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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관(南寬)

예술가명
남관(南寬)
구분
서양화가
생애
경북 청송(靑松) 출생. 1935년 일본 도쿄[東京]태평양미술학교를 졸업하고 1954년 프랑스에 유학하여 1958년까지 ‘아카데미 드 라 그랑드 쇼미에르’에서 수학하였다. 1958년 한국인 화가로는 처음으로 살롱 드메전(展)에 초대되고, 이어 H.아르퉁, A.마네시에 등과 함께 플뢰브화랑 초대전에 참가하여 국제적인 화가로 인정받았다. 1966년 망통회화비엔날레에서 대상을 받으며 이름을 드높였고 1968년 귀국한 이래 국전 서양화 심사위원장, 홍익대학 교수 등을 역임하면서 파리를 중심으로 한 작품 활동도 계속하였다. 1970년대까지 파리국립현대미술관과 파리시립현대미술관에 소장 작품을 둔 유일한 한국 화가였으며, 독일, 프랑스, 스위스 등에서 작품을 전시하였고, 1981년 대한민국문화훈장을 받았다. 1970년에 들어와 한글, 한문 등 문자를 모티브로 한 추상작품을 시도하였다. 이러한 그의 작품은 인간의 정신과 우주의 영원성을 담백하면서도 세련된 색채 감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대표작으로 <사적>, <폐원>, <허물어진 고적> 등이 있다.
약력
1925년~1945년 도일 1944년 동광원 회원으로 추천 1948년 문교부 종합미술전람회 심사위원 역임 1948년~1951년 숙명여대, 홍익대 교수 역임 1948년~1950년 개인전, 동화백화점화랑 1949년 국전 추천작가 1950년 전국문화단체 총연합회 중앙위원/ 한국 50년 미술협회 최고위원 1953년 개인전, 포름화랑(일본 동경) 1954년 도불 / 개인전 도불 기념전, 미도파백화점화랑 1955년 국전 초대작가 1963년 개인전, 에르네스크호온화랑(룩셈부르크) 1964년 개인전, 트랑스포지숑화랑(프랑스 파리) 1965년 개인전, 에르네스트호온화랑 / 개인전, 우스똥브라운화랑(프랑스 파리) 1966년 개인전, 맨슈화랑(독일 함부르크) / 프랑스 망통(Menton)회화비엔날레 대상(프랑스 망똥) 1967년 개인전, 가브리엘화랑(독일 만하임) 1968년 개인전, 뵈르까메르화랑(프랑스 파리) 1968년~1977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 국전 심사위원장 및 운영위원 1969년 개인전 체불 작품전, 국립공보관 1970년 개인전 소품전, 삼보화랑 1970년~1971년 한국미술대상전 심사위원장 역임 1972년 개인전, 현대화랑 1973년 개인전, 뵈르까메르화랑(프랑스 파리) 1974년 개인전, 신세계미술관 / 대한민국문화예술상(문화공보부) 1975년 개인전, 랑그르에귀화랑(벨기에 브뤼셀) 1978년 개인전, 귀떼화랑(룩셈부르크) 1979년 개인전, 맨슈화랑(독일 함부르크) / 개인전, 현대화랑 1981년 대한민국문화훈장(정부) 1983년 개인전 소품전, 국제화랑 1984년 개인전 창작 50년의 예술세계, 중앙갤러리 / 개인전, 귀떼화랑(룩셈부르크) 1987년 개인전, 예화랑 1988년 개인전, 현대갤러리 1990년 대한민국예술원상 1991년 개인전 80년의 생애와 예술, 국립현대미술관 1991년 개인전 남관: 한국 현대미술의 한국성 모색 I부전, 한원갤러리 1991년 개인전 남관 1960~90년전, 그로라대화랑 1995년 회고전 남관 5주기전, 현대갤러리 2003년 특별 회고전, 공간화랑(부산)
예술활동
1911년 경북 청송에서 태어나 1935년 동경 태평양미술학교를 졸업하고 그 후 일본 ‘동광회’, ‘국화회’, ‘문전’ 등에 출품하면서 신미술을 익혔던 남관은 해방이 되자 국내에 잠시 머물다가 1954년 파리로 떠나게 된다. 이후 13년간의 파리체류 기간 동안에 획기적인 변화양상을 보이게 되는데, 그것은 동경체류 기간에 시도한 토속적, 향토적 소재를 서술적 방법으로 그려내던 방식에서 떠나 형상이 완전히 붕괴된 소위 투박한 재질감 및 거친 표면으로 상징되는 앵포르멜 회화에 손을 대기 시작하는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당시 파리에서 성행하던 앵포르멜의 영항을 받은 것이기는 하나, 그것은 작가의 기억 즉, 지워지지 않을 흔적의 기록으로서 앵포르멜을 선택했음을 지적해둘 필요가 있다. 그것은 전쟁의 기억이다. 파리 시기의 작품들은 일반적으로 어두운 색조, 비정형의 형태 그리고 까칠한 마티에르, 상처투성이의 평면으로 특징지워진다. 추상의 외형을 띠었지만, 혼란스러운 실존, 고독, 메마른 심상을 호소하고, 따라서 그가 체험했던 험난한 삶을 훤히 들여다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1968년 귀국과 함께 그의 작품에도 약간의 변모가 뒤따르게 된다. 밝아진 색조, 다듬어진 마티에르, 돌출하는 형상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사실은 귀국과 더불어 그의 화면에 기호가 들어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작가의 그림에서 나타나는 기호의 성질은 기호 자체의 목적성을 주장하기보다는 반복, 해체, 재구축을 하여 복합적인 인간성과의 관련 아래 존재한다. 1970년~80년대에는 붙이기(콜라주)와 붙었다가 떼어내기(데콜라주)와 같은 수법의 구사와 응용을 통해 보다 성숙된 조형세계를 보여준다. 그의 색채에 대해서는, 청색과 백색의 색조대비, 초록, 빨강, 보라색 주조의 중간색에 의해 정교하게 시사된 분위기가 그 신비성으로 인해 고요한 전율을 동반한다. 그것은 마치 주술적이고 원시적인 깊이를 자아낸다.
대표작품
<역사의 흔적>(1963) <패왕의 환상>(1979) <흑과 백의 율동>(1981)
전시 리뷰
남관의 회화적 드로잉은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나타내는 그림으로 자신의 마음속에 그려진 형상들의 이미지 표현이다. 그의 드로잉에서는 자연과 인간의 모습이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나타난다. 무리진 인간의 군상(群像)과 자연 풍경이 있고, 해와 달, 그리고 별들과 구름. 나무, 산 등 서정적이며 시적(詩的)인 분위기로 그려진다. 드로잉의 배경은 더욱 추상화된 공간이면서 주제가 되는 대상은 사실적 묘사와 함께 상징적 기호로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 쉽게 이해된다. 그러나 이와 같은 그의 드로잉은 그 예술세계가 결코 가볍게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바탕이 되는 종이 속으로 스며든 푸른색과 붉은색의 얼룩들, 그 위에 순간적 충동으로 그려진 듯한 심상(心象)의 이미지는 정해하면서도 깊이를 지닌다. 그의 드로잉은 밝음과 선명함이 생명처럼 느껴지며, 시간의 흔적을 담고 있는 얼룩들은 비록 어둡지만 화면과 밀착되어 시공(時空)을 초월한 내면의 역사처럼 보인다. 자연의 소리와 인간의 움직임이 순간적으로 조화롭게 평면 위에 형상화하는 남관의 드로잉은 어린아이보다 더 순수한 자유인의 의지로 해석된다. 한편 그의 드로잉은 페인팅과 달리 서술적이며 즉흥성이 중요시된다. 선묘(線描)로 나타나는 인간과 자연 이미지는 주제를 명확히 하면서 즉흥적으로 그려진다. 대부분 인간을 모티브로 단순하게 그려진 형상들은 무거운 구성의 틀에서 벗어나 가볍고 자유로운 표현이다. 즉흥적으로 그려진 인간 군상은 서예처럼 가필이 없는 선묘이다. 단순하며 순간적 결정의 형상들은 화면에 긴장감과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 인간 형상은 페인팅보다 더 사실적이며, 즉각적 인상 표현이다. 손과 손을 잡은 군상이나 두 팔을 벌린 인간상은 결코 어두운 과거의 이미지가 아니다. 이처럼 드로잉에 나타난 군상의 역동적 움직임 묘사는 페인팅과 달리 희망이 있는 낭만적 성격이 강하다. 작가 자신의 말처럼 캔버스에 그려진 ‘인간상(人間象)’은 전쟁과 억압 속에서 상처받은 비극적 인간의 형상을 생각하게 하나, 드로잉에 나타난 ‘인간 군상’은 밝은 미래를 지향하는 축제 분위기인 것이다. - ‘자연과 인간, 심상(心象)의 이미지’, 유재길, 1995년 7월, 갤러리 현대
관련도서
<20인의 한국현대미술가>, 오광수, 시공사, 1997 <한국현대미술대표작가100인선집 남관>, 금성출판사, 1975
관련사이트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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