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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李御寧)

예술가명
이어령(李御寧)
전공
평론
개요
이어령은 <화전민 지역>, <신화 없는 민족> <카타르시스 문학론>, <해학의 미적 범주>, <작가의 현실참여> 등의 평론을 통해 우리 문학의 불모지적 상황에서 새로운 터전을 닦아야 할 것을 주장했으며, 이데올로기와 독재 체제의 금제에 맞서 문학이 저항적 기능을 수행해야 함을 역설한 평론가이다. 김동리와 ‘작품의 실존성’ 문제로 논쟁을 벌이기도 했고, 조연현과 ‘전통논쟁’도 펼쳤다. 그 외에도 <속 나르시스의 학살>, <실존주의 문학의 길>, <이상 소설과 기교>, <소설산고>, <현대소설의 반성과 모색>, <한국소설의 맹점>, <사시안의 비평>, <문학과 역사적 사건>, <현대의 문학이론> 등이 대표적인 평론들이다. 한편, 소설 창작에도 관심을 기울여 <장군의 수염>, <무익조>, <암살자>, <전쟁 데카메론>, <환각의 다리> 등을 발표하였다. - 참고 :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편, 누리미디어, 2002 <한국현대문학작은사전>, 가람기획편집부, 가람기획, 2000
생애
충남 아산에서 출생한 이어령은 부여고교를 거쳐 1956년 서울대 국문과를 졸업하였으며 1959년에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55년 서울대 <문리대학보>에 <이상론>을 발표하여 신진 평론가로서 가능성을 보였고, 1956년 한국일보에 발표한 <우상의 파괴>를 통해 문단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같은 해 <문학예술>에 <현대시의 환위와 한계>, <비유법 논고>를 통해 정식 등단하였다. 당대의 비평가 김춘수, 고석규, 이철범 등과 함께 현대평론가협회 동인으로 활약했으며 전후세대 비평가로서 큰 활약을 했다. 경기고교 교사, 단국대 전임강사, 이화여대 교수를 역임했으며, <문학사상> 주간과 문화부 장관을 지내기도 했다.
약력
1934년 충남 아산 출생 1956년 서울대 국문과 졸업 / 한국일보에 <우상의 파괴>로 등단 1958년 경기고등학교 교사 1959년 서울대 국문과 대학원 졸업 1960년 단국대 전임강사 1960년 서울신문 논설위원 1960년 서울대 문리대 강사 1961년 한국일보 논설위원 1962년 경향신문 논설위원 1964년 경향신문사 구미지역 특파원 1965년 중앙일보 논설위원 1966년~1989년 이화여대 문리대 전임강사 · 조교수 · 부교수 · 교수 1966년 조선일보 논설위원 1972년 경향신문 파리 특파원 1981년 일본 도쿄대 비교문화연구소 객원연구원 1981년 단국대학교 대학원 국문학 박사 1987년 이화여대 기호학연구소 소장 1989년 일본국제문화연구센터 객원교수 1990년 초대 문화부 장관 1992년 올림픽기념사업추진위원회 위원 1993년 한백연구재단 자문위원 1993년 범국민독서 새물결운동추진위원회 상임고문 1994년 국제화추진위원회 위원 1994년 광복 5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위원 / 예술원 문학분야 회원 1995년 이화여대 국어국문학과 석학교수 / 조선일보 21세기 정보화포럼 위원 / 정보통신윤리위원회 위원 / 1996년 문학의해 조직위원회 위원 1997년 문화일보 제2기 편집자문위원회 위원 / 문화체육부 문화비전2000위원회 위원 / 산업디자인발전자문위원회 초대 위원장 / 제1회 문화예술지원기업대상 운영 및 선정위원회 위원 1998년 이화여대 국어국문학과 석좌교수 / 통일고문회의 통일고문 / 중앙일보 밀레니엄위원회 자문 / 2002년 월드컵조직위원회 식전문화 및 관광협의회 공동의장 / 제2건국 범국민추진위원회 상임위원장 1999년 대통령자문 새천년준비위원회 위원장 2001년 중앙일보 고문 / 이육사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 위원장 / 사이언스 북 스타트 운동 공동대표
상훈
1979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 1989년 체육훈장맹호장 1992년 일본 디자인문화상 1996년 일본 국제교류기금 대상 2001년 서울시문화상 2003년 대한민국예술원상 평론집 <저항의 문학>(1959) <지성의 오솔길>(1960) <고독한 군중>(1962) <전후문학의 새물결>(1962) <통금시대의 문학>(1966) <한국과 한국인>(1968) <한국작가전기연구>(1975) <말>(1990) <공간의 기호학>(2000) 수필집 <흙 속에 저 바람 속에>(1963) <바람이 불어오는 곳>(1965) <유형지의 아침>(1967) <이어령대표에세이집>(1980) <젊음이여 어디로 가는가>(1983) <신한국인>(1986) 소설집 <장군의 수염>(1966) <환각의 다리>(1977) <둥지 속의 날개>(1984) 기타 <이어령 전작집>(1968) <이어령 신작집>(1978) <고전을 읽는 법>(1985) <문장대백과사전>(1988)
작가의 말
그렇다. 나의 문학은 이렇게 내 실제 나이가 호적과 다르다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내 위조된 출생월일을 상석에 모셔놓은 면사무소와 학교, 은행과 병영 그리고 높은 담으로 둘러쳐져 있는 법원이나 입법자들이 모이는 회의장 여기에서 살아 남은 작은 무허가 움막집이 나의 문학이다. 이 공공건물에 낙서를 하는 것이 나의 문학이다. 공문서를 소각하는 이 범법행위- 그래서 나와 나의 친구들이 결코 출석부 같은 것으로 호명되지 않는 책상에 앉기 위해서 진정한 이름을 하나씩 지어주는 모험이 바로 나의 문학인 것이다. 모든 서류에 잘못 찍힌 나의 탄생을 바로 잡기 위해서 나에게는 탯줄의 언어가 필요했던 것이다. 내 존재의 탯줄을 지키기 위한 전략- 그것이 바로 크리스테바가 말한 “어머니 몸으로서의 언어”였는지 모른다. 말하자면 가부장적인 호적의 언어와 역행하는 신생아의 울음, 그리고 그 다음에 오는 간난 아이의 미소들. 그 언어로 매일 아침마다 황국신민이라고 외우던 국민선서 속에서 시들어 죽어가던 나의 축계화의 붉은 닭벼슬을 가꾸어 간다. 그리고 창씨개명으로 나의 이름을 훔쳐간 출석부의 검은 음모를 몰아내기 위해 굿을 벌인다. 항상 명쾌한 결론을 좋아하는 사람을 위하여 다시 되풀이하자면 호적의 나이와 실제의 나이가 일치하지 않은 이 상징적인 조건이 나의 문학적 출발점이 되었다는 점이다. 욕이든 칭찬이든 잘못 위조되어가는 나에 대해서 무엇인가 정당방위를 하는 방법은 문학뿐이었던 것이다. 인간의 존재를 왜곡하는 모든 것과 싸우기 위해서는 내가 태어나 아직 호적에 오르지 않았던 여드레 동안의 순수한 생의 성채가 있어야만 했던 것이다. 이 같은 유아 체험이 존재론적인 것으로 탐색된 것이 어렸을 때의 이미지를 탐독한 글들이고, 그것을 사회·집단적인 면에서 탐구한 것이 한국인론들이다. 나의 어떤 글 속에도 이 두 가지의 것이 핵을 이루고 있다. 그러므로 나의 문학론이라는 것도 나의 자서전이라는 것도 국민학교 문턱에도 가지 않았던 그때의 이야기 속에서 맴돌고 있다해도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이다. - ‘나의 문학적 자서전’, 이어령, <지성채집>, 나남, 1986
평론
비평가 이어령은 남다른 분석력과 논리적인 머리를 가지고 있다. 그는 대상을 포착하면 잽싸게 그것을 토막내고 예리한 눈길로 검토한 다음 재조직, 편성한다. 또한 매우 명석한 문장으로 대상을 해석, 제시한다. 아울러 그는 조리정연한 담론의 방법을 터득해낸 비평가다. 그러나 그 의식의 계보로 본다면 비평가 이어령은 아폴론적이라기보다 디오니소스적에 가깝다. 우선 그의 많은 비평들은 발상의 초동단계가 서사 또는 담론쪽이라기보다 서정적인 목가의 편이다. 그는 화강석 구조물의 틈새를 보고 그 건물의 안전을 걱정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 이전에 돌이 갈라진 틈새로 고개를 내민 민들레에 주목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어령은 머리와 함께 가슴의 사람이며 서술체계를 세우는 일과 병행해서 대상을 아끼고 사랑할 줄 아는 비평가다. 당연한 논리로 비평가 이어령은 주정적 차원에 시종하지는 않는다. 그의 발상의 다음 단계에서 반드시 그의 언어와 의식을 새 세기의 첨단 문화가 있는 차원으로 탈바꿈시킨다. 여기서 새 세기의 첨단 문화란 어느 비평가의 시각을 빌리면 현대 도시의 그것이다. 그에 따르면 목가조의 주정적인 세계는 이성이 뒷전으로 돌려진 점에서 디오니소스적인 것이다. 그러나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독주는 감상주의의 홍수를 빚어내면서 세계를 온화 식물의 계역(界域)으로 만든다. 이어령은 그 이전에 감성과 이성의 문맥화를 시도한다. 그는 대상을 향한 사랑의 눈길과 함께 파헤치고 뒤집어보기를 꾀한다. 그 다음에 그는 그들을 재조직, 편성해서 제 3의 차원을 뜻하는 예술적 구조물을 만들어낸다. 이것으로 이어령의 비평은 비평이면서 한 편의 노래를 이루고 생명력이 된다. 이어령의 비평에서 두드러진 특징으로 지적되어야 할 것이 그 날카로운 문제의식이다. 그 이전에 한국비평은 대체로 두 가지 형상을 지니고 있었다. 그 하나가 중간 여과 과정을 거치지 않고 해외비평의 이론을 수용한 경우였다. 우리 문단과 시인, 작가들이 많은 경우 그런 기준에 따라 해석, 평가되었다. 또 다른 유형의 비평은 논전 형태의 것이었다. 특히 1920년대 후반기에 성행한 카프 대 국민문학파의 논쟁과 8·15 직후에 빚어진 문학가동맹 대 청년문학가협회의 격돌이 그 좋은 보기였다. 새삼스레 밝힐 것도 없이 이때 카프나 문학가동맹이 비평의 논거로 삼은 것은 이데올로기였다. 그에 맞선 국민문학파나 청년문학가협회 역시 이데올로기를 비평의 좌표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때 문제되는 것이 외재적 진실과 문학성의 문제다. 시와 소설에는 그 자체의 진실이 있고 그 해석은 그런 각도에서 작성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데올로기나 그 밖의 사실이 표준으로 사용되는 경우 그것이 불가능해진다. 한국비평은 오랫동안 이런 사실에 맹목이었다. 등장 초기부터 이어령의 비평은 해외문학추구파의 그것이 아니었고 이념 독주, 문학 부차화의 것과 근본적으로 달랐다. 그는 우리 평단에 등장하자마자 곧 우상의 파괴를 선언했다. 그가 파괴를 시도한 우상에는 이데올로기와 외국 문학이론이 포함되어 있었다. 특히 그에 선행한 한국비평의 현상 해석에 대해서 그는 예리 그 자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칼날을 들이댔다. - ‘뒤집고 파헤치기, 새롭게 보기’, 김용직, <이어령 라이브러리: 현대인이 잃어버린 것들>, 문학사상사, 2003이어령은 산문보다 시를 지향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김동리와 유종호는 산문을 지향하고, 이와는 달리 이어령은 시를 지향하고, 따라서 그의 경우 주요한 것은 언어가 지시하는 관념이나 대상이 아니라 언어 자체다. 그는 언어 자체를 보고, 언어 자체를 보는 자신을 보고, 이때 그의 문체가 태어난다. 한마디로 시적 문체이지만 그의 글은 시가 아니라 산문이고, 이런 점에 이어령 비평의 매혹이 있다. 그의 글은 끊임없이 발전하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대체된다. 그러므로 그의 비평은 무의미로부터 발생하지만 그것이 비평이기 때문에 원전이라는 의미로부터 시라는 무의미가 발생한다. 그것은 라캉처럼 기표의 의미에서 기표의 무의미(욕망)를 찾아가는 과정이 아니라 거꾸로 기표의 무의미에서 기표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고, 이런 점에 이어령 비평의 현대성이 있다. 요컨대 그는 기표의 무의미가 아니라 기표의 의미, 소쉬르 식으로는 지시물과 관계 없는, 어떤 구체적 현실도 지시하지 않는 의미, 기호로서의 의미, 자율성, 모더니즘을 찾아가고, 그런 점에서 그 후 그는 언어 도구성이 아니라 언어 사물성을 강조한다. (……) 전위는 이어령이 말하듯 보수/진보를 초월하는 진보, 형식/내용을 초월하는 형식, 이데올로기를 초월하는 이데올로기를 지향한다. 기존 질서에 기생하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기존 질서를 부정하는, 살해하는, 부재로서의 현실을 추구한다. 그러나 김수영은 그리고 많은 참여론자들은 당시나 지금이나 이런 광의로서의 불온성이 아니라 협의로서의 불온성을 강조한다. 이어령은 보수/진보를 초월하는 진보를 주장하고 김수영은 보수/진보라는 2항 대립성 속에서의 진보를 주장한다. 이어령의 경우 정치적 자유의 문제는 창조의 조건이고 문학은 또 하나의 현실이고, 김수영의 경우 정치적 자유의 문제는 창조의 목표이고 문학은 현실적 수단이 된다. 이 논쟁을 통해 이어령이 강조한 것은 현대 문학의 현대성이다. 그것은 자율성의 개념으로 요약되고, 이런 자율성 개념은 아도르노도 말했듯이 예술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요구한다. 아도르노에 의하면 예술은 사회에 대한 반대 입장을 통해서만 사회적인 것이 된다. 이런 입장은 오직 자율적인 예술만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예술이 사회적 기능을 소유하면 그것은 예술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사회에 대한 반대 입장은 김수영이 말하는 정치적 입장이 아니라 그런 입장도 거부하는 것, 언어의 측면에서 사회는, 그리고 정치적 입장은 언어의 사용 가치, 교환 가치를 강조하지만 문학은 시는 진정한 전위 문학은 실험 문학은 모든 불온 문학은 언어의 사용 가치, 교환 가치를 부정하고, 사회를 지배하는 이런 가치를 부정함으로써 사회를 비판하고 사회에 저항하고 사회에 참여한다. 그러므로 예술의 비사회적 요소는 사회에 대한 부정이고 저항이다. 이어령이 강조하는 순수는 그러므로 순수가 아니다. 그는 순수/참여라는 2분법을 부정한다. 그가 1960년대 후반부터 강조하는 순수는 이런 의미로서의 순수이고 순수가 아니다. 나는 이런 입장을 옹호하는 입장이고, 그가 1960년대 후반부터 문학이 아니라 문단적으로 고독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의 잘못이 아니라 이동하도 말하듯이 이 시대의 잘못이고 이 문단의 잘못이다. 그러나 그의 고독이 그의 영광이다. - ‘읽히는 비평의 비밀과 매혹’, 이승훈, <이어령 라이브러리: 지성의 오솔길>, 문학사상사, 2004
관련도서
<이어령 라이브러리>, 이어령, 문학사상사, 2002~2004 <이어령 대표작품선집>, 이어령, 책세상, 1995 <지성채집(知性採集): 이어령 문학선>, 이어령, 나남,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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