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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성(金潤成)

예술가명
김윤성(金潤成)
전공
개요
김윤성의 시집으로는 <바다가 보이는 산길>, <예감>, <애가>, <돌의 계절> 등이 있는데, <바다가 보이는 산길>에는 해방 직후부터 1950년대 전반까지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이들 작품은 발레리와 릴케의 영향을 받아 주로 만물의 윤회를 지각한 형이상학적 고민과 비애를 노래하고 있다. <예감>의 시들은 형이상학적 세계를 추구하던 초기의 추상적 경향과는 달리 일상적 사상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그러나 일상에 대한 관심 이면에는 인생에 대한 허무감이 깔려 있으며, 이 점에서 <예감>의 세계는 초기의 형이상학적 세계와도 통한다고 하겠다. <애가>에 수록된 작품 중 대표작은 10편으로 된 연작시 <애가>이다. 이 시는 인생의 허무와 무상을 노래하면서도 연가(戀歌)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이 작품이 연가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은, 허무와 무상을 딛고, 애인 또는 당신으로 표상되는 영원한 가치를 추구하려는 노력의 소산이다. 김윤성의 시적 기교는 형이상학적 의미의 추구에 있으며 평범한 일상사를 극히 평이한 언어로 형상화함으로써 평범 속의 비범을 노린다. 쉬운 표현, 지나칠 정도로 잔잔한 톤 뒤에는 삶의 예지가 번뜩이며 또한 지적인 리리시즘이 깔려 있어 간과할 수 없는 여운을 남기고 있다. 1970년대 이후에는 서정성을 시의 바탕으로 하면서도 문명에 대한 현실의식 등을 융합해 모더니티가 있는 주지적 서정시를 발표했다. - 참고 :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편, 누리미디어, 2002 <한국현대문학작은사전>, 가람기획편집부 편, 가람기획, 2000
생애
서울에서 출생한 김윤성은 1938년 계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46년 구경서, 정한모 등과 함께 동인지 <백맥>의 동인으로 출발, 시 <들국화>, <밤의 노래> 등을 발표해 등단했다. 이어 <백맥> 동인 중에서 시인들만이 모여 1946년 <시탑> 동인회를 결성, 시 <배꼽>, <아침의 노래>, <산정에 서서> 등을 발표했다. 이 무렵 문예지와 신문 등에 시를 계속 발표해 시인으로서의 입지를 굳혀나갔다. 또한 1949년에는 <백민>에 소설 <명원이의 나>를 발표하기도 했으나, 이후 계속 시작(詩作)에만 전념했다. 해방 직후 청년문학가협회 창립회원으로 참가한 이래 <해동공론> 편집장, <현대문학> 주간, <문학정신> 주간, 한국현대시인협회 부회장 등을 지냈다. 한국문학가협회상, 월탄문학상, 예술원상, 대한민국문학상 등을 수상하였고, 1981년 예술원 회원으로 선임되었다. 시집으로는 <바다가 보이는 산길>, <예감>, <애가>, <돌의 계절>, <김윤성 시선>, <꺼지지 않는 횃불로> 등이 있다.
약력
1925년 서울 출생 1938년 서울계성보통학교 졸업 1946년 <백맥>에 시 <들국화> 등을 발표하면서 등단 1957년 연합신문 문화부장 1968년 경향신문 출판국장 1969년 한국문인협회 상임이사 1981년 한국예술문화단체 총연합회 부회장 /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1982년 현대문학사 주간 1986년 문학정신사 주간 1990년 대한민국예술원 문학분과 회장
상훈
1955년 한국문학가협회상 1971년 월탄문학상 1980년 대한민국예술원상 1981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 1995년 민족문학상 1996년 보관문화훈장 2001년 청마문학상 시집 <바다가 보이는 산길>(1959) <시의 고향>(1960) <예감>(1970) <애가>(1973) <자화상>(1978) <돌의 계절>(1981) <김윤성 시선>(1982) <돌아가는 길>(1991) <깨어나지 않는 꿈>(1995) <저녁노을>(1999)
작가의 말
인간이 인간에게 선물할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마음 편하고도 아름다운 것은 제 스스로의 심정에서 우러나온 노래뿐이다. 번잡한 현실생활에 지쳐 영혼의 갈증을 느낄 때, 우리는 스스로 자연을 생각하고 진선미를 동경하는 가운데, 마음의 고향을 찾아 헤매인 여러 시인들 품안에서 자그마하나마 인생의 위안을 구하지 않을 수 없다. 아름다운 것, 진실한 것을 동경하고, 영원한 것을 갈망하는 심정은 인간 공통의 감정이며, 그것은 마치 저 오월의 싱싱한 푸른 잎들처럼, 우리 일생을 통해 영혼을 부드러이 어루만져 줄 것이다. 시는 결코 설교를 하지 않는다. 시 안에 있어서의 예지는 스스로 그 태초의 모습 그대로, 예를 들자면 들판에 아무도 모르게 피어나는 백합꽃과도 같이 순수한 그대로 제시할 뿐이다. (……) - ‘책 머리에’, 김윤성, <시의 고향>, 신태양사, 1960
평론
(……) 오늘날 우리는 현대시를 말함에 있어서 두 가지의 측면에서 고찰하려는 방법론을 가지고 있다. 그 하나는 의식적인 내면성의 측면 또 다른 하나는 스타일적인 외형성의 측면이다. 시인의 시작 구조에 있어서 의식적인 면에 치중하든 또 혹은 스타일적인 측면에 비중을 두건 그것은 오로지 시인의 생리적인 시작태도에 귀속되는 문제이지만 시학적으로는 매우 주요한 논의의 대상이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 현대시의 두 가지의 유형에 대한 분류에서 볼 때, 김윤성의 시는 확실히 의식적인 내면성에 치중한 시의 범주에 속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한 견해일 것이다. (……) 그렇다고 하여서 이러한 그의 시세계를 단순한 풍경화라고는 보지 않으며 이는 그의 동양적인 사상을 바탕으로 하는 심적인 작용에서 우러나오는 순수한 ‘리아리테’의 시세계이며 그의 정서적인 성의 극치화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 <돌·3>은 그가 최근에 우리에게 보여준 시집 <돌의 계절>에 수록되어 있는 연시의 한 편이다. 우리는 이 시에서 그의 순수한 서정의 감성의 세계에서의 탈피를 본다. 그는 고정의 물체인 돌을 통하여 그의 심화된 인간의 세계를 내다보는 세계관과 유동하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의 삶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으며 현대문명에 대한 비평정신도 또한 엿보게 하고 있는 것이다. 돌처럼 세속에 물들지 않으려는 그의 차가운 이성이기에 때로는 고독한 인간의 유한성마저를 내다보는 그의 인간성은 우리로 하여금 숙연하게 한다. 또한 인간의 생명에 대한 유한성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라면 돌의 생명과 같은 무한성에 대한 희구는 인간의 본연의 자태일 것이다. 현대는 자기존재의 확인의 시대라고 하는 말이 있다.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 속에서 생명의 위협성을 극복한 존재의 확인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며 생명의 무한성에 대한 인간의 갈구는 오로지 정신세계를 통하여서만이 가능한 것이기에 오늘날 정신의 심화에 대한 눈물겨운 탐구가 있음을 우리는 안다. 이와 같은 정신세계의 개척은 주지적인 시에 있어서이든 또한 서정적인 시에 있어서이든 현대시의 공통의 과제로 삼을 수 있다는 데서 우리는 김윤성의 심화된 인간성을 바탕으로 하는 서정시의 새로운 세계에 무한의 가능성을 내다보며 이를 높이 평가하고자 한다. 따라서 그가 <돌의 계절>에서 이미 시도하였듯이 서정시에 있어서의 이지적인 논리성에의 개척은 앞으로의 서정시가 가는 바 새로운 통로를 마련하였다는 것을 나는 의심치 않는다. (……) 이미 잠깐 언급하여 온 것처럼 김윤성의 시세계의 스타일도 또한 평면적인 리아리테의 범주에 속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단순한 평면성에 그치지 않는 테크닉의 면모도 가지고 있음을 우리는 가끔 본다. “어느 때는 보이고 어느 때는 보이지 않는가 / 언제나 뒷모습만으로 / 외나무 다리를 가고 있는 스님.” 이와 같이 그는 리아리테의 구성에 있어서 적절한 원근법을 구사함으로써 시적 음영의 세계를 보여주는가 하면, “인식은 한갓 돌 위에 뜬 구름.” 이러한 상징적인 이미지의 불꽃마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음이 또한 주목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의 주의를 환기하고 있는 것은 그가 ‘돌’의 시세계에서 엮은 연시의 스타일이다. 일찍이 현대시가 19세기의 낭만주의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스타일의 개혁과 더불어 순수한 이미지만으로의 단시의 시세계를 구축하여온 바 있거니와 이에 다시 서사성을 부여한 장시의 형태로 발전하여온 과정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 유명한 엘리엇의 <황무지>와 에즈라 파운드의 <캔토스>가 그러했고 김기림의 <기상도>가 또한 그러했다. 또다시 최근에 이르러 독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형태로서의 현대시가 이를 다시 압축하여 연시의 스타일로 발전시키려는 움직임이 있는 이즈음, 그의 연시에 대한 관심은 하나의 새로운 시도로써 우리는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이는 확실히 그의 시세계의 발전을 의미한다. (……) 그는 과거에 있어서의 단순한 서정시의 세계로부터 인간의 자기심화의 세계에로 걸어왔으며, 이에 따른 스타일면에 있어서도 단순한 평면적인 리아리테로부터 때로는 상징적인 면모마저 보이면서 연시의 형태로까지 발전시켜왔다. 이는 그의 시세계의 눈부신 전진이며 서정시의 괄목할 만한 변모라고 보아서 나는 그가 쌓아올린 ‘바벨’탑을 아득하게 쳐다보는 것이다. - ‘자기심화의 세계’, 김경린, <현대시학>, 1982년 5월호(……) 김윤성의 시가 지니는 강한 전달성은 그의 정확한 시력에 연유하고 있다. 과욕하지 않고 적절한 거리에서 초점에 집중하는 시력으로 일상적인 사물이나 생활에서 범상치 않은 내면적 이미지를 포착한다. 또한 그 이미지를 그려내는 가장 적당한 묘사의 방면을 터득하고 있다. 그리하여 평범한 진리의 뒷면을 들추어 시의 의미를 끌어낼 줄 안다. 윤성의 시가 지니는 강한 전달성은 바꾸어 말하면 정확한 시적 뎃상의 실력과 보편적 진리의 발굴에서 온다. 개성적 이미지 뒤에 밀착된 보편적 의미의 중량이 윤성의 시의 무게를 이룬다. 이러한 윤성의 시에서 오늘날의 많은 시가 카오스의 상태에서 질서와 정돈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화가에게 정확한 뎃상 실력이 기본이 되는 것처럼, 시인에겐 하나의 이미지를 정확하게 그려내는 표현 능력이 필수적인 것이다. 다음에, 나타내고자 하는 의미의 정확한 표현이 뒤따라야 한다. 그렇다고 시에서 새삼스럽게 의미나 주제를 강조하는 말이 아니다. 의미의 확산이든 추방이든 어느 편이든 간에 그 의도가 분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시들이 초점과 거리가 분명치 않은 채, 표현조차도 미숙하여 그야말로 알 수 없는 혼자만의 위안을 하고 있는 시들이 눈에 거슬린다.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의 탈락과 비약도 좋고, 상반되는 의미의 충돌이나 상처로 인한 파라독스나 아이러니의 효과도 있을 수 있으며, 일상적인 의미의 완전한 추방을 위한 언어 구조도 시험해볼 수 있으며, 리듬의 파괴와 재건을 위한 불협화음의 새로운 매력도 신선할 수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 개척적인 시도들로 하여 현대시가 어려워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이만한 난해성을 적어도 시를 쓰는 입장에 있는 사람이라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들 사이에서도 외면당하는 시는 대개가 초점이 산만하거나 의도가 분명치 않거나 표현능력이 부족하거나 그 어느 한 가지 이유에서일 것이다. 의식없이 쓴 결과가 애매모호하여, 그 애매모호한 결과가 난해한 현대시인 듯 착각되어, 그 착각에 자기도 취하는 연쇄반응 속에 빠져 있는 시인은 없을까? 이러한 사람들에겐 먼저 정확한 뎃상 연습을 권유하고 싶다. 윤성의 시는 이러한 뎃상 연습을 위해서도 훌륭한 시범이 될 것이다. - ‘원열한 인생관조’, 김해성, <월간문학>, 1980년 5월호
관련도서
‘김윤성론: 김윤성 시집 <저녁노을>을 중심으로’, 김용오, <시문학>, 1999년 11월호 ‘원로시인과의 대담: 김윤성 시인을 찾아서’, 윤석산, <시문학>, 1999년 5월호 ‘한국 현대시의 두 가지 어법: 김춘수와 김윤성 시를 중심으로’, 윤석산, <예술원 예술논문집>, 1998년 12월호 ‘자기심화의 세계’, 김경린, <현대시학>, 1982년 5월호 ‘원열한 인생관조’, 김해성, <월간문학>, 1980년 5월호 ‘김윤성론: 시집 <애가>를 중심으로’, 천상병, <시문학>, 1976년 7월/8월/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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