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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진(文學晉)

예술가명
문학진(文學晉)
구분
서양화가
생애
1952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였다. 서울대 미대 교수·국전 심사위원·중앙미술대전 심사위원 등을 지냈으며 1987년 예술원 회원이 되었다. 1954년,1955년,1968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특선하였고 1958년 미국 World House 화랑초대출품, 1963년 상파울루 등 주요 국제전과 국내전에 참가하였다. 1950∼1960년대에는 전위미술을 추구, 입체파 화풍을 바탕으로 한 순수추상을 주로 하였으나 그 뒤 1970년대 후반부터는 <행주산성대첩도>(1978) 등 기록화 제작에 힘을 기울여 공식 기록화 부문에서도 괄목할 만한 업적을 남겼다. 색채의 통일과 조화에 중점을 두어 회화적 공간을 구성하는 독창적인 반구상(半具象)으로 주로 정물과 인물을 그렸다. 안정된 구도와 차분한 색감에 의한 정적인 분위기 역시 문학진 작품의 주요 특성으로 대표작품으로는 <행주산성대첩도>(1978) 및 <육사기념관 벽화>(1950) 등과 유화 <여인>(1955), <마을사람들> 등이 있다.
약력
1952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 개인전, 부산 피가로다방 1954년~1971년 국전 특선 7회, 국립현대미술관 1955년 국전 문교부장관상 1958년 한국현대미술초대전, 월드하우스화랑(미국 뉴욕) 1960년~1983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1961년~1981년 국전 추천작가, 초대작가 및 심사위원 1969년 앙가주망전 1971년 제20회 국전초대작가상 1978년 중앙미술대전 심사위원 1982년 제1회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1987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1989년 대한민국예술원상 1990년 개인전, 갤러리현대 1995년 대한민국보관문화훈장 2002년 서울 카톨릭미술가회 특별상 2002년 종이작품 개인전, 쥴리아나갤러리
예술활동
문학진의 작품 세계는 구상과 추상의 중간쯤에 위치한다. 즉, 추상성을 강하게 지니는 동시에 구상성을 띠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한편 색채에서는 회백색조의 무게가 담긴 색채에 노랑이나 파랑을 가미하면서 결정적으로 검은색을 사용하여 마무리하고 있다. 문학진은 죠르쥬 브라크(George Braque)의 입체파에 근원을 둔 양식을 일관되게 견지해 왔다. <작품 77>은 인물과 정물을 주요 소재로 선택하여 형태를 간략하게 변형하고 사물과 사물의 관계를 화면에 재배치함으로써 반추상적 화면을 구성하는 문학진 작품의 특성이 잘 드러나 있다. 안정된 구도와 차분한 색감에 의한 정적인 분위기 역시 문학진 작품의 주요 특성으로, <작품 77>은 흑색 배경과 백색 테이블, 그리고 그 경계면에 놓인 회색의 정물들로 화면이 삼분되었다. 고대 토기와 향로 등 전통 기물들이 수평으로 늘어져 배열된 이 그림은 사물의 형상은 잔존하고 있으나 사물이 내포하는 기능성과 역사성은 작품의 콘텍스트로부터 발각되었다. 작품이 추구하는 지점은 추상적 형태와 색의 배치에 따르는 질서와 통합인 것이다. 한편 두개의 면으로 분할된 테이블과 흑색 배경의 미묘한 색감 및 공간 변화는 화면 내에 리드미컬한 율동감을 주고, 우툴두툴하게 도드라져서 원형을 이룬 얼룩들은 기물들의 표면 질감 표현과 어우러져서 장식적 효과를 높였다.
대표작품
<마을사람들>(1971)
전시 리뷰
(……) 문화백은 종이, 파스텔, 아크릴유화 등을 기하학적 또는 추상적으로 결합하여 새로운 조형언어를 창조해왔다. 대상을 낱낱이 해체한 뒤 이를 재창조하는 과정에서 과감한 생략과 입체감을 부각시켜 유연하면서도 질서정연한 논리와 감성을 보여준다. 긴장과 휴식, 해체와 창조, 변형과 본질이 교차하면서 생명력 넘치는 화면을 제시한다. 미술평론가 유준상(서울시립미술관장) 씨는 “검정과 흰색이 조화를 이룬 과거 작품과 달리 신작들은 다양한 색감들이 등장해 색의 형식으로 구성되는 순수한 기하학적 공간을 연출한다”고 설명한다. 서울대 미술대 회화과를 나온 문화백은 그동안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호국상 등 벽화를 많이 제작해 왔다. - <한국경제>, 2002년 11월 25일, ‘종이로 만든 <소녀와 악기> 문학진 화백 13년 만에 전시회’
평론
문학진은 필자와의 대화에서 피카소와 브라크의 입체파가 전개시킨 지적 구성작업, 그 중에서도 브라크의 정신적 형상사고에서 감화와 영향을 받은 면을 시인한 적이 있다. 그는 또 초현실적인 키피코의 예술에도 각별한 관심을 가졌었다고 한다. 그것은 1950년을 전후로 한 시기, 그러니까 그가 미술학교 상급반이던 무렵부터 국전 등 주요 전람회에서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하던 시기를 말하는 것이다. 8·15 민족 해방과 더불어 국내에서 처음으로 서울대학교에 미술전공과가 생기자(후에 미술대학으로 발전) 문학진은 그 1회 입학생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대학에서 그를 지도한 어떤 교수나 국내의 다른 어떤 화가에게서도 특별히 깊은 영향을 받지 않았다. 미술학교를 채 졸업하지 못하고 6·25의 참변과 전란을 경험한 그는 새로운 지적 가치를 추구하면서 그의 예술사고를 전위적인 방향으로 몰고 갔다. 그는 8·15 이후 제1세대의 신예화가로서 주목을 끌기에 충분한 예민한 감성과 혁신적인 작품을 시도하고 있었다. 그 한 예로서 1953년의 제3회 국전에 출품하여 문교부장관상을 획득했던 < F건물의 중앙 >은 당시로서는 대단히 참신하고 혁신적인 화면구성이었다. 그것은 다분히 입체파적인 작업이었다. 그리고 1958년 작품인 <자전차에 부딪친 운전수> 등이 모두 1950년대의 문학진 예술의 실험기를 말해 주는 작품들이다. 앞에서 작가 자신이 밝혔듯이 이 시기의 작품들은 입체파와 초현실파에 대한 이 작가의 적극적 관심을 반영하고 있다. 1950년대 중엽은 한국 화단에서 유럽의 새로운 전후미술이 소개되면서 일부 젊은 세대들에게 강한 영향을 주고 흔히 추상으로 지칭되는 전위적인 미술 운동이 고개를 들던 시기였다. 지적 감성면에서 문학진은 그 추세에 공명하던 젊은 신예였다. 그러나 그는 떠들썩하게 그 전위대열에 가담하여 열기를 토하고 시위를 보인 적은 없었다. 비사교적이고, 말이 없고, 내성적인 그는 오로지 자신의 사고와 작업에만 성실하고 탐구적인 고독한 내공형의 작가였다. 1960년대에 들어오면서 문학진은 1950년대의 실험기를 자신의 체질과 성숙한 자신의 미의식으로 극복하기 시작한다. 브라크의 정신적인 표현세계를 소화한 듯한 일련의 정물화와 피카소의 지성적인 조형감각이 문학진 자신의 것으로 빚어져 나오는 일련의 여인상에서 우리는 문학진 예술의 정리된 기반과 개성적인 내면을 목격하게 된다. 그러한 작업은 1970년대에 와서도 큰 변화없이 계속되고 있으며, 다만 주제의 구성적인 전개와 색채구사 면에서 정신적 또는 감각적 심화가 나타나고 있을 뿐이다. - <한국현대미술대표작가100인선집 문학진>, 이귀열(미술평론가), ‘구성과 형태미’
관련도서
<한국현대미술대표작가100인선집 문학진>, 금성출판사, 1976
관련사이트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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