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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朴婉緖)

예술가명
박완서(朴婉緖)
전공
소설
개요
박완서의 작품들은 대부분 그 밑바닥에 역사의식과 사회의식을 적절히 깔고 왕성한 비판력과 비판욕으로 사회부조리와 비리를 거침없이 파헤쳐, 가치있는 삶의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처녀작 <나목>을 비롯해 <부처님 근처>, <카메라와 워커>,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틀니>,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저녁의 해후>, <아저씨의 훈장>, <엄마의 말뚝>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작품들은 크게 분단문제를 다룬 작품이랄 수 있는데, 이들 작품들의 바닥에는 한결같이 전쟁으로 말미암은 비통한 가족사가 깔려 있다. 근작 장편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에도 그러한 경향은 계속된다. 그 중 대표작이랄 수 있는 <엄마의 말뚝> 연작은 모두 세 편으로 되어 있다. 연작의 첫 편 <엄마의 말뚝 1>은 남편을 잃은 한 여성이 고향을 떠나, 어린 오누이와 함께 대처 서울에서 억척과 의지로 집 한 채를 마련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으며, 작가에게 이상문학상을 안겨준 <엄마의 말뚝 2>는 이 연작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전쟁과 오빠의 죽음을 다루고 있다. 연작의 마지막 편인 <엄마의 말뚝 3>은 어머니가 당신의 소망과는 달리 손자의 주도로 서울근교의 공원묘지에 묻히기까지의 이야기다. 6·25 체험을 다룬 일련의 작품군이 한 축을 이루는 가운데 박완서는 또 하나 득의의 영역을 보여주기 시작하는데, 이른바 중산층의 삶에 대한 날카로운 해부가 그것이다. 1971년에 발표된 단편 <세모>는 이 계열의 작품군 중 가장 먼저 그 모습을 보인 것이다. 이와 함께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여성들이 겪는 억압과 갈등을 드러내는 데 탁월한 성취를 보임으로써 여성주의 비평으로부터도 집중적인 조명을 받는다. 활달하고 개성적인 문체의 매력을 동반하면서 펼쳐지는 그의 소설세계는 우리 사회의 속물주의에 대한 비판에서 분단의 상처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여성해방의 올바른 방법에 대한 탐구에서 우리 근대사의 실상에 대한 질문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다양한 폭을 지니고 있으며, 그 모든 영역에서 시종일관 탁월한 리얼리스트의 면모를 견지하고 있다. - 참고 :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편, 누리미디어, 2002 <한국현대문학작은사전>, 가람기획편집부 편, 가람기획, 2000
생애
경기도 개풍에서 출생한 박완서는 숙명여고를 거쳐 서울대 국문과를 중퇴했다. 1970년 불혹의 나이에 장편소설 <나목>으로 <여성동아> 현상모집에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하였다. 1981년 <엄마의 말뚝>으로 제5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하였고, 1990년 <미망>으로 대한민국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박완서는 등단 초기에 단편소설 <세모>, <지렁이 울음 소리>, <부처님 근처>,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카메라와 워커>, <도둑 맞은 가난>, <조그만 체험기>, <꿈을 찍는 사진사>, <공항에서 만난 사람>, <우리들의 부자> 등을 발표하면서, 중산층의 생활 양식에 대한 비판과 풍자에 주력하였고, 이후 <도시의 흉년>, <휘청거리는 오후>, <목마른 계절> 등의 장편소설을 통해 사회적 단위 집단으로서의 가족의 구성 원리와 그 구성원들 사이의 관계를 통해 현실 사회의 변화와 삶의 문제성을 비판적으로 그려내었다. 1980년대 이후에는 <그 가을의 사흘 동안>, <지 알고 내 알고 하늘이 알건만>, <복원되지 못한 것들을 위하여> 등의 중단편과 연작소설 <엄마의 말뚝>을 발표하였고, 장편소설 <오만과 몽상>, <미망>,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등을 발표하였다.
약력
1931년 경기도 개풍 출생 1950년 서울대학교 문리대 국문과 입학 / 미군부대에 취직 / 미8군 PX의 초상화부에 근무 1970년 <나목>으로 <여성동아> 여류장편소설 공모 당선 1982년 문공부 주최 문인해외연수 참가, 유럽과 인도 여행 1985년 일본 국제기금 재단 초청으로 일본 여행 1990년 성지순례 여행 1993년 박완서 소설 전집 발간 시작 2004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피선
상훈
1980년 한국문학작가상 - <그 가을의 사흘 동안> 1981년 이상문학상 - <엄마의 말뚝> 1990년 대한민국문학상 우수상 - <미망> 1991년 이산문학상 - <미망> 1993년 현대문학상 - <꿈꾸는 인큐베이터> / 중앙문화대상(예술부문) 1994년 동인문학상 -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1995년 한무숙문학상 - <환각의 나비> 1997년 대산문학상 -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1998년 보관문화훈장 1999년 만해문학상 - <너무도 쓸쓸한 당신> 2000년 인촌상 2001년 황순원문학상 - <그리움을 위하여> 단편소설집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1976) <창 밖은 봄>(1977) <배반의 여름>(1978) <꿈을 찍는 사진사>(1979) <도둑맞은 가난>(1981) <이민가는 맷돌>(1981) <엄마의 말뚝>(1982) <서울사람들>(1984) <그 가을의 사흘 동안>(1985) <꽃을 찾아서>(1986) <그 살벌했던 날의 할미꽃>(1987) <저문 날의 삽화>(1991) <나의 아름다운 이웃>(1991) <한 말씀만 하소서>(1994)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1994) <여덟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1995) <울음소리>(1996) <너무도 쓸쓸한 당신>(1998) <어떤 나들이>(1999) <조그만 체험기>(1999) <아저씨의 훈장>(1999) <해산바가지>(1999) <가는 비, 이슬비>(1999) <보시니 참 좋았다>(2004) 장편소설 <나목>(1976) <휘청거리는 오후>(1977) <목마른 계절>(1978) <도시의 흉년>(1979) <욕망의 응달>(1979) <살아있는 날의 시작>(1980) <오망과 몽상>(1982) <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1983) <서있는 여자>(1985)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1989) <미망>(1990)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1992)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1995) <아주 오래된 농담> (2000) 동화집 <달걀은 달걀로 갚으렴>(1979) <산과 나무를 위한 사랑법>(1992) <부숭이의 땅힘>(1994) <속삭임>(1997) <이게 뭔지 알아맞춰 볼래?>(1998) <자전거 도둑>(2000) <부숭이는 힘이 세다>(2002) 수필집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1977) <혼자 부르는 합창>(1977) <여자와 남자가 있는 풍경>(1978) <살아있는 날의 소망>(1982) <지금은 행복한 시간인가>(1985) <서있는 여자의 갈등>(1986) <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1990) <한 길 사람 속>(1995) <모독>(1997) <어른노릇 사람노릇>(1998) <님이여, 그 숲을 떠나지 마오>(1999) <아름다운 것은 무엇을 남길까>(2000) <두부>(2002)
작가의 말
(……) 가령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나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같은 소설에서는 체험을 비틀지 않고 원형을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사람의 운명보다는 그 시대의 풍속, 그러니까 1930~1950년대 시골과 서울의 모든 풍속을 재현하고 싶었죠. 소설로서는 가치가 사라지더라도 나중에 자료로서의 가치를 지닐 수 있으면 했습니다. 그에 앞서 <미망>을 쓸 때 크게 느낀 건, 보통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자료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 소설에는 서울 거리의 풍경, 사람 사는 모습, 2차대전 말기와 해방 후의 변화, 의상의 변모 같은 것도 넣으려고 애를 썼죠. 그런데, 체험도 일종의 상상이더군요. 유년기의 기억은 강력한 대목도 있지만, 하나의 기억과 다른 기억 사이를 잇는 것은 상상력일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강렬한 기억도 자기 상상력에 의해 부풀려지거나 왜곡된 것이 많더군요. 제 기억에 확신을 가지고 써놓은 대목에 대해 그 일을 함께 기억하는 친척으로부터 그게 그렇지 않다는 지적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 저는 후배들이 한참은 직업을 가지고 글쓰기를 병행했으면 합니다. 자기자리에서의 체험이 골방에서의 글쓰기보다 낫습니다. 저나 다른 여성작가들을 두고 ‘여성이니까 직업이 없었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전업주부라는 직업이 더 고통스러운 거예요. 저는 전업작가가 아니었습니다. 편하게 쓴 게 아니죠. (……) 어머니는 이야기를 아주 잘 하셨죠. 어머니는 시골에서 드물게 글을 읽는 여자였습니다. 필사본 책을 많이 가져다 읽으셨어요. 어린시절 방학 때 시골에 내려가면, 자다가 깨서 보면 어머니의 얘기가 계속되고, 또 자다가 깨서 보면 계속되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풀지 못한 게 한이 되어서 가슴에 무언가가 생겨서 죽었다는 얘기라든가, 맺혔던 말을 풀어놓았을 때 행복해하던 모습 같은 게 잊히지 않습니다. 고향 마을로 시집온 지 얼마 안 된 여자들이 어머니에게 편지 대필을 부탁하는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등잔불 밑에서 붓글씨로 그 여자들의 사연을 받아 적던 어머니 모습이 생각납니다. 물론, 그 여자들이 문장을 완성해서 부르는 건 아니었고, 엄마가 살을 많이 붙여 썼죠. 그런데, 어머니가 편지를 다 받아적고 나서 마지막으로 읽어주면 그 여자들이 열이면 열 다 우는 거예요. 그걸 보면 엄마가 아주 잘난 것 같더라구요. 그런 모습에서 이야기의 힘을 느꼈습니다. (……) 저는 아직 행복한 축에 속합니다. 책이 안 팔린다고들 하죠. 저는 이야기에 길들여진 세대입니다. 우리 세대는 이야기를 필요로 하는 부분이 있어요. 저는 저녁의 두 시간 가량을 습관적으로 텔레비전을 시청합니다. 7시 반에서 9시 반까지죠. 연속극을 즐겨 보는데, 아예 말이 안돼서 혐오스러울 때도 있어요. 책 안 읽은 티가 나는 거예요. 그래도 습관은 버릴 수가 없어서 비디오를 빌려다 보기도 합니다. 소설이 이야기라는 의미로는 살아남을 거라고 봅니다. 저만이라도 종이책과 운명을 같이하고 싶어요. 요즘은 이메일이라는 걸 쓰는데, 이메일을 받고서도 답장을 보낼 때는 따로 편지로 보내곤 합니다. 물론 이메일로 보내면 훨씬 수월하고 시간도 단축되지만, 편지로 쓰는게 더 공이 많이 들어가죠. 이 나이에 디지털이니 인터넷이니를 좇아가기보다는, 종이문명과 운명을 같이하고 싶은 생각입니다. - ‘이야기의 힘을 믿는다’, 박완서, <박완서 문학 길찾기>, 세계사, 2000
평론
(……) 박완서는 우리 문단에서 보기 드물게 꾸준히 활동한 작가이다. 그의 나이 70대에 들어선 지금까지도 오히려 후배작가들이 무색해 할 정도로 계속 문제작을 만들어내고 있다. 문제작가라면 연조가 더해갈수록 깊고도 넓은 문학세계를 이루어가는 법이라는, 지키기는 결코 쉽지 않은 소망어린 통념의 모범이 되고 있다. 대하소설 <미망>이 1990년대에 들어오면서 완간되었고 <우황청심환>(1991), <꿈꾸는 인큐베이터>(1993),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1993), <너무도 쓸쓸한 당신>(1997) 등과 같은 문제작들이 박완서의 60대에 줄지어 나온 것이다. 박완서는, 나이는 대개 1950년대에 등단한 전후작가와 비슷하지만 본격적인 작가로서의 활동은 1970년대에서 2000년대인 지금까지 계속된 특이성을 가진다. 1950년대 등단한 작가들 중 대부분이 1970년대 이후로 창작활동을 사실상 중단한 것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대체로 박완서는 각 시대를 원경으로 삼되 대사회적 발언의 톤은 거의 변함이 없는 작가이다. 박완서는 이미 1970년대에 바로 우리네의 삶이라든가 ‘세상’이라고 하는 것의 그 비밀스러운 저층을 날카롭게 판독해내곤 했다. 박완서의 작가적 관심의 최종 목표는 가시적 현실의 소묘보다는 그 현실의 은밀한 배후의 파악과 폭로에 있었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최소한의 리얼리스트 노릇하기도 힘겨워했던 1970년대에 박완서는 세태소설, 병리소설, 풍자소설의 작가라는 평가에 걸맞는 수준의 리얼리즘을 성취해내었다. 역사를 배제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역사를 포함시킬 수밖에 없는 ‘세상’을 그리는 데 역점을 둔 생태학적 소설(ecological novel)이라는 유형은 박완서의 1970년대 소설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1980년대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거울’보다는 ‘확성기’를 들고 다니기 좋아하는 작가들이 급증했을 때에도 박완서는 이제나 저제나 ‘거울’을 열심히 닦는 작가로 자족했다. 박완서의 이러한 작가적 자세는 작가와 내레이터, 그리고 주인공 사이에 별 간격이 없는 단성적 소설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박완서의 궁극적 관심은 가치 있는 삶의 모색과 해명에 있다. 박완서가 생각하는 삶 속에는 역사도 흐르고 있고 이데올로기도 침전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는 ‘세상살이’를 그려내고 의미화하는 수준에서 소설쓰기를 계속하고 있다. 그는 1950년대부터 전쟁, 가난, 독재정치, 분단, 무질서 등의 현실을 겪으면서 그를 가치 있는 삶의 문제와 연결해서 형상화하고 의미화하곤 했다. (……) - ‘생태학과 상식파 그리고 생명주의의 화음’, 조남현, <박완서 문학 길찾기>, 세계사, 2000박완서는 천상 이야기꾼이다. 박완서의 입심을 통하면 오랜 세월 곰삭은 어머니들의 이야기는 어느새 딸들의 현재로 다가와 웅얼대는 자장가도, 검붉은 통곡으로, 쓸쓸한 웃음으로 딸들에게 말을 건넨다. 그녀의 이야기가 시작되면 폐허에서 건져올린 부서진 기와장 한 장도 깊은 상처와 질긴 욕망이 퇴적된 어머니의 고가로 복원된다. 망각되고 매몰된 여자들의 일상을 존재의 순간으로 드러내는 박완서의 입심은 기억하려는 의지와 이야기하려는 욕망에서 기인한다. 기억하려는 의지를 통해 박완서는 산이 사라져버린 풍경 속에서 산의 자취를 만져보고 냄새 맡고 듣는다. 이야기하려는 욕망을 통해 그녀는 가난한 동네의 무덤 위로 치솟은 탐욕스러운 아파트 속에서 전쟁하듯 살아가는 삶들이 연출하는 모습을 능청스런 언어로 포착한다. 바로 이 대단한 입심을 통해 박완서는 다양한 삶의 층위들이 엮어내는 다채로운 풍경을 육화된 이야기로 꾸려나간다. 어떤 작가보다도 풍부한 이야기 꾸러미를 풀어놓고 있는 박완서를 있게 한 이 입심은 오히려 박완서의 작품세계에서 소설적인 결함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박완서를 읽으면서 이른바 ‘소설적 총체성’이 결여된 것으로 지적하는 평자들은 그녀의 이야기 세상이 ‘사소하다’는 인상을 주며, 이 사소함은 박완서 특유의 입심과 수다 탓이라고 비판한다. 그녀의 입심이 거침없이 발휘되는 영역은 혈연가족 중심의 식민화된 일상이다. 이런 영역을 다룰 때 박완서의 이야기들은 소시민성에 매몰되는 소재의 협소화로 인해 필연적으로 사소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일상성에 폐쇄된 인물을 중심에 놓은 소설세계가 폭좁을 수밖에’ 없으며 천의무봉이라는 그녀의 문체는 ‘작가의 이야기꾼으로서의 탁월함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시각의 폭좁음과 밀접하게 관련’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은 이들 평자들의 기본적인 입장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비판은 ‘수다스런 문체로 인해 전쟁과 같은 주제를 다루면서도 그것을 가족사적인 차원에서 벗어나 좀더 폭넓은 민족사적인 시각’으로 끌어올리지 못했다는 규범적인 비평으로 이어진다. (……) 여자들의 이야기는 총체적인 소설형식과 다른 층위를 갖고 있다. 특히 리얼리즘 소설은 근대적인 시간개념과 개별성을 자기존재의 기반으로 삼고 있다. 근대적 시간에 토대한 소설은 문제적 개인이 새 것을 추구하는 완결된 형식이라고 주장한다면, 원형적인 시간에 의존한 이야기는 나 속에 들어 있는 우리들 이야기의 반복적인 흐름이라고 말한다. 리얼리즘 소설은 집요한 플롯짜기의 단단한 구조와 시·중·종으로 완결된 서사형식을 고집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남성적인 담론이다. 반면 여성의 이야기는 그런 일직선적인 시간에서 처음부터 탈골된 삽화적인 형태다. 중심 담론에서 주변화되고 가려진 이야기는 시선으로 포착되지 않는 다른 감각으로 발굴되길 요청한다. 이야기는 시선과 다른 감각의 차이에서 비롯된 틈새를 반복하면서 변주한다. 기존질서의 저변에 맴돌고 있는 여성의 이야기는 그래서 끊임없이 되돌아오는 반복적인 흐름이다. 박완서는 유장한 사설처럼 이야기를 흘려보낸다. 집성촌 마을의 할머니 한 사람이 당산마루에 목매어 죽은 딸이 보낸 유서를 들고 와서 언문을 터득한 동네의 다른 할머니에게 읽어달라고 한다. 아들을 낳지 못해 남의 귀한 손을 끊게 되었다는 시어머니의 자심한 구박에 못이겨 자살한 딸이 보낸 절절한 편지 내용을 들으면서 그 할머니는 “딸 자식 앞세운 년이 곡은 무슨 곡”하면서 울음소리 한 번 내지 않는다. 다만 할머니의 눈물이 장죽을 타고 흘러내려 방바닥을 흥건하게 적실 뿐이다. 할머니의 목매어 죽은 딸의 비애는 <해산바가지>에서 딸 둘만 낳아놓은 산모의 치욕으로, <아직 끝나지 않은 음모> 연작에서 후남의 당혹으로, 딸이라는 이유로 태아 살해를 감행하는 <아주 오래된 농담>에서 수경의 이중성으로 되풀이된다. 혹은 언문을 터득한 할머니는 다른 할머니가 불러주는 편지 내용을 다 받아쓴 다음 ‘에미 일거보거라’라고 시작하는 내용을 낭랑한 목소리로 들려준다. 모여든 여자들은 그 편지 내용과 함께 한숨쉬고 함께 대소한다. 이처럼 여자들은 다함께 이야기에 살을 덧붙이고 삭제하고 변형시킨다. 여자들의 이야기는 삶의 잉여를 공유하는 것이며 개인적인 고통을 공동의 통증으로 치유하는 효능을 갖는다. 동네 여자들을 웃기고 울리면서 대필하던 할머니의 전통에 서 있는 이야기꾼 박완서는 개별적인 소설가라기보다 여자들의 오래된 이야기가 흘러나가는 시간적인 주름이자 공간적인 풍경이다. (……) - ‘박완서 문학과 페미니즘’, 임옥희, <박완서 문학 길찾기>, 세계사, 2000
관련도서
<박완서 소설전집>, 박완서, 세계사, 1993~2004 <박완서 단편소설 전집>, 박완서, 문학동네, 1999 <박완서 소설 연구>, 이선미, 깊은샘, 2004 <박완서의 엄마의 말뚝을 읽는다>, 박혜경, 열림원, 2003 <우리 시대의 소설가 박완서를 찾아서>, 박완서 외, 웅진닷컴, 2002 <박완서 문학 길찾기>, 이경호·권명아 편, 세계사, 2000 <박완서 문학 앨범>, 웅진출판, 1992 <박완서론>, 삼인행편집부 편, 삼인행, 1991 <한국 여성작가 소설에 나타난 일상성 연구: 박완서, 오정희, 양귀자를 중심으로>, 김병덕, 중앙대 박사논문, 2003 <오정희, 박완서 소설의 근대성과 젠더의식 비교 연구>, 이정희, 경희대 박사논문, 2001 <박완서 소설의 서술성 연구>, 이선미, 연세대 박사논문, 2001
연계정보
-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
-휘청거리는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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