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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소비료공장

작품명
질소비료공장
저자
이북명(李北鳴)
구분
1930년대
개요
1932년 5월 29일에서 31일까지 <조선일보>에 연재되다가 검열로 중단된 이북명의 처녀작이다. 작가 자신의 흥남질소비료공장 체험을 바탕으로 1928년부터 집필하기 시작하였다가 원고를 압수당하고 1930년부터 다시 집필하기 시작하여 2년 후에 발표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 작품은 일제치하에서 우리 노동자들이 겪어야 하는 비참한 삶과 이에 대한 저항을 다룬 작품으로, 주인공 ‘문길’을 통해 팔이 잘리고 가스에 중독되는 열악한 작업환경과 낮은 보수, 해고의 위협 등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작품 속에서 ‘문길’은 구체적인 삶의 체험을 통해 각성해 나가게 되는데, 이러한 구체성은 작가의 직접 체험에 힘입어 보다 실감있게 표현된다. 노동의 열악함에서 오는 고통과 비참함을 생생히 묘사하고, 거기에서 발생하는 필연적인 투쟁의욕을 서술함으로써 그 이전의 노동소설이 보여주었던 추상성과 도식성을 극복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내용
‘문길’은 황소처럼 건강하고 희망에 차 있었으며, “노동은 신성하다. 부지런히 일하는 자에게는 신이 복을 내려준다”는 명구를 철썩같이 믿고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질소비료공장에서 만 3년을 근무한 뒤 극도로 건강이 나빠진 채 직장에서 해고된다. 홀로 버려진 그는 동료들의 손길을 기다리면서 일개 노동자의 힘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가를 절감한다. 그는 동료들과 힘을 합해 조직적인 투쟁을 벌여나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몇몇 동료들과 더불어 경찰서에 끌려가 극심한 고문을 받고 각혈을 하면서 죽어간다. 동료들은 그의 죽음을 하나의 시발점으로 해서 그의 장례식날 대규모의 ‘메이데이’ 시위를 벌인다. 문길의 상여는 동료 노동자들의 시위와 노래 속에 묘지를 향해 나아간다.
저자
이북명(李北鳴)
생애(1910~?)
본명은 이순익(李淳翼). 함남 함흥 출생. 함흥고보를 졸업하고 1927년 흥남질소비료공장의 현장노동자로 취직한 후 공장 친목회 사건으로 피검되기까지 3년간의 공장 체험을 바탕으로 <질소비료공장>(1932) 등의 작품을 창작하였다. 이 공장체험이 초기 작품의 중요한 배경을 이룸으로 인하여 ‘최초의 노동자 작가’로 불리게 된다. 1930년 이후 장진강 수전 공사장에 근무하였고 1932년 카프에 가입했다. 1945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에 가담하였으며, 월북 이후에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과 조선작가동맹 부위원장을 역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요작품 및 작품세계
문단데뷔작은 <질소비료공장>이지만, 실제 최초의 작품은 <조선지광> 폐간호에 실렸다가 <신계단>에 재수록된 <기초공사장>이며 <질소비료공장>은 이것의 속편이다. 이북명의 소설은 <답싸리>(1937)을 기점으로 전·후기로 나눌 수 있는데, 전기에는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민중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한 노동소설들을 주로 발표하였다. <기초공사장>·<질소비료공장>·<암모니아 탕크>·<출근정지>(1932), <여공>(1933), <정반>(1934), <오전 3시>·<공장가>(1935) 등이 전기에 속하는 작품들로, 공장의 구체적 배경 제시, 절박한 가정경제의 참상 강조, 투쟁의 경제적·상황적 필연성 제시, 구체적 삶의 전형 창조, 전체 민중 속에서의 노동자의 위상 설정, 인물의 유형화와 대국적 전망의 부재 등이 특징으로 나타난다. 후기에는 공장노동자에서 지식인, 도시빈민, 화전민 등으로 시선이 확대되며, 보다 구체성을 띤 인물을 등장시키게 된다. 인정과 세태의 인간적인 측면을 그리면서 건강한 생명력과 웃음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 한편, 사회적 모순을 역동적으로 형상화하지는 못하였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후기에 속하는 대표작들로 <아들>(1937), <칠성암>·<야회>(1939), <화전민>(1940), <빙원>(1942) 등을 들 수 있으며, 평론 <사실주의적 절대기술>(1935), <주제의 적극성 기타>·<공장문학과 농민문학>(1936), <문학건설에 자(資)할 신제창(新提唱)>·<자기비판과 소설의 순수성 파악>(1939) 등을 발표하였다.
리뷰
(……) 문학이 상상력을 동원한 허구의 세계라고 하지만 작가의 직접체험을 소재로 삼을 때 훨씬 더 리얼리티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현장성과 운동성을 속성으로 스트라이크(파업)를 다루는 노동소설의 경우 실질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 한 관념과 목적성이 노출될 수밖에 없다. 본고의 연구대상작가는 흥남 질소비료공장에서 3년간 노동을 했던 이북명이다. 그는 식민지 시대의 대표적인 노동작가로서 문학사적 의미를 갖는다. (……) 1927년 흥남 질소비료공장에서 3년간 근무한 후 이북명은 친목회 사건으로 실직하게 되고 그의 현장체험을 바탕으로 쓰여진 <질소비료공장>을 한설야에게 사사한 후 카프서기국 맹원들의 토론을 거쳐 <조선일보>에 발표함으로써 문단의 주목을 받는다. 그러나 그의 처녀작 <질소비료공장>의 연재는 2회에 그쳤고, 1935년 일본어로 번역, <초진>이라는 제목으로 일본 문학지인 <문학평론>에 다시 발표된다. 이 두 작품은 구성이나 인물뿐만 아니라 작품 서두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질소비료공장>과 <초진> 사이에 3년이라는 시간의 간극동안 작가는 여러 다른 노동소설들을 창작하면서 처녀작을 세련되게 재구성한 것이다. (……) <질소비료공장>은 식민지 시대의 열악한 노동환경조건과 실직 및 무단해고 문제, 일본인 노동자와 한국인 노동자의 차별대우로 인한 파업과정을 이북명의 현장체험을 바탕으로 도식화에서 벗어나 객관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문길이는 한 달에 22~3원을 고작 받고 이 돈으로 늙은 어머니와 임신한 아내, 네 명의 자식을 부양해야 하는 공장 노동자로서 폐환까지 걸려 강제해고의 위험에 처해 있다. 문길이를 비롯한 이들 노동자들은 산업재해 및 노동시간 연장과 저임금 및 산업합리화 정책에 따른 대량해고 위협에 전혀 보호받지 못한 채 생명의 위협을 받는다. (……) 이북명 소설은 목적성에 앞선 현실성을 갖는다는 점과 미래의 총체적 전망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즉 관념과는 먼 위대한 작품이라는 평가와 체험에 갇힘으로써 그 이상의 발전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평가로 나뉜다. 그러나 이 소설은 프로문학이 지향했던 볼셰비키화의 한계에서 벗어나 사실성이 돋보인다. 늘 생명의 위협에 놓인 공장환경의 구체적 묘사, 동윤이와 철식이로 비교되는 두 명의 전위의 차별화, 이들을 감시하는 소시민적 근성의 인철이의 행동, 직공생활에 대한 불만이 가득하지만 계급각성에 이르지 못한 문길이와 수많은 노동자들, 해고통보로 인한 문길의 일본인 감독에 대한 저항과 고문으로 인한 사망으로 장례식날 모처럼 단결된 노동자들의 비통한 투쟁장면에서 페이소스가 효과적으로 전달되고 있다. 프로문학의 이론이 자연주의적 리얼리즘, 비판적 리얼리즘, 변증법적 리얼리즘,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의 단계를 거치면서 철저한 세계관의 확립, 이데올로기의 강화라는 슬로건의 기계적 주입으로 인한 창작의 고정화, 도식성의 시행착오를 겪었고, 1920년대 중반 생체험을 바탕으로 한 최서해의 소설이 칭송되었던 것처럼 이북명은 고보졸업의 지식인이 작위적이 아닌 그대로의 현장 체험을 바탕으로 노동소설을 썼다는 의미를 지닐 수 있다. 이 소설은 그의 초기작이면서도 발표과정에서 수난을 겪으며 다듬어진 노동소설의 대표적 작품이라고 할 만하다. (……) - ‘이북명의 공장체험과 노동소설’, 이미림, <월북작가 소설 연구>, 깊은샘, 1999
작가의 말
(……) 나는 1927년 봄 H고보를 졸업하였습니다. 나는 학교 재학 중에 문학연구 소조에 참가하여 닥치는 대로 문학작품을 탐독, 아니 탐독하는 한편 습작의 붓을 들었는데 주로 시와 소설이었습니다. 야심만은 대해보다 컸으나 밑천이 짧다보니 시와 소설이 쓰여질 리가 없었습니다. (……) 그때 나는 한 선배에게서 어떤 작품부터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독서의 방법을 배웠습니다. 소수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수의 편에서 다수를 위해서 쓰여진 작품들을 정독하라는 그의 말은 나에게는 적지 않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후부터 나는 카프 작가의 작품은 물론 일본어로 번역된 막씸 고리키, 똘쓰또이, 체호프 등의 작품을 다시 새로운 자세로 정독하는 한편, 일본 좌익 작가들의 작품도 읽었습니다. (……) 그 작품들 속에 등장하는 억센 의지의 인물과 그들의 지향을 나는 비록 어린 눈이었으나 나의 주위에서 일상적으로 찾아보기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누구를 위하여 쓰여진 작품인가를 대뜸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이리하여 나는 어느덧 이런 종류의 작품에 흥미와 매력을 느끼는 동시에 계속 공감을 가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후에 나의 노동자 생활이 이런 경향에로 나를 더 빨리 이끌어준 것은 의심할 바 없습니다. (……) H질소비료공장의 형편은 내가 이미 소설이나 ‘팜프렛’에서 읽은 그것보다 훨씬 더 비참하였습니다. 하루 12시간 이상의 노동을 강요당하였으며 그 삯전은 겨우 4십전 내외였습니다. 이것으로는 최저의 생활도 이어나갈 수 없었습니다. 노동자들에 대한 멸시와 모욕, 조선사람에 대한 혹심한 차별대우와 착취, 노동자의 권리란 쥐뿔만치도 찾아볼 수 없는 소위 ‘노구찌왕국’이었습니다. (……) 세월은 흘러 내가 H질소비료공장에서 노동한 지도 어느덧 3년이 지나갔습니다. 손에 못이 박히고 몸에서 제법 기름내가 풍기게 되었습니다. (……) 나는 이때부터 한 편이라도 작품다운 작품을 써보리라는 새로운 결의를 다지고 <질소비료공장>을 구상하기 시작했습니다. (……) 그러나 초고가 떨어진 후 며칠 머리를 쉬고 읽어보았더니 아주 형편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형상화하려고 했는가? 싸우는 노동자의 전형이 어디 있으며 그들의 생활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나는 이렇게 반문하면서 자신을 증오하며 원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 내가 한설야 동지를 알게 된 것이 바로 이 무렵이었습니다. (……) 나는 그날 그(한설야)에게서 작가로서 가져야 할 태도, 나의 <질소비료공장>에 나타난 이러저러한 결함들에 대하여, 소재로부터 작품을 완성하기까지의 과정과 약속, 어휘를 풍부히 소유할 필요성에 대해 많이 배웠습니다. 또한 ‘카프’ 작가들의 활동경험담과 조선문학의 동향에 대하여 실로 몇 권의 책을 읽어 얻은 것보다 더 유익한 지식을 얻었습니다. (……) 나의 처녀작 <질소비료공장>은 당시 <조선일보> 지상에 발표되었습니다. 고 이상춘 동지가 삽화를 담당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겨우 2회까지 발표되고 그만 게재금지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게재금지를 당한 바로 그날 나 자신 역시 자유를 잃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공장을 쫓겨난 것은 물론입니다. 이러한 경우를 나는 미리 각오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후 나의 <질소비료공장>은 일본의 좌익 계몽의 문학잡지 <문학평론>에 번역 전재되었습니다. 독자들은 조선작가가 쓴 작품을 조선말로가 아니라 일본잡지를 통하여 왜말로 읽을 수밖에 없었으니 그렇게 되기까지에는 작품은 이미 만신창이의 운명을 면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자신의 처녀작을 우수한 작품으로 과찬하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당시 사회의 제약성을 고려하면서 쓰여진 신인의 결함 많은 작품입니다. (……) - ‘공장은 나의 작가수업의 대학이었다’, 이북명, <나의 인간수업, 문학수업>, 인동, 1989
관련도서
‘이북명의 공장체험과 노동소설’, 이미림, <월북작가 소설 연구: 1930년대 사회와 소설의 담론>, 깊은샘, 1999 ‘이북명 소설연구’, 이병순, <작가의 이상과 현실>, 태학사, 1999 ‘노동문학의 현실성과 목적성-이북명론’, 박대호, <한국문학의 리얼리즘과 모더니즘>, 민음사, 1989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편, 서울대출판부, 2004 <한국현대문학작은사전>, 가람기획편집부 편, 가람기획, 2000 <한국근대문인대사전>, 권영민 편, 아세아문화사,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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