도 봉황흉배(鳳凰胸背)를 하는 등 봉황에 관한 금제가 약화되었다. 한편 조선 말기의 봉황문양은 활옷이나 수저집, 염낭, 베개모와 같은 자수 유물에서 많이 애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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