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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흥구 (1940.4.6~)

예술가명
이흥구 (1940.4.6~)
구분
중요무형문화재
문화재관련정보
1993.12.16 중요무형문화재 제40호 학연화대합설무 보유자 인정
학력(계보)
1956.~1964. 김보남선생께 한국무용 사사 1961.3.1 국립국악원부설국악사양성소 제1회 졸업
생애(약력)
1963.~1968. 김천흥무용학원 조교 1972.~1984. 한국민요연구회 총무 1976.~1980. (사)한국국악협회 무용분과 위원장 1980.~1982. (사)대악회 사무국장 1980.~1982. 국립국악원무용단 지도위원 1985.~1991. 국립국악원무용단 상임안무 1986.10. '86아시안게임 안무 체육부장관상 수상 1987.~1991. 중요무형문화재 예술단 운영위원장 1989.~1991. 조선대학교, 숙명여자대학교 무용과 강사
리뷰
한영숙선생에게 학춤을 사사한 이흥구는 정재무와 민속춤을 넘나드는 다양한 춤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그의 학춤은 본래의 우아하고 정제된 춤사위를 그 자신만의 독특한 춤세계로 승화시켜 새로운 정재무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궁중무용의 무보를 많이 남겨 그 전승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며 1997년 현재 용인대학에 출강, 후진양성에도 힘을 쏟는 가운데 국립국악원 예술총감독으로 재직중이다. 인간문화재 후계자 14 학춤 보유자 후보 이흥구씨 자랑으로 찾고 지키는 학춤의 원형 명고(名鼓)·명무(名舞)로 현대무대의 전설이 된 한성준(韓成俊)의 학춤은 그의 손녀 한영숙(韓英淑)에게 전해져 1971년 중요무형문화제 40호로 지정됐다. 학춤의 인간문화재인 한영숙씨는 지난해 돌아가셨고 이제는 그 후계로 보유자 후보인 이흥구(李興九, 50)씨가 학춤의 계승발전에 앞장을 서고 있다. 한영숙씨 밑에서 오래 공부한 제자들은 모두 학춤을 배웠으나 현재 이수자로는 김영미·정상노·한영심·이연미가 있고 그 외에 3명의 전수 장학생이 있다. 이들 이수자들은 모두 30대, 전수생들은 더 젋다. 스승이 가고 없는 지금, 이흥구씨는 이들 젊은 세대의 앞장을 선 어른이다. “학춤은 궁중정재홀기가 남아 있고 춤도 전해 그 맥이 뚜렷합니다. 한영숙선생이 할아버지이신 한성준선생께 배운 학춤은 이 궁중정재를 바탕으로 창작된 현대무대춤 작품이라고 할 수 있죠. 기본적인 발상이나 동작은 거의 비슷하면서도 한선생님 학춤은 날개짓이 화려하고 학의 노니는 모습에 연극적인 요소가 강합니다." 무형문화재 학춤과 정재학춤을 모두 추고 연구해온 그의 비교는 자신이 있다. 그는 1940년 4월 6일 충남 대천에서 태어나 대천국민학교를 졸업, 6·25직후인 1954년 서울에 와서 국악사양성소에 들어갔다. “내남직없이 어려웠던 시절이었죠. 전액국비로 중·고교과정을 공부할 수 있다니 그에 더 바랄게 없었죠.” 거기서 그는 해금을 전공, 김종희·김천홍씨에 사사했고 춤은 김보남·김천홍·한영숙씨에게 배웠고 김백봉씨와도 1년쯤 공부를 했다. 한영숙 학춤의 전수는 1970년부터 승무·살풀이 등과 함께 배웠다. 1971년 문화재지정 직후 첫 학춤 발표회에서 그는 김응하씨와 같이 쌍학으로 출현을 했다. “보법은 살풀이보법이 기본이지만 발은 무릎높이 이상으로 올려딛습니다. 날개접는 사위, 날으는 사위, 걷는 사위, 깃털 다듬는 몸짓 등으로 구성돼 있구요. 절대로 발을 끄는 법이 없고 무릎정도까지 들어서 뻗어 닫는 거죠. 보폭이 크고 엇갈려 딛는 발놓임이 깊구요. 학옷을 입고 조그만 구멍으로 내다보고 춰야 하고 내내 허리를 굽히고 있어야 합니다. 평형감각을 지속시키는 일이 힘든 춤이죠.” 그래서인지 이 춤은 배우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1980년 이후 국악원의 궁중정재 재현작업에서 김천흥선생을 도와온 그는 이론과 실기 자료정리면에서 정재와 민간에 전하는 학춤들을 비교할 수 있는 입장이다. 지난해 출판된 국악원발행 <학무>에서 그는 궁중정재홀기와 한영숙학무무보를 함께 정리해서 실었다. 그가 스승인 한영숙선생에게 꾸지람을 들어가며 학옷의 바지를 악학궤범의 그림대로 얼룩무늬다리로 만들어 본 것도 그런 연구자세의 일단이었다. “정재학옷은 종이로 만들었고 날개보다는 부리의 움직임이 특이했죠. 한성준 학춤옷은 검은양말에 날개가 자유롭고 화려했구요. 옷도 학털을 모아 만들었다는 거예요. 그 동안 닭털로도 실험을 해봤으나 보관이나 손질이 어렵더군요. 지금은 인조밍크옷감을 쓰고 있죠. 지금 새의 깃털을 구해놓고 한번 이걸로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스승이 살아계실 때 그의 학춤을 정재쪽으로 가져가려 한다고 걱정을 많이 들었지만 그 역시 더 단단한 원형 찾기를 위한 그의 노력이었다고 변명한다. 전통무용자료의 살아있는 사진처럼 그는 오늘의 무용 학도들에게 좋은 안내자 노릇을 하면서 학춤의 맥을 지키는 일에 자랑을 느낀다. <일간스포츠>, 구히서, 1990년 10월 6일관련가치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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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악정재
-학연화대처용무합설(鶴蓮花臺處容舞合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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