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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큐멘터리 2부 - 엄마의 도시, 바다 도시에서 사랑하는 방법

제작
조유빈
재생시간
05:03
등록일
2020-10-27
인천에서 사랑하는 방법
 
60년에 가까운 삶 평생을 인천에서 살아온 인천 토박이 엄마, 우리네 단골 레퍼토리인 엄마의 러브스토리를 시작으로, 젊은 시절부터 현재까지를 한 도시에서 살아온 개인의 도시 내 이동사를 통해 인천의 도시사를 들여다본다.
 
인천의 구도심-동인천의 이야기에서 시작해 인천의 현 번화가에 위치한 현재의 으로 귀결되는 구성을 통해, 1부와 연결하여 코로나 시대에 우리의 을 돌아 볼 수 있는 로컬 도시 이야기를 완성한다.
 
 
-----사용음원-----
1. Kevin Macleod - Wisps of Whorls
 

-----대본-----

 

#대화.

 

#설거지 소리

-엄마.

-?

-재밌는 얘기 좀 해줘봐봐.

-?

-재밌는 얘기 좀 해줘봐봐!

-뭐여 뭘 또 갑자기 재밌는 얘기를 해

-하하하

-?

-아 아무거나 좀 해줘봐~

-아니 근데 갑자기 재밌는 얘기가 어딨냐고~

-흐흐

 

#개수대 물줄기 소리, 점차 파도소리와 오버랩

 

#내레이션.

 

바다 소리가 들린다.

 

 

1965, 중구 율목동에서 엄마는 태어났다.

 

인천에 구라고는 동남북중구밖에 없던 시절, 그중 유일한 번화가였던 중구에서, 엄마 또한 자랐다. 지금은 사라진 유동과, 송현동, 송림동 등지를 누비며, 마찬가지로 중구에 살던 친구들을 많이도 사귀었다. 토박이가 별로 없는 도시인 인천에서, 엄마는 평생의 시작을 그렇게 인천에서부터 시작했다.

 

70년대, 주안 국가산업단지가 생기면서부터 주안이 조금씩 번화가가 될 기미가 보이자 엄마네 가족 또한 주안으로 이사를 갔다. 국민학교 6학년에 갑자기 전학을 가고싶지 않았던 엄마는, 버스를 타고 주안과 배다리를 오가게 되었다. 처음으로 버스를 타고 학교에 다니게 된 때였다.

 

중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여전히 불변의 번화가였던 동인천, 신포동에서 친구들을 만났다. 80년도 전까지 우리가 아는 인천의 번화가들은 아직 이름도 없는 산이었고, 주안도, 엄마가 20대가 될 때까지는 아직 그닥 번화가가 아니었다.

 

엄마가 나온 학교, 인천에서 가장 큰 여고였던 인천여고 또한, 지금과 달리 당시에는 배다리 근처에 있었다. 지금 연수동에 있는 학교들은 예전에는 많은 수가 중구에 있었다.

 

그러면서도 늘 여전한 것, 여름에는 을왕리와 월미도에서 바다를 봤고, 영종도에도 놀러갔다.

, 영종대교가 생기기 전에는 배를 타고 갔어야 해서 마음의 준비가 좀 필요했지만.

 

80년대 당시에는, 학생 야구가 대세였다.

당시 야구로 좀 날렸던 동네인 인천에서는, 여름이면 수많은 고교생들이 숭의동 공설 운동장에 모여, 여러 학교에서 모인 학생 선수들을 열렬히 응원했다.

 

 

85년도., 21.

20대에도 신포동 문화의 거리는 여전히, 젊음의 도시로써 불변의 입지를 가지고 있었다.

이때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프랜차이즈가 없었는데, 그런 와중에 센세이션이었던건 바로, 돈까스. 경양식 돈까스라는 신문물의 등장은, 여태껏 사람들이 알던 고급 음식의 틀을 깼고, 그래서 이 음식은 분위기 있는 미팅에서도 자주 선정되는 메뉴였다.

 

낭만의 시대답게, 이 시기 신포동 2030 문화의 거리에는 음악다방과 음악감상실이 유행했다.

한국인의 어디가지 않는 음악사랑.

극장도 좀 더 보편화되어서, 당시 인천 최초의 대중 극장이던 애관극장은, 주말이면 항상 사람들로 붐볐다.

 

20대 후반, 구월동이 번창하며 엄마와 가족들도 이곳으로 집을 옮긴다.

 

90년대 중반, 30대 초,

97, 가까워지는 새천년을 등에 업고, 인천의 첫 대형백화점이 구월동에 생겼다

20세기의 마지막, 99년에 인천 1호선도 드디어 등장하며 인천이 본격적인 광역시의 모습을 갖췄다.

, 백화점이 생겼지만, 다들 모래시계를 보러 저녁에는 집에 들어갔다고 한다.

 

이후로 부평 등이 젊음의 거리로 발전했지만,

역시 놀던 곳이 좋은 법,

조금씩 신포동이 어른들의 도시가 되어가던 때였다. 발길이 조금씩 끊겨가는 구도심이 이후 레트로의 중심지로 부활한 것은, 한창 새로운 것들만이 생겨나던 시대에는 상상치 못할 일이었다.

 

결혼 후 아빠를 따라 새로운 번화가인 연수동에 갔던 엄마는, 나를 낳고, 편의시설이 좀 더 많은 구월동으로 다시 돌아온다.

 

 

그렇게 내가 열심히 뛰어다니기 시작할 무렵 2001, 인천공항이 생기며 인천은 이전의 이미지와 다른, 새로운 도시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렇게 지금의 우리집, 고만고만한 거리에 몇 번의 이사를 다니며, 엄마는 그렇게 살고 있다.

 

하나의 도시를 오랫동안 바라보며,

그 안에서 최선을 찾아.

 

 

하나의 도시에서 평생을 살아가는 일,

매일을 들여다보면 더없이 지겨우면서도

간혹 눈에 들어오는 작은 변화들로부터

그렇게, 변해가는 도시를 지켜보는 일.

 

다만, 그 중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은,

여름이 오면 여김없이 보고싶은 바다가 있다는 것.

 

#파도 소리

 

당신의 도시는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습니까?

당신의 삶은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습니까?

 

바다 소리가 들려온다. 바래지 않는 기억을 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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