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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녀도

작품명
무녀도
저자
김동리(金東里)
구분
1930년대
개요
<무녀도>는 1936년 5월 <중앙>지에 발표된 김동리의 단편소설이다. 1947년 을유문화사에서 같은 제목으로 간행한 단편집 <무녀도>에 수록될 때 많은 부분이 개작되었으며, 1978년에는 <을화>라는 장편소설로 확장, 개작되었다. 이 작품은 우리의 재래적 토속신앙인 무속의 세계가 변화의 충격 앞에서 쓰러져가는 과정을 그린 것이다. 전체의 구성은 김동리 소설에서 흔히 보이는 액자구조로서 이야기 속에 또 하나의 이야기가 담겨져, 이중의 허구화 현상, 즉 내부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 유발과 그것의 인증기능을 하고 있다. 한편 내부 이야기도 모화와 욱이의 극적인 갈등이 중심을 이루면서 발단-전개-절정-대단원의 견고한 짜임을 보여준다. 발단에서는 퇴락한 집과 ‘사람냄새’의 대비, 인물들의 서로 다른 방언의 대비, 무속과 기독교적 신관의 차이 등을 통하여 이야기 전체의 기본적 갈등을 전제하고, 모화와 욱이의 상호 거부·대립이라는 외적 갈등으로 점진적으로 전개되며, 마침내 욱이의 죽음을 부르는 갈등으로 발전, 절정을 이룬다. 그뒤 쇠퇴해가는 모화의 자기 세계를 되찾으려는 마지막 굿과 죽음이 비극적인 대단원을 이룬다. 여기에서 모화의 죽음과 패배는 기독교의 승리로 볼 수도 있으나, 그러한 승패보다는 도도한 역사의 변화 앞에서 이에 맞서고 겨루어보려 한, 한 인간의 마지막 모습을 비극적으로 제시한 것에 이 작품의 의미가 있으며, 역사적인 시간을 초극함으로써 오히려 인간적 삶의 보편성을 암시하려는 작가의 세계관이 천명되어 있다.
내용
서화와 골동품을 좋아하던 ‘나’의 할아버지 생존시, ‘나’의 집에 나그네로 들렀던 벙어리 소녀와 그녀의 아버지가 남기고 간 <무녀도>라는 그림에 담긴 내력은 다음과 같다. 모든 것에 귀신이 들어 있다고 믿으며 귀신만을 섬기는 무당인 모화는 그림을 그리는 딸 낭이와 더불어 경주 잡성촌의 퇴락한 집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어려서 집을 나갔던 아들 욱이가 이 집에 들어오면서부터 모화의 삶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욱이가 신봉하는 기독교와 모화가 받드는 귀신 간에 갈등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모자간의 사랑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신관과 가치관 때문에 상호 용납하지 못하며, 각각 기도와 주문으로 대결하다가 마침내 모화가 성경을 불태우고, 이를 저지하려던 욱이가 칼에 찔림으로써 죽음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뒤 마을에는 예배당이 서고, 힘을 잃게 된 모화는 예기소에서 죽은 여인의 넋을 건지는 마지막 굿판을 벌이게 된다. 모화는 드디어 무열의 상태에서 춤을 추다가 물 속에 잠기고, 낭이는 그를 데리러 온 아버지를 따라 어디론가 사라진다.
저자
김동리(金東里)
생애(1913~1995)
본명은 김시종(金始鍾), 동리는 필명. 경북 경주 출생. 대구 계성학교에 입학하였다가 서울로 올라와 경신학교를 중퇴하였다. 이후 4년 동안 세계문학을 섭렵하고 동양의 고전에 심취, 그 속에 표현되고 있는 인간과 신, 자연과 세계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백로>(1933)가 당선되었고,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화랑의 후예>(1935)가,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산화>가 거듭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서정주, 김달진 등과 시인부락 동인으로 활동했으며 해인사의 말사(末寺)였던 다문사 부설 광명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후 <바위>·<무녀도>(1936), <황토기>(1939) 등의 문제작들을 발표함으로써 주목받는 신진작가의 한 사람으로 부상하였으며, 유진오(兪鎭午)와 순수 논쟁을 벌이기도 하였다. 해방 직후에는 우파 진영을 대표하는 문학가로 활동하면서, 한국청년문학가협회의 창설을 주도하였다. 예술원상, 자유문학상, 대한민국국민훈장 등을 받았고, 한국소설가협회 대표, 대한민국예술원 회장,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등을 역임하였다.
주요작품 및 작품세계
김동리의 문학세계에서 가장 뚜렷한 흐름을 이루고 있는 것은, 한국인의 삶과 정신을 깊이 있게 탐구하여 우주 속에 놓인 존재로서 인간에게 주어진 운명의 궁극적인 모습을 이해하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바위>·<무녀도>(1936), <황토기>(1939), <역마>(1948), <등신불>(1961), <을화>(1978) 등 그의 주요 작품들은 대부분 전통과 민속종교의 세계에 깊이 연관되어 있다. 초기 작품들은 토속적, 샤머니즘적, 비현실적 제재에서 자기 생명 자체에서 파악한 인간 생명의 신비력과 허무적인 운명을 추구했다. 그의 작품에서는 당대적 상황과 지식인의 고민을 다룬 작품들에서조차도 한국적 특수성을 인류적 보편성으로, 한국적 인간상을 보편적 인간상으로 확대하고자 하는 노력이 나타난다. 기독교 관계 문헌에서 취재한 대표적 장편 <사반의 십자가>(1955~1957)는 하늘의 질서와 땅의 질서를 대조시켜, 인류의 총체적인 운명을 걸고 있는 인간의 운명과 구원의 문제를 추구한 역작이며, 단편 <등신불>도 그의 대표적 단편 중 하나이다. 그의 문학정신의 기조는 인간성 옹호에 바탕을 둔 순수문학이며, 그것은 또한 그와 관련된 세 번의 논쟁과 그의 모든 작품의 배후에 일관하고 있는 철학이다. 그의 문학세계는 인간 존재의 신비감과 삶의 허무를 천착하는 과정에서 구체적인 현실을 배제함으로써 비역사적인 신화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끊임없는 개작의 과정을 통해서 보여준 투철한 장인정신과 절제된 문체, 완결적인 구성 등에 있어서는 한국문학의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김동리의 작가적 명성을 확립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였고, 동시에 문학적 특허의 외양마저 갖추고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황토기>와 <무녀도>이다. 두 작품은 언뜻 보아 앞에서 검토한 현실주의 경향의 작품과는 동떨어져 있는 듯이 보인다. 그렇지만 두 작품이 ‘조선의 심벌’ 찾기에 나선 작가가 특유의 소재를 발견하고 문학적 역량을 전력투구한 야심의 소산인 것만은 분명하다. 두 작품 모두 개작과 퇴고의 정성을 다하였고 그것은 <무녀도>의 경우 특히 두드러져 보인다. 작가 자신도 큰 애착을 보여 해방 이후에 간행된 단편집 표제를 각각 <무녀도>, <황토기>로 정했다는 것도 그 사정을 전해준다. 또 김동리에 대한 세평이 주로 이러한 작품에 기초하여 성립된 것도 사실이다. 그만큼 중요한 작품이기도 하나 <무녀도>에 관한 한 과대평가를 받아왔다는 혐의가 없지 않다. 1936년에 초고가 발표되었던 <무녀도>는 일종의 액자 단편소설로 낭이라는 소녀가 그린 ‘무녀도’와 함께 전해오는 얘기를 전달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무당 모화, 그녀의 아들 욱이, 그리고 딸 낭이가 벌이는 음산한 가정극은 파란 많은 것이고 또 근친상간과 같은 부가적 모티프도 지니고 있다. 그렇지만 모화의 직업이 무녀이고 욱이가 15살까지 절에서 상좌노릇을 하다가 평양에서 현 목사를 만나 기독교인이 된다는 줄거리에서 엿보이듯 전래 신앙과 외래 신앙의 가족간 충돌을 통해서 한 시대의 ‘조선의 심벌’을 형상화하려 한 것은 분명하다. 모화는 욱이의 ‘신약전서’를 ‘예수 귀신책’이라 부르고 그가 몹쓸 잡귀에 들려 있다고 생각한다. 욱이는 욱이대로 모화와 낭이가 사귀가 들린 것이라 생각하고 어머니의 사귀가 들어가 낭이가 벙어리가 된 것이라고까지 믿고 있다. 모자간의 갈등과 충돌은 피할 수 없는 것이 되고 마침내 그것은 모화의 성서 분서와 욱이 찌르기 사태로 발전한다. 욱이는 식칼로 머리와 목덜미와 허리 세 군데나 상처를 입었다. 결국 모화의 정성과 간호에도 불구하고 욱이는 성경을 가슴에 안은 채 죽는다. “흥, 예수 귀신이 진짠가 신령님이 진짠가 두고 보자”라고 장담하던 모화는 익사 여인의 초혼에 실패하고 결국 자신도 굿 도중에 익사하고 만다. 혼자 남은 낭이는 그의 생부가 거두어가 소녀 화가로 키운다는 것이 대체적 요약이다. 무녀 모화와 아비 다른 남매 사이의 가정 비극인 셈이어서 참혹한 느낌을 주지만 그만큼 작위성도 진하게 풍겨준다. 그것은 전래 무속과 외래 종교 사이의 문화 충돌이라는 매우 복잡하고 무거운 주제를 단편 속에서 처리한다는 무리에서 빚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욱이의 성장 과정만 하더라도 그 자체가 한 권의 소설감인데 너무 소묘적으로 처리되어 있어 현실감을 잃고 있다. 낭이의 경우 비현실감은 더욱 커진다. 너무 무거운 주제와 겨루는 바람에 온 힘을 다한다는 것이 자기 기운에 스스로 쓰러지는 씨름 장면을 연상시킨다. 이 작품이 훼자된 것은 작가의 애착 표시에 고무되어 주제 접근에서 비평적 화제를 쉽게 찾아낸다는 편의와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완결된 단편으로 접근할 때 무리와 작위성이 많은 파행적 작품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 - ‘현실주의의 승리’, 유종호, <김동리 전집 1 : 무녀도/황토기>, 민음사, 1995작가가 1947년도 <무녀도>의 서문에서 ‘운명’을 발견하고 이것을 타결해 보자는 시도와 노력이라고 작품 의도를 말하였다. 이러한 의견의 피력은 의도로서는 타당한 것이지만, 작품의 의미 조직은 변모하는 세태에 적응하지 못하고 좌절하는 부적응의 비극에 있고, 또 그것은 1930년대의 한국적 삶 일반이 내포하고 있었던 여러 사회적 유대의 균열상을 적절히 문제화한 주목되는 작품임에 틀림이 없다. 이 소설은 도입부의 외화와 내화가 서로 적절히 짜여져 있는 것이 하나의 특질로 보이며, 민족적으로 총화를 이루어 움직이기보다 균열과 분화로 피폐화하는 과정의 삶의 틀을 비록 짧지만 잘 보여준 작품이라고 해야 옳을 것 같다. (……) 이 글에서는 분명히 기울어지는 무속신앙의 슬픈 국면과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사회의 흔들림이 동시에 파악되며, 새로운 힘으로서 외래 종교의 유입이 있음을 보게 된다. 말하자면 이질적인 정신적 가치와의 상충과 수용의 움직임이 비교적 선명하게 문제화되었다고 하겠다. (……) 이야기의 표면적 흐름에는 분명히 무교와 기독교의 대립상 또는 상호불납이 두드러져 있지만, 작가는 양자택일을 대립의 문법으로 보여주기보다 참된 삶의 구경적 의미와 정신적 구제를 시험하려는 의미가 내포되도록 한 것 같다. 이야기의 흐름은 구제로서의 심리적 번민과정보다 대립적 행동이 더 묘사되어 있으므로, 그러한 의도를 충분히 내포시키지 못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물론 이야기를 다른 각도로 발전시켜, 욱이로 하여금 전혀 다른 대응을 시도하게 해서 모화를 체념하게 이끄는 방법도 상정해 볼 수 있음직하다. 그러나 상호용납이 불가능한 인물들로서는, 또 모자의 천륜적 관계라는 테두리에서는 극적 충돌이 모자의 기본적 사랑과 묶여져서 갈등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 둘 중의 한 사람이 냉정하고 또 무관심한 관계로 설정된 인물이었다면 그러한 비극은 면할 수도 있었으리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작가는 이 두 문제가 상호불상용의 것이면서도 모자라는 천륜적 관계의 문제이며 동시에 우리 동족 일반의 정신적 구조의 한 대표적인 틀로서의 문제임을 명확히 이해하고 있으며, 그러한 어려움이 빚는 비극과 삶 의식을 탐색하는 과제를 스스로 작품화한다는 사명을 실천한 것이라고 하겠다. (……) 개작된 작품이 나온 시기의 상황을 보면, 이때는 남북으로 분단되어 극렬한 민족적 저항과 대립이 있었던 때인데, 작가가 기독교와 무교의 대립을 문제화하는 작품의 개작을 시도했으므로 현실을 외면하고 작품을 썼다는 비난을 들음직한 일면이 있다. 그러나 작가는 ‘인류가 부하한 공통적 운명’이라는 보편적 문제에 접근함으로써 시대적 문제를 문학적으로 대응한 것이라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 (……) 이 이야기는 두 주인공이 양립할 수 없는 상극적 대립에서 모두 죽음의 종말로 이야기가 끝이 나는, 이른바 하강적인 짜임새를 한 작품이지만, 작품상으로 설정되고 다루어진 문제는 해결되지 못한 채 이야기는 끝나고 있다. 두 모자의 이별이 있은 다음 양립할 수 없는 종교적 신념 때문에 비극적인 만남과 극단적 대립으로 죽어야 하는 일종의 운명적 결말을 보인 것이다. 그러나 이 두 죽음은 현실적으로 문제의 해결을 하지 못했지만, 그러한 조건들 안에서는 그렇게 밖에는 다른 끝을 보여줄 수가 없었고, 내면적으로는 이러한 삶의 얽힘이 우리의 세계를 점점 변모시켜간다는 깨달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모화의 비극적인 삶은 어떤 외부적 종교나 힘에 의해서도 그녀 자신이 신봉했던 무속신앙을 버리지 않고, 스스로의 삶의 원리로서 지킨 점에 있다고 생각된다. 세계는 변했지만, 그녀의 정신적 동일성은 죽음을 초월하여 유지되었다고 하겠다. 운명 앞에 직면하고도 종교적 차이를 지속한 점이 비극적 특질로 보인다. 또 이 두 죽음은 우리의 전승적인 무속신앙에 대해 깊은 유대감을 인식시켜주는 의미도 있다. 아마도 이야기의 행동에서 그것을 말하지는 않았지만 이 작품을 읽은 독자들은 어렴풋하게나마 그 정신적 끈을 느낄 수 있었으리라고 짐작된다. 사실상 죽음 다음에는 새로운 탄생이 있기 마련이다. 그 탄생은 작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우리 문화가 포용하고 있는 문화 창조의 능력 전체에 걸친 과제로 보인다. 그것이 제3의 인간관이든, 인간 구제의 신념이든간에 가능성을 기대하는 일을 예술창조든 또는 어떤 창조든 담당해야 할 것이다. (……) - ‘김동리 소설에 나타난 비극적 삶의 인식’, 신동욱, <김동리>, 서강대출판부, 1995
작가의 말
(……) 나의 시는 193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입선한 뒤, 1935년엔 <바람 부는 오후>와 <거미> 등을 발표했는데, 이 가운데 <거미>는 1935년도의 연간 시선집인 <을해명시선>에 수록되었다. 소설은 1935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화랑의 후예>가 당선되고, 다음 해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산화>가 거듭 당선됨으로써 작가 생활이 시작되었는데 그동안 그러니까 약 50년 동안에 중·장편이 열 서너 편, 단편이 백 수십 편 된다. 그 내용을 주제별로 나눠본다면, 대개 신과 인간과 민족, 이 세 가지로 크게 나눌 수 있겠다. (……) 내가 최초로 신과 인간과 민족의 문제를 다룬 작품은 1936년의 같은 5월호 <중앙>·<신동아>에 각각 발표되었던 <무녀도>와 <바위>가 아닌가 한다. <무녀도>의 여주인공 ‘모화’는 샤머니즘의 ‘신령님’을 그 아들 ‘욱이’는 기독교의 신을 각각 신앙하는 인물로 등장되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는 세계적인 대종교이지만, 무교(巫敎)는 원시종교의 일종일 뿐 현실적으로는 미신으로 천시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개의 신앙이 대등한 차원에서 대결을 하게 된다. 여기엔 신에 대한 해석도 특정종교를 위주하지 않는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이와 동시에, 그 미신으로 천시되는 무교가 한국 민족의 고유한 원시종교라는 점에서 민족의식이 깔려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은 신과 민족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경우다. (……) <무녀도>엔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무교와 기독교의 대결이 있는가 하면, 이를 통하여 동양과 서양의 대조 같은 것이 비쳐져 있고, 그 위에 다시 민족의 문제가 곁들여져 있으므로 그 주제의 비중이 크고도 복잡한 편이다. 따라서 그 주제를 단편 형식으로 다룬다는 것은 무리가 아닐 수 없었다. <을화>는 이러한 주제의 비중과 소설 형식의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하여 긴 중편, 짧은 장편에 해당하는 새 형식으로 위의 문제를 별도로 작품화시킨 경우다. (……) - ‘죽음을 딛고 선 문학’, 김동리, <사랑의 샘은 곳마다 솟고>, 신원문화사, 1988
관련도서
<김동리 전집>, 민음사, 1995/1997 <김동리 소설 연구>, 이진우, 푸른사상사, 2002 <미당의 어법과 김동리의 문법>, 김윤식, 서울대출판부, 2002 <김동리 소설 연구>, 조회경, 국학자료원, 1999 <김동리 삶과 문학>, 김정숙, 집문당, 1996 <김동리>, 이동하, 건국대출판부, 1996 <김동리>, 유기룡 편, 살림, 1996 <김동리와 그의 시대>, 김윤식, 민음사, 1995 <김동리>, 이재선 편, 서강대출판부, 1995 <김동리 문학앨범>, 김동리, 웅진출판, 1995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편, 서울대출판부, 2004 <한국현대문학작은사전>, 가람기획편집부 편, 가람기획, 2000 <국어국문학자료사전>, 국어국문학편찬위원회 편, 한국사전연구사, 1995
연계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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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리(金東里)
-역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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