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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국(劉永國)

예술가명
유영국(劉永國)
구분
서양화가
생애
1916년 경상북도 울진에서 태어났다. 1938년 일본 도쿄문화학원 유화과를 졸업하고, 1937년에 창설되어 일본 추상미술 운동의 거점이 되었던 자유미술가협회전에 1937년 1회전부터 1942년 6회전까지 참여하였다. 1943년에 한국으로 돌아온 유영국은 1947년 김환기, 이규상과 함께 신사실파 창립에 가담하였다. 이를 통해 발표된 작품에서는 산이나 바다 등 자연의 형상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서울대학교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서 후진을 양성하기도 했던 그는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 초대작가(1968), 국전 서양화 비구상부 심사위원장(1970), 국전 운영위원(1976) 등을 역임하였고, 1979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 되었다. 유영국은 1930년대 도쿄[東京] 유학 시절부터 추상 작업을 시작한 이래 한국 모더니즘의 제1세대 작가이자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활동하였다. 그의 작품은 산, 길, 나무 등의 자연적 소재를 추상화면의 구성요소로 바꿈으로써 엄격한 기하학적 구성과 강렬한 색채가 어우러진 시적 아름다움과 경쾌한 음악적 울림을 자아낸다.
약력
1916년 강원도 울진 출생 1935년 경성 제2고보 수료 1935년~1938년 일본 동경문화학원 유화과 1937년~1942년 자유미술전 출품(1~6회) / 2회 자유미술전 최고상 수상(동경) 1947년~1953년 신사실파전 참가(서울, 부산) 1948년~1950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전임강사 1957년 모던아트 창립전(서울) 1963년 제7회 상파울루비엔날레 출품 1964년 제1회 개인전, 신문회관 1966년~1970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1968년 국전 초대작가 1976년 대한민국예술원상 1978년 살롱 드 메 초대전 출품 1979년 유영국 초대전, 국립현대미술관 1982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 / 제1회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예술활동
화가 유영국은 우리나라 추상예술의 선각자의 한 사람으로서 평생동안 고집스럽게 자기의 길을 걸어 온 사람이다. 작품상으로 나타나는 특징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이 나누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초창기 즉, 1930년대 후반과 1940년대 초반은 형태의 절대성과 색채의 배제가 가장 두드러진 특성으로 확인되어진다. 당시 유영국이 가장 존경하던 작가는 몬드리안이었다. 군더더기 없는 구성, 수직·수평의 절제된 균형 감각의 몬드리안 작품이 “말이 없어서 좋았다”는 유영국의 말은 그의 과묵한 성격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1945년 이후 1950년대의 과정은 자연이라는 이미지의 굴절과 색채의 점진적 수용으로 특징지어진다. 특히 마티에르의 물질성의 강조는 초기의 조형적 관심의 변주임이 분명하다. 나무판의 입체적 꼴라쥬 대신 유화안료를 사용하면서도 검은 흑선으로 분절되는 공간구성의 기본적 패턴과 표면은 화강암석의 고르지 못한 면처럼 거칠면서 전체적으로 어둡고 칙칙한 기조의 색채가 지배되고 있다. 색채는 형태의 보조적 수단으로 사용되어지고 있다. 화면에 강하게 부상되는 것은 검은 흑선으로 조직된 견고한 면의 공간이다. 물론 건물이니 산이니 생선이니 하는 구체적 대상이 제거된 것이 아님에도, 그러한 대상은 어떠한 표현성의 가치도 얻고 있지 못하다. 1960년대 초에서 1966년경까지는 굵고 검은 선의 제거와 색면의 강조가 두드러지는 특징을 보인다. 그에게 있어선 표현적인 요소가 가장 짙은 시대라고 명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색채는 더욱 밝고 건강한 원색으로 채워지면서 날카로운 경계선이 한층 긴장된 화면을 조성시킨다. 구성주의 시대에 보여 주었던 굵고 검은 획선의 구조는 날카로운 빛의 섬광으로 변주되는데, 화면 여기저기에 긴장을 환기하는 표현세가 된다. 아마도 이같은 전체적인 화면의 표현적 추세는 당시 뜨겁게 파급되고 있었던 추상표현주의의 공감이 아닌가 생각된다. 1967년경에서 1972년경에는 표현적인 추세가 제거되고 대신 엄격한 형태의 재형성이 두드러진다. 또 하나의 구성주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삼각형과 같은 가장 기본적인 형태의 패턴을 반복하는 극히 단순한 구성주의와, 바둑판 같은 격자와 3각의 구조적 변주를 시도한 보다 복잡한 구성이 나타나고 있다. 말기에는 기하학적 형태의 반복은 다시 구체적인 자연물의 굴절로 순화되어지면서 더욱 색채의 평면화가 두드러지게 인상된다. 청 색조 아니면 붉은 색조의 조화로 모노크롬 회화를 이루는 작품들이 있다. 이 시기의 작품은 부드럽고 가벼워 마치 숨쉬는 색면이라 표현되기도 한다.
대표작품
<산(지형)>(1959) <산>(1964)
평론
화가 유영국은 우리나라 추상예술의 선각자의 한 사람으로서 평생동안 고집스럽게 자기의 길을 걸어 온 사람이다. 80이 갓 넘은 나이, 생애의 마무리에 접어들면서 서사시적 장대함에서 서정적 아름다움의 세계로 전환하고 있으나, 기본적으로 물체의 근원에 대한 탐구를 계속한다는 데에는 변함이 없다. 우리나라 추상예술의 선구자로서는 유일하게 오랜 기간동안 흔들림 없이 추상 양식을 지속시켜 왔기 때문에 유영국을 단순한 추상화가로 여기기 쉽지만 그의 예술은 어디까지나 자연에서 출발한다. 그가 바라보고 표현하는 자연은 다른 자연주의자처럼 묘사를 위한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거시적인 시야에서의 자연이다. 유영국이 추상화가로 불리는 이유는 바로 자연의 근원이 형과 색으로 조형화되어 드러나기 때문일 것이다. 유영국이 이룩하고 있는 작품세계는 유영국이라는 예술가를 통해서 창조된 또 하나의 자연이기에 자연주의적인 태도에도 불구하고 재현보다는 실현을 성취하게 된다고 하겠다. (……) 유영국의 회고에 의하면, 당시 일본에서 나무를 재료로 사용한 사람은 없었고, 아르프의 나무 작품 정도가 알려져 있었다고 한다. 나무를 비롯한 건축자재를 재료로 사용하게 된 것은 유학 시절 작품 재료를 구하려고 건축자재 상점을 기웃거리면서도 경제적인 여건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를 지켜보던 상점 주인이 유영국이 작가라는 사실을 알고 건축자재 부스러기를 선뜻 내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전쟁의 기운이 짙은 시절에도 일본인의 작가에 대한 존경과 배려는 아주 놀라운 것이었다고 유영국은 말한다. (……) 광복 이후 신사실파를 통해 발표된 유영국의 화면에는 산이나 바다 등 자연의 보편 형상이 화면 구성의 형식적 요인으로서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1·4후퇴 시 고향 울진으로 피난하여 생활하는 동안 자연과의 교감이 일어났으며, 이것이 작품상에 새로운 변환을 일으키게 한 요인이 아닌가 생각된다. 일본에 유학하던 시절에도 방학 때면 근처의 해변에 나가 하루 종일 먼 산을 쳐다보거나 수영을 하는 것으로 소일하곤 하였다고 하는데, 이러한 자연 속에서의 생활과 체험이 유영국의 화풍을 전개시키는 자양분이 되었으리라는 짐작이 가능하다. 어찌되었든 해방 이후 유영국의 작품은 명확하고 단순한 구성주의적 경향에서 자연에 대한 깊은 감동을 전하는 비구상적 경향으로 전환되었다. (……) 해방 직후 자연의 보편적인 형상을 기본 틀로 끌어들여 전개시킨 유영국의 작품세계는 강렬한 색채 및 작열하는 섬광으로 표현성을 드러냈지만, 구성의 해체와 우연성의 강조라는 앵포르멜 미술과는 달리 견고한 구성과 구조를 항상 견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일정 시기마다 부분적인 구조의 해체와 회복이 반복되면서 미묘한 변화를 일으켰으며, 이것이 유영국 작품의 변천사를 살펴 볼 수 있는 근거가 되기는 하나, 커다란 맥락에서 볼 때 유영국 미술의 특징은 구성적인 패턴을 기본 구조로 하면서 강렬하고 순수한 색채적 표현이 큰 파장을 일으킨다는 점으로 요약될 수 있는 것이다. 유영국은 1962년 현대작가 초대전에 참가하던 작가들과 함께 '신상회'를 조직하였다. 신상회는 화단의 새로운 모색을 추구하면서 공모전을 개최하는 등 의욕적인 활동을 전개시켰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단체의 이합집산이 계속되었고, 이에 유영국은 1964년을 끝으로 모임을 떠난다. 이것으로 유영국의 단체 활동은 막을 내리고 그 후로는 주로 개인전을 통해 활동하면서 작품성의 심화에 주력하였다. 1979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한 <유영국 초대전>은 작가 유영국에 대한 평가를 공고히 한 계기가 되었으며, 1996년 호암갤러리에서 개최한 <한국 추상화의 정신전>은 우리나라 추상미술의 역사 속에서 유영국의 독자성을 다른 작가들과 견주어 평가하는 기회가 되었다. 유영국의 위상은 단지 우리나라 추상예술의 선구자였다는 한시적인 평가를 넘어서 오늘날 한국 추상미술의 특성을 드러내는 대표적 작가로서 그 의미의 지평을 넓힐 때 진면목이 드러날 것이다. 한국 추상예술의 거목, 그가 바로 유영국인 것이다. - ‘한국 추상 예술의 거목, 유영국론’, 이경성(전 국립현대미술관장, 미술평론가)
작가의 말
산은 자연이 부여한 하나의 물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추상의 빈 그릇일 수도 있다. 그것은 또한 누군가가 베고 잤을지도 모르는 산가 여인숙의 헌 베개같이 축소 해석되어 한밤 내내 친근한 대화를 오가게 한다. 바라볼 때마다 변하는 것이 산이다. 결국 산은 내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있는 것이다. - <월간미술>, 1996년 10월호, ‘유영국 인터뷰 내용 중에서’
관련도서
<20인의 한국현대미술가>, 오광수, 시공사, 1997 <韓國近代繪畵選集: 洋畵>, 이구열, 금성출판사, 1990 <한국현대미술대표작가100인선집 유영국>, 금성출판사, 1982
관련사이트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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