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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철(白鐵)

예술가명
백철(白鐵)
전공
평론
개요
격동의 프로문학기를 거쳐 광복을 맞고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위원장을 맡기까지의 백철의 비평적 편력은 한국적인 문학정신의 구명에 중요한 비중을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어머니> 등의 시와 <전망> 등의 소설을 발표하기도 했지만, 특히 그의 비평 활동은 조선일보에 <농민문학의 문제>, <창작방법문제> 등을 발표하면서 본격화된다. <인간묘사시대>에서는 당시의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도식적 측면을 비판해 이데올로기나 계급투쟁의 도구로서보다는 인간탐구를 본령으로 하는 문학론을 폈다. 미국에 교환교수로 다녀온 후에는 <뉴크리티시즘의 제문제>, <뉴크리티시즘의 행방> 등을 발표, 이 땅에 처음으로 미국의 분석비평을 도입, 소개했다. 이후 주로 한국문학의 세계무대 진출에 역점을 둔 외국문학이론의 소개 등 계몽적 입장의 글을 발표하는 한편, 염상섭(廉想涉)·이무영(李無影)으로 대표되는 19세기 자연주의 수법의 농민소설에 대한 현대적 극복을 주장한 <신문학과 근대자연주의>, 해방 이후 소설의 변모를 일별한 <전후 15년의 한국소설>, 농민소설의 예술적 승화를 촉구한 <제재의 확대와 농촌소설> 등을 발표했다. 4·19 혁명이 일어나자 이를 한국문학의 대전환의 계기로 파악, <전환의 미학>을 발표하여 문단의 자각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후 1963년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위원장에 피임, 여러 차례 재선되는 등 문학작품의 해외소개와 국제 문학자 교류의 창구 역할을 담당한 바 있다. - 참고 :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편, 누리미디어, 2002 <한국현대문학작은사전>, 가람기획편집부 편, 가람기획, 2000
생애
평북 의주에서 출생한 백철은 한학을 공부하다가 1927년 뒤늦게 신의주고보를 졸업하였다.그 뒤, 일본 도쿄고등사범 문과를 졸업하고 1930년 <대중지광>에 <어머니>, <단장>, <무제> 등의 시를 발표했으나, 이어 1931년 <조선일보>에 평론 <농민문학문제>, <농민시인 에세닌 6주기를 제하여> 등을 발표하며 평론가로서 정식 문학활동을 시작했다. 도쿄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할 무렵, <지상낙원>, <전위시인> 등의 동인이 되었고, 1930년에는 일본 나프의 맹원이 되었다. 1932년 귀국한 그는 <개벽> 편집부장으로 있으면서 카프 중앙위원으로 활동, 해외문학파와의 논쟁에 참여했다. 1934년 제2차 카프검거사건에 연좌, 전주형무소에 수감되었는데, 이 사건은 그의 문학활동에 전향의 계기가 되었다. 1939년에 매일신보 문화부장으로 취임했으며, 1942년에는 일제의 협조 강요를 피하여 중국 화북지방 특파원으로 자원했다. 1945년 광복이 되자, 서울여자사범대 교수로 취임했으며 그 뒤 교육계에 투신, 대학강단에서 현대문학을 강의하는 한편, 다시 비평활동을 시작했다. 1948년 서울대, 이듬해 동국대 교수를 거쳐 1955년 중앙대 문리과대학 학장에 취임했다. 1957년에는 미국 예일대와 스탠포드대의 교환교수로 다녀왔고, 1963년에는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위원장에 피임, 이후 여러 차례 재임하는 동안 수차에 걸쳐 해외 작가대회에 참가하는 한편 한국작품의 해외소개에도 이바지했다.
약력
1908년 평북 의주 출생 1927년 신의주고보 졸업 1930년 일본 나프(NAPF)의 맹원으로 활동 1931년 일본 도쿄고등사범 문과 졸업 / 조선일보에 <농민문학문제>를 발표하면서 평론가로 등단 1934년 제2차 카프 검거 사건에 연루되어 전주 형무소 수감 1939년 매일신보 문화부장 1942년 매일신보 중국 화북 지방 특파원 1945년 서울여자사범대학 교수 1948년 서울대 교수 취임 1949년 동국대 교수 취임 1955년 중앙대 문리과대학 학장 취임 1957년 미국 예일대·스탠포드대 교환교수 1963년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위원장 1966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1972년 중앙대 문리과대학 학장
상훈
1971년 대한민국예술원상 1972년 국민훈장모란장 평론집 <신문학사조사>(1953) <문학개론>(1955) <국문학전사>(1957) <문학 A·B·C>(1958) <문학의 개조>(1959) <한국문학의 이론>(1964) <진리와 현실: 백철의 문학생애 그 반성과 기록>(1975) <한국신문학발달사>(1975) 수필집 <두 개의 얼굴>(1964) <인간이 서 있는 곳>(1965) <만추의 사색>(1977)
작가의 말
(……) 작가는 인간의 탐구자다! 이 사실을 가지고 우리들은 다시 먼저 논명하던 지역, 작품의 주요 대상은 인간이냐 자연이냐 하는 곳에 돌아가기로 하자! 먼저 말한 바와 같이 작품의 형상적 대상에는 인간 외에 자연, 기타의 제사물이 있으나 그 작품의 주요 지위를 결정하는 것은 언제나 인간 타입과 그 생활의 우수한 묘사에서 결정된다는 것에 틀림이 없다는 것을 나는 재차 결정하려고 한다. 결국 작품의 모든 대상, 예를 들면 자연과 인간은 작가에게서 통일되는 것인 이상 인간의 탐구자인 작가가 그의 이상과 정열을 직접으로 대변하는 인간, 그리고 다른 사물보다도 직접형식인 인간 타입에 주입하는 것은 결코 의심될 사실이 아니다. 이것은 추상의 독단은 아니다. 과거의 어떤 작품을 대하든 그 작품의 대상으로서 자연이 인간 위에 서 있는 것은 발견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 하여튼 금일의 본래의 진실한 문학에 있어 인간탐구와 그 묘사는 작품의 중심과제로서 거기에는 이 시대와 현실을 대표하고 있는 전형적 인간들의 뚜렷한 자태들이 새로운 리얼리즘의 주요한 형상 실체로서 등장될 것이 명백한 사실이다. (……) 인간은 단순히 외부적 묘사와 추상적 개발에 의하여 전형적 성격이 묘사되는 것이 아니고, 먼저 내부의 자기의 열정에 의한 적극성과 소극성이 진실하게 묘출되는 곳에 그의 진실한 출발점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내외에 충실한 인간 적극성과 창조성이 충일한 인간을 묘사, 탐구하는 곳에 새로운 작가들의 인간탐구의 도정이 있으며 그러한 인간이 적극적으로 현실에 정면하여 실천하며 행동하는 모든 복잡한 관계를 묘사, 탐입하는 곳에 새로운 인간타입을 발견하여 확립하는 창작 방법으로서의 프로문학의 진실한 능동적 리얼리즘의 태도가 있는 것이다. (……) - ‘인간탐구의 도정’, 백철, <한국의 문학비평>, 민음사, 1995
평론
(……) 백철은 1930년대 초부터 우리 문단 특히 비평계에 있어서 정력적인 활동을 줄기차게 전개해온 대표적인 비평가의 한 사람이었다. 그가 한때 황도문학(皇道文學)이라는 훼절과 배신의 오류를 범했던 사실은 두고두고 비판을 받아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그가 거센 역사의 소용돌이를 헤쳐오면서 그 나름대로 농민문학론 전개, 프로문학이론 소개와 비판, 휴머니즘론 제창 및 민족주의 문학론을 펼쳐온 과정은 그대로 이 땅 근대 문예비평사의 갈등과 고민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소평가하기만은 어렵다. 또한 그가 해방 이후 문학사 연구와 새로운 서구 문학이론의 소개에 기울여온 학구적 노력은 그의 비평사적 작업과 더불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 따라서 본고에서는 그의 타계에 즈음하여 그의 생애사·문학사적 변모과정을 다섯 시기로 나누어 개략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 먼저 첫 시기는 출생부터 일본으로 유학하여 학업을 마치기까지의 성장시기로서 시를 습작하는 등 문학수련기에 해당한다. 둘째 시기는 그가 <농민문학의 문제>라는 평론으로 문단에 나온 이래 제2차 카프 사건, 즉 ‘신건설사(新建設社)’ 사건으로 전주 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던 시기로서 주로 마르크스주의 미학이론에 근거한 비평활동을 전개한 시기이다. 셋째 시기는 출감한 이래 일종의 전향선언인 <비애(悲哀)의 성사(城舍)>를 발표하고 새로운 문학이념으로서 휴머니즘론을 제창하고 논쟁을 벌이는 등 본격적인 활동기를 말한다. 넷째 시기는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 문화부장 등을 역임하면서 황도문학에 종사하는 친일어용기로서 백철 문학사의 가장 어두운 부분에 해당한다. 다섯째는 해방 이후 민족주의 문학 진영에 속하면서 대학교수로서 문학사를 연구하고 서구 이론을 소개하는 한편 펜클럽 한국본부장 등을 역임하면서 한국문학의 국제적 교류를 전개하는 등 폭넓은 활동을 보여주는 시기이다. 이러한 구분은 여러 가지 난점, 즉 제4시기가 친일행위로만 일관하지 않고 방황과 고뇌를 보여주고 있으며, 제5시기가 하나로 묶이기에는 지나치게 복합성을 지닌다는 점에서 오는 시기구분의 불균형성 등이 지적될 수 있으나 그의 생애와 문학을 개관하는 데는 큰 무리가 없으리라고 판단된다. (……) 백철은 77년의 생애사와 50여 년간의 문학활동을 통해 이땅 근대사와 문학사의 온갖 영욕을 함께하였다. 그는 어느 면에서는 매우 성공적인 생애를 살아온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그러한 뒤안길에는 언제나 끊임없는 갈등과 방황, 그리고 부끄러운 오류들이 점철되어온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가 이 땅 근대문학사, 특히 비평사에 있어서 결코 부인하기 어려운 여러 업적들을 남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동시에 이 땅 문학사가 내포할 수밖에 없었던 갈등과 부정적 측면을 함께 드러내준다는 점에서 허와 실, 공과 실을 함께 제시해준다. 현대문학 전개기에 그는 이 땅의 누구보다도 많은 문학평론과 저작을 남겨놓았다. (……) 특히 저널리스트로서 시작된 그의 평론활동은 저널리스트 특유의 예민한 시대감각과 비평적 센스로 인하여 그가 항상 새로운 조류에 민감하게 만들었다. 바로 이 점에서 그의 여러 차례 이루어진 전향의 심리적 메커니즘이 해명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분명히 이 땅에서 가장 머리 좋고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노력형의 평론가에 해당한다. 그가 이루어놓은 수백 편의 평론과 십여 권의 저작은 양으로만도 우리를 압도한다. 이것은 그의 끊임없는 애정 갈구와 더불어 그가 이 땅에서 가장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살다 간 ‘성실한 인간’이라는 점을 말해준다. 비록 신념의 일관성이 부족하고 항상 새로운 것, 강한 것의 편에 서기를 좋아했다는 그에 대한 비난을 넘어서서, 그가 이 땅 비평사의 선구자이며 가장 대형 비평가이고, 동시에 증인이었다는 사실만으로서도 백철은 이 땅 비평사에 오랫동안 기억될 수 있을 것이 분명하다. - ‘백철의 생애와 문학’, 김재홍, <문학사상>, 1985년 11월호
관련도서
<백철 문학 전집>, 김팔봉 외 편, 신구문화사, 1968 <한국 근대문학과 사회>, 서준섭, 월인, 2000 <한국 현대문학 비평사론>, 임영봉, 역락, 2000 <한국의 문학비평>, 권영민 편, 민음사, 1995 <한국 민족문학론 연구>, 권영민, 민음사, 1988 <해방 직후의 문학운동론>, 신형기, 화다, 1988 <인간탐구의 문학>, 김열규, 창미사, 1986 <백철의 비평담론 연구>, 진영백, 부산대 박사논문, 2002 <백철 문학론 연구>, 김기한, 건국대 박사논문, 2001 <백철의 휴머니즘 문학 연구>, 김현정, 대전대 박사논문, 2000 <백철 연구>, 임종수, 충남대 박사논문,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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