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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 1920년대의 시문학

작품명
해설 : 1920년대의 시문학
구분
1920년대
개요
1920년대는 3·1운동과 이후 우후죽순처럼 등장한 <창조> 등 동인지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근대문학이 형성된 시대이다. 본격적인 서구 문예 사조가 유입되면서 근대문학에 대한 진지한 현대화가 이루어졌다. 물론 무분별한 서구지향성이나 사조적 혼류의 양상, 그리고 비탄과 절망의 정조는 3·1운동의 실패와 함께 소부르주아 지식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정신적 혼란의 산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동시에 3·1운동 이후의 변화된 현실과 민중들의 급속한 성장, 사회주의 사상의 전래 등은 우리 문학에도 영향을 미쳐 프롤레타리아 문학을 대두하게 했고, 그들이 내세우는 강력한 현실참여적 변혁의식은 이데올로기 문제를 비롯하여 여러 면에서 문학적 변화와 갈등 혹은 대립적 양상을 촉발시켰다. 그 양상을 시 분야와 관련시켜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1920년대 시문학은 일제의 ‘문화정치’가 실시되면서 제한된 범위에서나마 언론과 출판의 자유가 허용되자 발간된 동아·조선 등 일간지와 함께 <창조>(1919), <폐허>(1920), <장미촌>(1921), <백조>(1922), <금성>(1923) 등 많은 동인지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이러한 동인지를 중심으로 활동한 시인들로는 김억, 황석우, 주요한, 박영희, 박종화, 홍사용, 양주동, 변영로 등을 들 수 있는데, 이들 대부분은 일본 유학생 출신으로서 전대의 계몽문학을 포함한 조선의 문학적 전통을 일체 부정하거나 폄하하면서 서구문학을 추종하는 입장에서 새로운 조선문학을 수립하고자 했다. 이들에 의해 동인지 중심의 시단은 전대의 계몽적인 시에 견주어 시의 전문화와 기술적 세련을 가져왔다. (2) 그에 따라 자유시가 본격화되었다. 산문시형을 통해 자유시의 가장 개방적인 형태를 열어젖힌 주요한의 <불놀이>가 발표된 이래 본격화된 자유시의 흐름은 1920년대를 통해 확고하게 근대시의 대표적 양식으로 정립되었다. 물론 초기에는 3·1운동의 실패에서 온 우울한 정서와 감상적인 경향을 중심으로 한 낭만주의 시가 주류를 이루었으나, 후반에는 이러한 경향이 극복되고 건강하고 밝은 정서를 회복한 서정시들이 주류를 형성하였다. 그중에서도 김소월은 민요시의 정감과 율격을 바탕으로 하여 전통의 현대화로써 자유시의 또다른 길을 제시해주었으며, 이상화는 시인의 자유로운 내적 질서를 행과 연의 질서를 통한 미적 조직으로 만듦으로써 자유시의 한 전형을 창출하였고, 한용운 역시 산문성의 이미지와 운문성의 호흡을 절묘하게 결합해냄으로써 마찬가지로 자유시의 한 전형을 창출하였다. (3) 1920년대 시는 1925년 카프의 결성을 고비로 보다 명확한 형태로 분화되어 나타나게 된다. 3·1운동 직후부터 나타난 민중운동의 고양과 사회주의 사상의 전래, 그리고 부르주아 민족개량주의 등의 등장에 따라 이상화·조명희·김기진·박영희 등은 전자를, 주요한·홍사용·김안서 등은 후자를 각각 사상적 이념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하여 카프 결성을 고비로 프로문학파와 이에 대한 대타의식으로 형성된 국민문학파로 크게 이분된다. (4) 경향시의 등장은 신경향파시로부터 시작된다. 김형원, 박팔양, 유적구, 김창술, 이상화 등에 의해 과거의 센티멘탈하고 데카당한 문단풍조와는 반대로 힘있는 새로운 시풍이 일어난 것이다. 이상화가 ‘마돈나와의 침실’이라는 몰역사적 공간에서 쾌락적 탐미를 추구했던 <나의 침실로>의 세계에서 ‘빼앗긴 들’이라는 구체적 현실 속에서 시적 미의식을 일구어낸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세계로 전환한 것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런데 이후 카프가 목적의식론을 제창하며 투쟁적 선동양식의 글을 요구함에 따라 애조적인 분위기는 차츰 사라지고 보다 투쟁적이며 진취적인 방면에서 구호적 언어의 직설적 토로가 주요한 시적 경향이 된다. 이를 두고 아지 프로를 위한 개념적 서술시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이들 경향시는 전체적으로 지나치게 이데올로기만을 강조하면서 예술적 형상으로 승화시키지 못해 기대 이상의 문학적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5) 한편 국민문학파는 민요시와 시조 부흥에 진력하였다. 민요시 운동은 김억, 김소월, 이상화, 홍사용 등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이는 우리의 전통인 민족 문학을 현대적으로 계승, 발전시키고자 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또한 최남선이 주도한 시조부흥 운동은 민족주의적 이데올로기에 바탕을 두고 전통 시형인 시조를 계승, 발전시키고자 한 것이다. 이병기, 이은상 등이 여기에 적극 참여하였다. (6) 그밖에 김동환(金東煥)의 <국경의 밤>을 계기로 한 서사시가 등장했으며, 김억의 <오뇌(五惱)의 무도>를 시작으로 서구의 시가 활발하게 번역·소개되기도 했다. 임규찬(문학평론가, 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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