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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지식 예술지식백과 (무용)

예술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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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범(宋范)

예술가명
송범(宋范)
활동분야
한국무용
생애(약력)
무용가를 꿈꾸던 송범은 1945년 조택원 무용연구소에 입문하면서 무용계에 투신한다. 이후 전력으로 무용에 매진한 결과 현대무용, 발레, 남방무용, 한국민속무용 등 무용 전반에 걸쳐 탁월한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그렇지만 송범이 무용활동 전기에 가장 과심을 기울인 분야는 모던 발레였다.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욕이 강렬해지면서 발레기법에 의한 작품세계를 갖고 싶었던 것’이다. 송범의 작품세계가 변하기 시작한 것은 국립무용단에 참가하면서부터이다. 그는 한국무용에 대한 깊은 관심을 기울이다 1968년 이후부터는 한국무용을 기본으로 한 작품만을 발표하였다. ‘우리 춤의 흥과 멋 신명들을 보충하여 보다 더 우리춤의 깊이에 접근해 보고자’ 하는 의도로 전통춤과 가락을 섭렵하며 서구적 무대 메커니즘을 활용하면서도 전통무용의 특성을 살릴 수 있는 무용극의 방법을 모색한다. 그렇지만 정적인 전통무용만 가지고는 동적인 무대표현을 요구하는 무용극의 완성을 이룰 수 없었기 때문에 송범은 무용극에 다양한 장르의 무용적 기법을 차용할 수 밖에 없었다. 송범이 안무한 작품들을 고찰해 보면, 소재를 고전설화나 역사적 사실에서 빌려오면서 현대적 의미로 재해석해 내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국립무용단이 그 속성상 다소 보수적인 가치관을 지향하고 있어서 어떤 측면 그런 소재의 무용극이야말로 관료들의 보수적인 가치관과 예술가의 스케일이 합쳐 들어간’ 것이라 볼 수 있다. 그의 안무상의 특징은 ‘유미주의적이면서 동작의 움직임이 다양하고, 스펙터클한 군무위주의 형식’으로 요약할 수 있다. 무용극에 발레와 현대무용의 테크닉을 과감하게 도입하여 “우리춤의 특성인 곡선적인 동작을 서양의 직선적이고 정형화된 모습으로 바꾸었고, 무대구성도 선 위주의 조직성과 통일성을 강하게 내포하고 있으며, 공간활용도 무대라는 한정된 틀 속에 묶어 웅장한 효과를 노리고 있다.” 이러한 스타일에 의해 그가 안무한 작품들에서는 무용수 개인의 특성보다는 집단의 웅장함이 강조되며, 설명적 서사구조에 대한 의존성이 두드러졌다. 1945년 양정중학교 졸업 1951년 장추화 무용연구소 교육 조교, 한국무용단 합류 1955년 코리아발레단 조직 1956년 한국무용가협회 조직 1961년 한국무용협회 이사장 1962년 한국예술문화단체 총연합회 이사 1968년 멕시코 올림픽 한국민속예술단 참가 1972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교수 1973년 초대 국립무용단 단장 1976년 미국독립 200주년 기념공연 1979년 대한민국 무용제 운영위원 1983년 현재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 1992년 국립무용단 퇴임, 중앙대 예술대 무용과 명예교수 1998년 무용원로원 원장
상훈
서울시 문화상(1968) / 대통령 표창(1972) / 국민훈장 동백장(冬柏章)(1973) / 대한민국 문화예술상(1973) / 무용공로상(1982) /대한민국 예술원상(1984)
출연작
1947년 <천하대장군> 1952년 <불의 희생> 1956년 <비련> 1963년 <배신>(김진걸 안무)
안무작
1948년 <습작> 1949년 <출진(出陳)> 1950년 <기해> 1951년 <망향> <유랑> <전선> <양자강> 1952년 <승전보> <거미의 생태> <힘과 선> <4285년> <영원한 조국> <무녀무도> 1953년 <뱀의 생리> <파랑새> <아다지오의 밤> <토리아귀> <라오펜> <인도라> 1953년 <지평선> <불춤> <동란일기> <자유> <5월의 인상> <4월의 노래> 1953년 <예술가의 일생> <아리랑 환상곡> <향사의 정서> 1954년 <명상에의 동의> <여명> 1955년 <생존경쟁> <벽> <공장지대> 1956년 <오월의 분수> <10월의 노래> <죽음의 승리> <만유인력> <만나서는 안될 너와 나> <라일락 피는 밤> <패북자> <항거> <환영의 사람> 1957년 <안단테 칸타빌레> <유쾌한 휴일> <환상교향곡> <한여름밤의 꿈> <저항> 1958년 <흑의의 여인> <무도회의 권유> <밤구름> 1959년 <현대인> <월광> <열풍지대> <추억의 야회> 1960년 <백야> <기항지> 1961년 <혁명전야> <농악> <죄와 벌> 1962년 <영은 살아있다> 1963년 <고요한 찬가> <에츄드> <에레지> <도피자> <향수> <검은 태양> <암흙> <시바의 유혹> <광열의 고독> 1965년 <멍든 산화> <왕비 훼도르> <심산유곡> 1967년 <종송> <인간투쟁> 1968년 <화관무> <선녀춤> <연가> <달과 여인> 1970년 <전원풍경> 1972년 <강강술래> <단오절> 1973년 <별의 전설> 1974년 <왕자 호동> 1975년 <백의 환상> <사의 승무> 1977년 <춘향전> 1978년 <마음속에 이는 바람> 1979년 <꿈·꿈·꿈> 1980년 <푸른 천지> 1982년 <썰물> 1984년 <도미부인> 1986년 <은하수> 1990년 <그 하늘 그 북소리> 1995년 <황혼의 노래> 1996년 <오셀로>
주요저서
<송범 그 인생과 예술>(신주희,송범 편,1992) / <나의 춤, 나의 길>(김태원 편, 2002)
창작노트
20여 년간 연마해왔던 현대무용, 발레, 인도무용은 오히려 나의 무용작품 속에서 세계화 된 무용언어를 표출하는 양분이 되었다고 감히 밝히고 싶다. 무조건 외국의 예술은 인정하고 선호하는 식의 사대주의적 발상에 반발하는 나로서 현대무용, 발레를 비롯한 각 나라의 민속무용의 섭렵은 동경하는 저 사대주의적 발상에 연유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무용언어의 습득으로 풍부한 표현영역의 확대를 꾀했던 나의 무용관에 기인하는 것이다. 분명 다양한 장르의 무용체험이 한국적 무용극을 시도하는 원동력이자 동인이 되었음은 뚜렷하다. 무수한 소재들을 제공하는 영감의 원천은 이미 우리 민족의 맥 속에 이어져 내려오는 이야기 속에 산재해 있지 아니한가. 우리 민족의 이야기를 우리의 언어로 표출하되 모든 언어의 사람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하고 감동을 안겨준다면 그것이 곧 예술의 영역이며 예술가가 지향해나갈 목표라고 여겨진다.(……)내가 제일 처음 현대무용을 시작하면서 마음 속으로 언젠가는 한국무용을 해야겠다는 것을 생각했었다. 이런 생각은 다시 발레로 옮겨가며, 몸에 익혀진 모든 기능이 앞으로 한국무용을 하는데 이용되어야 하겠다는 아주 구체적인 의식 같은 것을 갖게 되었다. 현대무용이니 발레니 하는 것을 하지만 그런 것은 어딘가 한국인으로서의 나의 정서나 체질에 꼭 맞아 떨어지지 않는 것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을 말로는 정확히 표현하기는 힘드나 모든 것을 종합하며, 그리고 그것에서 넘어서야 될 것이라고 나는 늘 마음속으로 다짐했었다. ‘우리 것’을 내가 해야 한다고 마음먹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것’이라는 것, 그때에 내가 ‘우리 것’이라고 생각한 무용은 우크라이나춤이나 스페인춤 같은 그런 높은 품격까지 있는, 우리 고유의 춤이면서도 창작성이 있는 신무용을 생각한 것이었다. (……) 안 된 얘기지만, 어머니가 세상 뜨셨을 때 상여가 나가는 날이 섣달 노을이 넘어갈 때였는데 -상여소리가 구슬프고, 아낙네들이 뒤에 따르고-, 나는 그 상여 뒤를 따라 걸으면서 슬픔보다도, ‘이 정경이야말로 하나의 작품이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나의 예술 반생애에 있어서 오늘날의 이런 기반, 별로 자랑할 것은 못되나 그래도 여기에 이른 것은 역설적인 이야기긴 하지만 평론에서 욕을 많이 먹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피나는 고생을 하여 만든 작품이 가혹하게 비평을 당할 때의 실의는 말할 수 없이 심각하였다. 그러나 구더기가 무서워서 장 못 담그랴, 너희들은 나를 욕하지만 관객들이 원하는 것이라면 한 번으로 되는 것이라도 세 번 연습하고, 세 번 할 것은 여섯 번으로 하여 꼭 이것을 칭찬 받겠다는 오기와 열정을 낼 의지를 갖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 - <나의 춤, 나의 길>, 송범, 김태원 편, 2002
리뷰
그의 초기 무용극의 경향을 집약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 바로 <왕자 호동>이다. <왕자 호동>은 대작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었고, 당시 무용계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이 작품은 안무와 연출의 극치를 이루었으며, 안무에 있어 협업의 필요성과 함께 이에 대한 새로운 선례를 남겼다.(……)1980년대 이전까지 그의 안무경향은 대체로 설화와 전설, 신화 등에서 따온 소재를 바탕으로 형식적 장식미와 유미주의적 아름다움을 강조한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 <전통의 변용과 춤창조>, 성기숙, 현대미학사, 1998 모든 한국무용에서 제스처가 두드러지듯이 <도미부인>의 극적 전개는 무언극으로부터 춤으로 무리없이 부드럽게 이어졌으며, 안무자 송범은 질서정연한 그의 독특한 안무법에 등장인물의 갈등과 감정을 능숙하게 부각시켰다. 이 작품은 한국의 격동하는 역사 속에서 공연예술의 발전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려는 하나의 용감한 도전이며, 신선하고 놀라운 방법으로 한국의 민속무용을 아시아의 위대한 고전 무용극의 특징과 연결시키려고 시도한 성공적인 작품이다. - ‘미국 LA올림픽 문화예술제 공연관람 후기’루이스 시갈(무용평론가), 1984
관련도서
<나의 춤, 나의 길>, 김태원, 현대미학사, 2002 <전통의 변용과 춤창조>, 성기숙, 현대미학사, 1998
연계정보
-영은 살아 있다
-도미부인 (초연: 도미이야기)
-별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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