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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장좌리당제 및 당굿(莞島長佐里堂祭 및 堂굿)

작품/자료명
완도장좌리당제 및 당굿(莞島長佐里堂祭 및 堂굿)
전승지역
전라남도 완도군 장좌리
지정여부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28호(1995년 12월 26일 지정)
구분
무속의례
개요
장좌리는 완도읍에서 동북쪽으로 4㎞ 떨어진 해변에 입지한 마을로 해상왕 장보고의 기지터로 알려져 있다. 완도장좌리당제 및 당굿은 전라남도 완도군 완도읍 장좌리에서 행해지는 당제와 당굿이다. 매년 정월 대보름 일출 무렵, 마을 주민 모두가 참여하여 장도(將島)의 송대장군당(宋大將軍堂)에서 지내는 동제이다. 제를 지내는 곳은 두 곳이다. 한 곳은 마을에서 300m 떨어진 장도라는 섬이고, 다른 한 곳은 마을 안 사장나무 거리에 위치한다. 장도의 당은 섬 가운데 위치한 당집인데, 당집을 둘러 싸고 후박나무와 동백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당집은 마을을 등지고 바다를 향해 동향으로 세워진 맞배식 기와집이다. 당 안에는 주신인 송징장군(宋徵將軍)과 그 우측에 정연장군(鄭年將軍), 좌측에 혜일대사가 모셔져 왔었으나 1982년부터 장보고장군(張保皐將軍)을 추가하여 모시고 있다. 송대장군은 장보고의 별호로 추정되나 삼별초 항쟁 때 완도에 머물면서 항쟁운동을 벌이며 마을 사람을 보살폈던 송징(宋徵)이라는 설도 있다. 다른 한 곳은 마을 해변에 있는 사장거리로 장도의 당에 비해 중시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 1995년 12월 26일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28호로 지정되었다.
흐름
장좌리는 완도읍의 바닷가에 자리잡은 마을로 앞바다에 장도(將島)라는 조그마한 섬이 있다. 이 섬에 송대장군당(宋大將軍堂)이라는 당이 있어 해마다 정월 대보름날이면 당제를 지낸다. 송대장군이라 전해지는 신은 삼별초난 때에 한 해 동안 머물면서 이곳 사람들에게 선정을 베풀었다는 전설이 있는 송징(宋徵)장군을 가리킨다고 한다. 청해진에서 장보고(張保皐)가 반란을 일으키다가 암살된 뒤에 나라에서 따돌림을 당했던 완도 사람들은 오랜만에 나라에서 베푼 송 장군에게 감복하여 당신으로 모셨다고 하는데, 완도읍에 있는 여러 마을에서 송 장군을 모셔 당제를 지내왔다 한다. 우리 나라에서 당제를 가장 많이 지내는 때가 정월 대보름날이지며, 장좌리 당제 또한 이날 아침 해뜨는 시각에 맞추어 올린다. 장좌리는 바닷가에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전형적인 어촌으로, 옛날 신라 때 장보고가 해군기지를 세우고 동양삼국을 휩쓸었다고 하는 청해진 터가 이곳이다. 지금도 장좌리 앞바다에는 청해진 옛터의 흔적을 볼 수 있는 데, 썰물이 지면 옛날 장보고가 배를 매 두었다고 하는 통나무가 남아 있다. 장좌리가 이렇게 유서깊은 마을인 만큼 당제는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었음에 틀림이 없다.
내용
당제를 지내기 위해서는 여러 절차를 거친다. 정월 초사흘이 되면 마을 총회인 대동공회(大同公會)를 열어 제관, 제비, 굿칠 사람을 선정한다. 제관으로는 당주와 집사를 뽑는데, 이들이 일체의 제사 절차를 진행한다. 집사의 경우는 독축과 집례에 밝아야 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일을 맡지만 당주는 매년 새로 선출한다. 제비는 집집마다 얼마씩 내는 호구전으로 걷는다. 당주는 보름을 5∼7일 앞두고 제사 준비를 시작한다. 먼저 당샘을 청소하고 금줄을 쳐 다른 사람의 출입을 막는다. 이 물을 오직 당주만 사용하며 제물을 만든다든지 당주가 목욕을 하는 경우 당 당제에 관련되어서는 오직 이 물만을 사용해야 한다. 또 당주는 부부간에 금욕하는 등 철저하게 금기를 지켜야 한다. 당제에 필요한 제수는 제 지내기 2∼3일 전 이장과 당주가 함께 완도읍장이나 해남 송지장에서 구입한다. 제수 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쇠머리다. 장을 보아 오면 당주 내외가 자기 집에서 음식을 만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날마다 당에 올라가 불을 밝혀야 한다. 당제를 하루 앞두면 사장나무 거리와 장도의 당집 주의를 청소하고 금줄을 치고 금토를 깐다. 장좌리에서는 섣달 그믐이 되면 당제를 대비하여 제주(祭主)와 굿패를 정하고 풍물을 마련해 둔다. 제주와 굿패들은 근신하여 제사 채비를 한다. 정월 열 나흗날 초저녁이 되면 제관과 굿패들이 마을회관 앞에 모인다. 보름달이 떠오르면 마당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굿패들이 풍물을 친다. 장좌리 당제에서 풍물을 치는 굿패들은 징 1, 장구 1, 꽹과리 3, 북 10, 소고 3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밖에 창부나 포수와 같은 잡색들과 한 쌍의 영기잽이가 따른다. 굿패들은 바지 저고리에 색띠를 두르고 고깔을 쓰며, 소고잽이들은 치마 저고리를 입고 고깔을 써 무동차림을 하기도 한다. 꽹과리잽이는 상모가 달린 벙거지를 쓰고 상모를 돌리며, 다른 굿패들은 오색꽃이 달린 고깔을 쓰고 춤을 춘다. 창부는 본래 청창옷에 초립을 쓰는 것이나 두루마기에 지화를 단 패랭이를 쓰기도 한다. 포수는 원래 철릭에 관을 쓰는 것이지만 흰 두루마기에 지화를 단 관을 쓰기도 하는데 관에는 대장군(大將軍)이라 써 붙인다. 농악의 상쇠는 김봉도씨가 맡고 있으며, 당굿의 가락의 절차는 다음과 같다. <시작 및 이동> 질굿 10차(次)→목에 갈 때8차(次)→질굿10차(次)→당산굿8차(次)→제굿(늦은 3차(次)→빠른 3차(次))→<당 도착 후> 2차(次)-8차(次)→북수놀이→<당제가 끝난 후 배를 타고 마을로 이동> 11차(次)→선창굿(10차(次))→<우물굿>늦은 삼차→빠른 삼차→<들당산, 날당산굿>8차(次)→북수놀이 굿패들은 풍악을 울리며 모닥불을 돌아간다. 멍석말이 등 여러 가지 진법 놀이도 하고 부포놀이·소고놀이 등 갖가지 놀이를 섞어 가며 놀다가 자정이 지나면 풍물을 그친다. 새벽 세 시쯤 되면 북을 울려 굿패들을 다시 모으고 열을 지어 풍악을 울리면서, 썰물로 바닷물이 나간 모래펄을 300m나 나아가 장도에 이른다. 먼동이 트기 시작하면 굿패들은 풍악을 울리며 섬 둘레를 크게 세 바퀴 돌고 나서 섬 안에 있는 당으로 올라가 당을 다시 세 바퀴 돈다. 풍물가락 <시작 및 이동> : 질굿 10차(次)→목에 갈 때8차(次)→질굿10차(次)→당산굿8차(次)→제굿늦은 3차(次)→빠른 3차(次) 굿패가 당에 도착하면 당주를 비롯해 집사와 이장 등이 젯상을 차린다. 특히 중앙의 송징장군 상에는 쇠머리에 칼을 꽂아 진설한다. 해가 떠오를 시각에 맞추어 제가 시작된다. 제는 유교식의〈설상→분향→강신→독축→초헌→아헌→종헌→소지→음복→헌식→철상〉순서로 진행된다. 제사가 끝나면 굿패가 날당산을 치고 섬에서 나온다. 들어 올 때는 걸어서 왔지만 나갈 때는 바다물이 만조가 되어 배를 타고 나간다. 이때 배를 타고 나가면서 치는 뱃굿이 장관을 이룬다. 굿패들은 쇠가락에 맞추어 당 앞에 늘어서서 제상을 차려 놓고 술을 부은 다음 절을 한다. 한편에서 모닥불이 피워지고, 절을 한 굿패들은 길풍장가락에 맞추어 다시 땅 둘레를 세 바퀴 돌고 나서 모닥불 곁에 둘러앉아 모두 함께 음복을 한다. 풍물가락 <당 도착 후> : 2차(次)-8차(次)→북수놀이 굿패들은 다시 굿을 이루어 풍장을 치고 일렬로 열지어 늘어서서 섬 둘레를 세 바퀴 돌고 나서 돌아오는데, 이때는 밀물이 들었기 때문에 걸어올 수 없으므로 몇 척의 배에 나누어 타고 온다. 굿패들이 풍장을 치면서 다투어 마을로 돌아올 때, 풍장소리가 요란한 가운데 노를 급히 저어 서로 빨리 가기를 겨루는 것이 장관이다. 이때 마을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바닷가로 나와 돌아오는 굿패를 맞이한다. 풍물가락 <당제가 끝난 후 배를 타고 마을로 이동> : 11차(次)→선창굿(10차(次)) 굿패들을 실은 배가 육지에 당도하면 집돌이를 하는데, 흔히 당제에서 집돌이에 맨 먼저 우물굿을 하듯이 장좌리에서도 먼저 우물굿을 친다. 바닷가에 있는 장좌리 큰우물(일명 장군우물)에는 큰 대나무를 양쪽에 꽂고 금줄을 걸어 놓았다. 큰 우물에 이른 굿패는 우물가를 세 바퀴 도는데 매번 한 줄로 늘어서서 쇠가락에 맞추어 절을 한다. 풍물가락 <우물굿> : 늦은 삼차→빠른 삼차 우물굿을 마친 굿패들은 사정나무로 가서 사정굿을 한다. 사정나무란 정자나무란 뜻이다. 지방마다 마을 앞에 있는 느티나무 또는 회나무가 정자 구실을 하지만 이 나무에 목신이 있다고 보아 풍악을 울리고 절을 하게 되는데, 정자나무 즉 사정나무에 치는 굿이라 하여 사정굿이라 이른다. 굿패들은 사정나무로 꼽아오는 수백 년 된 회나무의 둘레는 세 바퀴 도는데, 이때에도 역시 매번 늘어서서 절을 한다. 풍물가락 <들당산, 날당산굿>: 8차(次)→북수놀이 이어서 집돌이로 들어간다. 먼저 이장집과 마을 유지집을 돌고 집집마다 차례로 들러서 풍악을 울려 액을 물리치고 복을 불러들이는 의식을 행한다. 이 집돌이를 장좌리에서는 맷굿이라 하는데, 맷굿은 4, 5일 동안 행한다. 집집마다 굿패가 들어오면 굿패들이 풍장을 칠 동안 마당에는 음식이 차려진다. 맷굿치기를 마친 굿패들은 술굿을 치고 술과 음식을 나누어 먹은 다음에 마당굿을 한바탕 치고 다른 집으로 향한다. 집돌이 때 굿패가 들르게 되면 고사상을 차리고 상에 쌀과 돈을 놓는다. 굿패들은 이 쌀과 돈을 거두어 제비와 마을 공동사업에 충당한다.
연계정보
· 관련도서 <재발견 한국의 문화유산>,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민속원, 1997 <완도읍 장좌리 당제의 제의구조>, 호남문화연구 19집, 나경수, 전남대학교, 1990 <민속놀이>, 김광언 글, 김수남 사진, 대원사, 1992 · 관련사이트
용어해설
삼별초 : 1219년(고종 6) 최충헌(崔忠獻)의 정권을 계승한 최우(崔瑀)가 방도(防盜) 등 치안유지를 위해 설치한 야별초(夜別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별초란 ‘용사들로 조직된 선발군’이라는 뜻이다. 그 뒤 야별초에 소속한 군대가 증가하자 이를 좌별초 ·우별초로 나누고, 몽골병과 싸우다 포로가 되었다가 탈출한 병사들로 신의군(神義軍)을 조직, 이를 좌·우별초와 합하여 삼별초의 조직을 만들었다. 삼별초는 무신정권의 전위(前衛)로서 다분히 사병적(私兵的)인 요소도 있었으나, 항몽전(抗蒙戰)에서는 그 선두에서 유격전술로 몽골병을 괴롭혔고, 무신정권이 무너지고 몽골과 강화(講和)가 성립되자 반란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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