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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시화(東人詩話)

문헌명
동인시화(東人詩話)
저자
서거정(徐居正)
개요
조선 성종 때 서거정(徐居正) 편저(編著)의 2권 1책의 시화집(詩話集). 1474년(성종 5) 간행되었으며, 1639년(인조 17) 이필영(李必榮)이 중간하였다. 신라에서 조선 초까지 시인들의 시를 품평(品評)하고 있다.
저자
서거정(1420∼1488)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달성(達成). 자는 강중(剛中)·자원(子元), 호는 사가정(四佳亭) 혹은 정정정(亭亭亭). 시호는 문충(文忠). 조수(趙須)·유방선(柳方善) 등에게 배웠으며, 학문이 매우 넓어 천문(天文)·지리(地理)·의약(醫藥)·복서(卜筮)·성명(性命)·풍수(風水)에까지 관통하였다. 문장에 일가를 이루고, 특히 시(詩)에 능하였다. 1438년(세종 20) 생원·진사 양시에 합격하고, 1444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 사재감직장(司宰監直長)에 제수되었다. 그 뒤 집현전박사·경연사경(經筵司經)·홍문관부수찬(弘文館副修撰)·지제교겸세자우정자(知製敎兼世子右正字) 등을 거쳐 1470년(성종 1) 좌참찬이 되었고, 1471년 순성명량좌리공신(純誠明亮佐理功臣) 3등에 녹훈되고 달성군(達城君)에 봉해졌다. 일찍이 조맹부(趙孟琅)의 <적벽부(赤壁賦)>글자를 모아 칠언절구 16수를 지었는데, 매우 청려해 세조가 이를 보고 감탄했다 한다. 1460년 사은사(謝恩使)로 중국에 갔을 때 통주관(通州館)에서 안남사신(安南使臣)과 시재(詩才)를 겨루어 탄복을 받았으며, 요동인 구제(丘霽)는 그의 초고를 보고 감탄했다 한다. 1467년 형조판서로 예문관대제학·성균관지사를 겸해 문형(文衡)을 관장했으며, 국가의 전책(典冊)과 사명(詞命)이 모두 그의 손에서 나왔다. 1476년 원접사(遠接使)가 되어 중국사신을 맞이했는데, 수창(酬唱: 시로써 서로의 마음을 문답함)을 잘해 기재(奇才)라는 칭송을 받았다. 조선 초기 세종에서 성종 대까지 문병(文柄)을 장악했던 핵심적 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그의 학풍과 사상은 이른바 15세기 관학(官學)의 분위기를 대변하는 동시에 정치적으로는 훈신(勳臣)의 입장을 반영한다. 그의 한문학에 대한 입장은 <동문선>에 잘 나타나 있는데, 그는 우리나라 한문학의 독자성을 내세우면서 우리나라 역대 한문학의 정수를 모은 <동문선>을 편찬하였다. 그리고 <삼국사절요>·<동국여지승람>·<동국통감>에 실린 그의 서문과 <필원잡기>에 실린 내용을 통해 그의 역사의식을 알 수 있는데, <삼국사절요>의 서문에서는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의 세력이 서로 대등하다는 이른바 삼국균적(三國均敵)을 내세우고 있다. <동국여지승람>의 서문에서는 우리나라가 단군(檀君)이 처음 나라를 세우고, 기자(箕子)가 봉토를 받은 이래로 삼국·고려시대에 넓은 강역을 차지했음을 자랑하고 있다. <동국여지승람>은 이러한 영토에 대한 자부심과 역사 전통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중국의 <방여승람(方輿勝覽)>이나 <대명일통지(大明一統志)>와 맞먹는 우리나라의 독자적 지리지로서 편찬된 것이다. 저술로는 시문집 <사가집(四佳集)>, 공동 찬집으로 <동국통감>·<동국여지승람>·<동문선>·<경국대전>·<연주시격언해(聯珠詩格言解)>, 개인 저술로 <역대연표(歷代年表)>·<동인시화(東人詩話)>·<태평한화골계전(太平閑話滑稽傳)>·<필원잡기>·<동인시문(東人詩文)> 등이 있다.
내용과 특징
<동인시화(東人詩話)>는 1474년(성종 5)에 서거정(徐居正)이 지은 상하 2권 2책의 시화집(詩話集)으로 목판본(慶州府重刊, 1664)·활자본(朝鮮古書刊行會, 1921)·필사본 등이 전한다. 이외에 <동인시화>는 1980년 경문사(景文社)에서 1책으로 영인하고 간행하였다. 1474년에 쓴 강희맹(姜希孟)의 서를 비롯하여 최숙정(崔淑精)의 서와 김수온(金守溫)의 서동인시화후(書東人詩話後), 이필영(李必榮)의 발(跋)이 수록되어 있다. 후미에 ‘경주부중간’이라는 간기가 있다. <동인시화>는 143편으로 되어 있다. 신라의 최치원·박인범에서부터 고려의 박인량·이규보·최해·이제현·이숭인·이인로·정지상·진화 등, 조선 초기로는 권근·최항·변계량 등의 주로 우리나라의 시와 시인을 중심으로 엮었다. 최초의 순수시화집으로서 문학사적인 가치가 크다. 강희맹은 <동인시화> 서문에서 “문사의 아름다움만 취했을 뿐만 아니라 세교(世敎) 유지를 근본으로 삼았으니 그 노력이 대단하다.”라고 하였다. 그는 <동인시화>의 대의가 ‘세교’임을 지적하고 있다. 또한 글은 도(道)를 담고 있어야 한다는 문학관과 또 문학사적인 기술도 간결하게 들어 있다. 용사(用事)에 대한 언급도 많이 보인다. 특히 용사의 종류를 뜻을 그대로 사용하는 직용(直用)과 뜻을 반대로 사용하는 반용(反用)으로 분류하였다. <동인시화>의 시의 품평에 있어서는 비교문학적인 방법으로 중국의 작품과 비교하였다. 그리고 우리의 작품이 중국에 못지않다는 탈모화사상(脫慕華思想)의 태도를 많은 곳에서 발견하게 된다. 최치원·박인범·박인량·이규보 등의 작품이 뛰어나다고 하면서, 당·송의 작품과 견주어 하나도 손색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비평의 기준으로서는 기상(氣像)에 역점을 두었다. 용사(用事: 한시를 지을 때에 옛날의 뛰어난 글들에서 표현을 이끌어 쓰는 일)에 있어서는 반드시 출처가 분명하여야 하며 흔적이 없이 이루어져야 좋은 작품으로 선정하였다. 솜씨가 서툴고 답습한 작품은 ‘지붕 밑의 집(屋下架屋)’이라고 최하위의 작품으로 처리하였다. <동인시화>는 선인(先人)의 시문의 격식을 취하여 따로 더 새로운 기축(機軸)을 열어 고인의 작의(作意)보다 훌륭하게 짓는 것을 점화(點化) 또는 장점(粧點)이라 하고, 구체적으로 작품을 예시하였다. 그리고 번안법(飜案法)이라는 새로운 시작법을 제시하였다. 대구(對句)나 시어의 의미를 분석하였고, 이밖에 요체(拗體)·악부(樂府)의 특성과 압운(押韻)의 자율성 등 시의 수사적인 면도 다루었다. 시인들이 자신의 시에 대하여 지나치게 자부하고 있음을 통렬히 논박하였다. 조선에 들어와서 한동안 시화집이 없다가 서거정에 의해서 전문적인 시화집이 나왔다는 것은 우리의 비평사를 위하여 큰 수확이다. 또한 그 체재가 엄정하고 정확하다. 기(氣)를 중심으로 한 문기론(文氣論)과 용사론(用事論)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서거정의 비평가 내지는 문학연구자로서의 혜안이 빛나고 있는 조선의 비평문학의 장을 열어준 시화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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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선(東文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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