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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남성합창단

단체명
한국남성합창단
개요
한국남성합창단은 1958년 합창을 즐기던 몇몇 대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창단하였다. ‘한국 최초의 남성합창단이자 현존하는 최장수 남성합창단’인 한국남성합창단은 단원 중심의 운영과 국내에서 최초로 도입한 ‘후원회 제도’를 통한 안정적인 재정 등으로 음악계에 많은 발자취를 남겼으며 대백과사전에도 등재되는 등 명실상부한 한국 최고 의 남성합창단으로 평가 받고 있다. 거의 지난 반 세기 동안 수많은 정기연주회 및 특별연주회를 통하여 불모지나 다름없던 합창계를 선도해 왔으며, 교향악단, 오페라단과의 협연은 물론, 전국 각지의 지방연주회를 통해 우리나라 합창운동을 태동 시켰다는 데 음악사적 의의가 있다. 더욱이 한국남성합창단은 지난 1985년부터 일본 최고의 남성합창단인 ‘남성합창단 TOKYO LIEDER TAFEL 1925’과 결연을 맺고, 양국을 오가며 10여 차례 교환공연을 해왔으며, ‘OSAKA 남성합창단’과의 협연, 대만합창연합회 초청연주 등 아시아 권 및 미주지역은 물론 지난 2003년 6월에는 유럽 무대로 진출, 독일의 ‘베를린 합창제’에 참가하여, 현지 합창 전문가들로부터 격찬을 이끌어 냈다. 러시아에서 탄생한 세계적인 남성합창단 ‘Don Cossak’은 남성합창의 진수를 보여주어 합창음악사에 있어 기념비적인 전설이 되어 있다. 국내의 혼성, 여성, 남성합창단을 망라하여 한국남성합창단이 오랜 전통과 함께 수준 높은 합창단으로서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한국남성합창단의 창단과정과 운영시스템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1950년∼1960년대의 타 합창단은 대부분 지휘자가 창단을 주도하고, 단원을 모아 운영 일체와 재정까지도 책임져야 하는 무거운 부담 때문에 영속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한국남성합창단은 예외적으로 단원들이 먼저 합창단을 창단하고 이후에 지휘자를 초빙하는 형태를 취하였고 따라서 운영의 주체는 단원들이 되었다. 운영자금 조성은 물론 일체의 경영은 단원들의 손에 의하여 이루어졌고, 지휘자는 지휘에만 전념하면 되었다. 한국남성합창단의 단원구성은 음악 전공자와 비전공자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비율은 비전공자가 많다. 창단 이후 40년이 넘는 세월동안 단원들의 연령 폭 또한 넓어져 지금은 60대의 고참 단원과 20대의 젊은 단원이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리하여 부자(父子)단원이 탄생하여 한 무대에서 노래 부르는 기분 좋은 일도 생기곤 한다.
창단사
‘반 세기 남성 합창의 역사’ 그동안 이 땅에서 수많은 합창단이 창단되고 소멸되어 갔으나 비직업 합창단인 한국남성합창단이 근 반세기에 이르는 기간 동안 활발한 활동을 통하여 최고 수준의 합창단으로 평가되어 오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 합창계에 있어 경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창단 당시의 연습 때는 반주 악기도 없는 강의실에서 단원 중 한 사람의 지도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발족 1년 만인 1959년 5월 6일 창단연주회를 가졌다. 서울 중구 명동에 있던 시공관(후에 국립극장으로 개편)에서 초대 지휘자인 미국인 Hugo George Goetz 씨(주한 미군 중령)의 지휘로 그 막을 올린 것이다. 연습 장소는 물론, 지휘자도 없었던 합창단에게 편의를 제공하겠다며 지휘를 자청하고 나선 Goetz 씨는 용산의 미8군 영내교회를 연습장소로 제공하였을 뿐 아니라 악보와 단원들의 출석 및 귀가 편의를 위한 2대의 군용버스까지 동원해주었다. 이는 곧 한국남성합창단이 조기에 자리를 잡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 셈이 되었다. 창단공연 직후 Goetz 씨가 본국으로 전근하게 되어 경희대 음대의 서수준 교수를 2대 지휘자로 맞이한 한국남성합창단은 같은 해인 1959년 12월 19일에 제2회 연주회를 가졌다. 서수준 씨는 이후 10년 간 한국남성합창단을 지도하여 기초를 단단히 쌓는데 공헌하였으며 그의 지휘하의 기간은 한국남성합창단이 국내 굴지의 합창단으로 성장하게 된 시기가 되었다. 서수준 교수의 뒤를 이어 유병무(前 선화예술고등학교 음악부장, 음악감독)선생이 이후 29년 간 지휘자로 봉사했으며 그 후 4대 지휘자 김홍식 교수에 이어 현재는 최영주 교수가 바톤을 이어받아 지휘하고 있다. - 젊음·노련미·지혜의 조화로운 집합체 대학생 35명이 모여 만든 한국남성합창단은 그동안 남자들만 가입을 받아 현재 단원 수는 150여 명. 한국남성합창단의 단원들은 서로 굳은 유대와 형제애로 얽혀있다. 40년이 넘는 세대차이의 특이한 구성은 오히려 커다란 강점이 되고 있으며, 젊은 단원들의 패기와 장년들의 노련미의 조화는 합창단을 안정적으로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아닐 수 없다. 창단 당시, 단원들은 ‘검은 머리가 다 세어 백발이 될 때까지 무대에 서자’고 다짐하곤 했는데 이 다짐은 변함없이 지켜지고 있다. 창단을 주도했던 단원을 비롯하여 이후 입단한 많은 단원들이 백발이 성성한 채 아직도 무대를 지키고 있다. 합창단을 떠나 있는 동문 단원들은 재계, 언론계, 의료계, 법조계, 종교계와 교육계, 학계 등에서 나름대로 지도적인 위치를 확보하여 합창단 발전에 음양으로 큰 성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주요활동내용
1958. 창단 1959. 05. 제1회 정기연주회 (지휘 H.G.Goetz /소프라노 장혜경 / 시공관) 1959. 12. 제2회 정기연주회 (지휘 서수준 / 소프라노 황영금 / 삼일당) 1960. 07. 13 한불문화협회 주최 불란서 대혁명 기념음악회 협연 (지휘 서수준) 1961. 07. 美 Harvard대학교 남성합창단 Harvard Glee Club과 협연 1962. 04. 제5회 정기연주회 (지휘 김치석 / 시공관) 1962. 05. 제1회 서울국제음악제 참가 (지휘 안익태) 1962. 10. 서울시립교향악단 제100회 기념 대 연주회 협연 1970. 10. 서울음악제 출연 (지휘 유병무) 1970. 12. Christmas 축하음악제 출연 1970. 12. 성탄절 自祝會 (서울대학교 교수회관) 1971. 06. 제12회 정기연주회 (지휘 유병무 / 국립극장) 1970. 10. 서울음악제 출연 (지휘 유병무) 1970. 12. Christmas 축하음악제 출연 1970. 12. 성탄절 自祝會 (서울대학교 교수회관) 1971. 06. 제12회 정기연주회 (지휘 유병무 / 국립극장) 1988. 06. 창단 30주년 기념 정기연주회 (지휘 유병무 / 소프라노 송광선) 1989. 05. 제3회 韓日合同演奏會 (지휘 유병무, 아라따니 순치 / 東京 신쥬쿠 文化센터) 1998. 08. 정부수립50주년 기념 예술의 전당 한국합창대제전 출연 1998. 11. 창단 40주년 기념 정기연주회 (지휘 유병무 / 반주 이선희 / 바리톤 최현수) 2000. 05. 제7회 韓日親善男聲合唱演奏會 (지휘 김홍식 / 동경스미다 트리포니홀) 2000. 05. 일본 간사이지방 특별연주회 (지휘 김홍식 / 尼崎市종합문화센터) 2000. 11. 창단 42주년기념 정기연주회 2000. 12. 아시아 송년 대합창축제출연(지휘 김홍식/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2003. 06. 베를린합창제 참가 특별연주회(장소:베를린 필하모닉홀 KAMER MUSIK SAAL) 2003. 06. 드레스덴경찰청합창단 창립50주년 기념연주 추천공연(드레스덴소재 필니쯔 성)
예술가
초대 지휘자: GOETZ (주한미군 중령) (1958.5 ~ 1959.5) 2대 지휘자: 서수준 (1959.6 ~ 1961.7.15) 3대 지휘자: 김치석 (1961.12 ~ 1962.12.27) 4대 지휘자: 서수준 (1963.1 ~ 1968.10.28) 5대 지휘자: 유병무 (1969.1 ~ 1998.11.19) 6대 지휘자: 김홍식 (1999.1 ~ 2004.11.26) 7대 지휘자: 최영주 (2004.12 ~ 현재) 한국남성합창단이 음악적 고마움을 표하는 대상은 당연히 그들에게 음악적 도움을 주고 있는 지휘자다. 10년 이상 합창단을 이끌던 서수준, 29년 동안 그 뒤를 이끌어온 유병무와 김홍식에 이어 현재는 최영주가 상임지휘를 맡고 있다. “프로의 맛과 아마추어의 맛이 다르죠. 제가 그들에게 음악적인 부분을 가르친다면, 저는 그들로부터 음악에 대한 열정에 관해 배웁니다. 기계적인 연주가 아닌 음악의 혼이 들어 있는 연주를, 그것도 매 공연 때마다 심혈을 기울일 수 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들의 열정과 혼이 뿜어내는 아름다움은 다른 무엇과도 비교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저는 한국남성합창단을 통해 인생을 배우고 있습니다.”(6대 지휘자 김홍식)
리뷰
한국의 진짜 ‘남성합창단’ 우리나라 합창 음악계에서 그 역사나 음악성이 뚜렷이 부각되는 아주 귀한 연주 단체다 한국합창총연합회 회장 오세종 합창을 통해 척박한 도시 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고,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겨 큰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단원들간에는 따뜻한 정이 흐른다 창단 멤버 신상철 한국남성합창단의 길 물론 이들에게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재정적인 어려움은 차치하고라도 단원들의 신변 변화(유학, 입대, 전근 등)로 인한 급격한 단원 격감을 맞이하기도 했고, 연습 장소를 상실해 여기저기를 전전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단원들은 더욱 헌신적으로 합창단을 가꾸고 발전시켜 오늘에 이르게 했다. 또한, 해외 공연을 통해 국제적 역량도 쌓았다. 2003년도 독일에서 열린 세계합창제에 초청되어 그곳 잡지의 표지를 장식한 자신들을 보고 감격하기도 했다. 이제는 문화 사절로서의 역할 또한 그들에게는 중요한 사명이 되었다. 남자들만으로 끈끈하고도 질기게 반세기를 지탱해온 합창단. 어디 이런 합창단이 또 있을까? 꿈을 현실로 만든 이들의 열정은 함부로 흉내낼 수 없는 무엇을 담고 있었기에 보는 이를 더욱 벅차게 했다. ‘On the field 한국남성합창단’, 김혜진, <콰이어&오르간>, 2002년 3월호
연계정보
-광주시립합창단
관련사이트
한국남성합창단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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