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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무숙(韓戊淑)

예술가명
한무숙(韓戊淑)
전공
소설
개요
한무숙의 작품세계는 흔히 순수성에 대한 문학적 형상화 작업으로 평가된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1950년대 및 1960년대에 왕성한 활동을 한 상당수의 작가들이 실존적 고민과 허무의식을 집중적으로 다룬 것과는 구별된다. 초기 그는 의식세계와 인습적인 현실이 교차해 빚어내는 인간비극을 주로 그렸는데, 이러한 그의 문학관은 <감정이 있는 심연>, <유수암> 등에서 엿볼 수 있다. 전자는 인간의 내면세계에 흐르고 있는 심층심리, 즉 인간의 저변에 꿈틀거리고 있는 콤플렉스 현상에 사로잡힌 인간의 비극을 그렸으며, 후자는 화류계 여인의 애정의 몸부림을 통해서 한 남자를 잊지 못해 상처받는 비극을 그렸다. <생인손>은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로 구한말 사대부 집안의 관습, 풍속, 언어, 의식 등을 밀도 있게 다루었으며, 특히 여인의 한맺힌 삶이 두드러지게 묘사되어 있다. 작가적 관심의 영역이나 소재도 매우 다양한 편이어서, 인습의 문제, 한(恨)의 문제, 사랑과 죄악의 문제라는 보편적 주제뿐만 아니라 4·19를 겪으며 갈등하는 계층의 문제 등 현실성 있는 문제까지 깊이 다루었다. 주인공들이 겪는 고통과 갈등에 대해 자조적이거나 냉소적으로 바라보기보다는 그것을 이해하고 감싸는 따뜻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도 그의 중요한 특색이다. 정확한 언어의 구사 및 풍속의 재현, 그리고 주인공의 내면의식을 깊이 있게 드러내는 일에도 특별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 참고 : <한국현대문학사전>, 권영민 편, 누리미디어, 2002 <한국현대문학작은사전>, 가람기획편집부 편, 가람기획, 2000
생애
서울에서 출생한 한무숙은 부산고등여학교를 졸업했고, 1942년 <신시대> 장편소설 모집에 <등불 드는 여인>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처음에는 화가를 지망해 한때 <동아일보>에 연재되던 김말봉의 장편소설 <밀림>의 삽화를 그린 일도 있다. 1943년에 희곡 <마음>이, 그리고 1944년에 희곡 <서리꽃>이 각각 조선연극협회 작품 공모에 당선되었으며 해방 이후인 1948년에는 국제신보 장편공모에 <역사는 흐른다>가 당선되었다. 초기에는 근대사의 큰 흐름을 다룬 장편 <역사는 흐른다>와 인간의 심층심리를 파헤친 <월훈>, <감정이 있는 심연> 등을 썼으나, 그후에는 우리 고유의 여인상에 대한 깊은 관심과 조예를 보여주는 <유수암>, <생인손>, <송곳> 등의 작품을 썼다.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이사, 한국중앙박물관회 이사, 한국여류문학인회 회장 등을 지냈으며 자유문학상, 신사임당상, 대한민국문학상, 3·1문화상, 대한민국예술원상을 수상했다. 1995년부터 한무숙문학상이 제정되어 매년 시상하고 있다.
약력
1918년 서울 종로구 출생 1931년 일본인 화가 황정기구대(荒井畿久代)에게 사사 · 그림 공부 시작 1936년 폐결핵으로 요양 / 동아일보에 연재된 김말봉의 장편소설 <밀림>의 삽화를 그림 1942년 <신시대>에 <등불 드는 여인>이 당선되어 등단 1948년 국제신보 장편소설 모집에 응모하여 <역사는 흐른다> 당선 1961년 신문윤리위원 1962년~1985년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이사 / 서울시 도시미화 자문위원 1963년 일본 문예지 문학산보(文學散步)사 초청 문학강연 1969년 프랑스 망통 국제펜클럽회의에 한국대표로 참석 1971년 일본 여성지 주부지우(主婦之友)사 초청 강연 1971년 일본 교토에서 개최된 일본문화 세계회의 한국대표 1974년 이스라엘 예루살렘 국제펜클럽대회 한국대표 1974년 부부 서화전 개최 1974년 한국 중앙박물관회 이사 1978년 스웨덴 스톡홀름 국제펜클럽대회 한국대표 1978년 한국여류문학인회 부회장 1979년 한국소설가협회 대표위원(부회장) 1979년 멕시코 멕시코시티에서 개최된 AMPE국제회의에서 주제발표 / 미국 하와이대학에서 문학강연 1980년 미국 조지메이슨대학에서 문학강연 / 한국여류문학인회 회장 / 한국문인협회 이사 1984년 한국가톨릭문우회 대표간사(회장) 1985년 제2회 부부 서화전 개최 1986년 미국 조지워싱턴대학에서 문학강연 /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1987년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문학강연 1990년 일본문화연구회 회장 / 제3회 부부 서화전 / 한국소설가협회 상임대표위원(회장)
상훈
1957년 자유문학상 1971년 신사임당상 1986년 대한민국문화훈장, 대한민국문학상대상 1989년 3·1문학상(예술대상) 1991년 대한민국예술원상 - <만남> 단편소설집 <월훈>(1956) <감정이 있는 심연>(1957) <축제와 운명의 장소>(1963) <우리 사이 모든 것이>(1987) <생인손>(1987) 장편소설 <역사는 흐른다>(1950) <빛의 계단>(1960) <만남>(1986) 수필집 <열길 물 속은 알아도>(1963) <이 외로운 만남의 축복>(1981) <내 마음에 뜬 달>(1990)
작가의 말
(……) 대체적으로 제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못나고 딱한 사람들이 많아요. 버림받고 천대받는 사람이란 뜻이 아니라, 인생을 보다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란 뜻이지요. 그들은 잘나고 딱하지 않은 사람들보다는 인간적으로 보다 따뜻한 일면이 있고 삶 자체에도 보다 진지한 구석이 있어요. 그들이 절망하거나 좌절에 빠진다 해도 난 언제나 그들을 사랑해요. 동정적으로 바라보는 게 아니라, 인간적인 면에서 삶 자체를 보다 밀착된 언어로 그리고 싶은 게 제 욕심이에요. 난 어렸을 적부터 성당엘 다녔는데, 그것이 비록 종교적인 구원이 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우리들 삶 자체에 부여하는 의미는 매우 크다고 생각해요. 인간의 본질은 궁극적으로 공간과 시간을 초월한 어떤 힘, 뭐랄까, 사랑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돼요. 난 그걸 믿어요. 그건 내 신념이지요. (……) - ‘나의 인생 · 나의 문학’, 한무숙, <한무숙문학 연구>, 을유문화사, 1996
평론
(……) 문학 연구에 있어서 문학사란 비평적 성과를 토대로 해서 이루어지는 일종의 마무리 단계 같은 것일 수 있다. 작가 연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무숙 문학에 대한 비평적 성과가 아직 초보단계에 불과하다는 사정을 감안한다면 한국문학사에 있어서 그녀의 위치가 어떤 것인지를 점검하는 작업이 아직은 시기상조일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다음의 부분과 관련해서 제한적인 논의는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생각된다. 첫째, 한무숙의 어휘나 문체 등은 전통적 산문을 승계하면서 그녀의 독특한 문체를 이루었다는 점을 생각할 수 있다. 이것은 번역체나 가사체 또는 판소리 등 고전 소설류의 문체와도 구별되는 내간체의 전통과 관련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문체는 이미 1930년대부터 문장파 문인들에 의해 한국문학이 받아들여 마땅한 전통적 우리말 문장, 가장 아름답고 우아한 문장, “과거의 산문 중 완성의 경지에 이른” 유일한 문장으로 평가되고 있다. 문장파 문인들이 전통적 산문과 문체를 중심으로 일종의 문학적 과거 발견 및 예찬 운동을 벌이고 있을 때, 한쪽에서는 임화를 중심으로 전통 단절론, 식민 문화론 등이 제기되면서 한국문학의 정체성이 파괴되는 식민지적 현상에 우려를 보내고 있었다. 문장파나 전통 단절론자들의 그러한 논의는 이미 그것 자체가 표면적으로 식민지 상황에 처한 한국문학의 위기를 진단하고 극복하려는 노력의 하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내적으로는 좀더 적극적인 의미에서 식민지 상황에 대한 가장 온건하면서도 긴요한 비판과 저항의 의도를 내포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전통 단절론자들이 진단한 바와 한국문학의 전통 단절론의 여러 양상은 식민지 상황이 종결된 1945년 이후에도 크게 개선되지는 못했다. 오히려 과거의 전통에 대해서 이해하는 세대는 점차 감소되고 서구 문화의 영향은 상대적으로 증대되었다. 장기간에 걸쳐 뿌리내린 일제 식민지 문화의 잔재는 좀체 청산되지 못했으며 한국문학의 전통을 회복하려는 노력 역시 찾아보기 힘들 정도가 되면서 전통 존중주의는 남북 분단과 치열한 사상적·군사적 갈등까지 겹치게 되자 현실 진단이 미숙한 비현실적인 그룹으로 분류되기까지 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한국문학의 정체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이데올로기와 리얼리즘의 시각에서 제외되었던 작가들에 대해 새로운 평가가 활발해지게 되었고, 당연한 귀결이지만 전통 승계의 문학적 업적을 남긴 작가들이 크게 재평가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한무숙의 문학에 대해서도 위와 같은 관점이 적용되어야 할 이유는 바로 그녀의 문체에 있고 그것은 한국문학사가 20세기 초엽부터 심하게 겪기 시작한 외래문학의 충격으로부터 자신을 회복하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다음으로 한무숙 문학에서 균형과 조화의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 20세기 전반, 한국의 전반적인 상황은 의식주에서 가치관에 이르기까지 재래의 것과 외래의 것이 충돌하는 문화의 혼돈기였다. 신교육을 받은 대부분의 작가들은 전통이 아니라 외래 문화의 가치를 알리는 전령사의 나팔을 부는 데 긍지를 갖는 것으로 보이게 했다. 이때 가장 먼저 두들겨 맞기 시작한 공격 목표는 가부장적인 남성중심주의였다. 이른바 봉건적 가부장제에 대한 여성의 비판과 공격은 남녀평등 사상에 대한 이론적 속도 조절에 실패한 나머지 남성을 용서할 수 없는 적으로 만들거나 타도의 대상으로 오인하는 사고가 빈발하게 되었다. 비판해야 할 이념 대상으로서의 남성, 파괴되어야 할 제도로서의 남성 일반이 아니라, 개인적·구체적 개개인의 남성으로부터 무엇인가를 쟁취하려는 여성 운동이 항용 그런 것처럼 결국 그것은 개인과 가족주의 파탄으로 발전하는 게 정해진 귀결점이기 십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무숙의 소설은 남성 중심적 전통과 억압받는 여성의 문제를 과격한 진보적 사고에 의해 신경질적으로 처리하는 방식을 극도로 삼간다. 결코 일부다처제를 인정하는 것도 아니고 과거의 여성 억압을 정당화하지도 않는다. 과거 한국의 여성들이 겪어야 했던 풍속적 압제와 비인간적인 삶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그런 억눌림 속에서 여인들이 어떻게 지혜를 발휘하여 왔는지 그 미덕을 보여주기도 한다. 또한 급속히 변화한 현대 여성의 문제를 다루면서도 전통적 가족주의와 남녀 사이의 일대일의 평등론에서 이탈하지 않는다. 전통적 여인상에서는 절약과 부덕의 미를 부정하지 않고 현대적 삶 속에서는 여성의 정당한 욕구가 억압될 수 없다는 점을 제시한다. 전통의 계승과 현대 문화의 수용이라는 점에서 작가는 균형과 조화의 정신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녀의 전통존중주의가 외래 문화에 대한 배격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계급과 빈부, 규범과 가치, 풍속과 전통의 모태가 되는 남녀, 가족, 가정의 문제에서 균형과 조화의 정신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은 그녀의 문학이 한국문학사에서의 전통 승계나 전통 단절의 문화 현상을 극복하는 또 하나의 의미 깊은 성과로 평가될 조건일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한무숙 문학의 종교 사상 문제를 지적하고자 한다. 춘원 이래 신문학의 개척자들은 개종에 개종을 거듭하면서 종교적 편력을 다양하게 보여준 바 있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적 체험일 뿐 대부분의 작가들은 작품 속에서 자신의 종교를 전파하는 전도사의 역할에 머문 경우가 많았다. 어떤 경우는 타인의 종교에 대해서나 전통적인 종교 사상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한무숙의 소설들은 전통적인 종교다원주의를 부정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 속에 담겨 있는 선인들의 지혜를 찾아내고자 힘썼다. 그녀 자신은 가톨릭 신자이면서도 전통 종교들의 복합 혼성적 사상을 배격하지 않은 것은 작가로서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문학사를 검토할 때 이와 같은 전통적 가치를 수용한 문학은 그리 흔한 것이 아니다. 이처럼 문체와 어휘에 있어서, 그리고 종교와 사상에 있어서 한무숙의 문학이 한국문학사에서 전통 단절의 불행을 극복해내는 뛰어난 업적에 가담하고 있음을 의미하며 또한 그녀의 문학이 스스로 고유의 영역을 구축하였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조건이 되는 것이기도 하다. - ‘균형과 조화의 원리’, 홍기삼, <한무숙문학 연구>, 을유문화사, 1996
관련도서
<한무숙 문학전집>, 한무숙, 을유문화사, 1992 <한무숙 문학세계>, 이호규 외, 새미, 2000 <한무숙문학 연구>, 한무숙재단 편, 을유문화사, 1996
연계정보
-감정이 있는 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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