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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준(朴榮濬)

예술가명
박영준(朴榮濬)
전공
소설
개요
박영준은 등단 이후 단편 <생홀아비>, <어머니> 등 농촌과 그속에서 사는 일련의 가난하고 불행한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발표해 ‘농촌작가’라고 불리기도 했다. “나는 가난 속에서 태어나고 가난 속에서 자랐다. 내가 아는 사람도 가난한 이들뿐이다. 그속에서 나온 내 소설이 가난이 아닐 수 없다”는 그의 말에서 작가정신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즉, 그에게는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인간주의적 사랑의 정신이 충만했던 것이다. 여기에는 목사였고 독립운동가였던 그의 아버지의 영향이 적지 않게 작용했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일년>, <모범경작생>, <아버지의 꿈>, <목화씨 뿌릴 때> 등의 주요작품들은 민족운동의 계몽성이나 사회주의의 목적성을 표방하지 않고 농민의 실상이나 집념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문학사적 의미를 가진다. 광복 후 그는 소설의 무대를 도시로 옮겨 도시 소시민의 생활을 중심으로 인간고독과 윤리의 문제를 집요하게 추구했다. 이러한 추구를 통해 그는 본래 고독한 존재이지만, 이에 절망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고양된 정신의 세계로 승화시켜나가려는 인간의 삶의 의지와 자세를 부각시키고 있다. 또 이와 반대로 물질과 쾌락만능의 세태 속에서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윤리의식마저 마비되어버린 현대인의 타락상을 폭로하기도 했다. 그는 문단적 시류에 편승하기를 거부하고 문학적인 문학을 추구하는 가운데 많은 장편과 단편을 썼다. 그의 작품들은 여러 종류의 소재를 다루고 있으나 일관된 흐름을 지니고 있으며, 인간의 미묘한 감정의 물결을 첨삭하면서, 인간의 근원적인 윤리성을 끝까지 지켜내는 인간들의 성실한 노력을 추구했다. - 참고: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편, 누리미디어, 2002 <한국현대문학작은사전>, 가람기획편집부 편, 가람기획, 2000
생애
평남 강서에서 출생한 박영준은 평양 숭실중학교, 광성고보를 거쳐 연희전문을 졸업하였고, 1934년 <신동아> 현상모집에 장편 <일년>과 콩트 <새우젓>이,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모범경작생>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1935년 독서회사건으로 피검되어 5개월간 구류당했고, 1938년 만주 길림성 반석현으로 이주해 교편생활을 했다. 광복 후 귀국해 신세대사에 입사했고, 경향신문 문화부장, 고려문화사 편집장 등으로 활동하였다. 1948년 군본부 정훈감실 문관으로 복무, 종군작가단 사무국장으로 활동했다. 1955년 한양대 부교수, 1962년에는 연세대 교수로 근속했다.
약력
1911년 평남 강성 출생 1934년 연희전문 졸업 / 장편 <일년>과 꽁트 <새우젓>이 <신동아> 창간기념 현상모집에 당선 /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모범경작생>이 당선되어 등단 1935년 독서회 사건으로 5개월간 구류, 이듬해 석방 1938년 만주에서 교편생활 1946년 귀국하여 월간지 <신세대> 기자 / 경향신문 기자 1948년 종군작가단 사무국장 1955년 연세대학교·수도여자사범대학 강사 1958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1959년 한양대학교 부교수 1962년 연세대학교 교수
상훈
1954년 아세아자유문학상 - <그늘진 꽃밭> 1965년 대한민국예술원상 1967년 서울시문화상 1975년 문화예술상은관문화훈장 단편소설집 <목화씨 뿌릴 때>(1946) <풍설>(1951) <그늘진 꽃밭>(1953) <방관자>(1960) <고호>(1964) <슬픈 행복>(1971) 장편소설 <열풍>(1954) <고속도로>(1970) <태풍지대>(1972) <지향>(1974)
작가의 말
(……) 가장 초기의 작품이기 때문에 문장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철자법도 현행 철자법과 많이 달랐다. 그래서 정정을 했지만 전적으로 고칠 수는 없었다. 그런만큼 불만이 많은 작품이다. 그러나 나는 일상의 착취정책 밑에 신음하던 당대의 농민생활을 그린 나에게 있어서는 소중한 작품이라 생각했다. 특수한 상황 속에서 가난하게만 살던 농민들-그들은 대부분이 소작인이었다. 그 소작인들은 일상의 세금과 부역 등으로 부당한 착취를 당했고 또 국내 지주의 지나친 소작료에 신음하며 희망이란 것을 잃은 채 살아왔다. 그러한 소작인들의 가난한 생활을 사실적으로 그리려 했던 것이 <일년>이다. 말하자면 되풀이되는 소작인의 일 년 동안 생활을 있는 그대로 그려보려 한 작품이다. 현재의 농민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생활이었다. 따라서 당시의 농민의식은 현재의 농민의식과 판이하다. 현재의 농민들은 자기들의 창의와 노력으로 얼마든지 잘 살 수가 있다. 그러나 당시의 토지 없는 농민들에게 있어서는 일상의 착취와 지주의 소작료에 얽매여 희망이란 것을 가질 수 없었다. 가장 불행했던 시대의 농민들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불행한 농민들을 불쌍하게 생각하며 쓴 것이 <일년>이 아니었던가 한다. (……) - ‘전기(前記)’, 박영준, <일년>, 연세대출판부, 1974
평론
(……) 그의 작품은 앞서 말했듯이, 공간적 배경의 변화로 크게 일별될 수 있겠는데, 해방 전에는 거의 모든 소설들이 ‘농촌’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데 비해, 해방 후에는 ‘도시’의 삶과 풍속으로 그 탐구 대상이 대부분 바뀐다. 이러한 변모 과정은 그의 주제 의식의 변화와도 긴밀히 연관되는 현상으로서, 전자의 세계가 가난한 농민들에 대한 단단한 유대감을 토대로 일제 및 지주에 대한 강력한 저항을 그리고 있다면, 후자의 세계는 전쟁에 대한 증언과 고발, 소시민들의 윤리적 일탈과 그 나름의 회복 양상, 그리고 심미적 의식을 가진 소시민의 일상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 그리고 1960년대 이후로는 기독교 의식을 강하게 침윤시킨 작품들을 창작하는데, 이는 그가 집착해 마지않은 윤리적 지향이 심화된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당대의 비평가 조연현은 외부적인 체험이 내부 경험으로 형상화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요구된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훌륭한 전쟁문학이 나오기 위해서는 현재의 체험이 민족적인 경험으로 형성될 때까지 인내로써 기다려주어야 한다”는 점을 말한 바 있다. 당분간은 전쟁에 대한 경험의 형상화보다는 “전쟁에 대한 체험의 기록”에 만족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전쟁소설은 결과적으로 남한 체제와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강화하고 옹호하는 논리로 귀결되는 작품들일 수밖에 없었고, 대부분의 작품들은 작가의 이데올로기가 작품에 직접 투사됨으로써 현실 반영에 일정한 왜곡을 초래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1950년대의 전쟁소설에서 우리가 이념적 배타성을 넘어선 역사적 원근법을 기대하기는 애초에 무리가 아닐 수 없다. 다만 만우(晩牛)는 주로 단편을 통해 이념과 역사적 특수성을 넘어서는 추상적 휴머니즘을 작품적 본령으로 삼아 소설을 쓴 작가로 기록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인간에 대한 일관된 윤리적 긍정의 시선은 한 시대의 유행 사조에 몸을 내맡긴 결과라기보다는, 그가 갖고 있는 사유의 뿌리가 휴머니즘에 원천적으로 닿아 있던 결과라고 보는 것이 옳은 것이다. 만우(晩牛) 전후소설의 제재적 핵심에는 전후에 초래된 사회적 혼란상이 직접적으로 담겨 있다. 그 ‘혼란’의 핵심은 자기정체성을 설정하지 못한 채 욕망의 과잉과 무방향성에 의해 흔들리는 인간들의 행태이고, 그에 대한 비판과 그것을 바로 회복해야 한다는 윤리적 지향이야말로 이 작가의 주된 전언인 것이다. 특별히 전후 사회의 후유증이 전통 윤리의 급속한 붕괴, 서양문화와의 직접적 교섭에 의한 가치체계의 일탈로 집약될 수 있다면, 만우는 그것을 회복하고 정립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자연스럽게 이 시기의 문학은 그러한 시대적 양상에 대한 비판적 성격을 띠게 된다. 따라서 만우 전후소설의 핵심에는 사람들의 욕망 과잉과 그에 따른 일탈, 인간 관계의 혼란, 그리고 그것을 ‘사랑’이라는 원초적 구심력으로 회복하는 상승적 짜임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러한 성격의 소설들은, 해방과 전쟁이라는 격동의 흐름이 초래한 물리적, 정신적 충격, 다시 말하면 전통적 가치와 양식의 붕괴나 성적 타락, 물질 우선주의를 강렬하게 고발한다. 사람살이에서 ‘윤리’는 인간의 행위 양식에 일정한 기준을 부여하고 또 한 사회를 통합하는 힘을 지속적으로 행사한다. 그런데 ‘윤리’는 고정 불변의 이념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이나 가치관의 변화에 따라 일정한 탄력을 부여받으면서 변화해간다. 따라서 ‘윤리’는 사회 역사적인 상상력의 매개에 의해 그 구체성을 획득하게 되며 그렇지 못할 경우, 구성원들을 억압하는 추상적 지배 이념이 될 수도 있다. 만우의 작품에 나타나는 윤리는 그런 점에서, 비록 대안적 성격은 강하지만, 사회 역사적 상상력의 매개가 빈곤하여 추상적인 당위로 줄곧 나타난다. 이를 일러 ‘추상적 보편성’으로의 깊은 침윤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 만우는 이상과 같은 전후소설을 통해 도시인들의 윤리적 일탈과 정체성 혼란을 파헤쳐 그것의 회복이 절실하게 필요함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기본적으로 만우가 지니고 있는 인간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헌신’을 바탕으로 하는 ‘사랑’만이 진실한 것이며, 그 ‘사랑’의 원형적 구심을 이루는 기본 단위가 ‘가정’이라는 소설적 전언은 이 시기 만우의 주제의식을 고스란히 집약하는 것이다. 결국 만우는 지속적인 윤리 편향의 시각으로 세상을 읽고 치유하려는 모랄리스트로서의 모습을 견지한 작가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건강한 주제의식에도 불구하고 이런 유형의 소설들은 적지 않은 매너리즘을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사건의 해결이 단순하고 명료하다는 점, 그리고 그 명료성에 서사적 개연성보다는 작가의 전언이 깊이 개입한다는 점, 지나치게 많은 삽화들을 통해 서사적 집중을 흩뜨리고 있다는 점, 정체성 상실을 성적 측면에서만 주로 부각시킴으로써 탈역사성을 증폭시킨 점 등이 그 대강의 이유이다. 소시민의 일상성과 소외의식을 다루는 것은 이 시대 그의 또 다른 소설적 주제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만우의 작품들은 그것을 사회 역사적인 시각에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다소 고답적인 심미성으로 바꾸어버린다는 데 그 특색이 있다. <고호>의 주인공을 통해서도 그러한 심미성 지향은 잘 드러난다. 직장에서의 구속된 생활과 궁핍하고 불안한 현실 때문에 주인공인 만호는 늘 불안에 시달린다. 그는 어느 다방에 놓여진 구리 항아리에서 영원한 미와 평화를 느껴, 월급을 모두 털어 어떤 노인이 가지고 온 고려자기를 사고 만다. 이와 같은 짧은 서사를 통해 작가는 한결같이 심미적 의식을 강조하며 자본주의 사회의 속물적 경제 논리에 대한 대안적 기율을 ‘심미성’으로 제시한다. 따라서 이 작품에는 자본주의의 물신성과 비인간성을 탈속적인 심미성으로 비판하려는 작가적 의도가 담겨 있는 것이다. (……) 그러나 이같이 고독한 인간의 초상을 작품 속에 집요하게 그려내는 것은 작가가 지천명을 넘기는 1960년대 이후 더 심도 있는 형상을 얻게 된다. 이러한 경향은 그가 초기 농민소설에서 지향했던 사실성에 바탕한 리얼리즘과는 달리, 정치·사회적 현실에서 떠나 인생의 문제를 차분히 서정하는 일종의 ‘리리시즘’에 접근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 그와 같은 경향의 변이는 그동안 농민작가로만 알려져 있던 박영준 소설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 - ‘역사와 일상에 대한 윤리적 투시’, 유성호, <비평문학>, 2001년 7월호
관련도서
‘역사와 일상에 대한 윤리적 투시’, 유성호, <비평문학>, 2001년 7월호 ‘구세대의 전쟁문학에 나타난 중립적 시각과 윤리의식: 박영준을 중심으로’, 김외곤, <한국학보>, 1990년 12월호 ‘소박한 성실성과 신윤리주의: 박영준의 문학·인간’, 유주현, <한국문학>, 1976년 9월호 ‘빈곤과 고독의 의미: 박영준의 문학세계’, 이선영, <한국문학>, 1976년 9월호 <일제하 한국농민소설 연구>, 조남철, 연세대 박사논문,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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