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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오티별신제(堤川吾峙別神祭)

작품/자료명
제천오티별신제(堤川吾峙別神祭)
전승지역
충청북도 수산면 오티리
지정여부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제8호
구분
무속의례
개요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비는 동제(洞祭)의 형태는 산신제(山神祭)를 비롯하여 서낭제, 탑신제(塔神祭)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오티별신제(吾峙別神祭)는 한강 이북에 분포된 북방계의 서낭제이고 그 제의(祭儀)가 별신제의 형태를 갖고 있다. 오티별신제의 유래는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오티마을이 약 400년 전에 형성되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별신제의 유래도 400년전으로 추정이 가능하다. 특히 오티마을의 뒷산에 봉수대(烽燧臺)가 있었고 오티마을에 봉화군(烽火軍)이 상주했다는 역사적 배경에서 보면 오티별신제는 봉수대와 관련이 있었다고 볼 수도 있다. 마을 공동의 민간신앙으로 옛날부터 전승되어 온 민속이다. 오티별신제는 정월 14일 밤, 산신제는 15일 아침부터 다섯고개에 있는 상당(上堂)과 하당(下堂)에서 서낭제를 지내고 나서 마을에 있는 본당(本堂)에서 제의(祭儀)를 마친다. 제주(祭主)의 선정, 제의의 과정은 생기복덕(生氣福德)에 맞는 사람이 마을을 대표하여 영신(迎神), 오신(娛神), 송신(送神)의 구조로 이루어지며 특히 풍물을 치며 노는 뒷풀이가 있다. 신당(神堂)은 당집과 서낭나무로 되어 있으며 제의과정과 금기(禁忌)가 엄숙하며, 전 동민이 별신제에 적극 참여하는 등 비교적 동제로서의 형식이 잘 전승되고 있다. 오티별신제는 동제의 한 유형으로 공동체 민속신앙적 기능과 사회통합의 상징적 의례행위로서 우리나라 북방계의 동제인 서낭제이다. 마을 주변의 고개에 5개의 신당이 있고 2년 마다 별신제를 지내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충청북도 내에 현존하는 유일한 서낭 별신제이다.
내용
제차(祭次)는 정월 12일부터 고양주를 준비하면서 본격적인 별신제 과정이 시작된다. 이 시기부터 철저히 금기를 지키고, 산신당에 금줄을 치고 술을 빚고, 쌀, 술단지, 누룩 등을 준비하고, 당우물을 청소한다.
1일차
오티별신제는 음력 정월 보름을 전후한 이틀 동안에 걸쳐 행해진다. 별신이 들지 않는 해에는 산신제만 행한다. 첫째 날은 마을 뒷산에 있는 산신당에서의 산신제가 이루어진다. 산신제는 한밤 중에 진행되는 엄숙형 제의이기 때문에 해질 무렵인 오후 5시경부터 고양주에 의해 산신당에 제물을 차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제의는 재배-헌작-독축-소지-청배의 유교적 제의방식에 따라 진행된다. ①독축 제관은 마을신에게 바치는 공식적 기도로서 독축을 행한다. 독축이란 다름 아닌 축문을 읽는 것으로서 제관이 독축을 하는 동안 모든 참례자는 경건한 마음으로 듣는다. 제관이 독축을 끝내면 다 함께 두 번 절한다. 제문은 예전에 한문으로 쓴 것이 있었는데 없어지고 한글 위주의 제문만 남아 있다. 축문의 주된 내용은 신에 대한 의지를 말하고 나서 마을의 평화와 안정을 꾀하고 나쁜 재앙을 몰아내 달라는 것이다. 그 핵심은 기본적이고 대동적 관심이 우선하는 것이다. 곧 마을의 제액초복(除厄招福)과 풍년농사, 무탈한 마을행사 등을 위한 기도문으로, 유교식 제문(祭文)을 기본 틀로 하고 있다. 산신제의 축문 유세차 신사정월 경인십오일 신축유학 감소고우 산천지신 세재신사 치차단심 복걸신령 조림하토 시유상원 약진미성 부혁거민 유령유신 일구동중 종인지원 유원필수 무편무사 전피령은 백실함염 도필함흠 초례고상 천병백해 후거재앙 일시함열 근백배 고사우 신 상향 매차골 서낭제 축문 유세차 신사정월 경인십오일 신축유학 ○○○ 감소고우 성황지신 천병백해 유령유신 조림하토 일시답멸 무편무사 복포신명 호도원적 유원필도 부휼거민 소멸해상 도필함흥 종인지원 세재신사 촌등추색 백실합영 시유상원 풍등농상 몽은하해 원축질액 치차단심 일시동리 신포복덕 약진진성 공개복강 일구촌중 초래고상 세세유증 전피경은 후거재앙 근백배 고사우 신 상향 ②소지 올리기 유교식 축문의 송독으로 마을 전체의 염원을 빌었어도 한번 더 소지를 올려서 마을과 각 가정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한다. 오티산신제에서 올리는 소지는 이른바 대동소지로서의 성격을 띤다. 곧 마을 전체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하는 것이다. 또한 마을을 대표할 수 있는 각 기관장이나 이장, 원로회장 등이 소지를 올리기도 한다. 소지를 올리면서 비는 말은 무척 다양하지만 그 형식은 어느 정도 교술성을 띠는데, 정형화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형식은 다음과 같다. 산신제가 끝나면 바로 하산하여 마을 어귀에 있는 매차골 서낭당에서 서낭제를 준비한다. 제물은 떡과 술을 올리는데 앞서 사용한 것은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재배-헌작-독축-소지가 주된 진행 절차이며, 축문은 따로 사용한다. 이러한 두 과정(산신제, 매차골 서낭제와 본당제)이 첫째 날에 행해지는 제의이다. 예전에는 철저히 남성 위주이고 공개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③음복(飮福) 음복이란 마을신이 남겨준 제물을 제관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이 함께 나누어 먹는 절차다. 마을 사람들의 정성이 담긴 제물은 이제 마을신이 드시고 남은 것이기 때문에 단순한 제물이 아니라 성화(聖化)된 제물로 한층 더 종교적 의미를 강하게 갖는다.
2일차
오티별신제에서 행해지는 대부분의 제의(상당 대고사)는 둘째 날에 이루어진다. 곧 음력 1월 15일 아침부터 시작된다. 이날 마을 사람들은 오전 7시부터 제 지낼 준비를 하는데, 남자들은 제의 도구나 농악대의 점검 등을 하고 여자들은 먹을 음식을 장만하거나 신께 올릴 제물을 준비한다. 서낭제는 여성의 참여를 꺼리고 남성 위주로 진행된다. ‘農者天下之大本’라고 쓴 농기와 소나무로 만든 서낭대를 준비한다. 서낭대는 하루 전날 깊은 산 속에서 줄기가 곧게 자란 소나무를 2.5m 정도의 크기로 잘라 온다. 서낭대는 별신제를 지내는 동안 신의 감응을 확인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농악대가 모여 마을 사람들에게 제를 올릴 시간이 되었음을 알려준다. 앞서 상당에 올라간 고양주, 제관, 축관이 제사를 준비하고 해가 뜨기 시작하면 마을 농악대를 앞세우고 사람들과 함께 상당으로 출발하여 제를 올린 뒤 풍물과 함께 깃대를 앞세우고 다섯 개 서낭을 돌며 제를 올린다. 농악대는 농기를 선두로 하여 두 사람이 서낭대를 잡고 따른다. 다음으로 여장한 사람이 가고, 법고장구북징재파리꽹과리의 순서로 이동한다. 여덟 명의 제주는 각자 맡은 역할을 하는데 각자가 맡은 제당에 제주는 먼저 가서 제물을 준비하고 기다린다. 마을 사람이 도착하면 맞이하고 제의 진행을 주관한다. ①상당 서낭제 제의는 다섯 개 서낭이 있는 장소 중 제일 높은 봉우리인 큰봉화재에서 시작한다. 이 서낭은 상당, 큰재 서낭, 상봉우재 서낭이라고도 부른다. 농악대와 마을 사람들이 상당에 도착하면 요란하게 풍물을 울리며 뛰어 들어가 상당을 중심으로 나선형으로 두 바퀴를 돈다. 제를 준비하는 동안 농악대는 둥글게 원을 만들며, 상쇠와 부쇠를 선두로 하여 재파리, 징, 북, 장구, 법고, 여장의 순서로 돈다. 원 안에서는 여장을 한 사람과 무동, 포수, 새납을 부는 사람이 흥겹게 춤을 춘다. 제사상이 다 차려지면 마을 원로들이 주축이 되어 제를 올리는데, 재배-헌작-소지의 순서로 한다. 소지는 산신당에서 올렸던 것과 같은 대동소지이다. 이때 참석자들은 모두 절을 한다. 상당에서의 제의가 끝나면, 근처에 서 있는 큰 느티나무 앞에서 수구막제를 지낸다. 이때의 제물은 상당에서 쓴 것을 그대로 가져다 쓴다. 이 모든 제의가 끝나면 떡과 삼색실과를 나누어 음복하고 이때 약간의 음식을 덜어 서낭당 앞에 남겨 둔다. 다시 풍물을 치면서 제관에 의해 서낭신이 청배되고 서낭대잡이의 대 흔들림으로 신의 감응이 확인된다. 신이 청배되면 제의 참가자들은 서낭대를 향해 절을 한다. 농악대는 농악을 일시 중단하고 제관은 신이 오셨음을 감사하는 내용의 기원을 하며, 하당으로 내려가시기를 청한다. 서낭대가 감응하면 신대를 흔든다. 농악대는 다시 농악을 울리고, 농기와 서낭대를 앞세워 하당으로 내려간다. ②작은재 서낭제 작은재 서낭당은 오래된 매차나무로 상당 바로 아래에 위치하며 고양주는 미리 와서 제의를 준비한다. 농기를 앞세운 제의 행렬은 서낭당에 도착하여 농악을 울리며 서낭당을 한 바퀴 돌고 서낭대잡이는 서낭대를 서낭당에 기대어 놓는다. 작은재 서낭당의 제의 순서는 재배-헌작-소지로 상당과 동일하나 소지는 개인 소지를 올린다. 음복을 하고 나서 약간의 제물을 서낭당 앞에 남겨 두고, 신을 청배한다. 상당에서와 마찬가지로 제관이 신을 청배하며, 서낭대잡이의 대 흔들림으로 신의 감응이 확인된다. 신이 감응하면 제의 참가자들은 서낭대를 향해 절을 하고, 신을 좌정시킨다. 제관은 신이 내려오셨음을 감사드리고, 하당으로 내려갈 것을 청한다. ③구실재 서낭제 구실재 서낭당은 오래된 매차나무이며, 금줄을 둘러놓았다. 제의의 행렬이 서낭당 앞에 도착하면 고양주가 제사상을 차리는 동안 농악대와 구실재 사람들이 어울려 농악을 논다. 진을 치는 모양은 원을 만들어 빙빙 돌아가고 원 안에서는 여장을 한 사람과 무동, 새납, 포수가 춤을 춘다. 제사상이 다 차려지면 제관의 진행으로 제의가 시작된다. 제사상에는 백설기와 삼색실과, 술 세 잔이 올라가며 시루 속에는 왼쪽에 북어포를 꽂아 놓고 오른쪽에 젓가락 세 쌍을 꽂는다. 탕과 촛대는 올리지 않으며 술잔과 젓가락이 세 개씩인 것은 큰봉화재 서낭신과 작은봉화재 서낭신이 내려오셨기 때문이다. 제의는 재배-헌작-소지의 순으로 이루어지며, 시루떡을 바친 마을사람이 개인소지를 올린다. 이후 순서는 작은재 서낭당에서와 같다. ④흰뜨재한나물재 서낭제 흰뜨재한나물재 서낭제를 올리는 장소는 매차골로 들어가는 입구인데 제천청풍과 수산을 연결하는 도로변에서 진행된다. 여기에서는 술잔과 젓가락이 다섯 개씩인데 그 이유는 지금까지 모시고 내려온 서낭신 세 분과 흰티재 서낭신, 해너물재 서낭신의 것이다. 여기에서는 두 분의 서낭신을 모시기 때문에 술을 두 번 올린다. 먼저 흰티재 서낭신께 제를 올리고 나서 잠시 농악을 멈추고, 해너물재 서낭신께 술잔을 올리고 농악을 울린다. 제의는 재배-헌작-소지의 순으로 진행된다. 이후 음복과 청배 등은 앞의 서낭제와 같다. ⑤본당(중앙당) 서낭제 마지막 제의의 장소는 마을 복판에 자리한 서낭당(느티나무)이다. 본당에 들어올 때 입구에서부터 "꺙!" 하는 함성을 지르며 힘차게 뛰어 들어온다. 농악대는 느티나무를 두 바퀴 돌며 요란한 쇳소리를 낸다. 이곳에는 지금까지 모셔 온 다섯 서낭신과 붉은당 서낭신, 느티나무 서낭신을 좌정시킨다. 제물은 특별히 황소 대가리와 다리 네 족이 추가되며, 황소 대가리에 칼을 꽂아 놓는다. 이때, 칼날은 마을 바깥쪽을 향하도록 하는데, 이 또한 벽사의 기능을 하고 있다. 떡도 백설기와 켜떡이 준비된다. 황소 대가리가 담겨 있는 그릇의 왼쪽에 북어포를 꽂아 놓고, 켜떡이 들어 있는 시루에도 왼쪽에 북어포를 꽂는다. 젓가락은 켜떡이 있는 시루에 네 쌍을 꽂고, 백설기가 들어 있는 시루에 세 쌍을 꽂는다. 제사상의 양쪽에 촛불을 켜 놓고, 탕과 삼색실과를 올려놓는다. 술잔은 일곱 개가 준비되며 이는 오티마을의 일곱 수호신을 상징하는 것이다. 제의는 재배-헌작-소지의 순으로 진행되고, 각 기관장이나 마을 이장, 별신제를 지내는 데 수고한 사람들의 소지를 올려 주며, 희망자에 한해서 개인소지를 올린다. 다른 서낭당과는 달리 본당에서의 제의가 진행되는 동안 농악은 울리지 않는다. ⑥송신(送神) 마지막에는 신을 청배하는데 청배-송신의 순서로 진행된다. 제관은 신을 좌정시키고 송신의 말을 한다. “여러 서낭님이 다 한마음 한뜻으로 이렇게 정성을 받들어 주시니 우리 동민은 뭐라고 얘기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반갑다고 감응해주시니 감사하고 이제 여러 서낭님도 자기 자리를 찾으셔야 합니다. 내 자리는 내가 찾아가야 하고 그저 이렇게 내려오셨으니 정말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기왕 이렇게 오셨으니 한번 더 술술 놀아주시고 그저 내 자리를 찾아가 주시기 바랍니다.” 풍물패는 풍물을 울리고 서낭대잡이는 춤을 춘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 또한 박수를 치며 어울려 춤을 춘다. 제관은 신목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며 예의를 차리고 송신을 한다. 농악은 더욱 빨라지고, 서낭대잡이도 격렬하게 춤을 춘다. 모시고 온 서낭신이 모두 제자리로 돌아감으로써 본당의 제는 끝이 난다. 이로써 제의는 모두 끝나고 허재비놀이와 뒷풀이가 남게 된다. ⑦허재비놀이와 뒤풀이 허재비는 각각 남녀 한 쌍을 만드는데, 키는 약 70cm 정도이며, 사람의 모습과 유사하게 만든다. 곧 남자 허재비의 경우 커다랗게 성기를 만들어 앞으로 튀어나오게 하고, 여자 허재비는 가슴에 돌멩이나 짚을 둥글게 말아 넣는다. 또한 손가락이나 발가락의 모양도 구체적으로 만들고 얼굴에는 한지를 붙여 눈코입을 그려 넣는다. 여자 허재비는 치마저고리를 만들어 입힌다. 다른 준비물로 약 70여 개의 수수팥떡이 필요하며, 수수팥떡을 꽂아 만든 화살이 준비된다. 허재비놀이는 마을 입구에서 하는데 먼저 남녀 허재비를 마을 바깥쪽으로 눕혀 놓고, 약 2m 정도의 간격을 두고 수수팥떡을 놓는다. 그리고 술잔을 7개 놓고 마지막으로 바가지를 놓는다. 준비가 다 되면 신명꾼 2명이 나와서 춤을 춘다. 이때 제관의 사설에 맞추어 허재비를 서로 어르기도 하고 둘에게 싸움을 시키기도 한다. 혹은 모의 성행위를 하거나 말을 잘 듣지 않는다며 매질을 하기도 하고, 춤을 추는 등 활발하고 역동적으로 진행된다. 제관은 이러한 과정에서 허재비가 마을의 액운을 모두 가져가 주기를 기원하며 사설을 읊는다. 이러다가 허재비를 바닥에 내리치고 술과 수수팥떡을 집어 던지고(본래 화실로 쏜다) 이어서 술잔을 엎어버린다. 제관이 바가지에 술을 가득 붓고 미리 준비한 칼로 술을 저으며 액운을 모두 가져가라고 기원한다. 사설이 끝나면 다시 농악을 멈추게 하고 바가지의 술을 모두 허재비를 향해 뿌리며 액운을 가지고 멀리 가라고 호령한다. 이때 신명꾼은 허재비를 마을 바깥쪽으로 가져다 놓는다. 농악을 울리며 놀다가 중단시키고 칼을 뽑아 멀리 집어 던진다. 이때 칼끝이 마을 바깥쪽으로 나가지 않으면 나갈 때까지 계속 집어 던진다. 마지막으로 제관은 바가지를 땅에 엎어놓고 칼날이 허재비가 있는 방향을 향하도록 땅에 꽂아 놓는다. 그리고는 침을 뱉고, 수수팥떡을 올려놓았던 나무판을 발로 한번 힘껏 밟는다. 이로써 오티마을의 재액이 완전히 소멸된 것으로 인식한다. 허재비놀이가 모두 끝나면 허재비와 몽둥이, 활, 화살은 그대로 버려 두고 칼과 바가지는 다시 가져간다. 허재비놀이가 끝나면 마을 어디에서나 절대로 쇳소리를 내지 않는다. 마을 사람들은 회관에 모여 남은 음식을 나누어 먹고, 한 해 동안의 마을일을 의논하며 친목을 도모한다. 허재비놀이와 별신제의 뒤풀이는 이틀 동안의 제의에서 가장 절정을 이루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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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도서 <제천마을지>, 제천문화원, 1999 <제천시 오티 별신제>, 이창식, 제천문화원, 2001 · 관련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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