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푸터 바로가기
> 문화지식 예술지식백과

예술지식백과

문화 관련 예술지식백과를 공유합니다

염상섭(廉想涉)

예술가명
염상섭(廉想涉)
전공
소설
개요
1920년대에 발표된 염상섭의 소설은 대체로 당시 문단에서 양대세력을 형성하고 있던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에서 중립적인 노선을 견지하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1931년 발표된 <삼대>는 식민지 현실을 배경으로 삼으면서 가족 간에 벌어지는 세대갈등을 그려낸 그의 대표작이다. 서울의 한 중산층 집안에서 벌어지는 재산싸움을 중심으로 1930년대의 여러 이념들의 상호관계와 함께 유교사회에서 자본주의사회로 변모하고 있는 현실을 생동감 있게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의 속편으로 <무화과>를 내놓은 이후 <모란꽃 필 때>, <그 여자의 운명>과 같은 통속소설을 발표하였다. 해방 이후에는 주로 가정을 무대로 한 인륜관계의 갈등과 대립을 그린 작품을 발표하였다. 그 중에서도 특히 신의주에서 삼팔선에 이르기까지의 도정을 그린 <삼팔선>, 옥임의 정신적 파산과 정례의 경제적 파산을 통해 당대의 세대를 적실하게 표현한 <두 파산>, 그리고 인민군 치하의 서울의 모습을 통해 위기에 직면한 인물들의 심리를 적절하게 묘사하고 있는 <취우>가 주목된다. 그의 소설들은 당대의 사회 현실의 문제와 정신적 분위기를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리얼리즘 계열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채만식, 이기영 등과 함께 리얼리즘 문학을 발전시키는 데 뚜렷한 공적을 남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참고: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편, 누리미디어, 2002 <한국현대문학작은사전>, 가람기획편집부 편, 가람기획, 2000
생애
서울 종로에서 태어난 염상섭은 일본 게이오대학 문학부에서 수학하였다. 동아일보 창간과 함께 진학문의 추천으로 정경부 기자로 활동하였고, 1936년 만주로 건너가 만선일보의 주필 겸 편집국장으로 활동하였다. 1920년 7월 김억, 김찬영, 민태원, 남궁벽, 오상순, 황석우 등과 함께 동인지 <폐허>를 창간하고, 김환의 <자연의 자각>의 평가에 관해 김동인과 논쟁을 벌였다. <표본실의 청개구리>, <암야>, <제야>, <만세전> 등을 발표하며 문단적인 지위를 굳혔다. 해방 후 귀국하여 1946년 경향신문 편집국장을 지냈으며, 서울시문화상, 아세아자유문학상, 예술원공로상, 3·1문화상 예술부문 본상을 수상하였고, 예술원 창설과 함께 종신회원으로 추대되었다.
약력
1987년 서울 종로구 출생 1918년 일본 게이오대학(慶應大學) 문학부 입학 1919년 <삼광(三光)> 동인으로 활동 1920년 동아일보 정경부 기자로 입사 / <폐허(廢墟)> 동인 결성 1923년 조선문인회 결성 1929년 조선일보 입사 1935년 매일신보 입사 1936년 만주국의 만선일보 편집국장 1939년 안동의 대동항건설주식회사 촉탁으로 근무 1945년 조선인 거류민단을 조직 · 부회장으로 활동 1946년 경향신문 창간 편집국장 취임 1947년 성균관대 출강 1953년 해군본부 서울분실 정훈실장 1954년 예술원 창설과 함께 종신회원으로 추대 / 서라벌예술대학 학장 취임
상훈
1956년 제3회 아세아자유문학상 1957년 대한민국예술원 공로상 1962년 3·1문화상 1962년 대한민국문화훈장서훈(대통령장) 장편소설집 <만세전>(1924) <삼대>(1947) <삼팔선>(1948) <취우>(1954) 단편소설집 <해바라기>(1924) <견우화(牽牛花)>(1924) <해방의 아들>(1949) <일대의 유업>(1960)
작가의 말
예술에는 작자의 개성, 다시 말하면 작자의 독리적 생명(獨異的 生命)을 통하여 투시한 창조적 직관의 세계요, 그것을 투영한 것이 예술적 표현이라 하겠다. 그러함으로 개성의 표현, 개성의 약동에 내적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고, 동시에 예술은 생명의 유로(流露)요, 생명의 활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예술은 개성의 독창에 생명이 있는 것인 이상, 모조(模造) 모사(模寫)에 예술적 가치가 없음은 명화를 석판에 복사한 것에 예술적 생명이 없음과 다른 것이 없는 것이다. 예술은 모방을 배척하고 독창을 요구하는지라, 거기에 하등의 범주나 규약과 제약이 없을 것은 물론이다. 생명의 향상 발전의 경지가 광대무야함과 같이 예술의 세계도 무변제(無邊際)요, 예술의 세계의 무변무애는 개성의 발전과 표현의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다. - ‘개성과 예술’, 염상섭, <개벽> 22호, 1922
평론
염상섭의 문학적 견해는 자아의 발견과 철저한 현실 인식이라는 포괄적인 사회 비평의 형태에서 출발하여 개성론으로 발전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문예의 본질로서의 개성 문제에 착안함으로써 3·1운동 직후의 혼란된 상황 속에서 일찍이 문학에 대한 근대적 인식의 기반을 확립하였다. 그런데 당시 문단에 프로문학론이 대두되자, 염상섭은 문학의 본질면에서 그 부당성을 주장하였고, 개성에 대한 자신의 관심을 민족적 개성으로 확대시켜 나가게 되었다. 그가 내세운 민족적 개성이란 최남선이 주장한 ‘조선정신’이나 이광수의 ‘민족성’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최남선이나 이광수는 추상적 관념으로서의 민족성을 내세움으로써 시대적 변화와 사회 계층의식의 다양성을 함께 포괄하는 문학의 속성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염상섭은 민족적 개성이라는 것이 종족이나 환경, 언어와 역사를 통해 형성된 하나의 전통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문학은 이 전통을 지지하면서 현실 속에 내재해 있는 봉건적인 계급관념을 파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현실에 대응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가 식민지 지배 하에 놓여 있는 민족적 현실에 대한 총체적 인식을 목표로 하였을 때, 바로 거기에서 민족문학의 참뜻이 발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민족문학의 실천적인 방법으로서 삶의 모든 문제의 핵심에 돌입할 수 있는 소설의 가능성을 타진하게 되었는데, 그 자신의 문학적 견해를 실천에 옮겨 놓음으로써 근대소설의 새로운 장을 열어 놓았다고 할 수 있다. - ‘염상섭의 민족문학론과 그 성격’, 권영민, <염상섭 문학연구>, 민음사, 1987염상섭의 삶의 가치는 야인 정신으로 일관한 데 있다. 언제고 조선 선비의 강건한 자세와 온화한 손길을 함께 하면서 외유내강한 그 생활은 늘 가난했지만 정신적으로는 풍요했다. ‘어쩌다가 때묻은 지폐장이라도 만지고 나면 곧 손을 물에 씻고야 마는’ 그인지라 돈을 소중히 여기기는 했어도 가난을 탓하거나 가난을 슬퍼하지는 않았다. 근대사회는 돈이 중심 관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삼대>에서도 돈에 의한 갈등이 주축을 이루고 있지만 그러나 그에게는 돈이 결코 삶의 목적일 수 없었다. 염상섭이 돈에 초연했다는 것은 그만큼 자기의 삶을 뜻대로 이룰 수 있었던 것을 말한다. 조선 선비 관료의 아들로 태어난 염상섭은 어떤 뜻에서 일생 동안 슬픔을 안고 반일감정 속에서 살았다고 할 수 있다. 도시의 야인으로서, 역사의 현장에서 허위와 진실의 대립 양상을 목도하고 그 모순과 갈등을 보게 된 염상섭은 당대사회의 진실을 보다 폭넓게 볼 수 있었다. 그는 이것이냐 저것이냐, 이쪽이냐 저쪽이냐 하는 양단적인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나, 폐쇄성을 버리고 대상을 다각적으로 관찰하고 논리적으로 사고하며 비판적으로 행동함으로써 사회적 현상을 주체적으로 수용코자 했다. 따라서 그에게는 대립, 모순, 갈등의 해소가 아니라 변증법적 상승 작용에 의한 새 대립, 모순, 갈등의 모색이었던 것이다. 사회와 역사에 대한 변증법적 인식은 과거와 현재의 대립, 모순, 갈등에서 미래를 부단히 지향하게 되었다. <삼대>, <두 출발>, <미해결>의 세계는 이 같은 사실을 극명히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염상섭은 리얼리스트로서의 그 사명을 다했을 뿐만 아니라 이 땅에 당대 사회의 진실을 보여주는 리얼리즘 문학을 구현한 작가로 길이 남을 것이다. 따라서 식민지적 현실의 철저한 인식은 자신을 찾는 길이기에 염상섭은 처음부터 사회인식의 방법을 모색했다. 그 모색의 방법으로 현재성의 재긍정과 철저히 부정하려는 데에서 관찰을 그 주무기로 했다. 과거를 바탕으로 현재를 투철히 인식하고 그 인식을 통해 미래를 지향하는 그런 원칙성에 의한 자기와 사회의 구조적 분석 방법은 개인으로부터는 자전적 성찰의 양상을 보였고, 사회를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즉, 일제와 민족의 대립 관념으로 파악하게 되었다. 따라서 그는 시류나 변칙보다는 당위와 원칙을 소중히 여겼다. 이 같은 그의 사회 구조파악은 모두 대장편소설에서 이루어졌다. 이렇게 보아올 때 상섭은 전형적인 산문가였고, 부정(否定) 정신에 바탕을 둔 야적(野的) 인간이었으며, 평범한 도시의 생활인이기도 했다. 염상섭 문학은 여태까지의 긍정적 문학을 파기하고 부정 문학·야적 문학을 형성한 데 그 의의가 있다. 전통성을 계승하고 외래적 요소를 수용하여 개성화한 자기 문학을 보임으로써 한국적 근대 리얼리즘 문학을 형성하고 도시성 사회문학을 이루는 동시에 반동적으로 자기 체험을 형상화함으로써 한국 기록문학의 신기원을 보일 수 있었다. 개성적인 관찰을 통하여서는 전통적 문체를 이어받아 자기적인 문체를 형성했는데, 이는 그의 문학적 업적 중의 하나이다. 이 문체로 말미암아 그의 기교도 돋보이게 된 것이다. 따라서 염상섭 문학은 국문학상으로 전대의 야적 기록문학을 이어받은 정통 산문문학이며, 그 정화이자, 부정적 사회관으로 일제에 저항한 민족문학이기도 하다. - ‘염상섭과 그 소설의 특질’, 김종균, <염상섭 문학연구>, 민음사, 1987
관련도서
<염상섭 전집>, 염상섭, 민음사, 1987 <염상섭 문학론>, 이보영, 금문서적, 2003 <염상섭 소설어 사전>, 곽원석, 고려대출판부, 2002 <염상섭 소설 연구>, 김종균, 바로북닷컴, 2001 <1920년대 문학과 염상섭>, 박상준, 역락, 2000 <염상섭 장편소설 연구>, 김경수, 일조각, 1999 <염상섭 문학의 재인식>, 문학과사상연구회 편, 깊은샘, 1998 <염상섭 문학의 재조명>, 문학사와비평연구회 편, 새미, 1998 <염상섭>, 유종호 편, 서강대출판부, 1998 <염상섭 연구>, 김윤식, 서울대출판부, 1987 <염상섭 문학 연구>, 권영민 편, 민음사, 1987 <이광수와 염상섭의 초기 장편소설 연구: 사랑의 유형과 성격을 중심으로>, 조은파, 한양대 박사논문, 2004 <한국 근대 장편소설 연구: 근대성에 내재한 전근대 의식을 중심으로>, 남상권, 영남대 박사논문, 2003 <염상섭 장편소설의 아이러니 연구>, 김정진, 한국외국어대 박사논문, 1996 <염상섭 장편소설의 인물묘사 방법 연구>, 조미숙, 건국대 박사논문, 1996 <염상섭 소설 연구: 서술양식 분석을 중심으로>, 김승종, 연세대 박사논문, 1993 <염상섭의 ‘삼대’ 연구>, 강수길, 경희대 박사논문, 1990
연계정보
-삼대
관련멀티미디어(전체2건)
이미지 2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