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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앙정가(俛仰亭歌)

작품명
면앙정가(俛仰亭歌)
저자
송순(宋純)
장르
가사
작품소개
조선 중기에 송순(宋純)이 지은 가사. 2음보 1구로 계산하여 전체 145구이며, 음수율은 3·4조, 4·4조, 3·3조, 4·2조, 3·5조 등 다양하다. 필사본 <잡가(雜歌)>에 국문가사가 전한다. 작자의 문집인 <면앙집(潭仰集)>에는 한역가가 실려 있으며, ‘무등곡(無等曲)’이라고도 한다.
저자
송순(宋純, 1493~1582) 면앙정가단(俛仰亭歌檀)의 창설자이며 강호가도(江湖歌道)의 선구자. 자는 수초(遂初·守初)· 성지(誠之), 호는 기촌(企村)·면앙정. 명문 양반가 출신으로 21세에 박상에게서, 26세 때는 송세림에게서 배웠다. 1519년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권지부정자가 되었다. 이후 사간원 정언, 홍문관 직제학, 사간원 대사간을 거쳐 전주부윤, 나주목사 등을 지냈고 77세에 한성부윤, 의정부 우참찬 겸 춘추관사를 끝으로 벼슬을 사양하고 향리로 물러났다. 송순이 살았던 시대는 4대 사화(四大士禍)가 일어나는 등 혼란한 때였으나, 50여 년의 벼슬살이 동안 그는 단 한번 1년 정도의 귀양살이만 할 정도로 관운이 좋았다. 이것은 그가 인품이 뛰어났으며 성격이 너그럽고 의리가 있었으며 사람을 가리지 않고 고루 사귀는 등의 이유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성격으로 인해 “온 세상의 선비가 모두 송순의 문하로 모여들었다(성수침)”, “하늘이 낸 완인(完人)(이황)”이라고 표현될 정도로 당대의 대표적 인사들과 친교를 유지했다. 교우로 신광한·성수침·이황·박우·정만종·송세형 등과 문하인사로 김인후·기대승·고경명·정철·임제 등이 있다. 그는 호남 출신이지만 영남 사림의 학통을 이어받은 박상·박우 형제의 영향을 받았으며, 선산부사로 재직할 때 그곳의 사람들과 교유하는 등, 학문적인 면은 사림파에 가까웠다고 한다. 또한 음률에 밝아 가야금을 잘 탔고 풍류를 아는 호기로운 재상으로 알려져 있다. 1533년에 김안로가 권세를 잡자 귀향하여 면앙정을 짓고 시를 읊으며 지냈는데, 이때부터 임제·김인후·고경명·임억령 등과 교유하며 면앙정가단을 형성했다. 작품으로 가사 <면앙정가>를 비롯하여 시조 22수와 한시 520여 수가 남아 있는데, 가사 <면앙정가>, 시조 <면앙정단가>와 같은 작품은 면앙정 주변의 빼어난 경치와 그곳에서 유유자적하며 내면의 심정을 수양하는 내용을 노래한 것으로, 강호가도의 선구적 모습을 보여주었다. 또 그의 시조 <오륜가> 5수는 주세붕의 <오륜가>와 함께 후에 정철의 훈민가류 시조에 영향을 주었다. 담양 구산사(龜山祠)에 배향되었으며, 문집으로 <면앙집>이 있다.
현대어풀이
무등산 한 줄기 산이 동쪽으로 뻗어 있어, 멀리 떼어 버리고 나와 제월봉이 되었거늘, 끝 없는 넓은 들에 무슨 생각을 하느라고, 일곱 굽이가 한데 움츠리어 우뚝우뚝 벌여 놓은 듯, 그 가운데 굽이는 구멍에 든 늙은 용이 선잠을 막 깨어 머리를 얹혀 놓은 듯하며, 넓고 편편한 바위 위에 소나무와 대나무를 헤치고 정자를 앉혀 놓았으니, 마치 구름을 탄 푸른 학이 천 리를 가려고 두 날개를 벌린 듯하다. 옥천산, 용천산에서 내리는 물이 정자 앞 넓은 들에 끊임없이 퍼져 있으니, 넓거든 길지나 말거나, 푸르거든 희지나 말거나, 쌍룡이 몸을 뒤트는 듯, 긴 비단을 가득하게 펼쳐 놓은 듯, 어디를 가려고 무슨 일이 바빠서 달려가는 듯, 따라가는 듯 밤낮으로 흐르는 듯하다. 물 따라 벌여 있는 물가의 모래밭은 눈같이 하얗게 펴졌는데, 어지러운 기러기는 무엇을 통정(通情)하려고 앉았다가 내렸다가, 모였다 흩어졌다 하며 갈대꽃을 사이에 두고 울면서 서로 따라 다니는고? 넓은 길 밖, 긴 하늘 아래 두르고 꽂은 것은 산인가, 병풍인가, 그림인가, 아닌가. 높은 듯 낮은 듯, 끊어지는 듯 잇는 듯, 숨기도 하고 보이기도 하며, 가기도 하고 머물기도 하며, 어지러운 가운데 유명한 체하여 하늘도 두려워하지 않고 우뚝 선 것이 추월산 머리 삼고, 용구산, 몽선산, 불대산, 어등산, 용진산, 금성산이 허공에 벌어져 있는데, 멀리 가까이 푸른 언덕에 머문 것도 많기도 많구나. 흰 구름과 뿌연 안개와 노을, 푸른 것은 산 아지랑이다. 수많은 바위와 골짜기를 제 집을 삼아 두고, 나며 들며 아양도 떠는구나. 오르기도 하며 내리기도 하며 넓고 먼 하늘에 떠나기도 하고 넓은 들판으로 건너가기도 하여, 푸르락 붉으락, 옅으락 짙으락 석양에 지는 해와 섞이어 보슬비마저 뿌리는구나. 뚜껑 없는 가마를 재촉해 타고 소나무 아래 굽은 길로 오며 가며 하는 때에, 푸른 들에서 지저귀는 꾀꼬리는 흥에 겨워 아양을 떠는구나. 나무 사이가 가득하여 녹음이 엉긴 때에 긴 난간에서 긴 졸음을 내어 펴니, 물 위의 서늘한 바람이야 그칠 줄 모르는구나. 된서리 걷힌 후에 산빛이 수놓은 비단 물결 같구나. 누렇게 익은 곡식은 또 어찌 넓은 들에 퍼져 있는고? 고기잡이를 하며 부는 피리도 흥을 이기지 못하여 달을 따라 부는 것인가? 초목이 다 떨어진 후에 강과 산이 묻혀 있거늘 조물주가 야단스러워 얼음과 눈으로 자연을 꾸며 내니, 경궁요대(瓊宮瑤臺)와 옥해은산(玉海銀山) 같은 눈에 덮힌 아름다운 대자연이 눈 아래 펼쳐 있구나. 자연도 풍성하구나 가는 곳마다 아름다운 경치로다. 인간 세상을 떠나와도 내 몸이 한가로울 겨를이 없다. 이것도 보려 하고, 저것도 들으려 하고, 바람도 쏘이려 하고, 달도 맞으려고 하니, 밤은 언제 줍고 고기는 언제 낚으며, 사립문은 누가 닫고 떨어진 꽃은 누가 쓸 것인가? 아침나절 시간이 부족한데 저녁이라고 싫을소냐? 오늘도 시간이 부족한데 내일이라고 넉넉하랴? 이 산에 앉아 보고 저 산에 걸어 보니 번거로운 마음이면서도 아름다운 자연은 버릴 것이 전혀 없다. 쉴 사이가 없는데 길이나마 전할 틈이 있으랴. 다만 하나의 푸른 명아주 지팡이가 다 못 쓰게 되어 가는구나. 술이 익었거니 벗이 없을 것인가. 노래를 부르게 하며, 악기를 타게 하고, 악기를 끌어당기게 하며, 흔들고 온갖 아름다운 소리로 취흥을 재촉하니, 근심이라 있으며 시름이라 붙었으랴. 누웠다가 앉았다가 구부렸다 젖혔다가, 시를 읊었다가 휘파람을 불었다가 하며 마음놓고 노니, 천지도 넓고 넓으며 세월도 한가하다. 복희씨의 태평성대를 모르고 지내더니 이 때야말로 그것이로구나. 신선이 어떻던가 이 몸이야말로 그것이로구나. 강산풍월(江山風月) 거느리고 내 평생을 다 누리면 악양루 위에 이백이 살아온다 한들 넓고 끝없는 정다운 회포야말로 이보다 더할 것인가. 이 몸이 이렇게 지내는 것도 역시 임금의 은혜이시도다.
해설
이 작품은 작자 송순이 관직에서 잠시 물러나 그의 향리(鄕里)인 전라도 담양 기촌(企村)에 머물러 있을 때, 그곳 제월봉(霽月峰) 아래에 면앙정을 짓고 그 주변 산수 경개와 계절에 따른 아름다운 모습을 감상하며 즐긴 것을 노래한 가사이다. 내용은 6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단은 서사(序詞)로서, 무등산 일맥(一脈)이 동쪽에서 뻗어와 면앙정이 위치한 제월봉을 이루었다는 것을 노래하였다. 제2단은 면앙정 주변 경개의 수려함에 감탄하여 칭송한 것이다. 특히 칠곡(七曲)의 기묘함과 정자 앞에 펼쳐지는 긴 내와 너른 전야(田野)의 유연한 경관을 노래하였다. 제3단은 면앙정에서의 조망(眺望) 풍경을 그린 것으로, 추월산(秋月山)을 두산(頭山)으로 하여 용구산(龍龜山)·몽선산(夢仙山)·불대산(佛臺山) 등 여러 산봉우리가 우뚝 솟은 장관과 이어서 천암만학(千巖萬壑)을 집 삼아 유유히 떠다니는 흰 구름, 안개노을의 조용하고 한가로운 모습을 탄미하였다. 제4단은 사시경물(四時景物)을 노래한 것이다. 봄철의 푸른 버드나무 숲 속 꾀꼬리의 교태 겨운 울음소리, 여름철의 백척난간에 불어오는 훈훈한 바람과 긴 낮잠, 가을철 온 산을 물들인 영롱한 단풍과 흥겨운 어부의 피리소리, 겨울철의 빙설(氷雪)로 치장한 경궁요대(瓊宮瑤臺)와 옥해은산(玉海銀山)의 아름다운 경치를 탄미하였다. 제5단은 취흥자득(醉興自得)하는 흥취를 노래하였는데, 거문고를 타며 풍류삼매(風流三昧)에 든 경지가 신선과 방불함을 그렸다. 제6단은 결사로서 강산풍월(江山風月)을 거느리고 소요자적하는 생활이 악양루(岳陽樓) 위의 이백(李白)이 부럽지 않다고 자랑하며, 이것이 모두 임금의 은혜라고 노래하였다 자연탄상(自然歎賞)을 주제로 한 이 작품은 전래의 풍류미를 선양한 격조 높은 가풍을 보인다. 동시에 구성 체재와 표현형식이 완성도가 높다. 특히 시어의 선택에 있어 자유자재의 고유어 구사능력과 말을 섞는 기발한 솜씨, 조어(造語)의 공교(工巧)함, 그리고 이에 따른 절실한 정감 등은 가사문학 중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이수광(李邈光)의 <지봉유설(芝峰類說)>을 비롯하여 심수경(沈守慶)의 <견한잡록(遣閑雜錄)>, 홍만종(洪萬宗)의 <순오지(旬五志)>, 어숙권(魚叔權)의 <패관잡기(稗官雜記)> 등에서도 이 작품을 한결같이 높이 평가하였다. 즉, 내용적으로는 면앙정 주변의 산수의 아름다움과 이를 감상하는 즐거움, 그리고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유감없이 표현하였고, 형식적으로는 어사(語辭)가 청완(淸婉)하고 유창(流暢)하다고 칭찬하였다. 이 작품은 작자가 41, 42세 때인 1533년 경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창작연대에 관해서는 송순의 만년설과 40대설 두 가지가 있다. 그러나 송순의 행적에 기록된 면앙정 창건시기가 1533년이라는 점과 면앙정 창축 후 읊었다는 <면앙정삼언가(潭仰亭三言歌)>의 가의(歌意)가 <면앙정가>의 그것과 서로 통하는 것으로 보아 40대설에 더 신빙성을 두고 있다. 명칭에 대해서도 <면앙정가>와 <무등곡>을 같은 작품으로 보는 견해와 별개의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면앙집> 권7 <면앙정잡록> 중 이안눌(李安訥)의 시주(詩注)에 <무등곡>은 <면앙정장가>를 지칭하는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어, 두 개가 같은 노래임을 알 수 있다. <면앙정가>는 정극인(丁克仁)의 <상춘곡(賞春曲)>과 더불어 호남 가사문학의 원류가 될 뿐 아니라, 그 내용·형식·가풍(歌風) 등은 정철(鄭澈)의 <성산별곡(星山別曲)>에 직접 영향을 미치고 있어 가사문학의 계보 연구에 필수적인 자료가 되고 있다.
연계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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