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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대

작품명
삼대
저자
염상섭(廉想涉)
구분
1930년대
저자
염상섭(廉想涉)
생애(1897~1963)
호는 횡보(橫步). 서울 종로 출생. 보성소학교를 거쳐 일본 게이오대학(慶應大學) 문학부에서 수학하였다. 1920년 동아일보 창간과 함께 정경부 기자로 활동하였다. 1920년 김억, 남궁벽, 오상순 등과 동인지 <폐허>를 창간하였고, <표본실의 청개구리>(1921)를 발표하며 소설가로 등단했다. 주간종합지 <동명>의 기자를 거쳐 1929년 조선일보 학예부장으로 활동하였다. 1936년 만주로 건너가 만선일보의 주필 겸 편집국장으로 활동하였다. 해방 후 귀국하여 1946년 경향신문 편집국장을 지냈으며, 한국전쟁 중에는 해군 소령으로 복무하기도 했다. 예술원 창설과 함께 종신회원으로 추대되었으며 1955년 서라벌예술대학의 초대학장을 지냈다.
주요작품 및 작품세계
젊은 지성인의 번민을 암울한 분위기에서 그려낸 <표본실의 청개구리>(1921), 뒤를 이은 <암야>·<제야>(1922)의 경우, 한국적인 현실과는 거의 관련없이 추상적 관념으로 표백된 특징을 보였다면, 개인적 체험을 통하여 식민지 현실의 문제를 날카롭게 제시하고 있는 <만세전>(1931)에 이르러, 구체적인 현실감과 관조의 시선을 획득하게 된다. 그는 개성의 자각, 즉 자아의 각성이야말로 작가의 나아갈 길이라고 보았고 이러한 입장에서 민족문학운동에 관심을 갖기도 하고, 계급문학의 독단론에 반대를 표명하기도 하였다. 1920년대에 발표된 염상섭의 소설은 대체로 당시 문단에서 양대세력을 형성하고 있던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에서 중립적인 노선을 견지하고자 노력하였는데, 그의 가치중립적인 성격이 잘 드러난 것이 단편 <윤전기>(1925)이다. 1931년 발표된 <삼대>는 1930년대 여러 이념들의 상호관계와 함께 유교사회에서 자본주의사회로 변모하고 있는 현실을 생동감 있게 그려냈다. 이 작품의 속편으로 <무화과>(1931)를 내놓은 이후 <모란꽃 필 때>(1934), <그 여자의 운명>(1935)과 같은 통속소설을 발표하였다. 해방 이후에는 주로 가정을 무대로 한 인륜관계의 갈등과 대립을 그린 작품을 발표하였다. 그 중에서도 특히 신의주에서 삼팔선에 이르기까지의 도정을 그린 <삼팔선>, 옥임의 정신적 파산과 정례의 경제적 파산을 통해 당대의 세대를 적실하게 표현한 <두 파산>(1949), 그리고 인민군 치하의 서울의 모습을 통해 위기에 직면한 인물들의 심리를 적절하게 묘사하고 있는 <취우>(1952~1953)가 주목된다. 그의 소설들은 당대의 사회 현실의 문제와 정신적 분위기를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리얼리즘 계열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채만식, 이기영 등과 함께 리얼리즘 문학을 발전시키는 데 뚜렷한 공적을 남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삼대>는 1930년 전후 서울의 중산층인 조씨 일가 삼대가 겪는 갈등과 몰락 과정을 그린 대하소설이다. 앞 세대인 할아버지 ‘조의관’은 자수성가로 부를 얻고도 이에 만족하지 못한 채 식민지의 사회 경제적 혼란을 틈타 돈으로 양반 지위를 사고 족보마저 꾸며 신분 상승을 꾀하는 봉건 지주의 전형과 같은 인물이다. 그의 아들 ‘조상훈’은 기독교인이며 2년 동안 미국 생활을 한 만큼 사회적인 신념과 꿈도 없지 않으나 3·1운동 뒤의 정세에 휩쓸려 점차 술과 여자에 탐닉, 가산을 탕진하는 개화 지식인의 전형이다. 마지막 세대인 손자 ‘조덕기’는 일본의 전문학교 재학생이며 이념과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사회 운동에 동참하고 싶어하지만 가족 구성원으로서 제 소임을 외면하지 못하는 양심적 지식인이다. 조의관은 ‘돈’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받들며 이를 지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기울이고 늙어서는 다음 세대에 물려주려고 한다. 그러나 여자, 술, 도박에 이어 마약에까지 빠져 폐인이 되다시피한 아들 상훈에게 집안을 맡길 수 없음을 깨닫고 손자 덕기에게 금고의 ‘열쇠’를 물려준다. 이에 덕기는 스스로 참여하지는 못하지만 물질적인 지원이라도 하고 싶어서 사회주의 운동을 하는 친구 병화와 필순네 부녀를 돕고, 한편으로는 할아버지 뜻을 저버리지 않기 위해 재산을 지키고자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조의관이 죽자 재산에 눈독을 들인 그 측근들의 음모와 술수에 시달리고, 편법으로 재산을 탐하던 아버지 상훈이 감옥에 들어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이처럼 돈을 둘러싼 다툼 속에서 주변 사람들의 속물 근성과 추악성이 벗겨지고, 마침내 삼대에 걸친 조씨 일가는 몰락하기에 이른다. 작가 염상섭은 이런 줄거리를 펼치며 ‘구세대-과도기-신세대’ 또는 ‘봉건 지주시대-개화시대-자본주의시대’라는 삼분법 속에서 각 세대의 전형을 반영하는 인물들의 사고, 행동, 갈등을 정밀하게 보여준다. 그뿐 아니라 자본주의 개화 지식인을 대변하는 덕기의 맞은편에 병화로 대변되는 사회주의 지향 세력을 놓으면서도 극단적인 대립 구도를 취하지 않고 상대적인 수용 자세와 평형을 꾀함으로써 한결 총체적인 리얼리즘을 구현하는 성과를 거두게 된다. 그러나 염상섭은 소설의 중심이 되는 ‘돈’을 둘러싼 인간의 욕망과 갈등은 집요하게 그려내면서도, ‘돈’을 정체된 소유 개념으로 파악한 나머지 경제적 순환 구조의 원리를 형상화하는 데는 실패한다. 염상섭의 가장 특기인 극도의 섬세함과 정밀 묘사가 단편이 아닌 장편에서는 핵심을 흐리게 만들고 산만한 느낌을 주어서 <삼대>는 “예술적 감동력이 미력”하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 - ‘염상섭: 자연주의 소설의 거목’, 장석주, <20세기 한국문학의 탐험>, 시공사, 2000(……) <삼대>는 그 표제만으로 언뜻 가족사 소설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실상은 ‘조의관’에 의해서 사당과 금고의 승계권자로 지명된 덕기를 중심으로 해서 ‘조의관’의 죽음을 전후한 약 1년간의 시간을 안고 있을 뿐이다. 가족사 소설과 거리가 멀다는 것은 1년이란 짤막한 시간에서뿐만 아니라 조씨 일가의 가부장이요, ‘덕기’로 하여금 동경과 서울, 바카스 술집에서 병화 하숙집까지의 사회공간의 향유를 가능케 하는 경제력의 원천인 조의관의 내력이 분명치 않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그가 만석꾼이며 정총대를 지냈다는 이력이 희미하게 암시되어 있을 뿐이다. 이 작품에서 부정적 인물로 다루어져 있는 ‘조상훈’의 전락 과정도 희미하다. 교회 안의 인물이요, 미국 유학생이요, 학교 교사로서의 모습은 배경에 흐릿하게 깔려 있을 뿐이며, 그의 횡적 인간관계도 독자로서는 알 길이 없다. 통속소설의 악역감으로 두루 구색을 갖추고 있는 그의 사람됨이 비교적 실감있게 다루어져 있는 것은 ‘경애’의 유혹자로서도 아니요, 김의경과 도피행각을 벌이는 탕아로서도 아니요, 아비나 아들이나 아내와 말싸움을 벌일 때의 그의 모습이다. 이것은 주목해서 좋은 현상이다. (……) 그러나 실감, 즉 현실성의 환상이라는 것이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인 만큼 이념인, 행동인의 문제는 가정 속의 일상인간과의 관련 속에서 파악하지 않으면 안된다. 알쏭달쏭하지만 우리는 일단 이렇게 정리할 수가 있을 것이다. 염상섭 속의 이념인, 행동인이 그 현실성에 있어 단단치 못하게 보이는 것은 가정 속의 일상인이 너무나 생생하게 그려져 있는 것과 함수관계를 갖는 것이라고. 가정 속의 일상인이 살아 있는 인물로 생동감을 주는 것은 대체로 뛰어난 대화장면을 통해서이다. 그리고 그의 대화장면은 모든 문학 속의 대화가 그렇듯이 다분이 양식화된 대화이다. 그것은 1920년대 인물을 다룬 그의 장편 속의 대화나 1950년대의 풍속을 다룬 그의 후기 단편에서의 대화가 얼마나 흡사한가를 보면 쉽사리 수긍이 갈 것이다. 이렇게 다분히 양식화된 대화언어가 가장 밋밋한 구체성과 생동성에 도달한 것은 언쟁을 할 때이다. 이것도 문학에 있어서 악의 리얼리티가 용이하게 달성된다는 것을 나타내는 또 하나의 예증일지 모르나, 가족제와 가정 속의 일상인간을 끈질기게 추구한 염상섭이 언쟁의 대화에서 솜씨자랑을 하게 되는 것은 상징적이다. 말이라는 것이 본래 주먹다짐의 대용품으로 발명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염상섭의 대화는 또 말이 사람들을 맺어주기보다는 이간시키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족보 만드는 대동보소 문제 때문에 조의관 부자가 싸우는 제1충돌, 수원집과 덕기 모친이 싸우는 제2충돌은 집안싸움의 고전적 장면이라 이를 만하다. (……) - ‘한국 리얼리즘의 한계’, 유종호, <동시대의 시와 진실>, 민음사, 1995
작가의 말
(……) 문학수련은 내외 양면으로 쌓여가는 것이다. 문학의 깊이와 표현력은 표리상응하여 긴밀한 영향을 서로 주는 것이기도 하지마는, 표현력이라는 것은 결국 기능이요, 문학의 본질을 구성하는 일면에 그치는 것이 아무리 문학 예술적 표현에 시종한다 하여도 표현미 그것이, 또는 그것만이 문학의 본질일 수는 없다. 문학의 종국의 목적이 감정의 순화란다든지 인간성의 도야라는 정적 부면과 아울러, 인생에의 철오(撤悟)와 현실초극의 길을 밝힘으로써, 아름다운 인생, 참된 생활의 창조를 노리는 데 있다 할지면, 문학에 있어 내용의 가치를 표현미와 동일한 지위에 두어야 할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물론 인생의 표현역량, 표현기능은 수련을 쌓았다 하여도 표현할 그 무엇이 있어야 할 것이요, 그 무엇을 표현하려면 그 무엇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그 무엇의 탐구와 발견이야말로 문학적 수련의 주되는 과제가 될 것이다. 문학에서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완전하고 아름다운 표현과 아울러 깊이에 있다 하겠으나, 그 깊이는 문학적인 인간수련에서 오는 것임을 생각할 제 문학이 무엇인지 알수록에, 그 어려움을 통절히 느끼는 것이다. (……) 그러나 나는 표현을 경시하거나, 표현력의 수련은 용이한 것이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좋은 제재와 그 제재에 싸인 핵심이 뚜렷한 작품일지라도, 치졸한 표현으로써는 개념의 유희에 떨어질 것이요, 신문의 취미기사나 강담만한 흥미조차 없을 것이다. 소설이 단순한 생활기록이거나 교단의 설법이 아닌 이상, 예술적 표현미는 문학적 생명을 결정하는 첫 조건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다만 표현력의 수련은 작가의 사상경향이나 내생활과 밀접한 관련성이 없느니만치 기술적 숙련을 쌓는 데 그친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한 작가의 내면적 수련에 대한 비교적 의미일 따름이지 실제문제로서 표현형식이라든지 그 수법에 이르러서는 결코 말과 같이 용이한 것은 아니요, 오랫동안의 경험과 수련을 기다려서 비로소 한 경지가 개척되는 것이다. (……) - ‘나의 문학 수련’, 염상섭, <염상섭전집 12>, 민음사, 1987
관련도서
<염상섭 전집>, 염상섭, 민음사, 1987 <염상섭 문학론>, 이보영, 금문서적, 2003 <염상섭 소설어 사전>, 곽원석, 고려대출판부, 2002 <염상섭 소설 연구>, 김종균, 바로북닷컴, 2001 <1920년대 문학과 염상섭>, 박상준, 역락, 2000 <염상섭 장편소설 연구>, 김경수, 일조각, 1999 <염상섭 문학의 재인식>, 문학과사상연구회 편, 깊은샘, 1998 <염상섭 문학의 재조명>, 문학사와비평연구회 편, 새미, 1998 <염상섭>, 유종호 편, 서강대출판부, 1998 <염상섭 연구>, 김윤식, 서울대출판부, 1987 <염상섭 문학 연구>, 권영민 편, 민음사, 1987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편, 서울대출판부, 2004 <국어국문학자료사전>, 국어국문학편찬위원회 편, 한국사전연구사, 1995 <한국근대문인대사전>, 권영민 편, 아세아문화사,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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