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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순(吳相淳)

예술가명
오상순(吳相淳)
전공
개요
공초 오상순의 작품 세계의 주조를 이루고 있는 것은 ‘허무’이다. 허무를 추구한 그의 무상(無想)은 <방랑의 마음>, <허무혼의 선언>, <폐허의 낙엽> 등의 시에 잘 나타난다. 그의 초기 시는 내면세계를 향한 눈길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남궁벽의 시와 공통적인 성격을 지닌다. 그러나 남궁벽의 시가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관점을 지니고 있는 데 반해, 오상순의 시는 이와 무관할 뿐 아니라 관념적인 제재를 상상력의 다변화를 통해 형상화하고 있다. 시 <폐허의 제단>은 <시대고와 희생>에서 주장된 에세이가 시화된 것으로 <아시아의 마지막 밤풍경> 보다 세련되고 선명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 초기시에서 일관된 허무는 1953년에 씌어진 <해바라기>에 이르러 빛과 열과 생명의 원천인 해바라기의 ‘황금의 잔’으로 변모한다. 1953년의 휴전과 또 하나의 폐허 앞에서 그는 ‘황홀의 미소’에 대면하게 되었고, 해바라기의 의인화에서 허무를 초극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보아 그의 시는 어휘구사가 생경하고 언어의 감각적 사용에도 그리 능한 편은 아닌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나, 대표작으로 일컬어지는 <방랑의 마음> 등 몇몇 작품에서는 사물의 심상화를 성공적으로 시도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밖에도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아시아의 마지막 밤 풍경>에서는, 호흡이 길고 주제를 부각시키기 위해 여러 사실을 차례로 제시하는 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 참고 :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편, 누리미디어, 2002 <한국현대문학작은사전>, 가람기획편집부 편, 가람기획, 2000 <한국근대문인대사전>, 권영민 편, 아세아문화사, 1990
생애
서울에서 출생한 오상순은 경신학교를 거쳐 일본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 종교철학과를 졸업하였다. 그는 원래 기독교 신자로서 1919년 교회 전도사로 있었으나 그 뒤 불교로 개종해 1921년 조선중앙불교학교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다. 전국 여러 사찰을 전전하면서 참선과 방랑의 생활을 계속하면서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김억, 남궁벽, 황석우 등과 함께 <폐허>의 발간에 참여하여, 그 창간호에 <시대고와 희생>이라는 글을 발표함으로써 문학활동을 시작하였다. 이 글은 3·1운동 실패 직후의 식민지 한국의 현실적 상황에서 출발하여 황량한 식민지 현실을 파괴함으로써 새로운 건설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을 담았다. 1956년 예술원상, 1962년에 서울시문화상을 수상하였으며, 1963년 6월 3일에 사망하였다. 생전에는 한 권의 시집도 남기지 않았으며, 사후인 1963년에 동료와 제자들이 <공초오상순시선>을 출간하였다.
약력
1894년 서울 출생 1901년 어의동학교 입학 1912년 경신학교 졸업 후 도일하여 도시샤대학에 입학 1918년 도시샤대학 종교 철학과 졸업 1920년 <폐허> 동인으로 참가 1925년 보성고보 교원 역임 1930년 불교중앙학림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불교로 개종 1946년 서울 안국동 부근의 역경원, 선학원, 조계사에 기거 1951년 대구, 부산 등지에서 피난생활 1953년 서울 조계사로 돌아와 문인들과 청동시대를 열고 <청동산맥> 만듦 1954년 대한민국예술원 종신회원 1961년 조계사 나옴 1963년 건강 악화로 입원, 타계
상훈
1956년 대한민국예술원상 1962년 서울시문화상 시집 <공초오상순시선>(1963) <방랑의 마음>(1977) <아시아의 마지막 밤 풍경>(1983) <허무혼의 선언>(1987)
작가의 말
(……) 세계는 표현을 요구한다. 확실히 요구한다. 어느 존재가 표현 아닌 것이 있으랴. 한 폭의 나뭇잎, 한 알갱이의 모래알, 어느 것이 존재 그것의 자기 표현 아닌 것이 있으랴. 존재 그것이 곧 표현 그것이다. 표현 아니고는 존재 그것이 성립하지 못하는 까닭으로. (……) 그러니까 ‘세계는 표현을 요구한다’ 함은, 즉 ‘나는 표현을 요구한다’는 말로 전환할 것이다. 나는 표현을 요구한다. 나라 하는 존재 그것이 이미 표현 그것이요, ‘나’의 의식 그것이 곧 표현작용 그것이 아닌가. 그러니까 나는 표현을 요구한다 함은, 나 자신의 지분(持分)의 표현을 나는 발휘하고 실현하기를 요구한다는 말이다. 자아실현을 의미한다. 나는 나를 표현하여야 하겠다. 내가 살았다, 산다 함은 나를 표현한다, 표현을 요구한다는 말이다. 나는 절대의 표현을 요구한다. 나는 나의 표현의 능력과 범위가 어디까지 뻗쳐 나아갈지를 알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절대적 표현을 요구한다 함은 일종의 망상도 같고 사실 독단이다. 그러나 독단임을 뻔히 알면서도 그 독단을 범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그만큼 나의 요구는 절실하다. (……) 나와 세계는 표현을 요구한다. 세계는 ‘나’를 통하여 표현을 요구한다. 강청(强請)한다. 세계는 그의 표현을 ‘나’를 향하여 주장하며 도전하며 절대로 명령한다. 나는 세계를 걸어 ‘나’를 표현할 것이다. 이것이 그의 무상(無上) 명령을 순종하는 도리이다. 세계는 나에게 그 자신을 계시하는 것이며, 나는 나 자체를 세계에 향하여 호소하는 것이다. 세계와 ‘나’는 실로 표현도(表現道)를 통하여 하나이다. 나는 나와 세계의 표현을 감당치 못하여 얼마나 고민을 하였으며 나의 표현력의 빈약함을 울었더냐. 위대한 표현의 의식, 표현의 자각, 표현의 사명, 나는 이 심각한 감격에 잠기어 두 주먹을 터질 듯이 부르쥐고 얼마나 울었던고. 오, 나에게 표현의 힘을 주어라. 나는 세계를 다시 한 번 창조하련다. (……) - ‘표현’, 오상순, <짝 잃은 거위를 곡하노라>, 범우사, 2003
평론
(……) <시대고와 그 희생>은 3·1운동 실패 직후의 식민지 한국의 현실적 상황에서 출발되어 있다. (……) “우리 조선은 황량한 폐허의 조선이요, 우리 시대는 비통한 번민의 시대이다. 이 말은 우리 청년의 심장을 쪼개는 듯한 아픈 소리다. 그러나 나는 이 말을 아니할 수 없다. 엄연한 사실이기 때문에. ……이것을 의심할 수 없고 부정할 수도 없다. 이 폐허 속에는 우리들의 내적, 외적, 심적, 물적의 모든 부족, 결핍, 결함, 공허, 불평, 불만, 울분, 한숨, 걱정……눈물, 멸망과 사의 제악이 쌓여 있다. ……그러면 우리는 그만 죽고 말 것인가? 아니다!”(<시대고와 그 희생> 중) <폐허>의 창간호에 실린 이 글에서 ‘폐허’가 의미하는 것이 한국의 식민지 상황임을 금방 알 수 있다. 이 폐허의 극복은 첫째, ‘위선 파괴’에 있음을 오상순은 주장한다. 폐허와 싸운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생명의 자유의 실현’ 때문인 것이다. (……) 이러한 오상순의 주장은 무엇보다도 지극히 추상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의 조선이 황량한 조선이고 청년의 숨이 막히는 그러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 이 황량한 폐허를 파괴해야 한다고 했을 때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 걸일까. (……) 만일 오상순에 있어 파괴해야 될 대상을 우리가 가능한 방식으로 추측한다면 일제의 생명탄압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의 파괴는 독립군이 되는 길밖에 없다. (……) 이 막힘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소위 ‘허무’인 것이다. 오상순에 있어 이 허무가 필연적이라 함은 그의 작품 전체를 결정하는 인자라는 말과 같다. (……) 1920년대 초기 한국문학사는 현저히 시 중심으로 편향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한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그들 사회의 나아갈 지평이 혼미되어 보이지 않을 때엔 생의 순간적 지각에 몸을 던질 수밖에 없다면, 그러한 양식은 시의 선택을 의미하게 된다. 문학의 시작이 보통 시에서부터임은 실상 이 점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것은 1920년대 초엽 한국식민지 지식인의 허무주의와 완전히 대응관계에 놓인다. 그러나 이 허무주의는 192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 계급주의 사상과 함께 서서히 대사회적 대응력을 갖추면서 극복되기에 이른다. 양식상 그것은 산문의 선택을 의미한다. 여기까지에 이르는 과정 속의 가장 깊은 허무주의를 가장 선명하게 온몸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모뉴망적 존재가 바로 오상순의 문학사적 의미라고 나는 생각한다. (……) 널리 알려진 <아시아의 마지막 밤 풍경>의 첫 연에서 “밤은 아시아의 산모요 산파이다”라든가, “밤은 아시아의 심장이다”라든가 (……) 등등으로 이어지는 이 밑도 끝도 없는 언어의 나열은 메타포의 기능을 처음부터 상실하고 있다. ‘아시아’도 ‘밤’도 여기서는 처음부터 아무런 구체성을 띠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것에서 유추되는 메타포가 성립될 수가 없는 것이다. 각 연이 나눠져 있으나 하등의 진전이나 결말이 없고 처음의 되풀이에 지나지 않음은 당연한 일이다. 왜냐면 ‘아시아’나 ‘밤’ 자체가 허무이기 때문에 이 기본항에서 유추되는 모든 것이 늘 자동적으로 허무로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이 때문에 오상순은 인간의 인연의 끈이나 자기 감정의 표현이나 노래가 처음부터 거부당한 것이다. 허무의 기본항 속에 그러한 인간문제는 제로에로 함몰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허무라는 이 기본항에 대응되는 사상의 등가물이란 무엇이며, 그 발견은 가능한가? 이 물음의 답변이 <해바라기>다. 그것은 우주다. 이 해바라기에까지 이르는 중간단계에 놓인 것이 <폐허의 제단>이라 할 수 있다. (……) 이 작품은 <아시아의 마지막 밤 풍경>보다는 훨씬 세련되고 또한 하나의 선명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 장시가 물론 하나의 스토리를 갖고 있다는 뜻이 아니라, <시대고와 그 희생>에서 주장된 에세이가 시화되어 있다는 뜻일 따름이다. 모든 생명은 폐허의 제단 아래 엎드린다. 늙은이는 죽고, 남아는 땀을 흘리며 타오른다. 처녀의 잉태가 시작되고, 한 아이의 고고한 탄생이 있다. 창조의 신의 거룩한 횃불은 바로 태를 사르는 그 빛과 같은 순간에 어둠만 가른다. (……) 작품 <해바라기>가 씌어진 것은 1953년이다. <폐허의 제단>에서 30년의 세월이 이 <해바라기> 속에 잠겨 있다. 해바라기 그것은 우주이고 황금인데, 어째서 이 한 편의 수작이 만년에 나올 수 있었는가를 나는 여태껏 설명하려 했는데, 그 설명이 설명 같지 않게 되고 말았다. 역사와 사회를 떠나면서, 부단히 그 속에서 호흡해온, 그리고 항시 한계인간의 자리지킴이 역사에의 콤밋트 못지 않게 어렵다는 것에 대한 하나의 실증인 것일까. 우리가 역사와 사회 속에 콤밋트할 때 부딪치는 실패에의 공포가 제거된 자리를 마련해준다는 것이 이 노대가의 의미였는지도 모른다. 다만 내가 시방 어렴풋이 알 수 있는 것은 ‘허무’가 해바라기라는 순금으로 바뀌는 거리를 잴 수 있다는 것뿐이다. (……) 허무가 빛과 열과 생명의 원천인 해바라기의 ‘황금의 잔’으로 변모하기까지의 30년간의 세월은 어둠이었다. 포성이 강산을 찢은 1953년의 휴전과 또 하나의 폐허 앞에 그는 드디어 ‘황홀의 미소’에 대면하였다. 운명의 미일 수밖에 없는 이 해바라기의 의인화는 그 방법론상에서 친화적이다. ‘영원히 비밀한 생명의 역사를 새긴 기념비’로서의 그와 나는 동질적이기 때문이다. 이것만이 올연히 창공을 꿰뚫어버릴 수 있다는 것, 이 버팀만이 허무의지의 극복이기 때문이다. (……) - ‘허무에서 해바라기: 공초 오상순고’, 김윤식, <시인 공초 오상순>, 자유출판사, 1988
관련도서
<오상순 시 전집: 아시아의 마지막 밤 풍경>, 구상 편, 한국문학사, 1983 <짝 잃은 거위를 곡하노라>, 오상순 외, 범우사, 2003 <한국현대시 대표작품 연구>, 신용협 편, 국학자료원, 1998 <시인 공초 오상순>, 구상 편, 자유출판사, 1988
연계정보
-아시아의 마지막 밤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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