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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문(7841) 크게보기
개구리문(7841)
문양구분
(3D)
문양분류
동물문/개구리문
국적/시대
한국-고려
원천유물명
청화백자진사매국문편병
문양설명
개구리는 알에서 올챙이로 변신했다가 다시 꼬리가 없어지면서 온전한 개구리가 되는 생태적 특성 때문에 예로부터 상서로운 동물로 여겨 왔다. 개구리는 왕권(王權)과 관련해서는 신성(神聖)을 상징한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는 “부여왕 해부루(解夫婁)가 산천에 치성하여 곤연(鯤淵)에서 바위를 들쳐 금빛 개구리 모양의 어린애를 얻었는데, 그 아이가 자라서 후일의 금와왕(金蛙王)이 되었다”라고 하여 개구리를 신성시하였다. 왕권의 후계자를 금빛 개구리로 상징화한 것은 금빛의 신성함과 개구리의 다산(多産)이라는 생물학적 특성의 결합을 통해 왕권의 신성함과 왕족의 흥성을 기원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또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신라의 선덕여왕 때 영묘사(靈廟寺)의 옥문지(玉門池)에서 개구리가 3~4일 동안 울었는데, 왕이 이를 보고 급히 군사를 여근곡(女根哭)에 보내어 잠복하고 있던 백제의 군사를 토멸하였다”라 하였는데 이는 당시 사람들이 개구리를 예언적 능력을 지닌 신령스런 동물로 여겼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미술품에 나타난 개구리는 조선시대 민화나 연적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문인들이 애용하던 문방구의 하나인 연적을 개구리 형태로 만들었던 것은 학문적인 성취를 기원하기 위한 의도라 보이는데 이는 움츠렸다가 멀리 뛰는 개구리의 행동양식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민속에서는 ‘개구리가 집에 들어오면 복이 들어온다’고 믿었는데 이는 우리민족이 개구리를 재복신(財福神)으로 여겼던 좋은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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