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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섭(金珖燮)

예술가명
김광섭(金珖燮)
전공
개요
이산 김광섭의 문단활동은 크게 해방전후로 나뉘어진다. 해방 전의 문단 활동은 해외문학파로서의 활동, 연극평을 중심으로 한 평론 활동, 시작 활동 등으로 구분된다. 해방 전에 쓰여진 초기시는 현실부정과 자기연민, 기다림 등으로 일관되어 있는데, 이는 1930년대 후반의 암울한 시대 상황으로 인한 지식인의 우수와 비애를 그린 것이다. 첫 번째 시집 <동경>에 수록된 시에는 <속박과 해방>, <민족의 제전> 등이 있는데, 광복의 환희와 민족의식을 표현한 것이었다. 1949년에 간행된 두 번째 시집 <마음>과 1957년에 간행된 세 번째 시집 <해바라기>의 시는 민족의식과 조국애가 더욱 확대되고 심화된 시편들이었다. 작품 <마음>은 맑은 물과 백조의 조응을 통해 한 생명의 심상을 읊은 것이고, <해바라기>는 높은 이념을 해로 상징하고 민족의 지표를 제시한 것이었다. 후기의 작품들은 1966년 간행된 <반응>에 수록되어 있는데 전자에서는 병상에서 터득한 인생·자연·문명에 대한 통찰과 아울러 1960년대의 시대적 비리를 비판했고, 후자는 사회성을 띤 시들로서 1970년대 산업사회의 모순 등을 드러내고 있다. 이때의 시편들은 관념이 예술적으로 세련·승화되어 관조와 각성의 원숙한 경지를 보여준다. 그는 민족적 지조를 고수한 시인이며, 초기의 작품은 관념적이고 지적이었으나 후기에 이르러 인간성과 문명의 괴리현상을 서정적으로 심화시킨 시인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그의 시풍은 관념어를 적절히 구사하는 특색을 지녔으면서도 시적 영상이 주로 시각에 의존된 주지적인 경향을 보였으며, 이른바 사상파의 영향과 주지파의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우리 시의 개성을 독자적으로 형성한 시인으로서 문학사상 그 위치가 확고하다. - 참고 :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편, 누리미디어, 2002 <한국현대문학작은사전>, 가람기획편집부 편, 가람기획, 2000
생애
함북 경성에서 출생한 김광섭은 경성보통공립학교를 졸업하고 중앙고보를 거쳐 중동학교를 졸업했다. 졸업 후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1927년 와세다대학 조선인 동창회 회지에 시 <모기장>을 발표했고, 1928년 정인섭을 알게 되어 해외문학연구회에 가담했다. <현대 영길리 시단>를 번역 소개했고, 이어 시 <개 있는 풍경>(1933), 평론 <문단 빈곤과 문인의 생활>(1933), <수필문학고>(1934), <현대 영문학에의 조선적 관심>(1934) 등을 발표했다. 본격적으로 시작에 들어선 것은 1935년 <시원>에 <고독>을 발표하면서부터이다. 이 시는 일본에 의해 주권을 상실한 좌절과 절망을 읊은 것이다. 이 계열의 작품으로는 <동경>, <초추> 등이 있는데, 만주사변을 배경으로 한 고독·불안·허무의식이 배경이 된 것들이었다. 이후 해외문학연구회, <시원> 동인으로 활동했으며 1941년 중동학교 재직 중 학생들에게 반일민족사상을 고취했다는 죄목으로 3년 8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해방 후에는 <속박과 해방>(1945), <민족의 제전>(1948) 등의 시와 <정치의식과 문학의 기본 이념>(1946), <문학의 당면한 임무>(1946), <민족문학을 위하여>(1948), <민족주의 정신과 문화인의 건국 운동>(1949) 등의 글을 통해 민족문학의 건설을 강력히 주장하기도 했다. 중앙문화협회를 창립했고, 전조선문필가협회 총무부장,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출판부장, 미군정청 공보국장을 지냈으며, 정부 수립과 더불어 이승만 대통령 공보비서관을 역임했다. 1950년 피난 중에 대한신문 사장을 지냈으며, 경희대 교수, 펜클럽 한국본부 위원장, 한국자유문학자협회 위원장을 지냈고, 제27차 세계작가대회 한국 대표로 참석했다. <자유문학>의 발행인, 세계일보 사장,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최고위원,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또한 서울시문화상, 국민훈장모란장, 예술원상을 수상했다.
약력
1905년 함북 경성 출생 1924년 중동학교 졸업 1925년 와세다대학 제1고등학원 영문과 합격 1927년 제1고등학원 조선인동창회지의 청탁으로 시 <모기장> 발표 1929년 제1고등학원 졸업 / 와세다대학 영문과 입학 1932년 와세다대학 졸업 1933년 중동학교 영어교사로 취임 / 극예술연구회 가담 1941년 학생들에게 민족사상을 고취하였다는 이유로 체포 구속 1945년 민족진영문인들과 중앙문화협회 창립 1946년 전조선문필가협회 총무부장 취임 / 민주일보사 사회부장 취임 1947년 전국 문화단체총연합회 출판부장 / 민중일보 편집국장 / 미군정청 총무부장 / 미군정청 해체로 민중일보 복귀 1948년 이승만 대통령의 공보비서관 취임 1950년 대한신문 사장 취임 / <문학> 창간호 발간 1951년 한중문화교류를 위해 자유중국 시찰 / 대통령 공보비서관 사임 1952년 경희대학교 교수 취임 1954년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중앙위원 1955년 한국자유문학자협회 위원장 / 제27차 세계작가대회에 한국대표로 참석 1956년 <자유문학> 발행 1957년 국제펜클럽 한국지부 부위원장 1958년 세계일보 사장 취임 / 제29차 세계작가대회 한국대표단으로 참석 1959년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상임최고위원 /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부위원장에 재선 1960년 대한민국예술원 추천위원 1961년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부위원장에 3선 / 한국문인협회 발기준비위원에 이어 부이사장에 선출 1962년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이사 1970년 문공부로부터 창작기금 수혜 1973년 만해문학상 심사위원
상훈
1957년 서울시문화상 문학부문 1969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 1970년 국민훈장모란장 1974년 대한민국예술원상 시집 <동경(憧憬)>(1938) <마음>(1949) <해바라기>(1957) <성북동 비둘기>(1969) <반응(反應)>(1971) <겨울날>(1975) 수필집 <나의 옥중기: 일기·수기·자전적 에세이>(1976)
작가의 말
(……) 나의 시 작업은 1938년 첫 시집 <동경>으로부터 죽을 병에 들었어도 멎지 않고 계속되어 시집 다섯 권이 <시전집>이라는 이름으로 망라되어 대충 끝났지만, 10년 전 뇌출혈로 쓰러졌던 그 10년의 병고에서 나는 나를 세웠다. 의식하며 사상하며 탐구하며 감정하는 작업으로서의 시는 전집이 나왔다고 끝나는 것은 아니고 병도 끝난 것은 아니다. 어찌 보면 앓기 때문에 이 시전집이 빨리, 또 잘 나오지 않았나 생각된다. 나는 항상 괴테의 <호부>를 생각한다. 시와 인생-이것은 두 가지가 다 알기 어려운 것이다. 간단히 말해도 알기 어렵고 길게 말한다고 알기 쉬운 것도 아니다. 그러면 인생의 주인공이 되는 인간은 어떻게 시작되고 어디서 끝나는가. 생리적으로는 어머니의 뱃속에서 몇 억 마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정충 가운데서 최후에 남은 한 마리, 눈도 귀도 코도 의식조차 없는 그 한 마리가 태중에서 열 달 동안 자라서 우주의 창창한 공간, 넓고 큰 대지를 주어진 세상으로 하여 태어난다. (……) 인간은 영원히 있다. 새벽에 죽는 꿈을 꾸고 아침에 산다. 죽은 아내가 와서 새벽에 서서 보다가 갔다. 그 뒤에 나는 죽는다. 죽은 사람은 새벽에 나고 산 사람은 새벽에 죽는다. 죽음도 삶도 옆에 있는 것이지만 가서 만날 곳이 없는 것이 죽음일 뿐이다. 사람은 그 죽음을 춤에 안고 참으며 닭의 알처럼 삶을 낳는다. 그러니 죽음이 있어도 인간은 영원히 있는 것이다. 영혼은 인간의 육체를 떠나서는 남아 있을 수 없는 것이지만, 인간의 영혼은 이 새 얼굴에 의하여 계승되므로 영혼불멸도 그러한 의미에서 긍정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 시에 대해서는 본래부터 특정한 소재가 있는 것은 아니고 시대상이나 시대의 사상에 따라 변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시란 무엇이냐. 쉽게 말하자면 이 천지간에 태어나서 시인의 심미적 감각이나 정서를 통하여 시인에게서 표현된다면 잘 되고 못된 것은 차치하고 다 시인 것이다. 그것을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시인 즉 시라 할 수 있고 시인이 말하는 것은 다 시일 수도 있다. (……) - ‘시와 인생’, 김광섭, <나의 옥중기: 일기·수기·자전적 에세이>, 창작과비평사, 1976
평론
우리나라의 현대시사를 빛내 준 시인들 가운데 김광섭만큼 시의 주제를 폭넓게 추구한 시인도 드물다. 이러한 사실은, 그가 삶의 현상들을 갈등과 극복의 관계로보다는 공존과 조화의 관계로 받아들인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현실과 추상, 감성과 지성, 집단적 운명과 자아의 확립, 사회적 삶과 생명의 형이상학적 근원 등 삶의 여러 대립적 요소들을 조화시킴으로써 자신의 삶과 시의 이념을 완성하려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에서 빚어진 몇 가지 특성들은 때로는 대립과 부조화 상태에 방치되어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를테면 그의 초기시의 특성인 민족에 대한 열정과 자아확립에 대한 욕구 사이에는 건너뛸 수 없는 심연이 가로놓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들의 뿌리를 파헤쳐 보면, 그들 사이의 거리가 그렇게 먼 것만은 아니다. 일본 제국주의의 혹독한 식민정책 아래서 지향할 바를 잃어버린 민족적 열정이 자아확립에 대한 내향적 의지로 전환되는 현상은, 현실을 절망적인 것으로 내다본 지식인들에게서 흔히 나타났던 정신적 태도이기 때문이다. 김광섭의 경우, 이러한 경향은 현실을 반영하는 ‘추상된 세계’를 가지려는 노력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것은 그가 흔히 관념의 시인이라 불리는 사실과도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 <동경>은 암담한 현실이 철저하게 내면화됨으로써 이루어진 고독·독백·동경·우수·자기연민의 세계이다. 이와 같은 그의 정신세계는, 그의 투철한 상황의식과 주지적 성향을 배제한다면 낭만주의 시인들이 즐겨 몸담았던 세계와 유사한 것이 된다. 왜냐하면, 그의 낭만적 감정들은 현실에 바탕한 시대의식과 상황의식의 회로를 통과함으로써 비로소 뿌리있는 가정으로 정착되고, 다시 지적인 시작과정을 거침으로써 퇴폐의 늪에 빠지지 않고 뚜렷한 목표를 지향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 <마음>에는 <동경> 이후부터 해방까지, 그리고 해방으로부터 정부수립 1년 후에까지 이르는 그의 삶의 내용이 집약되어 있다. 해방 이전에 씌어진 작품들은 대체로 <동경>의 시적 흐름에 편입될 수 있는 것들이기는 하지만, 표현이 보다 구체화된 반면 자아확립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빚어내는 정신적 긴장감은 오히려 완화되어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 <해바라기>에서 김광섭은 정치적 현실에 대한 지나친 관심으로부터 벗어나 생명의 근원적 충동에 대해 형이상학적인 조명을 가하고 있다. 그의 이러한 변모는, 해방으로부터 6·25까지 계속된 정치적 소용돌이, 6·25로 인한 동족상잔 후의 피폐해진 민심과 허물어진 민족자존에서 빚어진 허탈감으로부터 벗어나 생명의 근원에 몸담음으로써 생명감에 충일된 새로운 삶을 모색하기 위한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그가 크나큰 희망을 걸고 긍정적인 입장에서 가담했던 ‘새나라’가 그 자신이 기대했던 것처럼 자유와 독립의 길로 힘차게 뻗어가지 못한 데에서 비롯된 좌절감, 그리고 잘못 인도되고 있던 정치권력에 대해 그 자신이 정면에서 비판을 가할 만한 위치에 서 있지 못했다는 자각 때문에 적극적인 사회참여 대신 생의 근원 쪽으로 관심을 돌리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 4·19 직후에 씌어진 <퇴근>은 ‘싸이렌 소리가 요란한 거리’를 통해 불안스러운 세태를 암시하고는 있지만, 신체의 일부를 상실한 불구자처럼 무기력해진 소시민의 모습을 암담하게 그려내고 있을 뿐이고, 5·16 직후에 씌어진 <한기>에서는 현실에 참여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시대를 외면하고 저버릴 수도 없는 소시민들의, 속으로만 응고된 갈등이 짙게 배어들어 있다. 이 두 시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현실을 깊이 의식하면서도 그것에 대한 표출을 절제하고 있는 시인의 모습이다. 그래서인지 이 즈음에 이루어진 그의 시들은, 그 들끓던 애국심이나 생에 대한 형이상학적 탐구의 심원함 대신 대체로 세상살이의 신산함과 뿌리없는 도시생활의 역겨움 같은 것을 담고 있다. 이 기간은 그의 시작생활 전체에 비추어 볼 때 일종의 하강곡선을 긋고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가 말년에 병을 앓으면서 이룩한 시적 승리가 더욱 값지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 1965년 4월 22일 서울운동장에서 야구 구경을 하다가 뇌출혈로 졸도하여 메디컬 센터에서 일주일 후에 깨어난 사건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고통과 함께 가장 빛나는 시의 승리를 안겨준 계기가 되었다. 발병 이후에 얻은 시집들만 하더라도 <성북동 비둘기>, <반응>, <김광섭 시전집>, <겨울날> 등이 있으며, 이러한 시집들 속에서 그는 인간과 자연, 세태와 문명 비판, 고향과 통일에의 염원 등 실로 한없이 넓고 깊은 시세계를 우리 앞에 펼쳐주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죽음을 몰고 오는 치명적인 병과의 싸움에서 자신의 생명과 함께 시의 진경을 탈취해온 그이지만, 그는 한번도 병을 미워하거나 고독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 그는 <성북동 비둘기>를 내놓기 전까지만 해도 현실과 관념의 조화를 꾀하면서도 그것을 효과적으로 달성하지 못하였으며, 이러한 사실은 그의 관념들이 구체적인 삶 속에 무르녹아 있지 못했다는 하나의 증거가 되고 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그는 중병을 앓으면서 자신이 일생 동안 추구해온 삶의 가장 중요한 목표를 달성하였다. 그는 시시각각 생명을 압축해 들어오는 죽음과 대결하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 그의 삶과 시를 위해 참으로 필요한 관념의 알맹이들만을 흡수하며, 깊은 뜻을 간직하면서도 관념에 흐르지 않는 시들을 빚어냈던 것이다. 그러기에 삶의 완성을 통해 시의 완성을 이룬 그의 숭고한 시정신은, “인생은 짧고 무상하지만 아무 일도 못할 정도로 짧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는 자랑스러운 말과 함께 우리에게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 - ‘현실과 관념의 변증법’, 황광수, <김광섭>, 지식산업사, 1981
관련도서
<김광섭 시전집>, 김광섭, 일지사, 1974 <김광섭 문학 연구>, 손종호, 충남대출판부, 1992 <김광섭>, 김광섭, 지식산업사, 1981 <나의 옥중기: 일기·수기·자전적 에세이>, 김광섭, 창작과비평사, 1976 <김광섭 시 연구>, 안혜경, 상명대 박사논문,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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