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공감 문화영상 (한국문화100)

문화영상 (한국문화100)

[한국문화100]제주의 희망의 석상, 돌하르방
  • 제작 관리자
  • 재생시간 6분 5초
  • 등록일 2015-10-22
  • 조회수 14,987
0

[한국문화100]제주의 희망의 석상, 돌하르방

태그 돌하르방공원 돌하르방 장승 한국문화100 제주도

상세내용더보기


소재선정이유 : 제주도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석조물.

제주의 장승이라고 불리는 돌하르방, 돌하르방은 제주에 어떤 역할과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그 모습을 표현

한국문화100 돌하르방 편- 대본

?

자막 :
천혜의 아름다운 땅, 제주 세계 7대자연경관으로 선정된 제주는 세계적인 휴양 관광지로 사랑 받고 있다.
제주 하면 떠오르는 상징물 중 하나인 돌하르방에 대해 알아보자.
?
인터뷰 :
송시후 / 경기도 부천시
질문 ; 돌하르방 얼굴보니까 어때요?
답 : 귀여워요.

?

송관철 / 경기도 부천시
돌하르방 보면 코가 커서 묵직한 느낌이 듭니다. 힘이 센 할아버지 같은 느낌!

?

문성원 / 서울특별시
아주머니들이 (돌하르방)코를 만지면 아들을 낳는다고 하는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듣긴 했어요.

?

김혜지 / 경기도 부천시
머리랑 몸이 일대일 비율이여서 되게 귀엽게 생긴거 같아요.

?

홍은혜 / 서울특별시
제주도에 세워져 있는 것? 특산품? 특산물??

?

자막 :
관광의 활성화를 위해 제주도 문화재 위원들이 1971년 돌하르방을 제주 민속자료 2호로 지정.

?

자막 :
제주사의 기록이 담긴 ‘탐라기년’에 조선시대 1754년(영조 30년) 옹중석(돌하르방)이 제주도를 관장하는 김몽규 목사에 의해 성 앞에 세워졌다는 기록이 있음.

?

내레이션 :
제주의 돌하르방, 아이들의 입에서 할아버지 모습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1971년 제주 민속자료 2호로 지정되면서 제주도 문화재 위원들이 부르기 쉽고 관광의 활성화를 위해 돌하르방이라 명명 하게 되었다고 한다.

?

문헌에 나오는 원래의 명칭은 옹중석, 제주사의 기록을 담고 있는 '탐라기년'의 내용을 살펴보면 조선시대 영조 30년(1754년), 제주도를 관장하는 김몽규 목사가 옹중석을 성 앞에 세웠다는 기록이 전해져 오고 있다.

?

실제 민간에서 불렸던 이름은 우석목, 무석목, 벅수머리, 두릉머리 등으로 불렸다고 하는데, 제주의 돌하르방은 어떤 역할을 했을까?

?

자막 :
돌하르방은 민간에서 우석목, 무석목, 벅수머리, 두릉머리 등으로 불리워짐.

?

인터뷰 :
- 제주문화연구소 김유정 소장
돌하르방의 기능은 읍성 수호에요. 성 밖에서 성 안에 들어오는 문앞에 세웠기 때문에, 모든 밖에서 들어오는 왜구나 전염병이나 기타 안좋은 기운들을 막기위한 하나의 수호신 역할을 했기 때문에 성 앞에 이렇게 마주 보게 삼문(동서남문)에 세웠죠. 영조 30년 1754년에 김몽규(金夢奎)목사가 (제주도에)와서 만들어 세웠다고 했기 때문에, 그 때 김몽규 목사는 육지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여기(제주도)에 발령 받아 와서 육지에서 본 것을 직접 석공을 불러다가 설명을 해서 (돌하르방을)만들었기 때문에 사진이 없던 시대에 말로만 들어서 만들다 보니까 3개의 지역(제주목, 정의현, 대정현) 돌하르방이 다 다릅니다. 제주목은 눈이 크고, 정의현은 키가 중간형이고, 대정현의 돌하르방은 너무 작아서 아주 코믹할 정도로 이것이 돌하르방일까란 생각이 들정도로 형태가 다른 모습이 나타납니다.

?

자막:
돌하르방은 육지의 장승, 왕릉의 문무인석과 같은 의미를 지님.

?

자막:

제주목 24기, 정의현 12기, 대정현 12기 각 지역 동서남 3곳의 성문앞에 총 48기가 배치 되어 있었음.

?

내레이션 :
육지의 장승, 왕릉의 문무인석, 제주도의 자생적인 석상들이 만나서 세워진 돌하르방. 제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는 지역 세 곳의 마을에 총 48기가 동서남문 성문 앞 입구에 세워져 성문을 지켰던 성물이었다. 마을의 성문을 드나드는 제주사람들을 늘 지켜봐주었고, 언제어디서나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던 제주인의 삶을 지키는 수호신이었다.

?

인터뷰 :
- 북촌돌하르방공원 김남흥 원장
돌하르방의 태생적인 배경을 뒤로 해서 가만히 살펴보면 당시 살고 있었던 사람들의 불안한 마음을 위로 받기 위해서 세웠던 (돌하르방)석상이거든요. 제가 돌하르방을 조각하고 이 석상을 공원안에 전시를 하는데, 자연발상적으로 들었던 생각이 뭐였냐면 처음 돌하르방 하나를 재연하는데 드는 소요일수를 쟤 봤어요. 혼자 힘으로 조각을 했을때, 45일 걸려요.
그럼 당시에 48기가 (동시에)작업이 되었다면 한 두사람 가지고 절대 될 일이 아니네. 돌하르방을 작업할 때 한 사람 한 사람의 동조된 의견 아래서 적극적인 협조 없이는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드는거에요. 그러니까 돌하르방을 만드는 자체가 좋은 의미가 담겨져 있고, 그 뜻에 부합되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축제가 고스란히 녹아져 있었던 작업이었구나.
그러다 보니까 그들에겐 늘 희망의 대상(돌하르방)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거죠.

?

자막 :
제주도의 의미가 담겨 있는 문화적 아이콘, 제주도민에 희망의 석상, 돌하르방 돌하르방은 제주를 지켰고, 지키고 있고,
앞으로 지켜나갈 수호신이다.

?

내레이션 :
제주의 전통의 의미를 담은 문화적 아이콘, 돌하르방 과거 제주는 벼농사, 작물 수확이 어려웠던 변방지 이자 유배지 였다. 사방이 바다로 막힌 제주 땅을 벗어나고픈 제주도민의 불안한 심리를 위로 받고자 만들어진 희망의 석상. 돌하르방은 제주도민의 희망이었고, 앞으로도 희망을 가져다 줄 아름다운 제주의 수호신이다.

한국문화정보원이 창작한 [한국문화100]제주의 희망의 석상, 돌하르방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4유형: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제4유형

공감댓글

댓글쓰기 (0 / 140)

전체 0

관련기관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