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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천하

작품명
태평천하
저자
채만식(蔡萬植)
구분
1930년대
개요
1938년 <조광>에 연재하였던 채만식의 장편소설. 최초의 제목은 <천하태평춘(天下太平春)>이었고, 1948년 동지사(同志社)에서 <태평천하(太平天下)>로 개제, 출판되었다. 지주이자 고리대금업자인 ‘윤직원’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 가문의 내력, 그와 그 가족의 가치관과 생활양태를 시대상과 관련하여 묘사, 풍자한 작품이다. 작가는 윤직원을 전면에 내세워 왜곡된 사회와 그 곳의 부정적 인물을 신랄하게 비판, 조소하고 있는데, 부정적 인간형을 완벽하게 형상화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윤직원의 치재수단과 삶의 방식은 일제의 의해 왜곡된 경제구조에 편승하여 자기만의 안락을 도모하는 이기적 자본가의 전형이라 할 만하다. 현실에 대한 구조적 인식과 탁월한 인물묘사를 보여준 1930년대의 기념비적 작품으로서, 반어와 풍자의 기법을 통해 날카로운 극적 긴장을 획득하고 있으며, 판소리계 소설이 보여주었던 서사수법을 계승, 호남지방의 살아있는 구어를 풍부하게 수용하는 등 미학적 차원에서도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내용
서울 계동의 만석꾼 ‘윤직원’ 영감은 명창대회를 구경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타고온 인력거꾼과 요금 시비를 벌인다. 소작료와 수형장사로 1년에 십수만 원을 챙기면서도 밖으로 나가는 돈은 이처럼 아깝다. 노름꾼이었던 그의 아비 윤용규는 어찌어찌 한몫을 잡아 가산을 불렸는데, 그로 인해 화적떼로부터 무수한 약탈을 당하다가 어느날 무참히 살해당하였다. 윤두섭(윤직원의 본명)은 화적들이 떠난 뒤 돌아와 “이놈의 세상이 언제 망하려느냐”, “오오냐, 우리만 빼놓고 어서 망해라”고 비장하게 선언한 바 있으니, 한 푼의 돈에도 벌벌 떨며, 착취니 뭣이니 하는 말에도 펄쩍 뛰는 무치(無恥)의 소유자였다. 든든한 경찰이 있어 도둑 걱정 없고 고리대금업은 날로 성업이니, 윤직원에겐 지금이야말로 ‘태평천하’다. 남은 소원이 있다면 종수와 종학이, 두 손자가 하나는 군수, 하나는 경찰서장이 되어 집안의 지위와 명성을 보태주는 것 뿐이다. 그의 외아들 창식은 주색잡기에 수천금을 뿌리고 있으며, 맏손자 종수는 군수가 되리라는 명목으로 시골 군청에 취직해 있으면서 역시 주색잡기로 가산을 탕진하고 있다. 둘째손자 종학은 일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어 가장 기대가 크지만, 서울집의 본부인과 이혼하겠다며 성화를 부린다. 윤직원 역시 만년의 도락을 즐기기 위해 열다섯짜리 어린 기생 춘심이를 꼬드기고 있는 중이다. 그러던 참에 손자 종학이 동경에서 사회주의 운동을 하다 체포되었다는 전보가 날아든다. 가장 큰 희망이었던 종학이 가장 두려워하던 사회주의에 연루되었다는 것을 안 윤직원은 격노하며 포효한다. “이 태평천하에! 이 태평천하에……”, “그놈이 만석꾼의 집 자식이 세상 망쳐놀 사회주의 부랑당패에 참섭을 히여? 으응, 죽일 놈! 죽일 놈!”
저자
채만식(蔡萬植)
생애(1902~1950)
호는 백릉(白菱), 채옹(采翁). 전북 옥구 출생. 중앙고보를 거쳐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예과에서 수학했다. 사립학교 교원과 동아일보 기자로 근무하다가 퇴사하여 향리에 머무르기도 하였다. 1929년 말부터 개벽사에 입사하여 잡지 <별건곤>, <혜성>, <제일선> 등의 편집을 맡았다. 이후 조선일보로 잠시 옮겼다가 사직하고 1936년부터 전업작가로 활동했다. 8·15 해방이 되자 서울로 올라와 잠시 머물렀으며 1946년 이리시 고현에 내려와 있던 작은 형 준식의 집에 기거하다가, 폐결핵이 악화되어 비참한 생활을 계속했다. 육체적 고통에도 창작의욕은 대단하여 이때 많은 작품을 남겼으며, 1950년 폐결핵으로 사망했다.
주요작품 및 작품세계
1924년 <조선문단>에 <세 길로>로 등단하였다. 초기작으로 단편 <불효자식>(1925)과 중편 <과도기>(1923)를 남겼으며, 그 밖에 향리 시절에 쓴 <가죽버선>(1927), <생명의 유희>(1928), 개벽사 입사 이후에 쓴 <낙일>(1930), <사라지는 그림자>(1931), <부촌>(1932) 등의 소설과 희곡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이 시기까지를 작가수업 시기로 볼 수 있으며 본격적인 창작활동은 장편 <인형의 집을 찾아서>(1933)부터라고 할 수 있다. <레디메이드 인생>(1934)은 독특한 풍자작가로서의 면모를 획득하게 하였다. 이 시기 카프 제2차 검거사건이 발생하여 약 2년간 문필활동을 중단하였다가 1936년 <보리방아> 등으로 본격적인 재입신을 꾀하게 된다. <탁류>(1937~1938), <태평천하>·<치숙>(1938) 등 대표작들이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산출된다. 그는 처음부터 지식인의 자의식을 투시한 지식인소설 유형으로 독자적 면모를 획득하였으며, 지식계급으로서의 자의식이 민중적 현실과 폭넓게 접촉하였을 때는 비극적 리얼리즘의 창작방법을, 대상에 대한 통렬한 풍자와 희화화의 정신이 현실가공의 미학적 정신을 지배하게 되었을 때는 강렬한 풍자적 리얼리즘의 소설세계를 이루었다. 계급적 관념의 현실인식 감각과 전래의 구전문학 형식을 되살리는 특유한 진술형식 창조는 그의 소설을 특징짓는 또 다른 요소이다. 소설뿐 아니라 <제향(祭饗)날>(1937), <당랑의 전설>(1940) 등 희곡 창작을 겸비하였다는 점도 주목된다.
리뷰
(……) 풍자란 골계나 해학, 기지 등과 같은 비슷한 희극적 범주 중에서도 가장 공격적인 웃음을 이끌어낸다. 골계나 해학이 끝에 가서는 화해와 유대의 선의(善意)로 매듭지어지는 것에 비해, 풍자는 근본적으로 적대적이어서, 공격의 주체와 그 대상 사이의 갈등과 대립이 아주 뚜렷하게 드러난다. 채만식은 이러한 방법을 즐겨 썼으며, <태평천하>와 <치숙>은 그 중에서도 풍자가 아주 훌륭하게 구사된 작품들이다. <태평천하>는 일제하의 대지주 윤두섭(윤직원의 본명. 직원이란 향교의 한 직급을 이르는 말이다) 일가를 다룬, 일종의 가족사 소설 유형에 해당한다. 이를테면 염상섭의 <삼대>나 김남천의 <대하>와 비슷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소설 속에서 가족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서술되는 장대한 서사적 구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자세히 읽어보면 이 소설이 서술되고 있는 현재 시간은 1937년 9월 어느 날 오후부터 이튿날 아침까지 겨우 열 대여섯 시간에 지나지 않는다. 이 짧은 시간 동안에 작가의 시선은 참으로 분주하게 시간과 공간의 축을 이동하면서 독자들에게 다양한 인물과 사건을 보여준다. 윤직원은 아버지 대에 일군 재산을 더욱 늘려 만석꾼 소리를 듣는 대지주에, 엄청난 현금자산을 밑천으로 가진 당대의 내로라 하는 고리대금업자다. (……) 윤직원은 갈데없는 친일지주이며, 일제 강점하에서 기득권을 누리는 반민족적인 인물이다. 작가의 붓은 이러한 주인공과 그의 식솔들을 한폭 희화(戱畵)의 대상으로 올려놓아, 그들의 윤리적 타락과 정신의 황폐함, 낭비벽과 보신책 등을 신랄하게 조롱하고 비판한다. 이를테면 열다섯 살 난 동기(童妓) 춘심이를 윤직원과 그의 증손인 경손이가 동시에 쾌락과 연애의 대상으로 삼는다든지, 아버지(윤창식)의 애첩을 그 아들(종수)이 유곽에서 외입질의 상대로 맞닥뜨리게 되는 장면, 건강을 위해 아침마다 동네 사내아이의 오줌을 받아 그것으로 세수하고 마시는 윤직원의 기벽(奇癖), 그리고 온 식구가 저마다 자신의 이해관계에 얽혀 서로 미워하고 시기하는 적대적 인간관계 따위가 그러한 예에 속한다. (……) 그러나 채만식 문학의 가장 이채로운 소설 미학을 형성하는 이 ‘풍자’는 섬세하고 주의깊게 읽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그의 풍자가, 다시 말하면 그가 공격하고 비판하는 대상이 단순하지 않으며 아주 중층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까닭이다. (……) <태평천하>의 윤직원 영감이 일제 치하를 ‘태평천하’로 인식하게 된 연유도 그 역사적 맥락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구한말 지방 수령들의 가렴주구를 혹독하게 겪은 뒤에 생겨난 반봉건적 성향의 일면임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 그의 풍자는 복합적이며 중층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은 현실을 이념이나 윤리에 의해 도식적으로 나누지 않으려는 그의 현실인식의 결과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부정성을 극복할 만한 적극적 대안의 모색보다는 부정성 자체를 전면에 부각시킴으로써 극복의 전망을 내면화시키는 그의 창작방법과도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 그의 소설 미학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개성은 전통문학과의 상호연관성이라고 할 수 있다. (……) 이 점 이미 많은 연구자들에 의해 고찰된 바 있거니와, 우선 채만식의 소설 중에 많은 작품들이 판소리 사설(辭說)의 서술 양식을 소설에다 훌륭하게 접목시켜 새로운 서사 기법을 구사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시도가 가장 성공적으로 성과를 본 것이 바로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태평천하>이며, 이 외에도 <치숙>, <소망>, <흥보씨> 같은 작품에서 폭넓게 시도되고 있는 것이다. 채만식이 구사한 이 새로운 소설의 서술 양식은 여러 가지 미적 효과를 낳게 되는데, 화자가 작품 속에서 인격을 지니고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됨으로써, 소설 읽기의 평면성을 깨트리면서 돌연 화자와 독자와의 거리를 사뭇 가깝게 형성시키게 된다. 이것은 그가 즐겨 구사하는 창작기법으로서의 ‘풍자’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이기도 한데, 독자와 화자의 ‘거리’가 이렇게 가까워지게 됨으로써 서술 대상에 대한 화자의 개입과 가치판단의 효율성을 극대화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다시 말하자면 근대소설의 화자가 박제화되어 단순히 서사적 정보를 매개하는 ‘장치’에 불과한 것으로 위축되어버린 것을 채만식은 살아 움직이는 중개자로(이를테면 판소리의 창자(唱者)와 같이) 되살려놓고 있는 것이다. (……) 그의 작품들은 장르를 막론하고 뛰어난 역사 인식과 현실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풍자나 반어와 같은 특유의 방법과 양식적 개성을 표출하고 있다. 그리고 고전소설의 패러디 작업이나 판소리 사설의 적극적인 계승과 같은 작업을 통해 서사문학의 전통과 활발히 교섭하려고 한 시도는 다른 작가들에게서 쉽사리 발견할 수 없는 그의 독특한 소설미학을 형성한다. 그리고 그 현실에 대한 섬세하고 정확한 묘사와 대상의 핵심을 압축적으로 형상해내는 놀라운 디테일의 기교는 우리 근대소설의 성장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 - ‘한 탁월한 리얼리스트의 현실인식과 소설미학’, 한수영, <한국소설문학대계 15 : 태평천하 외>, 동아출판사, 1995
작가의 말
봄이 늙은 꽃자리에서 초록의 새 움이 돋아오른다. 이미 우거진 백양과 수양은 벌써 노티가 난다. 햇볕은 빈틈없이 살이 지고 하늘에는 호탕(浩蕩)하던 꽃안개가 벗어지어 맑은 빛이 떠돈다. 길에 나선 처녀들의 볼에는 어렴풋 고운 홍조가 피어오르고 걸음걸이는 나뭇가지에 갓 돋은 떡잎이 노닐듯이 가분가분하다. 신록…… 신록의 여인은 고운 풍경화다. 세검정에서 전춘(餞春)을 하러 나온 것이 비를 맞이하였다. 화전을 부치자니 두견(杜鵑)은 져서 없고 척촉이 한참이다. 앵도는 꽃자리만 남고 복사꽃이 제철이다. 새빨간 홍도가 비에 젖어 고개를 숙인 양은 요염하기 짝이 없고 해맑은 벽도(碧桃)는 상(喪)청의 청상미인(靑孀美人) 같다. 사장(砂場)에는 솥을 걸고 밥 짓는 연기가 궂은 하늘로 하염없이 솟아오른다. 세검정도 비에 잠겨 묵묵히 앞내를 굽어본다. 시름 많은 젊은이는 눈물을 뿌린다. 그러나 옛 그린 눈물은 아니다. 젊은이는 젊은이의 설움이 있느니…… 젊은이라고 다 설움이 있음이 아니겠고 젊은이의 설움도 고운 청춘의 설움이야 정다운 꿈과도 같아 달고 한가하겠지만 괴롭다 하여 째(搾)어오르는 눈물은 맛조차 쓰다……소태보다도. 소위 근심 인생 칠십이 고래희(古來稀)라고 하였다. 칠십을 다 못 살고 형적(形跡) 없이 사라져버리는 인생이 당대에 제 홀로 제 욕심껏 살아보겠다고 애를 쓰는 것이 도시 망령이다. 세상은 욕심 많은 한 사람 한 사람과 말대꾸를 하고 섰기에는 갈 길이 너무도 바쁘다. 세상이 저 하나만을 위하여 있는 것으로만 여겨 돈을 계집을 공명을 마음껏 차지하려고 만인계(萬人契)를 뽑으려 들다가 허덕허덕 쓰러지고는 만다. 세상의 모든 것은 한(限)과 도(度)가 있다. 이 한과 도를 맞춰가자면 세상은 새 것을 바란다. 사람으로 하더라도 백 세의 한 사람보다 삼십 세의 세 사람을…… 근심 많다는 사람 중에 만인계를 타지 못하여 그 근심이 생기지 아니한 사람은 백에 한둘이 있기 어렵다. (<별건곤(別乾坤)>, 1930년 6월호) - ‘신록……기타’, 채만식, <채만식 전집 10>, 창작과비평사, 1989
관련도서
<채만식 전집>, 창작과비평사, 1989 <채만식과 조선적 근대문학의 구상>, 방민호, 소명출판, 2001 <채만식 연구>, 김홍기, 국학자료원, 2001 <채만식 문학의 재인식>, 문학사상연구회 편, 소명출판, 1999 <채만식 소설 연구>, 황국명, 태학사, 1998 <해방전후 채만식 소설 연구>, 조창환, 태학사, 1997 <채만식 문학 연구>, 국어문학회 편, 한국문화사, 1997 <채만식>, 한국극예술학회 편, 태학사, 1996 <채만식>, 염무웅 편, 벽호, 1995 <채만식>, 송하춘, 건국대출판부, 1994 <채만식 소설 담론의 시학>, 우한용, 개문사, 1992 <채만식>, 김윤식 편, 문학과지성사, 1984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편, 서울대출판부, 2004 <국어국문학자료사전>, 국어국문학편찬위원회 편, 한국사전연구사, 1995 <한국문학명작사전>, 임헌영·김재용, 한길사,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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