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푸터 바로가기
> 문화지식 예술지식백과

예술지식백과

문화 관련 예술지식백과를 공유합니다

김춘수(金春洙)

예술가명
김춘수(金春洙)
전공
개요
김춘수의 작품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사물로 비친다. 모든 것이 인식의 대상으로서의 사물이고, 그의 언어는 인식을 위한 연장이며, 그는 인식의 시인이다. 인식을 위한 연장으로서의 언어가 담당하는 것은 사물의 깊은 안쪽으로 들어가서 본질을 발견하고 잡아내는 일이다. 그런데 본질이란 것은 의미 이전의 것이기 때문에 언어자체가 잡아내지 못한다. 그것을 할 수 있는 것은 이미지다. 그리하여 그의 언어는 이미지 구성의 자료가 되지 않으면 안 되고 그럼으로써 언어가 언어의 자리를 떠나고 이미지가 언어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이런 뜻에서 그는 이미지의 시인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1972년 발표한 <처용단장 · 제1부>에는 그의 언어인 이미지가 가장 밀도 있게 나타나 있다. 그는 이미지의 추구로써 우리 시의 표현이 조형적 리얼리티를 가지게 한 시인이다. 그의 시세계는 크게 네 시기로 나뉘어진다. 첫째 시기는 <꽃>, <꽃을 위한 서시> 같은 작품들처럼 사물의 존재에 대한 인식이 언어를 통해서만 이루어진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1950년대 말에서 1960년대 초에 이르는 둘째 시기는 이미지를 위한 이미지, 곧 묘사를 지향하는 서술적 이미지를 특징으로 한다. 한편 이 시기에는 언어유희가 두드러진 <타령조> 같은 시들도 나타난다. 셋째 시기는 <처용단장> 제2부를 중심으로 하여 탈이미지의 세계가 강조된다. 넷째 시기는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까지로 종교 혹은 예술에 대한 성찰이 돋보인다고 할 수 있다. - 참고 :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편, 누리미디어, 2002 <국어국문학자료사전>, 국어국문학편찬위원회 편, 한국사전연구사, 1995
생애
경남 충무에서 출생한 김춘수는 통영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경기중학교를 거쳐 일본 니혼대학 예술과를 중퇴했다. 통영중학교, 마산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했으며, 마산대학·경북대학·영남대학 교수를 역임했다. 1949년 시 <산악>을 <백민>에, 시 <사(蛇)>를 <문예>에 발표하였으며, 주로 <문학예술>, <현대문학>, <사상계>, <현대시학> 등에서 창작과 평론활동을 전개했다. 1945년 충무에서 유치환, 윤이상, 심상옥 등과 통영문화협회를 만들어 예술운동에 참여했고, 1946년 조향, 김수돈 등과 동인지 <로만파>를 발간한 바 있지만, 본격적인 문단활동은 1948년 대구에서 발행되던 <죽순> 8집에 시 <온실> 등을 발표하고, 첫 시집 <구름과 장미>를 간행하면서 시작되었다. 1956년 유치환, 김현승, 송욱, 고석규 등과 시동인지 <시연구>를 발행하기도 했다.
약력
1922년 경남 통영 출생 1939년 경기공립중학교 5학년 때 자퇴하고 일본 동경으로 건너감 1940년 일본 니혼대학 예술학원 창작과 입학 1942년 일본의 카와사티시 부두에서 화물선 석탄 하역 작업을 하다가 불경죄로 연루, 세다가야 경찰서에 6개월간 유치되었으며 퇴학 처분 1945년 통영에서 유치환, 윤이상, 김상옥, 전혁림, 정윤주 등과 통영문화협회 결성 1946년 통영중학교 교사로 부임 / 동인지 <로만파(魯漫派)> 발간 / <백민>, <예술신문>, <영문> 등에 시 발표 1949년 마산중학교로 전근 1952년 설창수, 구상, 이정호, 김윤성 등과 시동인 <시와 시론> 결성 1956년 유치환, 김현승, 송욱, 고석규 등과 동인지 <시연구> 간행 1958년 부산대학교, 해군사관학교 등에 출강 1960년 해인대학 조교수 1961년 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전임강사 1964년 경북대학교 문리과대학 교수 1979년 영남대학교 문리과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1981년 국회의원(문공위원)으로 활동 /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피선 1982년 경북대학교 명예문학박사 학위 1986년 방송심의위원회 위원장 / 한국시인협회 회장 1991년 한국방송공사 이사
상훈
1958년 한국시인협회상 1959년 아세아자유문학상 1966년 경상남도문화상 1992년 은관문화훈장 시집 <구름과 장미>(1948) <늪>(1950) <기(旗)>(1951) <린인(隣人)>(1953) <제일시집>(1954) <꽃의 소묘>(1959)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1959) <타령조 기타(打令調 其他)>(1969) <처용>(1974) <남천>(1977) <비에 젖은 달>(1980) <처용이후>(1982) <라틴점묘(點描) 기타>(1988)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1990) <처용단장>(1991) <돌의 볼에 볼을 대고>(1992) <서서 잠자는 숲>(1993) 소설집 <꽃과 여우>(1997) 평론집 <시론>(1961) <의미와 무의미>(1976) <시의 표정>(1979) <시의 이해와 작법>(1989) <시의 위상>(1991) 수필집 <빛속의 그늘>(1976) <오지 않는 저녁>(1979) <시인이 되어 나귀를 타고>(1980) <하나님의 아들, 사람의 아들>(1985)
작가의 말
(……) 자각을 못 가지고 시를 쓰다 보니 남은 것은 톤뿐이었다. 이럴 때 나에게 불어닥친 것은 걷잡을 수 없는 관념에 대한 기갈이라는 강풍이었다. 그 기세에 한동안 휩쓸리다 보니, 나는 어느새 허무를 앓고 있는 내 자신을 보게 되었다. 나는 이 허무로부터 고개를 돌릴 수가 없었다. 이 허무의 빛깔을 나는 어떻게든 똑똑히 보아야 한다. 보고 그것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의미라고 하는 안경을 끼고는 그것이 보이지가 않았다. 나는 말을 부수고 의미의 분말을 어디론가 날려버려야 했다. 말에 의미가 없고 보니 거기 구멍이 하나 뚫리게 된다. 그 구멍으로 나는 요즘 허무의 빛깔이 어떤 것인가를 보려고 하는데, 그것은 보일 듯 보일 듯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처용단장> 제2부에 손을 대게 되었다. 이미지가 대상에 대한 통일된 전망을 두고 하는 말이라면 나에게는 이미지가 없다. 이 말은 나에게는 일정한 세계관이 없다는 것이 된다. 즉 허무가 있을 뿐이다. 이미지 콤플렉스 같은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나에게는 없다. 시를 말하는 사람들이 흔히 이미지를 수사나 기교의 차원에서 보고 있는 것은 하나의 폐단이다. 나에게 이미지가 없다고 할 때, 나는 그것을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한 행이나 또는 두 개나 세 개의 행이 어울려 하나의 이미지를 만들어가려는 기세를 보이게 되면, 나는 그것을 사정없이 처단하고 전연 다른 활로를 제시한다. 이미지가 되어가려는 과정에서 하나는 또 하나의 과정에서 처단되지만 그것 또한 제3의 그것에 의하여 처단된다. 미완성 이미지들이 서로 이미지가 되고 싶어 피비린내 나는 칼 싸움을 하는 것이지만, 살아남아 끝내 자기를 완성시키는 일이 없다. 이것이 나의 수사요, 나의 기교라면 기교겠지만 그 뿌리는 나의 자아에 있고 나의 의식에 있다. 서도(書道)나 선(禪)과 같이 동기를 고사하고, 그러한 그 행위 자체는 액션 페인팅에서도 볼 수 있다. 한 행이나 두 행이 어울려 이미지로 응고되려는 순간, 소리(리듬)로 그것을 처단하는 수도 있다. 소리가 또 이미지로 응고하려는 순간, 하나의 장면으로 처단하기도 한다. 연작에 있어서는 한 편의 시가 다른 한 편의 시에 대하여 그런 관계에 있다. 이것이 내가 본 허무의 빛깔이요, 내가 만드는 무의미의 시다. 잭슨 폴록의 그림에서처럼 가로세로 얽힌 궤적들이 보여주는 생생한 단면-현재, 즉 영원이 나의 시에도 있어주기를 나는 바란다. 허무는 나에게 있어 영원이라는 것의 빛깔이다. (……) - ‘의미에서 무의미까지’, 김춘수, <김춘수 시전집>, 민음사, 1994
평론
1950년대 모더니스트로서 김춘수가 보여준 특성은 이른바 존재에 대한 물음이고, 그것은 <꽃> 같은 시에서 존재와 언어의 문제로 나타났다. 그러나 그는 1960년대에 오면서 이런 시, 이른바 관념적인 시에 대해 회의를 느끼면서, 그의 말에 의하면 ‘관념의 공포’를 느끼면서 서술적 이미지의 세계를 추구한다. 그가 말하는 서술적 이미지는 비유적 이미지와 대립된다. 비유적 이미지가 관념을 전달하는 이미지, 따라서 수단이 된다면, 서술적 이미지는 그런 수단성을 초월하는, 이미지를 위한 이미지가 된다. 그런 점에서 서술적 이미지라는 용어보다는 묘사적 이미지라는 용어가 더 적절할 것 같다. (……) 이런 묘사적 이미지의 세계는 관념의 배제를 노리는, 그런 점에서 순수시를 지향한다. 물론 그도 말하였듯이 이런 이미지의 세계에도 관념이 개입한다. 그러나 그는 이런 묘사의 극한, 사생의 극한을 추구하고, 거기서 그가 발견하는 것은 자유연상의 개념이다. 말하자면 사생의 극한에는 자유연상이 개입한다는 논리이고, 자유연상이 강조되는 경우 대상의 세계는 사라진다. 묘사의 극한이 세잔과 관련된다면 자유연상은 액션 페인팅 미학으로 발전한다. (……) 김춘수는 <처용단장> 제1부에서 자유연상의 논리와 만나지만 제2부에 오면서 대상의 무화가 아니라 허무를 자각하고, 허무의 빛깔에 집착하고, 마침내 무의미와 만나고 ‘무의미시’라는 개념을 주장한다. 이때 무의미란 의미가 사라진 언어가 환기하는 허무의 율동을 뜻한다. 그는 이런 세계를 “잭슨 폴록의 그림에서처럼 가로세로 얽힌 궤적들이 보여주는 생생한 단면-현재, 즉 영원”이라는 말로 요약한다. (……) 무의미가 아니라 무의미의 의미가 중요하다. 김수영도 그렇고, 김춘수도 그렇고, 결국 그들이 강조하는 것은 이런 무의미의 의미이다. 김수영은 <시여, 침을 뱉어라>에서 온몸에 의한 온몸의 이행이 사상이며 시의 형식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런 형식은 내용과 동심원을 이룬다. 말하자면 형식과 내용의 구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둘을 껴안고 나가는 것, 무한대로 접근하는 것, 혼돈을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주장은 액션 페인팅의 논리에 따르면 결국 내용과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행위 자체, 그러니까 시 쓰기 자체가 중요하다는, 그리고 이런 쓰기는 머리나 심장만 강조하는 전통적인 시 쓰기를 초월한다는 명제를 낳는다. 김수영이 온몸의 문제를 강조할 때 김춘수는 언어의 문제를 강조한다. 온몸이냐 언어냐가 문제지만 결국은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두 시인 모두 궁극적으로 노리는 것은 궁극적 실재를 궁극적으로 실현하려는 노력이고, 그것이 김수영의 경우에는 사랑의 발견과 통하고 김춘수의 경우에는 허무의 자각과 통한다. 이런 문제가 문제인 것은 이런 주장, 혹은 시 쓰기가 모두 이원론적 세계관을 극복하려는 노력과 통한다는 점에 있다. (……) 요컨대, 김수영, 김춘수가 우리 모더니즘 시를 발전시키고 개혁하고 새로운 공간을 개시한 것은 참여나 순수라는 개념 때문이 아니라 사랑과 허무에 대한 새로운 자각 때문이고, 이런 자각은 내용이나 형식을 강조하는 전통적인 시론, 혹은 시 쓰기를 극복하면서 이른바 행위의 문제를 낳는다. 그러니까 온몸의 시작과 무의미의 시학은 표면적으로는 다르지만 크게 보면 모두 추상표현주의 미학, 혹은 반미학을 매개로 하고, 이런 미학은 궁극적 실재, 움직임, 행위를 강조하는 동양 미학에 의한, 동양 미학을 위한, 동양 미학의 새로운 해설을 낳는다. 그것은 내가 움직이는 게 아니라 움직임 자체가 움직이는 세계이다. - ‘김춘수의 무의미시에 대하여’, 이승훈, <김춘수>, 문학사상사, 2003
관련도서
<김춘수시전집>, 김춘수, 민음사, 1994 <김춘수>, 김춘수, 문학사상사, 2003 <한국현대시 창작방법 연구: 김수영, 김춘수, 서정주>, 노철, 월인, 2001 <양식과 심상: 김춘수와 정지용의 동적 체계>, 이창민, 월인, 2000 <김춘수의 시세계>, 김두한, 문창사, 1992 <김종삼·김춘수 시의 모더니티 연구: 시간의식을 중심으로>, 박은희, 성신여대 박사논문, 2003 <김수영 시와 김춘수 시의 대비적 연구>, 강영기, 제주대 박사논문, 2003 <김춘수 시의 상호텍스트성 연구>, 김의수, 서울대 박사논문, 2002 <현대시의 담화론적 연구: 김수영, 김춘수, 김종삼의 시를 대상으로>, 이민호, 서강대 박사논문, 2001 <김춘수와 고은 시의 허무의식 연구>, 이인영, 연세대 박사논문, 2000 <한국 현대시의 시작방법 연구: 김춘수, 김수영, 신동엽의 시를 중심으로>, 권적웅, 고려대 박사논문, 2000 <김춘수 시 연구>, 이창민, 고려대 박사논문, 1999
연계정보
-꽃
관련멀티미디어(전체3건)
이미지 3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