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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삐딴 리

작품명
꺼삐딴 리
저자
전광용(全光鏞)
구분
1960년대
작품소개
개요 1962년 7월 <사상계>에 발표된 단편소설로서 제7회 동인문학상 수상작이다. 이 작품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해방기를 거쳐 1950년대에 이르기까지 권력에 아부하며 출세에 연연해 살아온 한 상류층 의사를 주인공으로 삼아 격동의 현실 속에서 살아남아 일신의 안위를 챙겨온 한 상류층 인물의 삶을 풍자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주인공 이인국 박사는 과거의 추악한 삶의 방식을 확인하고 현재의 타락한 삶을 비판하기 위해 채택된 인물이다. 권력집단에 따라서 일본어와 러시아어를 익히고, 다시 영어에 매달리는 그의 삶은 권력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과 함께 자신을 감추어 온 기회주의적인 변신을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내용 주인공 이인국 박사는 일제 식민지시대에 제국대학에서 명예의 시계를 탄 수재로서 평양에서 개업하여, 일본인과의 교제를 넓게 트고 사는 철저한 친일파이다. 그는 광복 직후 소련군이 평양에 진군한 후에 친일파라는 죄목으로 체포되어 감방에 갇히게 된다. 감방 안에서 그는 일제 식민지시대 고등계 형사로부터 얻어들은 지식을 십분 발휘하여 철저하게 묵비권을 행사하고, 출감한 학생이 내던지고 간 노어회화책을 꼼꼼히 뒤지며 러시아말을 익힌다. 새로운 지배자에게 접근하기 위해서는 그 말부터 습득하는 것이 자기를 보신하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을 터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소련군 스텐코프 소좌의 혹 수술을 성공리에 끝내고 풀려나와, 그의 아들을 소련 유학까지 시키게 된다. 그 후 1·4후퇴 때 서울로 오게 된 그는 가난한 사람은 진찰하기조차 꺼려하는 의사가 된다. 그리고 미 국무성 초청케이스를 할당받기 위해 대사관 직원 브라운 씨에게 고려청자를 선물한다.
저자
전광용(全光鏞, 1931~1988) 호는 백사(白史). 1931년 함남 북청 출생. 경성경제전문학교를 거쳐 서울대 문리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였고, 이후 동대학원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서울대학교 교수를 역임하였다. 1939년 1월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화부문에 <별나라 공주와 토끼>가 당선되었으며, 1947년 정한모(鄭漢模)정한숙(鄭漢淑) 등과 함께 <시탑>, <주막> 동인으로 활동하였지만, 본격적인 작품활동은 195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흑산도>가 당선된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흑산도>는 서해의 고도 흑산도에 대한 학술조사 기행의 체험을 바탕으로 이 섬에 운명적으로 매달려 있는 어민들의 생태를 그린 작품이다. 초기작품 가운데 <동혈인간>(1956), <지층>(1958), <해도초>(1958), <G.M.C>(1959), <사수>(1959), <크라운장>(1959) 등 단편소설이 있다. 이 시기의 작품들은 전후 현실의 모순과 어두운 인간의 삶을 치밀하게 묘사해 내고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며, 1959년에 발간된 단편집 <흑산도>에 함께 수록되었다.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충매화>(1960), <초혼곡>(1960), <면허장>(1962), <곽서방>(1962), <꺼삐딴 리>(1962), <죽음의 자세>(1963), <모르모트의 반응>(1964), <세끼미>(1965) 등의 단편소설과 함께 장편소설 <태백산맥>(1963), <나신>(1963), <젊은 소용돌이>(1966), <창과 벽>(1967) 등을 잇달아 발표하였다. 소설 <꺼삐딴 리>는 일제 식민지시대, 광복,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적 격동기를 겪으면서 자기 일신만을 위한 처세술로써 위기를 넘겨온 주인공을 통해 민족의 수난사를 풍자적으로 부각시키고 있으며, 장편소설 <나신>은 전후 현실의 인간 세태를 그려낸 작품이며, <젊은 소용돌이>는 419혁명의 과정을 통해 혼란기를 극복해 가는 젊은 세대의 의지를 그려 놓고 있다. <창과 벽>은 이 시기의 사회적 관심사였던 지식인의 현실참여 문제를 중심으로, 물질적인 유혹과 허명에 매달린 대학교수의 허위의식을 비판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1970년대에는 북한에 두고 온 고향과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을 자전적 소설 형식으로 표백한 단편 <목단강행 열차>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국문학자로서 한국 신문학 형성기의 신소설을 문학사 연구의 차원에서 폭넓게 점검하고 있는 <신소설 연구>로 <사상계> 논문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한국 현대소설에 관한 논문 30여 편을 남겼고, 1986년에는 <신소설 연구>, <한국 현대문학 논고> 등 두 권의 저서를 발간하였다.
리뷰
(……) 흔히 전광용을 전후작가로 분류하지만 그의 문학세계는 통념적인 의미에서 전후작가와 구별된다. 장용학, 김성한, 손창섭 등 전쟁 전부터 문학활동을 시작한 작가들이 전후에 전쟁의 참화, 전쟁으로 인한 심리적 상처에 집착해서 전쟁의 피해를 작품을 통해 진하게 노출시키려 했다면, 전광용은 비교적 전쟁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전후의 한국사회의 단면을 객관적으로 표출시키려고 했다. 1955년 36세의 늦은 나이에 <흑산도>로 등단한 그는 앞서 열거한 작가들과 비슷하거나 더 많은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과는 다른 작품적 성격을 보였던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전광용은 전후 신세대 작가에 속하는 작가이다. 전쟁의 쓰라림을 겪지 않은 바 아니고 누구보다도 전쟁의 처참함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전쟁의 체험을 주관적으로 형상화하는 작업에서 벗어나 전쟁 이후의 한국 사회의 면모를 다각적으로 고찰하려고 했던 점이 전후작가 중 구세대에 속하는 작가들과 구별되는 점이다. (……) <꺼삐딴 리>의 이인국 박사는 우리의 근대사가 빚어 낸 카멜레온적 인간상의 한 전형이다. 일제 때 친일을 하고 해방 이후의 북한에서는 친일파로 몰려 곤욕을 치르면서도 소련군 장교의 환심을 극적으로 획득해서 친소적 행동을 벌이고 이남에 내려와서는 다시 미국에 편향하는 행태를 작출하는 해바라기성 인물의 전형적 표상이다. 이런 인물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고 그런 인물의 이야기를 소설화하기도 쉬울 터인데, 소설화의 예를 쉽사리 찾아볼 수 없는 것은 이 작품의 이인국이라는 인물이 너무나 잘 설정되어 있어 그 인물을 뛰어넘을 만큼 인물묘사를 하기 어렵기 때문인지 모른다. 문학적으로 뛰어난 전례에 대한 새로운 도전은 그만큼 어려운 법이다. 이 작품은 구성의 수법으로 플래시백의 기법을 일관되게 사용하고 있다. 현재에서 과거로 과거에서 소위 대과거로 시간을 역행시키고 다시 이것을 현재와 비교, 대조시켜 사건전개의 현실적 의미를 우려내는 기법이 구사되어 있다. 스토리의 평면적 전개는 이인국의 파란 많은 생애와 어울리지 않고 과거와 현재의 영욕을 뒤엉키게 하기 위해서는 플롯의 다단계적 설계가 불가피했던 것이다. 그의 생애사적 굴곡과 플롯의 굴곡을 서로 맞아떨어지게 소설을 설계했다는 것이 이 작품의 빛나는 대목이다. 이 작품은 실제 모델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함흥, 평양, 경성 축구 경기전에서 함흥측의 강력한 후원자 역할을 했던 외과의사 김 아무개가 모델로 지목되고 있는데, 모델이 있든 없든 이인국 박사는 한국 문학의 인명사전에 버젓이 올라갈, 세상에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보다 더 유명하고 앞으로도 계속 주목받을 인물이다. 이러한 이인국 박사의 세계관은 그의 독백을 빌린다면 이렇게 정리된다. ‘흥, 그 사마귀 같은 일본놈들 틈에서도 살았고 닥싸귀 같은 로스케 속에서도 살았는데, 양키라고 다를까……. 혁명이 일겠으면 일구, 나라가 바뀌겠으면 바뀌구, 아직 이 이인국의 살 구멍은 막히지 않았다. 나보다 얼마든지 날뛰던 놈들도 있는데, 나쯤이야…….’ (<꺼삐딴 리> 중에서) 한국에서도 일류라는 외과의사의 독백, 일제시대에 제국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해 월산 17석의 회중시계까지 상으로 받은 지식인의 넋두리치고는 너무나 유치하고 무식하게 여겨진다. 일제 식민지 치하를 거친 한국인이 나라가 바뀌겠으면 바뀌라고 아무리 혼잣말이지만 거리낌없이 뇌까릴 수 있다는 사실에 몸서리치게 된다. 지조를 가지고 꿋꿋이 살아가는 지사의 삶은 본받지 않고 자기보다 더 날뛰는 인간만 의식하는 한심한 인간성이 이러한 독백에서 그대로 노출된다. 이런 인간이 자기 딸이 미국인과 결혼하게 되었다고 그것을 막아 보겠다고 미국으로 건너가려 한다. ‘흰둥이 외손자’는 생각만해도 징그럽다는 것이다. 작가 전광용은 이렇게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국가도 문제삼지 않는 인간이 우리 주변에 우리와 더불어 살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일깨움으로써 근대사의 멍에와 상처를 재삼 확인한다. 전광용은 대학교수를 겸업하는 소설가로서 자신의 주변 이야기의 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제재의 세계를 확장하고, 이것을 전통주의적 소설기법의 가장 세련된 형태로 구성하여 소설미학의 완성된 형식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실향민 출신의 소설가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망향의 서러움을 애써 감추면서 현실세계의 모순과 비리를 소설을 통해 면밀하게 점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자신의 안고수비(眼高手卑)를 탓한다. 이 말은 대학에서 문학이론을 가르치는 교수로서의 안목이 자신이 쓰는 소설의 기법보다 높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자신의 작품에 대해 가장 혹독한 비평가였던 작가의 엄격한 태도와 연결되는 말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양적으로는, 그와 같이 출발한 작가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적지만 그 많지 않은 작품이 아직도 작품의 가치가 발산하는 광망을 잃지 않고 있는 것도 작가의 작품을 대하는 엄격하고도 엄정한 태도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사회를 대하는 작가의 엄정한 시선과 작품을 대하는 작가 자신의 엄격한 태도가 서로 맞물려서 인고의 창작과정을 거쳐 태어난 산물이 전광용의 작품이다. ‘사회와 작품을 대하는 엄격성’, 전영태, <꺼삐딴 리, 전황당인보기 外>, 전광용·정한숙, 동아출판사, 1995
작가의 말
첫 단편집 <흑산도> 출간 이후에 발표된 작품 속에서 추려 제2창작집 <꺼삐딴 리>를 엮었다. <충매화>는 인공수정이 처음으로 화제에 오르던 시기에, 그에 따르는 모럴에 대한 내 나름의 생각을 바탕으로 한 것이며, <남궁박사>는 5·16 군사 혁명 직후, 대학 교수의 정년이 65세에서 60세로 내려옴에 따라, 예기치 않았던 시기에 일시에 원로 교수들이 본의 아니게 대량 축출되던 때, 그 퇴임식 장에서의 충격이 착상의 계기가 되었고, <꺼삐딴 리>는 8·15 직후부터 줄곧 머리 속에 감돌던 소재가 십수 년 만에 가락이 잡혀 완성된 것으로, 작중 인물에 대한 모델 실재설이 분분하던 작품이며, 또한 동인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곽서방>은 농촌과 도시의 자매결연이 유행처럼 붐을 이룰 때, 다도해의 조그마한 섬, 경도의 현지 답사에서 취재한 것이며, <바닷가에서>는 여름 방학 때 원고지를 한 짐 지고 한 달 계획으로 동해안을 찾아갔다가, 끝내 한 장도 완성치 못하고 허탕으로 돌아오던 때의 바닷가 인상기 같은 것이고, <모르모트의 반응>은 집의 막내둥이가 실지로 당한 의외의 봉변에서 얻어진 낙수첩이다. <초혼곡>은 친구의 체험담에서 실마리를 잡았고, <면허장> 및 <제3자>는 각각 주변에서 일어났던 일들에서 힌트를 얻은 소품들이다. 이들 작품을 쓸 시기에는, 나는 비교적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했었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서서는 거의 침묵일로의 공허한 분진 상태에 있다. 이번 이 변변치 않은 작품들을 한데 묶어 정리하는 소이연은 나의 그러한 나태 중의 하나의 자극제라도 되었으면 하는 자책의 발로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주어진 외적 조건이나 자신의 내적 의식으로나 작품 쓰기는 더욱더 어려워지기만 하니, 굳이 이런 것을 변명의 방패로 삼으려는 생각은 없지만, 아무튼 딱한 노릇임엔 틀림없는 것 같다. 그래도 이제부터 참말 써야 할 텐데……. ‘후기’, 전광용, <꺼삐딴 리>, 을유문화사, 1975
연계정보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편,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꺼삐딴 리, 전황당인보기 外>, 전광용·정한숙, 동아출판사, 1995 <문학의 존재영역>, 김만수, 세계사, 1994 <한국현대작가연구>, 권영민, 문학사상사,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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