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푸터 바로가기
> 문화지식 예술지식백과

예술지식백과

문화 관련 예술지식백과를 공유합니다

백조의 호수

작품/자료명
백조의 호수
초연장소
국립극장
안무가
임성남
장르구분
1961년~1980년
출연/스태프
* 출연 박해련, 김성일, 김종훈, 이득효, 김영자, 최대웅, 유해미, 백의선, 안승희 등 * 스태프 작곡/차이코프스키 지휘/홍연택 관현악/국립교향악단 조안무/김학자 무대미술/김동진 의상/최성학, 김금복
내용
1막 – 성안 마을 왕자의 성인식 날, 왕자는 친구와 선생님과 함께 마을 축제에 나간다. 이때 여왕이 등장해 왕자의 성인식을 치르고 선물로 화살을 준다. 백조가 날아가는 것을 본 지그프리트 왕자는 생일선물로 받은 화살을 들고 숲으로 사냥을 간다. 2막 – 숲 속의 호수가 백조를 쫓아 숲으로 온 왕자는 호수가에서 인간의 모습으로 변하는 오데트 공주를 발견한다. 공주와 시녀들은 마법에 걸려 저녁에는 인간으로 낮에는 백조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왕자는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온 오데트 공주에게 반하여 청혼한다. 공주가 악마의 마법에서 풀리려면 한 사람의 변치않는 사랑을 받아야 한다는 말을 들은 왕자는 사랑의 맹세를 하고 다음날 있을 무도회에서 그녀와 결혼을 발표하기로 약속을 하고 헤어진다. 3막 – 궁전 무도회장 왕자는 오데트가 오기 기다리면서 손님을 맞는다. 그때 악마 로트발트가 오데트와 닮은 자기 딸 오딜을 데리고 등장한다. 왕자는 악마가 데려온 흑조 오딜을 오데트로 착각하고 그녀와의 결혼을 발표한 후 로트발트의 요구에 따라 영원한 사랑을 약속한다. 이때 본색을 드러낸 악마와 오딜은 사라지고 왕자는 슬픔에 잠겨 숲으로 달려간다. 4막 – 숲 속 왕자의 배신으로 영원히 백조로 살게 된 오데트, 용서를 빌기 위해 달려온 왕자, 그 둘은 서로의 운명을 슬퍼한다. 그 때, 그들을 갈라놓기 위해 악마 로트발트가 나타난다. 참고 : 국립발레단 홈페이지 작품해설
예술가
임성남 (1929~2002) 본명 임명규. 서울 출생. 전주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교사생활을 했으며 열다섯에 본 프랑스 발레영화 <백조의 호수>를 보고 발레를 하기로 결심하게 된다. 1951년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음악학교에서 피아노를 배우고 동경발레연구소에서 발레를 공부하였다. 1953년 귀국하여 ‘임성남발레연구소’를 창단하였으며, 1962년부터 1992년까지 국립발레단 초대 단장으로 활동하였다. 한국무용협회 이사장과 한국발레협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서울시문화상, 보관문화훈장, 대한민국예술원상 등을 수상하였다. 1992년 국립발레단장 퇴임 후 예원학교를 비롯한 예술학교에 출강하여 후진을 양성했으며, 2002년 73세의 나이로 별세하였다. 평생동안 400여편의 작품을 안무했으며, 1천명의 제자를 양성했다. 대표작품 <백조의 호수> <목신의 오후> <카르멘> <레 실피드> <호두까기인형> <지귀의 꿈> 마리우스 프티파 (Marius PETIPA) (1818~1910) 1848년에 러시아 상트 페테르스부르크 마린스키 극장의 수석 무용수로 입단하여 1862년 <파라오의 딸>을 처음으로 안무하였다. 1869년부터 1903년까지 34년간 마린스키 극장의 수석 예술감독으로 있으면서 54편의 신작발레, 17편의 개정안무, 35편의 오페라발레를 제작하였다. 수석예술감독으로 있는 동안 이바노프와 함께 2인무(파드되) 형식을 최초로 만들었고, 솔리스트에서 군무에 이르기까지 치밀한 수학적 계산에 의해 발레 구도를 완성함으로써 ‘고전발레의 아버지’로 평가받게 된다.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인형> <라 바야데르> 등 명작 발레 대부분이 그가 최초로 안무한 작품들이다. 대표작품 <해적>(1880년), <잠자는 숲 속의 미녀>(1890년), <호두까기인형>(1892년)
재공연
- 1984년 11월 21일~25일 국립극장 대극장, 임성남 안무 - 1987년 9월 10일~13일 국립극장 대극장, 임성남 안무 - 1993년 3월 12일~14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임성남 안무 - 2001년 11월 16일 국립극장 대극장, 창단 30주년 기념공연, 임성남 안무
평론
<백조의 호수> 그 공연이 우리의 역량만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은 기쁘기 짝이 없는 일이다. … 그러나 필자는 우리나라 발레 무용수 그 누구에게도 아직 내줄 수 없다고 생각했던 이름을 그녀에게 기꺼이 붙여주기로 했다. 발레리나… 국립발레단에서는 외국의 발레 마스터 한 사람쯤은 맞아들여야 하고… 무용수들에게 외국의 발레를 많이 보여주는 방안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춤> 1977년 5월, 이순열)
관련사이트
국립발레단 홈페이지
관련멀티미디어(전체7건)
이미지 7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